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78화 승부를 참지 못하는 사나이
“아니, 저거…”
“뭐 하는 거야?”
“저, 저…”
갑자기 어디를 가나 했다. 그리고 나온 우혁. D조 8레인. 그가 속해 있다.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미 손까지 다 흔드는 상태다. 관중석의 환호와 동요. 부상으로 알려져 있었긴 했으나, 이렇게 나오는 것을 보니 큰 부상이 아니라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최소한 그의 속사정을 모르는 관중들의 눈에는.
“큰 부상은 아니잖아요. 괜찮지 않을까요?”
“절대 안정. 이번 대회 불참. 의사는 그것을 요구했어. 내 잘못이다. 내 잘못이야. 철저히 감시했어야 하는데.”
빛나의 말에 순빈이 대답을 한다. 영욱도 후회하는 눈빛이다. 아직도 그를 모른다고 자책하고 있다. 승부에 관해서라면 더 충동적인 사나이. 그의 이름은 최우혁이다.
삐익. 이런 저런 대화가 오고가는 사이에 출발 신호가 울리고 드디어 깨끗한 폼으로 스타트에 나섰다. 골반 또는 햄스트링에 부상이 오면 아무리 정신력이 좋다고 할지라도 스타트에 문제가 생긴다. 자세를 보니 평소의 모습 그대로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
이탈리아의 까르보니리가 앞으로 치고 나온다. 세계 랭킹 5위. 4레인이다. 우혁은 무리를 하지 않았다. 지금은 승부욕을 약간 줄이고 예선만 통과하자는 마음가짐이다. 사실 참가한 것 자체가 승부욕을 줄이지 못한 것인데 말이다.
오른팔과 왼팔의 교차. 그리고 허리를 양쪽으로 꺾는 것. 머리를 좌우로 돌리는 상태. 발은 수면의 아래에서 끊임없이 위로 차올린다. 이게 자유형의 기본적인 영법이다. 그러다보면 어깨, 허리, 골반 및 하체의 운동량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우혁도 마찬가지다. 그는 신체조건이 탁월한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이 운동량으로 타인을 이겨야 더 멀리, 그리고 더 빨리 갈 수 있는 것이다.
1500미터. 단거리와는 다르게 초반, 중반, 종반으로 나뉘어 힘을 잘 분배해야 한다. 이제 우혁도 초보 티를 벗어났다. 그리고 영욱의 철저한 지도하에 힘 조절이라는 것을 배웠다. 경쟁은 그의 몫. 이탈리아 선수에게 조금 뒤진 채 초반을 마친다.
이제 중반. 뒤처지지 않을 뿐 아니라 어느 틈에 어깨를 나란히 하기까지 했다. 확실히 그가 수영에 재능이 있다는 게 여기서 증명이 된다. 또한 호흡에 유리하다는 부분. 장거리로 갈수록 그는 더 강점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종반에는 누가 봐도 그가 더 앞에 나선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렇게 경기가 끝이 났다. 예선 통과. D조 1위로.
“너, 정말!”
“감독님, 정말 괜찮습니다. 지금 경기 하고 왔는데도 통증이 전혀 없어요.”
사실이다. 통증으로 하루를 입원했던 사람인데 놀랍게도 아프지 않다.
“진통제 맞은 거 아냐?”
“죽을래?”
김훈이 이죽거린다. 같은 조였다. 그는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이렇게 헛소리를 지껄인다. 며칠 전 화해무드가 잠시 있었어도 그것은 한 나라, 한 민족의 범위 내에서만 발동하는 소속감, 동료애이다.
“여기까지다. 더는 안 돼!”
“감독님!”
그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지시. 예선을 통과했다. 그리고 장치앙린과의 승부가 남았다. 그런데 기권이라니? 그러려고 오늘 나온 게 아니다.
“경기하는 동안 의사 선생님과 통화해 봤다. 기본적으로 큰 부상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큰 부상이 오기 전이라는, 그래서 무리하면 안 된다고 이번 대회는 불참하기를 권유하셨다. 네가 내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니?”
“그럼 감독님이 제 입장이라면요? 열아홉의 나이에 처음 일어섰습니다. 스물의 나이에 수영을 처음 시작했고요. 목표를 세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수영을 잘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이길 거라고. 오늘 그 기회가 왔습니다. 컨디션 좋습니다.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 포기 하실 겁니까?”
부상을 당한 선수들. 기본적으로 선수생명이라는 부분과 항상 싸우게 된다. 어떤 선수는 지금 이순간이 자신이 가장 우승에 근접하다고 믿으며 진통제 투혼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런 선수들의 고집. 가끔 코칭스태프도 꺾지 못할 때가 있다. 그게 결과주의가 만들어낸 참상이다.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등 메달을 받으면 또 어떻게 되는가? 남자라면 군대에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잠시만 참으면, 잠시만 진통제의 힘을 빌리면 말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초청대회다. 그렇게까지 위험부담을 안을 필요가 없다. 왜 이렇게 그가 열을 내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욱은 이제야 우혁의 심정을 알게 되었다. 그는 모든 대회를 올림픽처럼 생각하고 있다. 버릴 대회와 그렇지 않을 대회의 구분을 하지 않는다. 안타깝다. 이것을 평소에 설명하지 못했던 자기 자신이 원망스럽다.
결국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동의한 것은 아니다. 말없이 뒤돌아섰다. 알아서 하라는 이야기. 포기한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은 게 그를 계속 주시하고 있다. 아무튼 우혁의 이야기로 선수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열아홉에 처음 일어서?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몰라. 작년부터 수영을 시작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저 이야기는 처음 듣네.”
가희의 질문에 일수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답변을 하고 있다. 알 수가 없다. 그가 말하지 않는 한. 지금도 설마 그가 전에 하반신 마비와 같은 상태였다는 것을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이 지금 엄청난 선수를 잡았다는 믿지 못할 사건.
“그나저나 우혁이 형이 대단하긴 하다. 까르보니리가 늙긴 했어도 쉽게 이길 상대는 아니었는데…”
“저 사람 겉으로 봐도 늙었어. 늙탱이야.”
“넌 도대체 누구한테 말을 배우냐?”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보고…”
“에휴, TV가 문제야, TV가.”
애꿎은 TV탓을 한다. 옆에 서있는 빛나. 그녀의 눈은 우혁에게 고정이 되어 있다. 몹시 걱정스럽다. 불길한 예감이 들고 있다. 하지만 그를 말릴 수 있는 것은 그 자신뿐이다.
“가자, 네 차례야.”
그녀를 맡고 있는 코치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의 경기가 있다는 말을 하면서. 결국 뒤돌아선다. 슬픈 눈을 하며.
반면 우혁은 저 멀리서 자신을 보는 이와 눈싸움을 하고 있다. 장치앙린. 수영장을 가운데 두고 반대편에서 자신을 보고 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알 수 있다. 비웃고 있다는 것을. 그를 자극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동안은 경기에 뛸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 자극에 돌발적 행동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오후에 보여주리라. 그가 얼마나 많이 성장했는지. 있는 힘껏 다해.
‘있는 힘껏 다해…?’
이 부분에서는 물음표가 생겼다. 몸이 아프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승부의 순간에 무리를 하지 않을 정도냐? 그것은 모른다. 스스로의 몸에 확신을 갖는 것은 이정도가 최선이다. 무리를 하게 되면 진짜 어디 한 군데 나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그를 이길 수 있는가? 알 수 없다. 아니 이기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경기에 참여하여 그와 같은 경기장에서 시합을 하는 상황. 승부욕을 조절한다는 일. 우혁에게 이미 그 자체가 무리다. 그것을 알기에 영욱이 말린 것이다. 어쩌면 탈이 안 날 수도 있다. 하지만 부상을 입는다면?
경기 전 그를 부르는 영욱. 가라앉은 눈빛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정말 마음에 안 든다고 말을 하는 눈빛이 있다. 하지만 나오는 내용은 다르다.
“조절하란다고 조절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 알고 있다. 그런데, 우혁아. 제발 조심해라. 제발…”
“알겠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
“자꾸 말 안 듣는 거, 하지 말라고 했을 때… 특히.”
“됐다. 지나간 일은 그만 이야기 하자. 난 시합에 나가서 이기라고만 하는 감독이 되고 싶지 않구나. 아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중에 이기자, 우혁아. 나중에. 네 앞에 아시안 게임, 세계 선수권 대회, 거기다가 올림픽이 있다. 그것을 바라보자. 오늘 경기 무리하지 마라.”
“네…”
대답은 예스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아마도 우혁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 가득 사람들의 걱정을 담고 결선을 하러 떠난다.
============================ 작품 후기 ============================
글 쓰면서 고민 계속 됩니다.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 정신과 및 분노 조절 장애. 틀린 말씀 아닙니다. 다소 과하게 표현 되었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꿔 볼까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데 그냥 욕 먹겠습니다. 지금은 바뀔 때가 아닙니다. 계기를 줘야 하니까요. 다른 작가분들도 항상 고민하시는 부분일 것입니다. 주인공이 독자들에 의해 비난을 받을 때 바꾸는 것. 결국 무난한 캐릭터에 무난한 스토리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이겨내보고 싶습니다. 뭐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네요. 그러다가 제가 꺾일 수도 있겠죠^^ 일단 한 번 써보고 싶은 부분을 쓰고 싶네요. 그냥 그뿐입니다. 흔하지 않은 캐릭터, 흔하지 않는 소재와 장르. 많은 다양성을 받아들여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