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118화 토크쇼
힐링캠핑의 촬영이 있었다. 순빈은 제작진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물어보지 말아야 할 것을 전달한 것이다. 우혁의 과거 및 여자관계에 대해서는 자제해 달라는 요청에 구두 승낙을 받았다.
한국의 수영 영웅들이라는 타이틀로 방송이 될 것이라고 전해 들었다. 낯간지러웠지만 한 번 정도는 예능을 해야 한다는 순빈의 말에 출연을 결심한 것이다. 그와 더불어 일수, 그리고 빛나와 가희가 같이 녹화를 시작했다.
그런데 MC가 좀 문제가 있었다. 이경구와 김자동은 상관이 없는데, 여자가 하필이면 한수연이었다. 우혁과 작년 드라마 종방연에서 있었던 해프닝을 순빈이 몰랐기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만약 알고 있었다면 그에게 물어봤으리라. 여자 MC를 알려주고 출연을 할지 안할지에 대해서.
“안녕하세요.”
“아, 네.”
수연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연예계 대표적인 연하 킬러. 그녀가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남자가 없었다고 했는데, 유일하게 실패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웃는 낯으로 인사를 하는 그녀의 심정. 다시 도전 의식이 불타는가? 그가 녹화장에 들어오자마자 그에게 말을 붙인다. 불편하지도 않나보다. 예전 기억이.
여전히 대답을 짧고 살짝 퉁명스럽다. 그의 기억을 지배했던 수연과의 만남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나름 친절(?)해진 그의 여자에 대한 태도에 비추어보면 상당히 짧고 냉정했기에 나머지 일행들은 의외라고 생각을 했다.
“우리 최우혁씨가 엄청 시크하다고 하더니, 진짜네. 허허허.”
이경구는 옆에서 수연을 도우려는 것인지 이렇게 말을 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이는 게 요상한 내용이다.
“여기 수연씨가 최우혁씨 팬이래요. 열광적으로 항상 최우혁씨 이야기를 해서 아주 그냥 내가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아요. 이거 또 스포츠 스타랑 우리 프로그램 MC랑 이어지는 거 아닌지 몰라. 응?”
예전에 이 프로그램의 여자 MC가 한참 어린 축구선수와 결혼을 했다. 그 때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우혁은 그것에 동조를 할 리가 없다. 약간 표정을 굳히는 것으로 그의 말에 반응을 했다.
“이봐, 긴장 풀라고, 하하하. 내가 편하게 해줄게.”
옆에 있는 김자동도 거들고 나섰다. 그가 긴장을 해서 경구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천만에 말씀이다. 그는 긴장을 하지 않았다. 드라마나 영화 출연에서 연기라면 모를까 이런 예능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내보내는 곳이다. 오늘 그는 포장하지 않고 진솔하게 임하려고 왔다. 그래서 순빈에게도 부탁을 한 것이다. 과거의 이야기와 여자 이야기는 안 하도록 부탁해 달라고.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있다. 구두로 대답한 것은 항상 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 무릎 도사나 지금의 힐링캠핑과 같은 토크쇼에 출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감안하고 나간다는 의미다. 여기까지 와서 그가 화를 내거나 촬영을 접자고 할 수는 없으니 오늘 일은 어쩌면 수연의 계획 아래 움직일 수도 있었다. 그녀가 마음을 먹는다면 말이다.
“자, 슛 들어갑니다.”
PD의 촬영 시작 신호가 그들이 야외에 설치된 의자에 앉고 나서 떨어지고, 드디어 MC들과 선수들의 이야기가 시작이 되었다. 아직 아시안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폐막식까지 다른 경기를 구경하는 등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수영이 메달밭으로 부상하게 되니 이렇게 토크쇼를 추진하게 된 것이다.
초반에는 훈련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과거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수영에 관련된 이야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당연히 우혁의 주문이 먹혀든 것이다. 다른 부분에 대한 과거 이야기는 그가 아닌 다른 선수들에게 했다.
“그럼 원래 일본 이름이 유카리였다는 이야기네요.”
“맞아요. 유카리 미호.”
“귀화 결심을 했을 때 대단히 큰 결정이었네요.”
“많이 망설였어요. 한국에서 수영선수로 사는 것이랑 일본이랑 좀 달라서요.”
“그렇죠? 그래도 유가희 씨가 귀화를 한 다음에 한국 수영의 위상이 참 높아졌어요? 하하하.”
“이거, 김자동씨? 질문을 여자 선수들한테만 하고, 노총각 티를 또 내는 거야?”
“아이고, 왜 이러십니까? 저 두 여자 선수와 제가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나는데요?”
“하하하.”
“호호호.”
이경구와 김제동의 대화로 좌중은 웃음바다가 된다. 가희의 과거 이야기에 초점이 가고 있다. PD는 흡족해하고 있다. 어쩌면 2회 분량 이상이 나올 것 같았다. 출연자들의 면면이 다 범상치가 않다. 그래서 이들을 이끌고 있는 MC들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최우혁씨는 수영 한지 1년 약간 넘었다고 들었습니다.”
“아, 네.”
드디어 우혁에게 바통이 넘어왔다. 경구는 이제야 그의 성향을 파악했다. 단답형 대답만 할 것 같은 인상. 그래서 아까 자신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찌른다.
‘큰 일 났군. 이거…’
녹화할 때 가장 까다로운 사람.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다 하는 출연자들은 오히려 재미있다. 가끔 그들의 실수를 캐치해서 방송에 나가면 뒷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던져 줄 수 있어서 오히려 시청률 대박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런 말이 없는 출연자는 몹시 까다롭다. 길게 멘트 하도록 유도를 하는 게 그들의 몫이라고 해도 이미 사전에 조율된 의사소통으로 그의 인생 과거 이야기와 연애사는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
“우리 오라버니가 대답이 짧아요. 좀 이해해 주세요.”
“아이쿠, 가희양. 이렇게 나서주니 고맙습니다. 하하하.”
가희가 중간에 그의 변호를 하고 나섰다. 덕분에 다행이라고 생각한 경구. 흐름을 다시 가희 쪽으로 맞추어야 한다는 감이 왔다. 그의 오랜 현장 경험. 그에 대해서 몇 번 질문을 하고 오히려 MC들이 더 많은 말을 하자 진땀을 흘리니 그녀가 도와준 것인데, 나중에 PD와 이야기해서 영상자료 첨부로 이 부분을 많이 넘어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차라리 이럴 때에는 우혁이와 다른 출연자와의 관계를 통해 그의 생활을 몇 가지 에피소드로 던지는 게 나았다.
“그런데 오라버니라? 특이한 호칭인데요?”
“사극을 많이 봐서요. 그래서 그렇게 부른 거에요.”
“그렇군요. 목소리에 정감이 가득한데 이거, 이거 혹시 가희양이 우혁씨를 맘에 두고 있는 거 아니에요?”
“맞아요.”
이건 또 뭔가? 경구는 또 당황하고 나섰다. 웃으며 농담으로 받거나 아니면 부정을 해야 한다. 이 타이밍에는 말이다. 그런데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을 하자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르겠다.
‘수습? 아니야, 이거 잘만하면 대박 시청률이 날 수도 있잖아. 최우혁의 여자관계에 대해서 묻지 말아달라고 한 거지, 가희의 남자관계는 상관이 없잖아. 암, 그렇고말고.’
자기 자신에 대한 합리화. 이런 것이 없으면 연예계 생활을 못한다. 어쨌든 그래서 다시 던진 질문. 이미 좌중은 가희만을 바라보고 있다. 카메라도 그녀에게 집중이 되어 있다. 우혁이 인상을 찡그린다.
“정말입니까? 하하하. 이거 오늘 대박을 하나 건졌는데요? 유가희양이 최우혁씨를 마음에 두고 있다니…”
“제가 귀화를 확실히 마음 굳혔을 때가 바로 오라버니를 만나고 나서였어요.”
그녀는 동아시아 오픈 챔피언쉽에 관련된 일화를 끄집어내었다. 그 때 있었던 만남. 그리고 우혁과 다른 사람들이 몰랐던 일들도 나왔다. 연맹의 끈질긴 설득. 그래도 한 건 한 것이다, 그들이. 조부모님의 한국 귀국으로 인해 그녀의 마음이 많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그와 만난 것이 운명이었다는 말을 했을 때에는 그의 인상이 더 굳어졌다.
“험, 험. 자, 자. 자동씨, 이제 그만합시다.”
“잠시, 녹화 쉬…”
“그럼 우혁씨와 지금 무슨 관계이시죠? 설마 사귀시는 것은 아니죠?”
경구의 말에 잠시 녹화를 쉬자고 말하려던 자동의 말이 수연에 의해서 끊겨 버렸다. 이 시점에서 우혁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지고 있어서 두 남성 MC를 긴장시키고 있었는데, 그녀가 눈치 없게 질문을 해 버린 것이다.
“아니에요. 하지만 6개월만 기다려달라고 오라버니에게 부탁을 했죠.”
“그래서요? 기다려 준데요?”
“아뇨, 그래서 슬퍼요.”
진짜로 울 듯한 표정. 녹화장의 분위기가 이상한 곳으로 빠지고 있다. 이것을 수습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중에 PD가 알아서 편집해 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재미를 위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손을 댈지는 모른다. 그 때 일수가 기지를 발휘했다.
“태릉에서 여기까지 우혁이 형의 인기가 너무 많았어요. 많은 여자 선수들이 지금 가희처럼 다 구애하고 그랬죠. 지금 보세요. 이게 연예인 외모지, 수영 선수 얼굴인가요? 같은 방을 쓰는데 아주 힘들어 죽겠어요. 매일 여자들이 와서 형을 보고 가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처량하기도 하고.”
“아, 그래요?”
“그럴 때마다 우혁이 형이 말했어요. 금메달을 따기 전까지는 여자를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이것을 보고 참 배울 점이 많은 형이라고 생각을 했죠.”
두 남자 MC들이 반색하고 나섰다. 드디어 상황이 타개된 것이다. 물론 우혁이는 언제 자신이 그런 말을 했냐는 식으로 일수를 바라보고 있지만, 이는 그의 모습을 미화하려고 한 의도였기에 차라리 다행인 셈이다. 그래서 그 역시 부정을 안 하고 있지만. 하지만 여기 있는 모두를 또 아연실색하게 할 질문이 수연의 입에서 나왔다.
“그래도 스캔들이 몇 번 터졌잖아요. 같은 방을 썼으니까, 아셨겠네요. 진짜 스캔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좀 공개해 주시죠.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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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모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