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120화 무국적자
기다리던 우혁의 귀국. 하지만 공항에 나갈 수는 없었다. 경험은 소중한 거다. 세실리아는 지난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서 잘 못하면 그와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꼬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차피 ‘더 빨리’의 의미밖에 없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그게 오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귀국하면 바로 올 줄 알았는데, 기자회견을 해야 한단다. 그리고 기자회견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국민적인 관심이 이렇게 증폭된 이유는 그가 가진 타이틀 때문이었다.
그는 5관왕을 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안 게임의 MVP가 되었다. 지난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 박태원이 이룩한 뒤로 두 번째 맞는 수영 선수 MVP다. 이러니 그에게 쏟아지는 질문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나 TV로 지켜보는 세실리아와 지연은 자꾸 그를 곤란하게 하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마음을 졸인다.
“지난번에 스캔들이 있었는데, 그 여성분에 대해서 말씀 좀 해주십시오.”
“선수의 프라이버시는 존중이 되어야 합니다. 그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국민들의 알 권리가 있습니다. 답을 좀 해주시죠.”
영욱이 벽을 쳐 놓았지만 기자들은 끈질겼다. 어떤 기자는 본인이 대답하지 않는 것에 대해 소리까지 치고 있다.
“아니 코치가 자꾸 나서서 왜 선수 말을 막지?”
“기사 마음대로 써도 괜찮은가 보지?”
날카로운 말들이 우혁의 귀에 들렸다. 그는 발끈했지만 그래도 잘 참아내고 있었다. 다름 아닌 세실리아에 관련된 이야기다. 그녀와 사귄다는 게 범법 행위는 아니지만, 그녀가 불법체류자라는 게 문제다. 잘못해서 그녀를 파헤치는 기자들이라도 나온다면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 그가 취한 방법은 침묵이다. 대신 다른 질문에는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었다. 기자들의 질문에 잘 대답을 해주지 않았던 그가 이렇게 하니 결국은 궁금하더라도 다른 내용에 대해서 열심히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내년 광주 세계 수영 선수권 대회의 목표를 알고 싶습니다.”
“당연히 우승입니다.”
“어떤 종목에서 말입니까?”
“제가 나갈 수 있는 모든 종목에서 우승을 노리겠습니다.”
기자들이 술렁거렸다. 과도한 목표일수도 있다. 겸양을 요구하는 사회. 그래도 저런 자신감이 밉지가 않았다. 언제 이런 자신감으로 무장을 할 수 있는 선수가 나올 수 있을까? 그라면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착각일지 모르겠다.
기자회견이 대충 마무리 되었다. 이제 드디어 세실리아를 보러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따라붙는 기자들. 출국했을 때보다 그가 훨씬 거물이 되어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순빈이도 비슷한 이야기를 그에게 전달했다.
“이제 한 순간 한 순간 긴장하고 살아야 할 것 같아.”
“소속사에 지원을 요청해 주세요.”
“벌써 이야기는 해 놨어. 지난 계약으로 인해 소속사가 만진 돈이 얼만데?”
의리를 지켰던 우혁. 그로 인해 소속사는 지금 대박을 터트리고 있다. 광고 수입. 일정부분 소속사에게 떨어진다. 지금 물밀 듯이 전화가 오고 있다. 비율에 따라 챙겨도 그의 몸값이 높아졌기에 당연히 소속사가 챙길 수 있는 부분도 꽤 높아졌다.
“일단 집부터 옮겨준다고 했어. 좀 더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곳으로. 지역은 네가 골라도 돼.”
“저기 제주도 같은 데로 할까요? 하하하.”
“진짜? 그러고 싶어?”
“농담이에요. 훈련장이랑 먼데 어떻게 출퇴근을 해요?”
“뭐야? 이제 농담도 할 줄 아네.”
점점 변하고 있다. 우혁이 가진 성향이. 운전대를 잡고 목동을 향해서 가는 그의 차 안에서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이렇게 순빈에게 농담까지 하고 있다. 원래 잘 안했다. 농담이 뭔가? 말수 자체가 아주 적었었는데. 그가 가진 변화. 어쩌면 거의 모두 세실리아 때문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자양동으로 갈까 봐요.”
“자양동?”
“네, 원래 그곳에 살았었어요. 극과 극이 좋겠죠.”
서울에서도 동서로 완전히 떨어져 있는 곳. 그래서 그가 고른 곳이 자양동이다. 자신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조부모도 그 쪽에 실버타운에 있다. 자주 보러 가지는 않지만 가끔 보러 갈 때마다 너무 반가워한다.
“그렇게 알릴게. 아마 소속사에서 알아서 해줄 거야. 이번에는 좋은 곳으로 가게 될 거야. 집 값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걸?”
그의 통장 잔고는 갑자기 증액되어 있었다. 베트남에서 벌써 몇 개 광고를 찍고 왔기 때문이다. 힐링캠핑이 아직 방영이 안 되었지만 그 방송에 맞추어서 광고를 쏟아내려고 여러 회사에서 그에게 문의가 왔다.
물론 대부분 S 그룹 계열이다. 다른 회사가 있을 지라도 S 그룹 계열과 경쟁 부분이 아닌 것만 가능하다. 그렇게 계약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S 그룹 계열은 최우혁 특수를 맞이하게 되었다. 수영에 투자했던 것이 절대 후회가 되지 않았다고 전해지니 그럴 만도 하다. 더구나 이미지 개선 쪽에서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지고 왔다.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따라 붙는 기자들은 집안까지는 쫓아올 수 없다. 이곳에 계속 산다면 기자들 등쌀에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을 것 같았다. 될 수 있으면 빨리 이사 가고 싶었다. 그러나 일단 그 걱정은 나중에 해도 된다. 대회 기간 보지 못했던 세실리아가 자신을 맞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에게 안겼다. 그리고 그녀만의 내음. 그의 콧속에 가득 들어왔다. 어머니가 보고 있는데도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하긴 그도 상관이 없나 보다. 그 앞에서 그녀와 진한 키스를 하고 있으니. 오히려 보고 있는 순빈이 민망할 지경이다.
“우혁아… 음, 어머님이 보고 계신다.”
“아, 미안해요, 엄마.”
“진짜 미안하긴 하고?”
“하하하.”
뒷머리를 긁적이는 우혁. 그의 이런 표정도 거의 보지 못했던 지연이다. 좀 사람답게 되어간다며 오히려 속으로는 반기고 있다. 이 모든 게 세실리아 덕분인 것 같았다. 인간미 넘치는 아들로 만들어준 공을 그녀는 속으로 고마워하고 있다.
“니들 이렇게 못 참아서 어떻게 하니? 어차피 세실리아 신분도 그렇고 하니 식을 올리자.”
그녀가 하는 말. 사실 왜 모르겠는가? 둘은 이미 성인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너무 참게 하는 것은 부모의 도리가 아니다. 그런데 자신이 이렇게 세실리아 옆에 머물고 있으니 뭘 해보려 해도 못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문란한 아들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반쯤은 오픈되어 있고, 반쯤은 보수적인 게 바로 우리나라 어머니들이 가진 특징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와 적법한 절차까지는 모르지만 결혼을 하려고 했다. 혼인 신고. 그것에 관련된 것은 복잡하지만 은환이 있다. 관련법을 잘 알고 있으니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을 하는 것은 결혼이다. 결혼식은 아직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날 그의 아버지와의 통화로 그것을 파악하게 되었다.
- 진짜 쉽지가 않다. 세실리아는 불법 체류자 이전에 무국적자이다. 혼인신고도 쉬운 상황이 아니야.
“그럼 어떻게 하죠?”
- 관련 법규를 계속 살펴보고 있는데 뾰족한 수가 나오지는 않아. 가장 큰 문제는 세실리아의 해당국이 있어야 결혼이라는 것이 인정이 돼. 그러니 떠들썩하게 식을 올리다가는 큰 일 난다. 기자들이 이 문제를 파헤쳐 봐라. 문제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아버지의 말. 타당한 이야기였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그녀와 결혼해서 일단 그녀의 신분을 회복시키려고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국적자는 가장 먼저 국적을 회복해야 한다. 그런데 세실리아의 국적이 어디에 속한단 말인가? 독일? 증명할 수 없다. 그러니 국적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결혼을 한다고 무작정 남편의 국적을 회복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다. 시간이 필요하다. 아니 시간이 흘러도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국제법상 무국적자는 인정이 되지 않기에.
- 우혁아, 일단 계속 내가 알아볼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실리아가 국적이 없기에 강제송환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니 해결법은 아마도 반드시 찾게 될 거야. 강제송환이 불가능하면 결국 우리나라에 있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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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