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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화 S-Express in Forever land

모든 대회 일정이 끝났다. 이번 동아 수영 대회에서 여러 가지 이슈가 있었다. 그 중에 대회 3일째 괴물 신인의 탄생이 가장 컸다. 이는 박태원의 불참과 더불어서 더욱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다. 그의 은퇴가 임박했다는 소문과 함께 후계자 찾기에 골몰한 수영 연맹과 언론이 만들어 낸 작품. 그러다 보니 없던 일이 생기고, 있던 일도 부풀려졌다. 심지어 그를 이 시점에 일부러 내보내기 위해서 어렸을 때부터 여러 나라에 유학을 보냈다는 소문까지 덧붙여졌다.

“이거 기사가 점점 가관이 아니네…”

“호호. 조금만 있으면 외계에서 왔다는 말도 나올 것 같아.”

우혁과 미래는 휴가를 받았다. 대회가 끝나고 2주 정도 휴식 시간을 주는 것이다. 물론 그는 그런 휴가가 달갑지 않다. 그냥 훈련장에서 계속 훈련을 받고 싶었다. 마땅히 갈 곳도 없다. 학창시절이 없었던 그가 옛 친구가 있을 리가 없다. 그런 그에게 가장 먼저 손 내민 사람이 바로 그녀다. 포레버랜드에서 놀자던 그녀. 사실 동물원은 부모와 함께 간 적이 많았지만 그 때에는 감흥이 없었다. 많이 삐뚤어지던 시기라서 오히려 갇혀 있는 동물과 자신의 처지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 때와는 달랐다. 이제는 돌고래의 수영쇼 마저도 재미가 있다. 조련사의 명령에 따라 쇼를 마친 돌고래를 보며 그는 다시 한 번 예전의 인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언젠가는 다시 보고 싶은데, 과연 그녀를 보게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외계? 흠. 지구 바깥은 아니지만 물속에서 재탄생 된 것은 맞지…”

“응? 무슨 소리야? 지난번에도 이상한 말을 하더니… 그렇게 말하니까 가끔 네 과거 이야기가 궁금해.”

쇼를 마치고 S-익스프레스를 기다리는 줄에서 둘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요즘 언제나 그녀의 관심은 그였다. 더구나 빛나라는 경쟁자가 생긴 상황이다. 그를 빼앗기지 않을 노력은 다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렇게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의 절친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혁에게 전화했을 때 미래와 놀이동산을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망한 목소리를 표현했었다. 또한 같이 가자는 그의 이야기에 당연히 거절을 할 수밖에. 이번에는 늦었다고 생각한 빛나였다.

“지금 여기서 말하기는 좀 그래.”

그는 모자를 잔뜩 눌러쓰고 있다. 선글라스까지 끼고. 이제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마스크까지는 착용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최대한 이렇게 착용한 것이다. 물론 가끔 사람들이 자세히 보고는 하지만 긴가민가하는 눈으로 지나쳐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앞뒤로 줄을 선 사람들이 있기에 이런 이야기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다들 자신들만의 대화에 여념이 없어서 다른 사람이 이야기 하는 것을 신경 쓰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할 것은 그의 과거이다. 걷지도 못했던 사람이 인어를 만나서 수중 호흡 능력을 얻고 신체도 건강해졌다는 이야기. 사실 시간과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절대 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아까 빛나는 뭐라고 해?”

“빛나?”

“응… 전화 왔었잖아.”

“아, 오늘 할 일도 없으니 같이 만나자던데? 그래서 너랑 여기 온다고 했지. 같이 가자니까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겼데. 좀 앞뒤가 안 맞지? 할 일도 없어서 같이 만나자고 하던 애가 갑자기 바쁜 일이라니.”

“그러네, 걔가 좀 그래. 약간 제 멋대로인 게 있으니 네가 이해해.”

그녀는 빛나의 험담을 하면서도 그녀를 이해하달라고 말한다. 교묘한 기술이다. 여자들끼리의 신경전. 연적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의 주변 여자를 살살 깎아내리는 전술이다.

“뭐, 나도 제 멋 대로인데, 괜찮아. 오히려 요즘 친절해서 좋은 걸…”

“그… 그렇지? 가끔 그렇게 친해지면 친절하기도 해. 호호호.”

다시 수습을 한다. 이럴 때에는 물러서야 한다. 괜히 다시 험담의 분위기로 갔다가는 자신만 바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모르는 게 있다. 우혁은 사실 사회의 1, 2차 집단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가 경험한 가장 최초이자 최근의 1차 집단은 집이었고, 요즘은 훈련장이다. 그러니 인간들 사이에 일어나는 아주 작은 심리를 그가 어찌 잡아낼 수 있겠는가?

그나마 자신이 제 멋 대로인 것을 안다. 이것은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성격이다. 심리학적으로 성격은 고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그가 알고서도 고치기는 힘들 것이고, 그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기에 빛나의 그 성격도 이해가 되는 것이다.

“지난번에 응원도 해줬고, 그 이전에는 스트레칭도 해줬지. 그리고 집까지 태워다주다가, 가끔 집으로 태우러 오기도 하고. 네 말대로 좀 친해지니까 친절해지긴 했네. 처음에는 얼음장처럼 대해서 영 싸가지가 없다고 생각을 했지. 그래서 나도 똑같이 해줬지만.”

“그렇구나. 내가 몰랐던 일이 많네. 스트레칭 이야기는 처음 듣는 걸… 스트레칭 하는 방법을 알려 줬다는 이야기니?”

“아니, 직접 해 주던데. 아, 그때 정말 좀 그랬어. 내 등에 올라가서… 음. 이건 좀 하기 힘든 이야기다. 안 할래.”

“응? 하다가 마는 게 어디 있어? 네 등에 올라가서 어떻게 했는데? 응? 알려줘… 나 궁금한 거 정말 못 참는단 말이야. 잠도 못 자.”

“그… 그게. 말하기 곤란한 거라서.”

그녀가 갑자기 흥분을 한다.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성미가 맞을지라도 그에 대한 일이기에 더욱 이렇다. 특히 그의 등에 왜 빛나가 올라탔단 말인가? 남녀가 유벌한데. 설마 먼저 덮치려고 수를 쓴 것은 아닌가?

‘가만히 보니 이것이 얌전한 고양이었네…’

우혁의 입장에서는 더욱 말하기 곤란하다. 당시에 그의 생물학적인 변화. 사실 요즘에도 그는 그 장면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그는 제대로 된 욕망 속에서 살아 본 적이 없는 남자다. 심지어 아직 자위조차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생각날 때마다 자신의 중심 부위가 화를 내면 그것을 식히는데 애를 먹는다. 몽정이야 몇 번 해 보았지만 그조차도 그의 어머니가 알아챌까봐 재빨리 세탁기 안에 집어넣는다.

그런데 미래가 재촉을 하고 있다. 궁금하다고. 그는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척이나 쑥스럽고 창피한 일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남녀의 성이란 이런 환한 자리에서 드러내놓고 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에…

“그럼 잠시만 이리 와봐.”

“응?”

그가 얼굴을 가까이 댄다. 그녀의 머리를 살포시 잡고서. 덕분에 그녀는 얼굴이 새 빨게 진다. 심장이 쿵쾅쿵쾅. 설레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다. 그의 숨소리가 귀에 닿으니 그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그가 알아챌까봐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과 그와 더 밀착되고 싶은 욕구가 마음속에서 상충되고 있다.

빛나도, 그리고 그녀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훈련에 매진한 삶. 이를 위해 이성에 대한 관심은 잠시 접어두어야 했다.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도 소녀 시절에는 아이돌의 팬이었고, 주변에 흐뭇하게 생긴 남자에게 눈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래도 수영을 빼놓고는 상상할 수 없었던 자신의 삶. 부등호는 당연히 훈련 쪽으로 그 크기가 넓어졌던 인생이다.

“내가 그 때 어깨 근육이 뭉쳐 있었거든.”

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자신의 심장소리가 완벽히 크게 들렸다. 거기다가 샘솟는 사랑의 호르몬. 정말 미친다. 이대로 그를 안고 싶다. 아니 말을 하고 있는 그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부딪치고 싶었다.

“그것을 풀어준다고 등에 올라타서 내 손과 발을 스트레칭 시켜줬지. 그런데 그 때, 그게 음…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어서, 좀 창피하고 그랬어. 특히 내 신체 부위 중 특정 부분이 이상해져서…”

갑자기 그녀의 심장은 다른 방향으로 쿵쾅거렸다. 이번에는 위기에 대한 본능적인 인식으로 인한 것이다. 신체 접촉. 자신도 물론 있긴 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노골적이었다. 어떻게 빛나가 이렇게까지 했는지 이해가 잘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너무 미워졌다.

‘순진한 우혁이에게 육탄공세를 했구나, 이것이…’

물론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아니 그 정도라고 불릴 만한 게 아닐 수도 있다. 그 때 상황에서 대회를 앞둔 우혁이가 걱정이 되어 빛나가 나름 스포츠 마사지를 해준 것이다. 운동 경험이 없는 그에게는 직접적인 설명보다 몸으로 하는 대화가 훨씬 효율적이었다는 것. 그것을 모르는 미래로서는 이렇게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아… 알았어.”

그녀는 자신의 귀를 간질이는 그의 입에서 살짝 거리를 두었다. 한 없이 그렇게 있고 싶은 마음은 작지 않았지만 반대로 이런 이야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우혁이 입장에서는 다행이었다. 자신의 신체부위가 커진 것을 빛나에게 들켰다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서 말이다.

지금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는 얼마 전 그녀의 생리 기간에 그녀가 창피한 이야기를 그에게 해준 것에 대한 솔직한 보답이다. 그녀도 그렇게 하기 힘든 여성의 은밀한 상황을 설명했는데, 그가 이런 이야기를 창피하다고 하지 않는 것은 친구로서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랬구나… 그런 일이 있었어…”

이제 그녀의 얼굴은 상기되지 않았다. 대신 분명히 드러나는 라이벌 의식.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인의 진정한 싸움이 시작되고 있다. 이른바 삼각관계의 시작이다. 누가 승리하든지 어쩌면 빛나의 육탄공세라고 시작된 그 일이 미래의 다른 대처로 나타날 것 같았다. 이래저래 우혁은 행복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날 S-익스프레스라는 희대의 롤러코스터를 탄 남녀의 반응은 완전히 상반 되었다. 남자는 이제껏 겪지 못했던 극도의 짜릿함으로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하지만 여자는 다른 생각 때문에 전혀 그 공포감이라 할 만한 것을 느끼지 조차 못했다. 그녀가 하는 생각의 대부분은 그와 관련이 있으니 앞으로가 기대된다. 그의 주변에서 벌어질 두 여자의 암투가.

============================ 작품 후기 ============================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박태환 선수가 호주 오픈 챔피언쉽에서 2관왕을 했네요. 수영에 그렇게까지 관심이 없었는데,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고 저런 뉴스를 보면 이제 챙겨서 봅니다^^

나라의 스포츠는 관심을 먹고 삽니다. 관심으로 인해서 그 스포츠가 부흥하게 되는 것 같아요. 글을 쓰기 위해서 우연히 선택하게 된 수영인데, 앞으로 재미있게 볼 것 같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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