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5화 수영을 배우다
미래는 적극적이다. 왜 그런지 그녀도 알 수 없다. 첫 눈에 반한다는 말. 바로 그것인가 보다. 아니면 봄이라서 그런가? 춘삼월. 봄처녀의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하지 않은가? 특히 그와 헤어진 날부터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설레기 때문이다. 다음날 만나기로 한 약속. 광진구 체육센터 수영장. 그가 사는 자양동과 가까워 그녀가 그를 맞추기로 했다. 빛나는 안 간단다.
‘같이 가면 좋을 텐데…’
길을 나서는 그녀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단 둘이 만나려니 뭔가 좀 어색할 것 같았다. 의지 되는 친구 하나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빛나는 그녀를 말리기까지 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함부로 만나지 말라고.
그런데 그 말이 들릴 리가 없다. 외모에 홀딱 홀렸다고 비난을 받아도 어쩔 수 없었다. 정말 매력적인 그의 얼굴은 하루 종일 봐도 질리지 않을 것이다. 멀리서도 저렇게 빛이 난다. 지나가는 사람이 한 번쯤 시선을 줄 정도로…
“오래 기다렸어?”
“아니, 별로…”
그가 먼저 와서 자신을 기다렸다. 그녀는 그 마저도 설렌다. 이 멋진 남자가 자신을 기다리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도 자신을 만날 생각에 설렜을까? 스무 살 꽃다운 나이는 늘 그렇다. 자신이 중심인 세상이다.
“들어가자.”
수영장으로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가는 우혁.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 어제 인터넷 검색 순위에 올라서 그런지 알아보는 사람들이 꽤 많다. 여전히 그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자신을 찍어댄다. 짜증이 좀 났지만 어쩔 수 없다. 그냥 없는 사람들 취급하기로 했다. 원래 아팠을 때도 그랬다. 자신을 불쌍한 눈으로 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눈빛을 애써 무시했었다. 그게 연습이 되었는지 이제 신경이 쓰여 지지 않았다.
선수용 수영복. 아이보리 색이다. 일부러 이런 것을 입고 왔다. 자신의 몸매에 자신이 있었기에. 수영으로 다져진 몸매에다가 특히 글래머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사실 이 점이 그녀의 약점이기도 하다. 적당한 크기면 모르겠지만 남보다 더 큰 가슴. 그 무게 때문에 스피드가 살지 않았다. 타고난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런데 오늘은 그게 자랑스럽다. 사람들은 수영복을 입은 자신을 바라본다. 은근 슬쩍 보는 그 사람들의 시선. 특히 남자들의 경우는 더 심하다. 대 놓고 보는 남자도 있다. 늘 있는 일이다. 그녀는 신경 쓰지 않고 그에게 다가갔다.
“몸 좋네. 호호.”
우혁은 잠시 앉아 있는 자신에게 다가와 웃으며 말하는 그녀를 바라본다. 자신을 칭찬하는 그녀. 정확히는 자신의 몸을 칭찬했다. 아마 1년 전에 봤다면 그런 말을 못했을 것이다. 앙상했으니까…
지금은 다르다. 병에서 완쾌되고 나서 운동을 시작했다. 학교도 다니지 않는 그가 남은 시간 뭐하겠는가? 다만 예전처럼 앙상한 병자 같은 몸이 싫었다. 그래서 나름 근육도 붙고 좋은 몸매를 유지해 나갔다.
“자, 이제 들어가자.”
“난 수영 못하는데…”
“알아. 그러니까 내가 가르쳐 주러 왔지. 일단 물에 대한 공포심부터 없애야지.”
그녀가 먼저 물에 뛰어든다. 풍덩. 국가대표 수영선수다. 비록 선수층이 엷어서 알아주지도 않는 무명의 선수이기는 하지만 그 뛰어드는 폼은 나름 자세가 잡혀 있다. 그녀는 물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그에게 말했다.
“일단 저기 얕은 곳으로 걸어 들어와.”
너무 쉽게 이야기 한다. 그는 작년에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는데 말이다. 그래도 걸어 들어가는 거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은 의외로 그렇게 차갑지 않다. 3월이면 꽤 차가울 줄 알았는데, 구에서 관리하는 것이라서 미지근하게 수온을 맞춰 놓은 것 같았다.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는데 그녀가 일어서서 손을 내민다. 물에 젖은 그녀의 몸매. 매우 섹시하다. 선수용 수영복이라서 그녀의 몸매를 완전히 다 드러내 보이고 있다. 글래머답게 매우 큰 가슴은 특히나 도드라진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아래쪽에서 신호가 오는 것을 느낀다.
큰일이다. 아무리 주변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펑퍼짐한 수영복을 입었지만 물건이 커지면 드러나게 되어 있다. 텐트를 친 모습이 말이다. 도대체 남자 수영선수들은 성욕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 그는 갑자기 궁금해졌지만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빨리 시선을 거두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자, 천천히 걸어가자.”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우혁. 점점 물은 올라온다. 아니 자신의 몸이 깊숙이 빠지는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친절한 수영 선생님이다. 그에게 하나하나 자세히 가르쳐주려고 한다. 본격적으로 그녀에게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는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지우고 있다. 그런 그를 지켜보는 그녀의 눈에 기쁨이 어린다. 생각보다 잘 따라와 주기 때문이다.
한 시간 정도 그렇게 기초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 그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물 밖으로 나가서 앉아 있었던 것이다. 미래는 그를 가르치느라 제대로 몸도 풀지 못했다. 수영장에 왔으면 코너를 돌아 주는 게 예의. 그래서 물살을 저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유연해 보인다. 그리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저 쪽에서 수영강습을 하는 강사들이 놀란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본다.
아마도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접근하지 못했으리라. 이제 본격적으로 그녀의 수영솜씨를 보고 감탄을 한다. 아무래도 일반인의 눈에 비친 그녀의 속도는 광속처럼 보일 것 같았다.
그렇게 오십 미터를 질주해 가더니 턴을 한다. 다시 우혁이가 있는 곳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부러웠다.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지만 겨우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걸음마를 하던 자신이 어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지난번처럼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을까?’
갑자기 그게 궁금해졌다. 그래서 다시 다가간 물. 얕은 곳으로 가서 서서히 걸어갔다. 가슴까지 차올랐을 때 그는 상체를 굽혔다. 그리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렇게 하자 물이 그의 폐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코를 통해 들어오는 그 물. 호흡곤란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물에 빠져 죽을 염려도 없지 않은가?
신기했다. 신기하니 그는 아예 깊은 곳까지 가보기로 결정한다. 걸어서 말이다. 아직 수영하는 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한 시간 만에 익혔다면 천재도 아니고 수영의 신일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걸어가기 시작할 때 저 쪽에서 미래가 그를 지켜보며 우려스러운 눈빛으로 소리를 질렀다.
“우혁아! 뭐 하는 거야?”
그녀의 목소리. 물 안에 있는 그의 귀에 들릴 리가 없다. 그는 지금 매우 재미있어 한다. 자신이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데 신이 나지 않을 리가 없다. 진작 알았다면 로렐라이 언덕에 있는 강물 속을 탐험해 볼 걸 그랬다.
하지만 보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이건 미친 짓이다. 그녀는 빨리 우혁이가 있는 곳까지 단번에 갔다. 그리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서 본 장면. 걷고 있는 그의 모습.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그는 웃고 있었다. 그녀는 그래도 그에게 손을 뻗었다. 혹시나 모를 일에 대비해서 말이다. 그렇게 맞닿은 손. 그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다시 물 밖으로 나왔다.
“푸하! 너 왜 그래? 죽으려고 그러는 거니?”
“응? 내가 죽긴 왜 죽어?”
“그런데 물속에서 뭐 하는 거야?”
“아, 그냥…”
갑자기 대답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물속에서 숨을 쉬었다고 말을 하면 믿어줄 것인가? 생각해보니 이런 것이 알려지면 상당히 귀찮아 질 것 같았다. 그는 빨리 그녀에게 말했다.
“빨리 수영을 하고 싶어서 말이야. 저기 까지 네 손 잡고 가고 싶어.”
그는 손가락으로 끝을 가리켰다. 그녀는 황당한 눈빛을 했다. 자신의 손을 잡고 수영을 해서 가 본단다. 거의 오늘 처음 물을 접하던 초보가 말이다. 어이가 없지만 그와 잡은 손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아까 알려 줬던 대로 몸을 가볍게 하고 발을…”
“알아, 다 숙지했어. 그러니까 네가 이끌어 줘. 한 번 해보고 싶어…”
그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 약간 의구심 짙은 눈빛. 하지만 그의 강렬한 눈빛을 보니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었다. 자신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진짜 사랑에 빠졌나 보다.
그렇게 출발을 했다. 스피드는 낼 필요가 없었다. 서서히 움직일 생각이니. 그런데 예상 외로 그는 진짜로 수영을 하고 있다. 이건 오늘 처음 배우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의 손을 놓아 보았다. 그러자 앞으로 가는 그의 몸. 팔을 저으며 가는 폼은 모양새가 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수영을 하는 것이 맞다. 놀라운 일이다. 고작 한 시간 만에 수영을 할 수 있다니.
“너 혹시 원래 수영할 수 있는 것 아니야?”
끝에 도달한 그녀가 몸을 끄집어내어 가장자리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의심스러웠다. 처음 수영을 배우는 사람이 아닐 것 같아서.
“아니. 처음인데…”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좋은 선생을 만나서 그런가 보지. 하하하.”
그녀를 칭찬하는 그의 미소. 미래는 그만 얼굴이 붉어졌다. 정말 세상이 환해진 것 같았다. 처음으로 보는 그의 미소는 그랬다. 이렇게 매력적인 미소를 본 것은 처음이다. 어쩌면 그녀는 오늘도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저도 봤습니다. 영화 스플래쉬. 이 영화를 아신다면 저랑 세대가 비슷하시다는 이야기네요^^
댓글로 하시는 많은 분들의 격려들. 정말 기분 좋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이제 이 번 회가 5회입니다. 늘 진입 장벽이 생기는 곳이죠. 여기까지 보시고 기대감이 생긴다면 이제 선작 및 추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