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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117화 시상대에서 부르는 애국가

1500미터 결승. 이미 1000미터 지점까지 아무도 우혁의 앞에 있는 선수들은 없었다. 보고 있는 사람들이 전혀 긴장을 안 할 정도로 물살을 헤쳐 나가는 여유 있는 모습. 2위 그룹과도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장치앙린의 선수자격 정지로 인해 중국 선수들은 대거 저조함의 늪에 빠졌다. 중국을 대표하는 슈퍼스타 아닌가? 그의 약물 복용으로 인해서 큰 충격을 받았나 보다. 남자와 여자 모두 집단 최면에 걸린 듯 부진함의 연속이었다.

이번 아시안 게임의 특징. 한국 수영의 전면 부상이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그들의 엄청난 잠재능력.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 두 사람이 이끌고 있는 게 아니다. 여기저기서 신예들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마치 예전 동계 올림픽에서 이상하, 이승한, 모태봉이 갑자기 튀어 나와 한국 빙상을 이끌었던 것처럼 이번에 탄생한 수영 영웅들은 전 국민적 관심을 끌어 모으고 있다.

특히 이들을 최전선에 이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우혁이다. 금메달 세 개. 그리고 은메달 두 개. 이번에 장치앙린이 징계를 받았기 때문에 얻은 금메달이 두 개나 된다. 지금 또 하나의 금메달을 약 100미터 지점 앞두고 있다. 좀 경쟁자라도 있어야 박진감이 있을 텐데, 어떤 관중들은 하품까지 하고 있다.

우혁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경쟁자가 없음을 아쉬워하고 있다. 세계 기록 때문이다. 자신감인가? 이번에 첫 출발할 때 목표가 금메달 보다는 세계 신기록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작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미국의 피터 보로가 세운 14분 30초 08. 그것을 깨보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기록경기가 그렇다. 혼자서 하는 싸움은 외롭기도 하거니와 쉽게 기록 경신이 되지 않는다.

격세지감. 지난 초청 대회에서 우혁은 100미터를 앞두고 실 끊어진 연처럼 물속에 가라앉았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걱정했었고, 그 역시 그 때 이후로 정신을 좀 차렸던 것 같다. 지금은 그 반대다. 그를 경쟁자로 여겼던 장치앙린은 아마 선수 생명이 끝나지 않을까 싶다. 반면 그는 이제 시작이다. 아시안 게임을 시작으로 이제 세계무대에 도전을 할 것이다.

벽을 찍었다. 14분 33초 09. 아시아 기록도 깨지 못했다. 관중들도 박수를 치기는 했지만 평소와는 달리 싱거운 결과에 그들 역시 밋밋하게 기쁜 표정이다. 우혁 역시 가볍게 관중들과 동료들에게 손 한 번 들어주고 퇴장을 했다.

“잘 했어, 하하. 4관왕이다, 응? 4관왕. 하하하.”

뭐가 그렇게 좋은지 영욱이 신나 하고 있다. 수건으로 그의 몸을 감싸며 같이 퇴장해 주는 그의 뒷모습. 제자의 성과는 스승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뭘요, 장치앙린이 없어서 좀 심심하네요.”

“이제 세계 선수권 대회를 봐야지.”

“아직 멀었어요. 내년이잖아요.”

“그러니까 그 때까지 몸을 만들어야지. 아시아 정복은 우물 안 개구리의 사고방식이야. 이제 세계 정복을 해야지 않겠냐? 하하하.”

상당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웃음이 입에서 떠나지 않는 영욱. 당연하다. 드디어 4관왕이 탄생을 했다. 계영이 남아 있으니 어쩌면 5관왕도 바라볼 수가 있는 것이다. 혼계영은 무리다. 아직 한국 수영의 저변이 그 정도는 아니다.

여자 쪽은 살짝 기대를 할 수도 있다. 자유형의 빛나와 배영의 가희가 있으니. 하지만 남자는 자유형을 제외하고 아직까지 다른 영법에서 인재들은 없다. 그래도 일본과 중국이 자유형에서 거의 초토화 당했지만 다른 쪽은 그들의 탄탄한 저변이 돋보이는 상황이다.

저녁에 미팅이 있었다. 이제 아시안 게임 수영이라는 종목이 마무리를 향해 가는 시점에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저녁 식사를 통해 이번 대회에 대한 평가를 하는 시간이다. 말이 평가지 사실 자축의 의미가 강하다.

“이번에 우리가 가져온 메달이 몇 개야? 세기도 힘들어, 하하하.”

“다 회장님 덕분입니다.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니 선수들이 분발할 수밖에요.”

공치사. 연맹 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태형광 감독은 역시나 서로의 공을 치켜 올린다. 물론 나중에 우혁 등에게 격려와 칭찬을 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지만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선수들의 눈은 신뢰가 깔려 있지는 않다. 이런 마음을 대변하듯 영욱이 한 마디 꺼낸다.

“회장님, 그리고 부회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가? 말해보게.”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것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맹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신속하게 추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태원이도 그랬지 않습니까? 은퇴 선수가 아니라고 청룡장을 받아야 하는데 못 받은 사건. 그 때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연맹과의 관계가 껄끄러웠기에 추천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이 사람아, 그런 이야기를 여기서 꺼내면…”

형광은 영욱에게 빨리 앉으라는 신호를 준다. 스승은 이제 제자를 닮아가나 보다. 그래도 약간 순화된 말과 어투지만 예전에 연맹회장과 부회장을 당황시키는 말을 곧잘 했던 우혁이다. 그 역할을 지금 그가 하고 있다.

“더 있습니다. 수영 자유형 말고 다른 종목에 인재들을 발굴하기 위해서 많은 투자가 필요합니다. 이번에 우리 선수들이 잘해주었던 성과 덕분에 국민적 관심도 높아질 것이니 문체부에 건의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예산이 부족해서 훈련장을 개방하지 못했다는 것. 만약 S 생명에서 실업팀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오늘의 성과는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

“물론 연맹에서 가희를 귀화시킨 것이나, 태릉을 조기 개방하여 선수들의 훈련을 도왔던 점은 깊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얼르고 달랜다. 병주고 약 준다. 하지만 이 모습을 보는 선수들의 표정은 희희낙락. 연맹인사들은 소태를 씹은 표정이다. 하지만 별수 있는가? 영욱은 S 생명 소속이고 대표팀의 주력도 그 실업팀의 선수들이다. 그야말로 막강 파워. 함부로 다룰 수도 없다.

원래 수영의 모든 경기가 끝나고 자리를 가지려고 했지만 계영과 혼계영은 워낙 약하고 가능성도 희박하기에 미리 개최한 연맹. 거기다가 선수 개인의 스케줄이 잡혀 있다. 여기 저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들을 섭외하고 있고, 대체적으로 많은 선수들이 남은 기간 동안 출연을 결정을 했기에 이렇게 다 모일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우혁은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딱 하나만 선택했다. 바로 힐링캠핑. 나머지는 고사를 했다. 더 나가 봤자, 말주변도 없고, 잘못하면 MC들에게 말릴지도 몰라서 그의 비밀을 실수로 말을 할 가능성이 있기에.

다음날 계영 예선을 통과한 우혁, 일수, 병묵, 그리고 종수. 400미터 계영에서 예선 기록만으로 1위가 일본이고 한국이 2위다. 중국은 거의 방전 상태이다. 그나마 3위를 했는데 그것은 다른 나라의 선수들이 기본에 못 미쳐서 거둔 성과에 불과하다.

첫 주자는 일수, 그리고 마지막이 우혁이다. 스타트와 마무리 주자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일수는 긴장을 하고 있다. 스타트대에 선 일수. 그 역시 이번 대회에서 첫 금메달을 따고 기분 좋은 마무리를 위해 이번 계영에서 기대를 하고 있다.

- 삐익.

부저가 울리고 나쁘지 않은 스타트로 첫 출발을 알리는 일수. 50미터를 찍을 때까지 그의 적수인 일본의 사카이 유지모토. 거의 동시에 턴을 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100미터에 도달했다.

두 번째 주자는 종수다. 그 역시 최선을 다했다. 아직 어리지만 유망주라는 것은 못해도 칭찬을 받는 시기가 아닌가? 이번 대회에서 수영의 쾌거로 이런 유망주들의 이름 역시 뉴스에 오르내렸다. 인지도는 높아졌고 사람들의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병묵을 거쳐서 우혁에게 왔을 때 그래도 일본에게 몸 하나 정도의 격차를 보이고 있었다. 일본의 마지막 주자는 쇼타 스카이. 수영의 마지막은 패배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저무는 해, 뜨는 해에게는 그 자리를 비켜줄 수밖에 없다.

50미터 턴을 했을 때 우혁이 그와 어깨를 나란히 했고, 잠영을 하고 수면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에는 드디어 역전을 당했다.

“와아아아!”

“나이스!”

관중석과 코칭스태프의 환호성. 그리고 함성. 그의 귀에 들릴까? 그것을 모르겠다. 다만 자신의 페이스를 계속해서 유지해서 결국 마지막을 금메달로 장식하니 5관왕이 탄생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아시안 게임에서 첫 5관왕이다.

고글을 빼고 둘러보았다. 그를 보는 많은 사람들.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쇼타 스카이다. 그는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언제 이렇게 컸던가? 승자의 아량. 이런 것도 점점 갖추다니 우혁은 이제 성장을 다 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시상대에 네 명이 오르고 대한민국의 애국가가 널리 퍼졌다. 그의 입에서도 흘러나온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관중들도 함께 부른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도 마찬가지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TV로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들 감격에 겨워 따라 부른다.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 작품 후기 ============================

쓰기 전에는 인식하고 있었는데, 쓰고 나서 우혁이 400미터에서 금을 땄어야 한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알려주신 초봄님께 감사드립니다. 안녕히들 주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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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ash! - Splash-1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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