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16화 괴물 신인
수온이 느껴지지 않는다. 때문에 물에 들어가면 시원할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차라리 이 열기를 즐기려고 마음을 먹었다.
촤악… 촤악…
헤치고 나아간다. 다른 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교차하는 팔과 다리를 믿기만 할 뿐. 처음으로 하는 경쟁이다. 그래서 그렇다. 다른 선수들을 보지 못하고 자신만의 길을 간다는 게 바로 그 이유다. 당장 레인이라도 벗어나면 실격이 되지 않는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리는 게 있었다. 자신의 심장 소리. 평소보다 약간 빨라진 맥박 소리가 자신의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호흡은 아니다. 머리를 좌우로 돌리기는 하지만 실제로 숨은 물속이든 물 밖이든 아무 상관없이 들이쉬고 내뱉었다.
“쳐 지네…”
빛나가 미래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가 하는 말을 들었다. 아까 잠시 느낀 라이벌 의식. 하지만 지금은 같이 응원하는 마음으로 옆에 앉은 것이다.
“우혁이는 후반에 강하더라…”
빛나의 말. 그리고 그녀를 쳐다보는 미래. 이제 자신만큼 그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친구가 말이다. 그래서 좀 싫다. 우혁이를 잘 아는 사람은 하나면 족하다는 생각. 그녀도 모르게 이 말이 나왔다.
“걷지도 못한 사람이 수영을 하다니 대단한 거야…”
“그게 무슨 소리니?”
“그런 게 있어.”
사실 그녀도 자세한 상황을 잘 모른다. 결국 이 말은 그를 더 잘 파악한다는 것을 내세우고 싶었기에 하는 말이었다. 누가 그를 더 아는가가 그렇게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신의 친구에게 우혁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다.
우혁이는 많이 뒤로 쳐졌다. 턴을 하고 또 턴을 하는 상황. 150미터를 가는 그 상황에서 1위는 김훈이 그리고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부분에서 박찬규가 따르고 있었다. 200미터에서는 1위와 꼴찌가 교차를 하게 되니 거의 반 바퀴가 차이가 나는 셈이다.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미래와 빛나. 아무리 그래도 극복을 하기는 힘든가 보다. 수영을 배운지 한 달이 약간 넘는 시간이었다. 그 동안 노력한 그의 정성을 하늘이 알아주기를 바랐는데, 반면 하늘이 공평하다면 벌써부터 그에게 행운을 내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오랫동안 연습해 왔던 선수들의 허탈감은 어찌 하겠는가?
그래도 반전이 있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는 두 여인. 그들의 염원이 그에게 미치고 있는 것일까? 그가 힘을 내고 있는 것 같았다. 더 정확히는 그의 앞에서 수영하는 선수가 힘이 빠진 것이다. 현저하게 거리를 좁히더니 드디어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리고 두 팔이 한 번 더 교차할 때쯤은 역전을 이루어냈다.
“와아아…”
“파이팅!”
1등을 한 줄 알 것이다. 그녀들의 환호성을 들으면. 겨우 단 한 명을 젖힌 것뿐인데.
“그래, 우혁아… 이제부터 시작이야.”
“아직 많이 남았어… 할 수 있어!”
목소리도 커진다. 다른 사람을 이미 의식 안 한지 오래다. 옆에는 영욱이 눈을 빛내고 있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 누구를 응원할 수는 없다. 김훈도 찬규도 다 그의 제자들이다. 아니 이번에는 그 둘 중에 하나가 우승하기를 바랐다. 태원의 그늘 아래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2인자의 자리에 있었던 그들.
우혁도 느낀다. 자신이 한 명을 잡고 또 다른 하나의 뒤를 바짝 쫓는다는 것을. 첫 출전에 힘 배분은 쉽지가 않다. 사실 아직 반도 못 왔는데 체력적으로 힘이 들었다. 하지만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다. 늦게 시작한 그가 그리고 걷지도 못했던 그가 그 누구보다도 더 앞서갈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힘을 냈다. 체력의 분배는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 심장이 터져 죽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결국 그는 또 한 명을 뒤로 보내고 말았다. 1000미터를 넘었을 때쯤이었다.
선두 경쟁은 김훈과 찬규의 몫이다. 이미 3위하고는 많이 벌린 상태. 처음에는 김훈이 그렇게 앞서가더니 이제는 둘이 우열을 가리지 못할 정도였다. 그들도 서로 선의의 경쟁자들이다. 아무리 그래도 우승을 원한다. 우승이라는 단어 앞에 ‘준’이라는 말을 원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을 것이기에.
1200미터를 돌 때쯤 우혁은 4위까지 치고 올라간다. 그를 향한 응원은 잠잠해졌다. 그가 이기는 게 싫어서? 아니다. 그들 또한 놀라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영욱도 표정이 굳어졌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감독에게 말은 했다. 잠재력이 뛰어난 아이 하나를 키워보고 싶다고. 하지만 별 기대의 눈은 하지 않았다. 특히 우혁을 보고 나서는 실망에 가까운 눈이었다. 일반인으로서는 모르겠지만 선수로서는 작은 키. 그리고 다소 마른 몸매. 더구나 벌써 나이가 스물이다. 아끼는 코치라서 원하는 대로 해주었지만 실질적인 기대는 없었던 상황.
“조코치, 수영을 한 지 한 달 밖에 안 됐단 말인가? 저 아이가…”
“그… 렇습니다.”
말하는 사이에 바로 3위의 자리에 올라섰다. 방금 그들이 이야기를 나눈 수영 경험 약 한 달 정도의 선수가 말이다. 속도는 오히려 더 빨라진 것 같았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 다른 선수들이 현저하게 느려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호흡. 특히 장거리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숨 쉬기다. 그가 1500미터만 출전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아직까지 단거리는 극복할 게 너무 많다. 수영에 적합한 근육도, 그리고 기술 또한 마찬가지다. 팔 꺾기를 배웠다고 하지만 단거리에 바로 적용을 하기는 무리다.
이제 마지막 100미터가 남았다. 1위는 찬규다. 그의 키만큼 뒤쳐진 김훈. 그리고 3위는 그들의 합친 키의 세 배는 차이가 났다. 현실적으로 그것을 극복하기는 힘들다.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리고 3위. 그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무한한 잠재력을 평가받으리라.
그런데 만족할 수 없나 보다. 그는 더 힘을 낸다. 1위와 2위를 달리고 있는 이들은 모른다. 뒤를 쳐다볼 수 없는 게 수영 경기이므로. 고개를 좌우로 저을 때 보이는 앞 선 주자들. 그들과 거리를 좁히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우혁. 보는 사람들의 입에 침이 마른다.
“대… 대단하다. 누구야?”
“박찬규, 김훈… 이 둘만 있을 줄 알았는데, 무명의 신인이 나타났다.”
관중이 별로 없는 가운데 그나마 기자들은 와 있다. 박태원으로 인해 수영계의 공백이 있을 거라는 좋은 취재거리가 당분간은 수영 대회에 그들을 불러 모을 것이다. 다른 이들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보도를 해야 하기에. 사실 이게 현실이다.
그런데 오늘 그들의 기사를 장식할 새로운 타이틀이 붙을 지도 모른다.
『괴물 신인 탄생』
『박태원의 후계자?』
기타 등등. 갑자기 나타난 신인에게 충분히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줄 수 있는 게 또한 기자들의 힘이다. 물론 본인은 관심의 대상이 된 지도 모르고 열심히 2위의 뒤를 따라가고 있지만 말이다.
턱. 턱.
1위 박찬규. 2위 김훈. 간발의 차로 확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 뒤를 무섭게 추격해 온 우혁. 비록 3위이지만 이미 기립해 있는 사람이 많을 정도다. 수영 계에 나타난 새로운 신성으로 인해서 관계자들은 흥분 상태다.
“젠장, 젠장!”
그러나 본인은 아닌가 보다. 억울하고 속상했다. 3위를 한 것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잠재되어 있는 승부욕이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눈물까지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경기를 마치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뒤로 한 채 선수 대기실로 바로 들어간다.
15분 59초 62. 그의 기록이다. 1위가 15분 55초 60. 2위가 15분 56초 12. 그는 자신의 기록도 확인하지 않았다. 모든 이의 눈이 전광판으로 향할 때 그냥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게 룰을 어기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약간 황당해 했다. 최하위를 기록한 것도 아니고 첫 출전인데 만족을 못한다는 표정이기에.
대기실로 쫓아가는 사람들. 기자들이 대부분이다. 덕분에 1위와 2위는 찬밥 신세다. 그들의 얼굴이 구겨지고 있다. 감독과 코치 역시 대기실에 합류했다. 아무래도 기자들을 세련되게 상대하지 못할 것 같은 우려 때문이다.
찰칵. 찰칵. 팟. 팟.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기자들. 그리고 카메라 소리. 그는 깜짝 놀랐다. 더구나 이어지는 질문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최우혁 선수! 잠시 질문 좀…”
“언제부터 수영을 하신 거죠?”
“1500미터만 출전하셨는데, 단거리는 안 하시는 건가요?”
수많은 질문들에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를 대신해서 영욱이 나섰다. 그리고 기자들의 질문에 하나씩 하나씩 차분하게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지나친 언론의 관심은 그에게 역효과가 있다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기자들을 돌려 보낸다.
“고생했다.”
“허허허. 물건이 나타났구먼, 물건이…”
영욱의 말과 감독의 칭찬. 아직도 모르겠다. 1위를 하지 않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이 관심들을. 그런데 이상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패배감에 신경질이 났었는데, 지금은 이런 관심이 즐겁다. 어찌 된 일일까?
“자만하지 말고, 이대로만 해라. 그리고 경기가 끝났다고 그냥 이렇게 오면 안 돼. 알겠지?”
그를 타이르는 영욱. 그는 잘 알고 있다. 우혁이가 약간 외골수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지난번에 물속에서 버티던 그를 보고 마음을 졸이지 않았던가? 표정을 보니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대단하다… 승부욕이… 태원아, 진짜 네 뒤를 이을 물건이 나온 것 같구나…’
영욱은 이 말을 하지는 못했다. 그에게 자만심과 우쭐함을 굳이 선사해줄 필요는 없기에. 하지만 잘 알고 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유망주가 드디어 대한민국에 탄생했다는 것을. 그래서 속으로 조심스럽다. 앞으로 그를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그게 고민인 것이다.
============================ 작품 후기 ============================
이미지 변신 중? 야설을 쓰던 사람이 이 정도 수위로 쓰니까 역시 진한 것 요구하시는 독자님이 많으시네요^^ 심지어 쪽지를 보내시는 분도 계셔서 말씀 드릴게요. 일단 이 소설의 진한 수위는 그렇게 높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약간 진하지만, 과도하게 진하지 않다고 확정적으로 말씀 드릴게요.
PS
1. 정 진한 것을 원하시면 나중에 직장 성공기에 뭔가 서비스 횟수를 고민해서 넣겠습니다.
2. 쿠폰은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3. 오늘 연참은 여기서 끝? 일단 써 보고요^^ 만약 오늘 올리지 못하면 아마도 자정에 올릴 것 같습니다.
4. 수영 연맹 사이트를 기본으로 해서 수영 대회의 스토리를 쓰는 것입니다. 이 글의 배경은 과거일수도 현재일수도 미래일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