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23화 좋아하는 존재. 만날 수 없는 존재.
우혁에게 개인 트레이너가 붙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는 불만이 입에 붙었다. 그들이 느끼기에 명백한 차별이라 생각을 하나 보다. 훈련을 같이 한 것도 갑작스런 낙하산으로 내려온 것도. 그것도 친인척이다. 물론 영욱과 그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처음에 그를 받아들이려 했던 말이 오해가 되어 버렸다.
우혁에게 생긴 팬들도 한 몫 한다. 훈련장을 구름 떼처럼 감싸는 여성 소녀 팬들. 어떨 때는 학교를 무단결석하는지 배회하며 그를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게 그에게는 혹 덩어리다. 귀찮기 짝이 없다.
훈련을 많이 하니 먹는 것도 많이 먹는다. 주로 단백질 위주로. 잘 짜인 식단은 선수들의 입맛을 돋우기도 하고 건강도 책임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는 늘 외톨이다. 예전에 미래가 있었을 때에는 그의 옆에서 같이 식사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다. 빛나는 잘 알고 있다. 자신까지 그렇게 하면 그가 더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한다는 것을. 식사를 마치고 잠시 불러내서 그에게 충고를 한다.
“우혁아, 혼자 먹는 거 괜찮아?”
“응.”
“정말? 외롭지 않아?”
“괜찮아. 늘 그랬는걸, 뭐.”
맞는 말이다. 부모님과 먹거나 아니면 혼자 먹는 게 늘 있는 일이었다. 외동인데다가 아팠던 몸이라 당연하다. 그래서 매우 익숙한 것인데 오히려 빛나가 오지랖이 넓은 꼴이 되어버렸다.
“나도 예전에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 애들이 나랑 안 놀아주고… 그 때에는 좀 외로웠거든. 밥도 혼자 먹는 게 참 슬펐어. 내색은 안 했지만 나중에는 혼자 울고 그랬는데.”
“난 안 그래. 혼자 먹는 것 상관없어. 그러니까 너무 걱정 하지 마.”
이런 점이 문제다. 영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 것. 분명히 저러다가 나중에 큰 코 다칠 것이다. 본인은 못 느끼고 있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절대 살아갈 수 없건만, 그는 따로 떨어진 섬 마냥 그렇게 혼자서 지내려고 한다. 스스로 왕따가 되느니 남들을 왕따 시키는 모양새다.
훈련이 끝나면 개인 훈련이 있는 날에는 따로 남아서 훈련을 한다. 이때에는 개인 트레이너가 아닌 빛나가 같이 했다. 이 때문에 그녀도 실력이 일취월장. 그의 연습상대가 되어 주다 보니 이제는 그가 자신의 연습상대가 되었다. 즉, 웬만한 거리에서는 그가 더 빠르다.
물론 단거리는 아직 그녀가 우위에 있다. 그녀의 주 종목은 100미터와 200미터. 순발력과 유연성이 좋아서 국내에 라이벌이 없다. 남자들의 근력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웬만한 남자 선수보다 단거리 기록이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이제 완연한 여름이 다가온다. 그리고 또 하나의 수영대회가 있다. 방송국의 타이틀을 걸고 하는 KBC배 전국 수영 대회. 이번에 그는 장단거리 자유형에 모두 참여 한다. 이런 대회를 앞두면 목적의식이 더욱 강해진다. 이제는 수영 선수 티가 난다고 해야 하나?
오늘도 모든 훈련을 마치고 파김치가 되었다. 그와 같은 연습 벌레를 본적이 있나 싶다. 그래서 빛나는 정말이지 쓰러질 것 같았다. 운전을 해서 그를 데려다 주고 집으로 가야 하는데 도무지 그런 힘이 남아돌지 않았다. 마지막 그와 경쟁한 400미터가 문제였다. 결국 그녀가 중간에 포기를 해 버린 상황이 되었다.
“헉, 헉. 도저히 못 일어나겠어. 우혁아, 좀만 쉬었다 가자.”
그녀는 매트에 널브러진다. 그것을 보고 우혁이 수건을 들고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추운 날씨는 아니지만 그래도 물을 닦고 쉬는 게 세균 감염을 막는 길이다. 물론 나중에 샤워를 하고 가기는 하지만.
“닦을 힘도 없어.”
“내가 닦아 줘?”
“얘는? 망측해라. 킥킥.”
그녀는 익살스럽게 웃었다. 물론 우혁은 순수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다. 진짜로 그럴 마음이 있다. 저번에 그녀는 자신의 어깨 근육을 풀어주는 스포츠 마사지도 해주지 않았는가? 몸을 닦아 주는 일이야 별 것도 아니다.
“망측하기는? 줘 봐. 내가 해 줄게.”
그는 진짜로 할 모양이다. 그녀의 손에 자신이 쥐어 주었던 수건을 빼앗았다. 순간 그녀는 말리려고 하다가 그냥 놔두었다. 몸에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몸을 맡기고 싶었다. 그의 손에…
잠시 후 진짜 그가 그녀의 몸을 닦아 주었다. 다리부터 시작해 올라오는 수건. 비록 그의 피부 느낌이 아니지만 그녀는 느낀다. 그의 손길을. 심장이 두근두근. 온 몸의 신경세포가 곤두선 것 같았다. 설마 엉덩이까지 올라올 줄은 몰랐다. 이번에는 몸이 경직되었다. 아무래도 여성의 민감 부위다.
그러나 그의 눈을 보면 그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정말 순수하다. 그녀의 몸을 닦아주겠다는. 그는 현재 매우 고마워하고 있다. 자신의 연습을 돕는 그녀에 대해서. 이렇게 닦을 힘까지 없을 정도면 많이 지쳤을 거라는 예측. 그래서 그녀를 위해 베푸는 작은 정성이라고 생각을 했다.
“바로 누워.”
“응? 아니야. 앞 쪽은 내가 할게.”
“아,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생각해 보니까 앞쪽은 가슴이 있다. 아무리 그가 순수한 마음으로 닦아준다고 해도 여성의 가슴을 닦아주는 것은 좀 그렇다. 그도 잠시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앉아서 몸을 닦았다. 그리고 쑥스럽게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그를 보게 된다.
“우리 참 스스럼없다. 그지?”
“그러게…”
“생각해 보니까 지난번에 내가 네 몸 위에 올라탄 것도 좀 그랬어.”
“그… 그렇지?”
“그런데 왜 난 다시 그렇게 하고 싶을까?”
그 말을 듣고 그는 놀랐다. 매우 적극적인 모습이다. 빛나의 말이. 그러고 보니 요즘 그녀는 자신에게 자꾸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것에 매우 서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도 하거니와 자신의 마음도 잘 모른다. 이성에 대한 감정. 도무지 이런 경험이 있어봐야 알 수 있지 않은가?
“에휴, 정말 너 둔하다.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거니? 내 마음 알고 있지 않아?”
“알… 아.”
“알아?”
“응. 그런 것 같아…”
“그런데 왜 반응이 항상 이래? 내가 맘에 안 들어?”
“아냐. 너 예뻐. 그리고 나에게 너무 잘 해주고. 처음에는 좀 별로였는데, 요즘은 나도 네가 좋아.”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돋는다. 어쨌든 자신의 마음도 알고 있고, 예쁘다는 칭찬도 하고 있으며 그 또한 자신이 좋단다. 그의 마음을 확인할 수 없었는데, 이 정도면 된 거 아닌가? 아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 그것은 이성의 감정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혹시 네가 좋아한다는 말, 그거 미래에게도 느끼는 그 마음이야?”
“응. 맞…아.”
역시 실망스러운 대답이었다. 결국 그녀 혼자만의 짝사랑인 것 같았다. 이것을 확인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한참 고민을 하는 그녀. 그렇게 말이 없는 시간이 점점 흘러가고 있다. 그러다가 좀 미안했나 보다. 그리고 뭔가 설명이 필요했나 보다. 그래서 그녀를 바로 보고 이렇게 말을 했다.
“사실 나 다른 누군가를 좋아 해. 그런데 말을 할 수는 없다.”
“좋아하는 사람? 미래야?”
“아니. 아까도 말했잖아. 둘에게 느끼는 마음. 물론 둘이 좋아. 그런데…”
“됐어. 무슨 소리인지 알겠어. 그만 말해도 돼.”
갑자기 그 말을 하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그녀는 그에게 다른 여자가 있는 줄 몰랐다. 그를 두고 경쟁하는 것은 미래만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의 대답을 들으니 속은 것 같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그녀는 더 이상 눈물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일어서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말없이 여성 라커룸으로 가서 샤워를 하는 그녀. 잠시 후 집에 갈 준비를 다 하고 그녀를 기다리는 우혁에게 다시 웃는 얼굴로 나타났다.
그녀의 감정변화. 극심하다기보다는 이렇게 그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마음이 무겁겠는가? 자신 때문에 그가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미 그 정도로 그가 그녀의 마음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는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다.
‘이래서 첫 사랑은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하는 건가?’
운전을 하면서 줄곧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그러면서 그녀는 계속 확인한다. 자신의 마음을. 사실 지금 입은 웃고 있지만 그녀의 눈에는 계속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참으려고 했는데 그게 되지 않았다.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아서다.
“우혁아, 너무 부담 갖지 마. 오늘 내가 한 말.”
“응? 응.”
항상 단답형 대답. 그게 못내 서운했다. 조금 위로를 해줘도 되지 않는가?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의 집에 도착해서 마지막으로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한 말에 짧은 대답으로 응수하니 그녀는 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만 울어. 그러면 내가 미안하잖아…”
“아냐, 흑. 아냐… 내가 미안해. 내가. 어서… 들어가 봐. 미안해. 편하게 보내주고 싶었는데… 걱정하지 마… 아마 오늘이 지나면, 아마도 오늘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계속 눈물을 닦는 그녀. 그것을 보는 우혁의 마음은 착잡했다. 사실 그가 진짜 좋아하는 누군가라는 게 지난 번 그 인어였다. 자신에게 생명과 같은 호흡을 불어 넣어 준 존재. 왜 그랬는지 이유를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그런 그녀가 더욱 그의 머릿속에 각인이 되었다.
그렇다. 그가 사로잡힌 것은 환상이지만 또한 운명이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인어, 세실리아의 눈빛을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호흡을 분명히 느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어떻게 그 짧은 순간에 느꼈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애초에 사랑을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이다.
하지만 그녀를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이것이 증거다. 빛나와 미래에게도 약간씩 느끼는 것이지만 그녀에 대한 생각만으로 급격하게 뛰는 심장. 그 차이는 매우 컸다. 이래서 그동안 선을 넘지 않은 것이다. 감정의 선. 그것을 넘더라도 그녀를 만나 확인하고 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되는지. 인간과 인어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지.
물론 모두가 다 판타지와 같다. 그래도 언젠가 꼭 만나고 싶었다. 로렐라이 언덕 밑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사실 어디에서 살다가 잠시 들른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결국은 그의 판타지 속에 사는 존재로 남아 버렸다. 가능성으로 보자면 그녀와 다시 만나기는 무척 희소했기에.
그래서 그만 그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헛된 희망을 다른 여인에게 주어서는 안 되는데…
“빛나야, 내가 있잖아… 먼 훗날 그녀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면… 아니 그녀를 만날 가능성이 없어서 이렇게 말하면… 에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워낙 말주변이 없어서. 어쨌든 그녀는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서… 몇 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그 때에는 너를 다시 생각해 볼게. 어쨌든 너무 울지 말고…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네.”
“뭐? 지금… 무슨 소리…”
“좀 뒤죽박죽인 이야기지? 결론은 그래. 내가 좋아하는 대상은 지금 만날 수 없는 사람이야. 고로 내가 그럴 가치가 있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먼 훗날 우리 둘 다 만나는 사람이 없다면 그 때에는 한 번 같이 생각해보자.”
“그… 그래.”
“그럼 나 들어간다. 조심해서 가.”
“으… 응. 잘 들어가…”
그가 차 문밖을 나가고 나서도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그가 말한 것을 해석해 보려고 노력을 해 보았다. 그의 말대로 뒤죽박죽이긴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녀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사람? 혹시 어느 나라의 공주가 아닐까 생각해 보는 그녀다. 외교관의 아들이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그렇다면 진짜 그의 말대로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제 눈물은 다 멈추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 미소가 깃들기 시작한다. 그 미소를 머금은 입으로 자신에게 파이팅을 외친다.
“기다릴게. 네가 선택할 때까지.”
============================ 작품 후기 ============================
계속 보시면 아실 수도 있겠지만, 인어 출현에 대한 암시는 자주 하고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요... 대답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소속사는 이상한 곳이 아니네요. 스포 노출을 한 것은 아닙니다.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내용으로 독자님들이 생각하시고 계셔서요^^
하루에 세 개의 연참. 적지는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죠? 하하. 최선은 다하고 있습니다. 이전 작품들보다는 한 회 한 회 적는 것이 시간이 더 걸릴 뿐입니다. 연참을 요구하시면 더 많이 쓸 수는 있지만 막 쓰게 되요^^ 그렇게는 안하고 싶습니다~
어쨌든 그것도 부족하시다 하시면 정말 죄송합니다. 열심히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