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93화 인어를 증명하다
대한민국 부산항. 아침 일찍 입국 수속을 마치고 우혁이 나왔다. 바다를 따라 걷는다. 아마 그녀가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인적이 없는 곳을 향해 계속 걷고 있는 그다. 이미 순빈에게 짐을 맡겼기에 무거운 것이 거추장스럽게 그를 방해할 일도 없다. 그리고 사람이 없다 싶은 곳에서 그는 작은 소리를 낸다.
“세실리아! 세실리아!”
스플래쉬! 잠시 후 물보라를 튀기며 그의 앞에 등장한 아름다운 인어, 세실리아. 그는 빨리 수건으로 그녀의 몸을 닦아준다. 그리고 가지고 온 옷을 건네주었다. 혹시라도 누가 그를 볼까봐 주위를 둘러본 것은 물론이다.
“가자, 이제. 우리 집으로.”
그녀는 그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여전하다. 맹목적인 사랑과 믿음. 그녀의 눈에 듬뿍 담겨 있다. 그를 보는 눈에 전혀 다른 뜻이 담겨 있지 않다. 순수한 애정뿐이다. 같이 크루즈를 타고 오는 동안 더욱 그에게 빠졌다.
그 역시 마찬가지다. 말로만 부정하고 있지 사실 그녀에게 많이 기운 마음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미래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피곤하지 않아? 좀 자 둬.”
“고마워, 형.”
“고맙긴, 집에 도착하면 깨워줄게.”
그래도 그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순빈. 뒤에서 세실리아는 창밖을 보고 있다. 신기한가 보다. 하긴 크루즈 여행을 할 때에도 많이 신기해했었다. 여러 도시를 들렸다. 짤막한 30일 코스지만 알짜 도시만 들른 것 같았다. 중간에 비자와 여권을 배를 타고 내릴 때 검문을 했기에 지금처럼 물을 이용해 승선과 하선을 반복했다. 여러 번 하니 처음에는 귀찮았는데 그게 습관으로 되어 이제는 어느 나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배만 타면 말이다.
드디어 그의 아파트에 도착을 했다. 깨끗하게 관리가 되어 있었다. 순빈이 어련히 잘 해놓았을까? 세실리아는 여기 저기 둘러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는 집. 그리고 그와 같이 살 집이다. 당연히 호기심이 생긴다.
그러나 그녀가 가장 보고 싶은 것은 의외로 미래다. 오는 동안 그녀는 수혁의 여자 친구가 어떤 사람일까 상상해 왔다. 어떻게 생긴 사람일지 궁금했다. 많이 아름다울 거라는 추측을 하면서.
“이제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해야겠네. 둘이 계속 같이 지낼 거야?”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어.”
“미래가 알면 어쩌려고?”
“알려야지. 알면 어쩌려는 게 아니라.”
“뭐? 너 미래랑 헤어질 거야?”
우혁은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아직까지 그가 겪고 있는 갈등 중에 하나이다. 그녀와 헤어지는 것.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러나 미래가 그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것 같았다.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은가? 자신의 남자 친구의 동거녀.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 이건 깨끗이 정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뭐라고 말을 하기가 힘들어. 하지만 미래를 만나서 설명을 해야지.”
“뭐라고? 세실리아가 인어라고?”
“필요하다면 알려야지. 그녀는 나의 생명을 구해주었어. 그리고 나를 위해 동족을 버렸어. 그 희생을 알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우혁아, 정신 좀 차려. 세상에 인어는 없어. 너 병원 가야 할 것 같아. 에구…”
순빈은 아직도 그녀가 인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사람은 보지 않으면 믿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 놓는다. 인어 그리고 산타클로스. 이런 종류의 것은 아주 어릴 때 믿는 것들이다. 그 때에는 보지 않아도 머릿속에 상상하면서 그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는데.
“순빈, 나 인어 맞아요.”
“엇, 그 동안 말이 더 늘었네요.”
“나 인어 맞아요.”
“아… 네…”
정말 쌍으로 미쳤다.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커플이다. 하긴 그러니 밀입국을 시도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까 우혁이 그녀가 바다에서 있다가 나온다는 말을 그는 믿지 않았다. 무슨 소린가 하고 눈만 깜박였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 그녀를 데리고 왔다. 배에서 내리지 않았으니 그럼 진짜로 바다에서 왔다는 이야기다.
그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단 하나다. 밀입국.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어떤 배를 타고 왔을 것으로 믿었다. 이렇게 불법적인 일까지 우혁이가 해대니 단단히 빠진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세실리아에게.
“휴우, 세실리아. 형이 믿지 않으니 어쩔 수 없네.”
그는 세실리아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방금 순빈이의 대답으로 그가 자신이 인어라는 것을 믿는다고 생각을 했다. 아직까지 인간을 몰라서 속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때론 겉과 속이 다른 대답을 한다.
“형은 널 믿지 않아. 네가 인어라는 것을…”
그녀의 표정을 보고 다시 한 번 설명을 하고 있는 우혁. 그는 사실 크루즈를 타고 오는 동안 많은 주의와 규칙을 만들어서 그녀의 뇌 속에 집어넣었다. 최소한 그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속은 적이 없다. 남을 잘 믿지 않아서다. 믿을 만한 사람들만 믿었다. 그 외의 사람들이 하는 말은 관심도 없었고 믿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조심해야 할 것을 그녀에게 전수해 주었다. 그 중 하나는 절대 다른 사람에게 인어라는 것을 밝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그녀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이전 독일에서 체류할 때 순빈이에게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사실 그 때는 인간의 언어도 많이 알지 못해서 둘이 대화할 때는 그냥 눈만 뜨고 듣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그 정도로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자신이 인어라고 말을 한 것인데 그가 믿지 않는단다. 결국 그를 믿게 만드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형, 직접 봐야 믿을 거지?”
“…….”
이번에는 어떤 미친 짓을 할까? 순빈은 그와 세실리아를 정신 나간 사람마냥 그렇게 쳐다보고 있었다. 우혁은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니 당연히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한 거라고.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잠시만 기다려. 부르면 와.”
우혁은 정말 이렇게까지 해서 그에게 그녀의 존재를 밝혀야 하나 고민을 했다. 하지만 단 한 명쯤은 알아야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특히나 순빈은 자신의 손과 발이 되어 왔던 사람이다. 자꾸 자신을 불신하고 심지어 정신 이상자 취급을 하니 어쩔 수 없다. 알리기로 마음을 먹는다.
안방에 들어가서 그가 한 일은 그녀를 이해시키는 일이다. 순빈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믿게 해야 하는 부분. 결국 하반신을 지느러미로 바꾸고 보여주어야 했다. 옷을 벗으라고 했다. 그녀는 순순히 응했다. 참 묘한 상황이다. 그래도 그는 보지 않으려 했다.
“앗, 뽀뽀는 그만…”
그런데 아래가 아닌 정면을 보는 그를 향해 그녀는 키스를 날린다. 이건 뭐 자동반사적이다. 거리가 가까우면 항상 이렇다. 그래도 남들이 볼 때 절대 안 된다는 주의를 듣고 둘만 있을 때만 하는 게 다행이었다.
“형, 들어와.”
순빈은 도무지 이들이 뭔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허억!”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진짜 인어다. 침대 위에 누워 있다. 상의는 입었지만 하체가 분명히 지느러미다. 마구 움직인다. 무슨 장치를 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이… 이거!”
“만져 봐도 되요.”
“안 돼! 어딜 만져? 안 돼!”
더듬는 순빈. 만지는 것까지 허락하고 있는 세실리아. 그것은 절대 안 된다면 흥분한 우혁. 이들 셋의 기묘한 생활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