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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화 구속은 싫다

새벽이다. 이들에게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말라. 둘 다 얼굴을 붉힐 것임이 분명하다. 깨어났어도 눈을 뜨지 않는 두 남녀. 많이 부끄러울 것이다. 하지만 둘 다 맨 몸이다. 이제 와서 이러는 건…

미래가 먼저 살짝 눈을 떴다. 옆에 우혁이 자고 있다. 자신을 바라본 채로. 물론 그의 의식도 돌아왔다. 인간의 습관. 아침 일찍 눈을 뜨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다. 단지 자는 척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 역시 살짝 눈을 떠 본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잘 잤어?”

“응. 너는? 괜찮아?”

우혁이의 되묻는 말. 어젯밤 아파했던 그녀에 대해 배려하는 말이지만 그녀는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다. 당연히 조금 아프다. 생살이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지금도 그 후유증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아주머니 올 시간인데…”

“뭐? 이렇게 빨리?”

시간을 보니 여섯시 반이다. 대략 일곱 시쯤에 온다고 한다. 삼십분 동안 식사 준비하고 그 맛깔스러운 아침을 그는 약 7시 30분에서 여덟시 사이에 먹는다. 상당히 규칙적인 삶을 살아온 우혁. 웬만해서는 이 틀을 잘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말투만큼이나 무미건조하다.

“나 먼저 씻을게.”

“응. 천천히 해.”

미래는 빨리 일어나서 샤워실로 직행했다. 이불속에 있었던 그녀의 알몸이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물건이 계속 서 있다는 것을 느꼈다. 늘 이런 놈이다. 아침과 함께 기상하는 놈. 거기다가 아침부터 아름다운 예술품을 보지 않았는가? 움직이는 예술작품. 신이 빚은 그 몸매가 자신의 이불 속에서 나와서 샤워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다시 한 번 자각을 하려고 애를 썼다.

그 역시 샤워를 해야 한다. 물건에 묻은 것. 어제 보니 피가 묻었다. 처녀라는 증거다. 그녀에게 물어보니 그렇게 말을 해주었다. 다른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고 이십 년간 고이 간직해 온 것을 자신에게 바친 증거라면서.

잠시 후 젖은 머리의 그녀를 다시 보았다. 그 역시 샤워를 마치고 나온 상태. 온 몸에 무언가를 바르는 그녀. 그런데 그를 의식하는지 말을 하고 있다.

“언제까지 볼 거야?”

“응? 보면 안 돼?”

“안 돼. 창피하단 말이야.”

“어제 다 봤는데…”

“그… 그런 말 싫어. 고개 돌려.”

“어차피 아주머니 오실 때 됐어. 난 거실에 나갈 테니, 좀 있다 부르면 식사하러 나와.”

그의 말. 어젯밤 다 본 사이. 하지만 여자들을 잘 모르는 말이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다 드러내면 신비감이 떨어진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비록 볼 거 안 볼 거 다 봤지만 그러고 싶어 하는 게 또 여자다.

“오늘은 2인분으로 해주세요.”

“여자 친구 생겼어?”

“네. 잘 부탁드려요.”

매일 아침 그의 밥을 해주는 아주머니. 그는 주변 사람들과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정을 주기 시작한다. 그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은 친해지면 많이 믿는 편이다. 아주머니도 그를 아들처럼 생각을 한다. 그가 늘 혼자 외로워하는 것을 보고 빨리 여자 친구 만들라고 우스개소리를 하곤 했다.

“누구야? 혹시 빛나 처녀야?”

“아… 아니요.”

그는 얼굴을 붉힌다. 예전에 가끔 빛나가 와서 저녁을 먹고 갔었다. 그의 인간관계가 몇이나 되겠는가? 당연히 그녀의 입장에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여자 하나를 말하는 것이다. 부정하는 그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상하다. 둘이 서로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누가 봐도 그랬다. 그 당시에는 말이다. 하지만 이사한 후에 통 보이지 않는 빛나.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녀는 그의 집을 모른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우리 집을 알려주지 않았구나… 얼마나 섭섭했을까? 아냐, 설마 예전 집을 찾아가 보지는 않았을 거야. 나중에 알려줘도 되겠지, 뭐.’

단순하게 생각하는 그였다. 이미 빛나는 그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이사 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큰 상처를 받았다. 물론 그녀가 자초한 것일 수도 있다. 친구로만 지내자는 말. 그는 충실히 지키고 있는 셈이다. 아니 그 이상으로 지키고 있어서 탈이다. 어떨 때는 친구보다 더 못한 사이가 아닌가 싶었다.

그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자신을 향했던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그녀와 친하게 지내다가 자신에게 마음을 다시 빼앗기면 어떻게 하겠는가? 바람둥이라면 모를까 괜히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는 싫었다. 그래서 더 바쁘게 살았던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친구와 연인 사이의 단계에서 다시 친구로 돌아가면 친구보다 못 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 소원해지고 결국 서로의 존재가 대단히 멀어지게 된다. 빛나와 그는 지금 그 단계를 겪고 있는 것일지도.

“그럼 나는 갈게. 맛있게 먹고 좋은 사랑 만들어, 총각.”

“아, 네. 들어가세요.”

그는 자신에게 정을 주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깍듯이 대한다. 하지만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자신 또한 이용하고 싶어 한다. 적아의 구분이 뚜렷하면 이 사회에 적응하기 쉽지 않을 텐데.

“밥 먹자, 미래야!”

그가 부르는 소리에 나오는 그녀. 그는 잠시 입을 벌렸다. 예쁘다. 화장을 한 모습. 다소 젖은 머리카락. 물론 드라이를 해서 말리기는 했지만, 확실히 예전에 수영만 하던 미래가 아니다. 더구나 자신이 어젯밤 여자로 만들어 주었다. 안 예쁠 리가 없다.

“뭘 그렇게 보세요, 우혁씨.”

“응? 아, 그냥…”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가 이렇게 존대 말로 장난치듯이 이야기 하자 마치 둘이 신접살림이라도 차린 것 같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런 게 사랑이라는 것일까?

“오늘 오후 두시까지 자유시간이야. 뭘 해야 정말 재미있게 보냈다고 소문이 날까?”

“해보고 싶었던 것 없었어?”

“왜 없었겠어? 남자 친구가 생기면 해보고 싶은 것 목록을 쌓아 놓다 보니 벌써 백개도 넘어.”

“하하하. 그런 것을 생각해 놓았단 말이야?”

“응. 너는? 너는 여자 친구가 생기면 해보고 싶었던 것 없었어?”

“응. 난 없어. 아니 생각해 본 일이 없어. 여자 친구란 나에게 계획에 없었던 일이니…”

“그 계획을 내가 깬 거네. 영광이옵니다, 폐하.”

그녀의 말투. 시시각각 변한다. 마지막은 마치 사극처럼. 역시 연기 수업을 받아서 그런지 표현력이 살아있다. 다만 그런 말투에 적응하지 못하는 우혁.

“그 말투는 뭐야?”

“너 사극 본 적 없어? 사극에서 이런 말투를 하잖아.”

“가끔 채널 넘기다가. 그런데 본질적으로 난 TV를 잘 안 봐. 그나마 너 나온 드라마만 본 건데.”

“진짜 영광이네. 그럼 어제 와서 회식 때 본 여배우들이 어디에 출현했는지 이런 것은 전혀 모르겠구나. 걔네들은 너한테 관심이 장난 아니던데.”

“당연하지. 몰라.”

“아, 불쌍해라. 그대들이 관심 두고 있는 남자는 이제 내 것이 되었도다.”

밥을 먹다 말고 손을 올리며 이런 대사를 읊조리듯이 말하는 그녀다. 그런 미래를 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연기자와 사귀면 이런 일도 많을 것 같다. 뭘 하다가도 연기 연습하듯이 대화를 하는 일상.

“그런데 세희 언니랑은 친구 먹었다던데, 진짜야? 아님 그 언니 착각이야?”

“언니였어?”

“응. 나보다 두 살 많아. 몰랐구나. 어쩐지… 네가 동생이면 동생이지 웬 친구인가 했네.”

“친구 하기로 했는데.”

“그래? 그럼 그 언니 말이 사실이네.”

그녀는 문득 눈빛을 빛낸다. 이제부터 그를 단속에 들어가야 한다. 다른 여자가 접근하는 것을 막는 방법. 어차피 이제 연예인하고 엮이지 않도록 하면 된다. 그리고 빛나. 언제나 경계 1호다. 친구로 남겠다고 그녀가 선언했다지만 그것은 모르는 일이다. 그는 여자이기에 여자 마음을 잘 안다. 감정적이며 가끔 충동적인 게 여자다. 분위기와 계기가 있으면 바로 친구에서 연인으로 돌변할 수 있는 것이다.

“안 되겠어. 너 여자관계 다 까봐.”

“응? 무슨 소리야?”

“너, 이제 내 남자잖아. 주변 여자 누가 있는지 다 말해. 내가 모르는 애가 있는지.”

“윽. 됐다. 밥이나 먹어.”

“장난 아닌데. 너도 알잖아. 네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그러니까 널 지키기 힘들단 말이야.”

“그만 해. 알잖아. 나 누가 구속하려고 하는 거 싫어. 그래서 계약도 단기로 하는 건데…”

“아… 알지.”

그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는 것 같을 때 꼬리를 내린다. 이로서 확실하다. 그녀는 그를 제어할 수 없다. 제어당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에휴, 평생 잡혀 살겠네.’

속으로 한숨을 쉰다. 이래서 여자는 자신보다 더 많이 좋아해주는 남자를 만나라는 말이 있나 보다. 선배 언니들이 그런 말을 자주 하는 이유를 몰랐는데, 이제야 알았다. 그러다가 그의 다음 말을 듣고 얼굴이 확 펴졌다.

“너도 충분히 매력적이야. 그리고 난 너 이외에는 이제 여자로 생각하지 않도록 노력할게. 약속은 못하겠지만, 이 정도면 됐지?”

현실적인 약속이다. 그리고 우혁이라면 반드시 지킬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그가 여자를 유혹하는 스타일은 전혀 아니다. 다른 여자가 그에게 붙어서 탈인 것이지. 그의 말에 바로 밝게 웃는 미래. 그녀의 웃음만큼이나 그들의 장래가 밝을지는 가 봐야 한다. 사람의 인생은 짧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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