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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156화 만나고, 떠나다

우혁과 세실리아. 비행기 표를 끊었다. 이번에는 그의 요청에 의한 것이다. 그는 독일로 가기를 원했다. 로렐라이 언덕으로 가서 그녀의 종족을 찾고 싶었다. 물론 그녀는 반대를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그녀의 말.

우혁은 끈질기게 그녀를 설득했다. 그는 진심은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가 그를 사랑하는 그 인연의 깊이. 결국은 둘은 만나게 되었고 이렇게 함께 하고 있다. 이것은 운명이었다.

“운명?”

“내가 너를 만난 것도, 그리고 너와 함께한 것도 모두 다. 난 그것을 설명할 거야.”

세실리아는 그 말을 하는 우혁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두려움은 없었다. 하긴 인간은 인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건 심하다. 그는 레지나를 모르고 있다. 그녀가 얼마나 냉혹한지를.

그녀가 그와 동반하게 된 것. 그를 막고 싶었지만 의지가 너무 강해서 혼자 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소 충동적인 성격. 아무리 그녀가 완화시켰다지만 성격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구나 말도 통하지 않는다. 자신이야 이제 두 종족에게 말로 통역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 상황이다. 그리고 아무리 로드라지만 자신을 죽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징계는 내릴 수 있겠지만 인어의 종족 수는 자신을 포함해서 총 열 여덟. 그 수를 줄이는 짓은 절대 하지 않으리라.

그래서 그녀는 목숨을 걸었다. 만약 레지나가 우혁에게 어떤 위협을 가하려고 한다면 그녀는 자신의 생명으로 위협을 하려고 했다. 그게 통할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지금 로렐라이 언덕에 온 그들의 두 눈에 다소 충격적인 광경이 비쳤다.

“저… 저건 뭐야, 우혁?”

“개발을 한데. 더 큰 관광단지로.”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물 밑이야 건드리지는 않겠지, 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장담은 할 수 없나 보다. 거기다가 지금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더 많아질 것 같은 느낌이다. 알려지는 것. 인어들로서는 최대한 피해야 했다.

“꼭 여기에서 살아야 하는 거야?”

“응?”

“너희들 인어 말이야. 다른 곳은 안 돼? 더 안전한 곳.”

“그 곳이 어딘데?”

“그거야, 나도 모르지. 내 말은 굳이 여기서 살 이유가 있냐는 말이야.”

“그런 건 아니야. 예전부터 살아왔던 곳이기 때문에 사는 것일 뿐.”

그렇다면 더 조용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일단 그것은 나중 문제다. 그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 사실은 세실리아 때문이다. 그녀에게 종족에 대한 죄책감을 풀어주고 싶었다.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온 상황. 밤을 틈타서 물속으로 내려가는 한 명의 인간과 하나의 인어. 세실리아는 오랜만에 지느러미를 그에게 보였다.

깊숙이도 들어간다. 개발이 된다 하더라도 찾기는 힘들 것 같았다. 과연 인간이라면 어떻게 이런 장소가 있는지 도저히 모를 곳으로 인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물속인데 물이 없는 곳에 와버렸다. 지난번에는 창졸간에 느끼지 못했던 환경.

“너… 너는…”

그들의 앞을 막아서는 인어들. 그 중에 하나가 우혁을 알아보고 있다. 크로니라는 이름을 가진 인어. 그녀는 건강했다. 그래서 세실리아는 안심했다. 혹시나 그녀가 자신 때문에 죽음을 맞이했다면 얼마나 슬펐겠는가?

“네가 이렇게 오다니, 죽음을 자초하는 구나.”

우혁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예전에 들었던 세실리아의 발음과 비슷했다.

“뭐라는 거야?”

세실리아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이 없다. 그녀가 바라보는 곳. 인어의 로드가 그녀를 보고 서 있다. 안타까움과 분노의 눈빛으로. 그리고 다른 인어들이 그들을 둘러싼다. 경계의 대상. 왜 왔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시선.

“로드…”

“왜 돌아 왔느냐? 떠났으면 그냥 그대로 살 것이지…”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서 찾아 왔어요.”

결국 세실리아의 눈에서는 폭포수 같은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사실 보고 싶기도 했다. 인간 세상. 전혀 다른 세계에서 적응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거기다가 자신이 떠나온 과정을 돌아보면 이 착한 인어 아가씨는 종족을 떠올릴 때마다 속이 상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다. 자신이 그런 마음이라는 것을 그가 알았을 때 그 역시 마음이 아플 테니까.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눈치 못 챌 우혁이 아니다. 결국 그녀의 응어리진 그 마음을 풀어주고 싶어 여기까지 찾아오게 만들었으니.

“마음이 불편해? 그랬다면 떠나지 말았어야지.”

“레지나? 당신의 이름이 레지나라고 들었어요.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나요?”

드디어 우혁이 나섰다. 하지만 그의 말 중에 알아듣는 것은 레지나라는 자신을 부르는 호칭밖에 없다. 그녀는 차가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로 인해서 세실리아를 잃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녀가 망설이는 이유. 세실리아 때문이다.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아끼고 아꼈던 그녀가 우혁을 사랑하고 있다고. 첫 눈에 그를 사랑하게 되었고, 자신의 정기를 그를 살리기 위해서 전달을 했다. 영생의 호흡. 아무에게나 줄 수 없는 그것을 인간에게 주었을 때부터 사실 꼬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가 할 말이 있대요.”

세실리아는 우혁의 말을 통역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증오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크로니. 그녀가 악에 받힌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할 말은 무슨 할 말? 당장 죽여 버려요, 로드. 인간들에게 현혹되지 말라는 그 말씀, 전 항상 잊지 않고 있어요. 지금 저 자의 말을 들으면 현혹될 것입니다.”

레지나는 크로니의 말을 듣고도 여전히 표정의 변화가 없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이다. 그녀의 시선은 우혁에게 멈추어 있다. 그 눈빛은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분노, 원망… 그리고 또 다른 의미에서는 기대를 품고 있기도 했다.

세실리아. 레지나가 아끼는 종족원 중 하나였다. 미래의 영도자라고 생각을 했다. 그녀의 성품. 모든 것을 포용하는 그 점이 맘에 들었다. 그런데 그녀를 데리고 떠난 그에게 살의를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반면 언제까지 이런 삶을 영위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자살을 하려는 인간의 납치. 그래서 종족의 번식을 한다. 언제부터 내려온 관습적인 행위인지 모르겠지만, 레지나는 이 반복적인 행위에 이제 점점 지쳤다. 그래서 세실리아가 차라리 인간 세상에 잘 적응해서 잘 살기를 바란 적도 있다. 그녀를 데려간 우혁은 최소한 그녀를 이용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인간이여, 말하라…”

그녀의 입에서 떨어진 지시. 크로니는 표정이 변했지만 잠자코 있었다. 어찌 됐든 로드가 결정한 상황이다. 자신이 나서는 것은 월권행위이다.

세실리아는 표정이 밝아졌다. 어찌 되었든 레지나가 들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혁에게 통역을 한다. 하려는 말을 해달라고.

“지금 인간 세상에서 이곳을 탈출한 사람이 있습니다.”

“알고 있다.”

“그 사람이 세상 사람들에게 인어의 존재를 알리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그의 말을 무시하고들 있지만 반복해서 외친다면 호기심이 생깁니다. 그리고 몇몇 인간들은 당신들을 찾아낼 시도를 할지도 모릅니다.”

“위험을 경고하러 온 것인가?”

그녀의 눈은 분노를 더 크게 담았다. 고작 자신들에게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서 피하라는 말을 하려고 온 것이라면 실망했다는 표정.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은 그 얼굴. 그래도 우혁은 당당했다.

“물론 그것도 포함이 됩니다. 제일 큰 목적은 당당하게 세실리아를 얻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녀의 마음이 항상 불편한 것을 저는 더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행복하게 살 것이지 왜 찾아왔느냐?”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당당하게 허락받고 싶다고. 평생 세실리아만을 위해 살 것을 맹세합니다. 그러니 세실리아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십시오.”

“흥. 인간의 맹세 따위…”

불신의 눈빛. 어쩌면 먼 옛날부터 인간들에게 속아왔기 때문에 그의 맹세를 믿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다가 보게 되었다. 우혁의 눈을. 진심을 담고 있다. 몇 마디의 맹세보다 더 신뢰가 가는 눈빛이었다. 또 속아야 하는가? 그럴 수밖에 없다. 세실리아의 그를 보는 시선. 무한한 믿음을 보내고 있다. 그것을 보고 그녀는 느꼈다. 더 이상 이곳에 그녀를 속박하는 것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님을.

“믿어주십시오.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평생 그녀 하나만을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다시 한 번 그가 말한다. 그 말을 통역하는 세실리아의 눈에 기쁨의 눈물이 맺힌다. 결국 레지나는 등을 돌린다.

“가라, 그리고 네 말대로 그녀를 꼭 행복하게 해주어라. 그렇지 못 할 때에는 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너를 끝까지 찾아내어 죽음을 내릴 것이다.”

“로드…”

그 말에 대한 통역을 잊고 있는 세실리아. 그녀의 마음이 편해지고 있다. 사실 통역은 필요 없었다. 때로는 분위기로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때가 있으니 말이다.

“자주 찾아올게요.”

“그럴 필요 없다. 우리는 떠난다.”

“네? 어디로…”

“알려주지 않겠다. 그러니 행복하게 살아라. 이곳은 잊어라. 인간으로 살아가라. 내가 할 말은 그 뿐이다.”

등을 돌린 그녀의 자태. 더 이상의 질문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우혁과 세실리아를 에워쌌던 인어들은 길을 열었다. 로드의 뜻을 받들고 있다. 이미 명령이 떨어졌다면 따르는 게 그들의 숙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음 바뀌기 전에 어서 가라.”

결국 우혁과 세실리아는 그곳을 떠난다. 떠나는 길에 크로니가 쫓아 왔다. 혹시나 지난번 일 때문에 그런가 싶어서 그는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물속에서 지느러미를 보이며 자신들을 쫓아온 그녀.

“세실리아…”

“크로니, 그 때는 정말 미안했어.”

“됐어.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네가 말한 사랑이라는 것. 그 생각을 존중해주기로 했어. 그것보다 언젠가 우리를 찾고 싶다면 태초부터 존재했던 그 곳으로 와.”

“태초부터 존재했던 그 곳…”

“언젠가 로드가 말씀해주셨던 곳이야.”

크로니는 말을 하면서 우혁을 본다. 그를 신뢰할 수 없다는 표정. 그러면서 말을 잇는다.

“난 인간을 믿지 않아. 지난번 탈출했던 그 놈도 간교하게 우리를 속였지. 그래서 그 때문에 우리는 이동을 해야 해. 아까 네 말대로 위험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피해가는 게 상책이니까. 어쨌든 만약 저 인간 남자가 너를 배신하면 찾아올 곳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럴 리가 없어, 우혁은…”

“됐어. 알았으니까 가 봐. 죄책감 느낄까봐 따라 온 건데, 네 표정 보니 전혀 안 그래 보이네.”

“아냐, 사실 나 마음이 아팠어.”

“장난이야. 역시 똑같구나. 변하지 않았어, 세실리아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세실리아를 안았다. 인어 두 마리의 포옹. 깊은 우정을 나누는 모습. 우혁은 그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이 화해했다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기분이 한결 더 편해졌다.

“잘 가, 세실리아. 잘 살아…”

“잘 있어, 크로니. 안녕…”

그렇게 헤어진다. 자신이 태어났던 곳을 떠나는 세실리아의 눈빛에 슬픔과 회한이 서린다. 그것을 보고 우혁은 다짐한다. 그녀를 평생 지켜주겠다고. 후회하지 않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면 지키는 그의 굳은 심지. 아마도 말한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 작품 후기 ============================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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