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77화 내일의 계획
이틀째 경기가 끝났다. 역시나 800미터에서는 중국풍이 거셌다. 1위가 장치앙린. 그리고 2위가 샤오 헤이씽이다. 단거리에서는 일수가 200미터에서 쾌거를 이루었다. 당당히 3위. 점점 향상이 되고 있다. 200미터 여자 부분에서 빛나도 2위를 했다. 아무리 세계 랭커가 빠졌다고 하지만 그녀의 아시안 게임 성적이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가장 고무적인 일은 가희다. 그녀는 오늘도 우승을 차지했다. 재능 하나만은 타고 났나 보다. 그렇게 까지 연습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는데 말이다. 덕분에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는 난리가 났다. 아직 학생신분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가진 글래머러스한 몸매와 예쁜 얼굴로 인해 많은 남성 팬들을 확보하게 되었다.
“넌 입만 안 열면 되겠는데…”
“뭐야? 너 죽을래?”
“거봐. 이런 것 알면 팬 다 떨어져 나가니까 그냥 조용히 있는 게 좋을 듯.”
일수의 놀림. 그리고 도망을 치는 그를 잡으러 다니는 가희. 어쨌든 한국 수영계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그것을 인정이라도 하듯 연맹에서 태감독이 영욱을 찾는다.
“이보게 조감독, 이거 내 체면이 말이 아니야.”
“아,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뭐가… 그래도 어쨌든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 왔네.”
“말씀하십시오.”
“태릉에 선수들이 없어. 있긴 하지만 S 생명 측에서 다 싹쓸이를 하는 바람에 여엉 흥이 안 나나봐. 그래서 그런데, 나중에 아시안 게임 앞두고 합숙 훈련 할 때는 그곳을 이용하면 안 되겠나?”
그는 약간 비굴한 웃음을 지었다. 영욱은 그 웃음을 보면서 나름 통쾌했다. 항상 연맹에서 하는 일이 맘에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온다. 아마 이것도 다 자신의 자리를 위한 것일 터이다. 국가 대표 감독 자리의 입지가 흔들려서 하는 말일 것이다.
“팀과 상의해 봐야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부탁하네.”
힘없이 돌아서는 태형광. 그의 어깨가 좀 쳐졌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영욱만의 착각일까? 아니다. 우혁도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다 느끼고 있다. 사실 변해야 한다. 수영 연맹이. 탈권위적, 선수 친화적으로 가야만 한다. 그래야 그들도 대한민국의 수영도 발전을 할 것이다.
“자, 자. 내일 마지막 대회 일정이다. 모두들 알지? 오늘 힘 쫘악 뺐으니 마무리 훈련 간단하게 하고 끝내자.”
“네!”
영욱의 말에 모두들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마무리 훈련. 그냥 간단하게 몸을 푸는 것이다. 스트레칭에 가까운 일. 그런데 우혁도 동참한다.
“우혁아, 넌 빠져라. 걱정시키지 말고.”
“아, 네.”
그는 영욱의 말대로 빠졌다. 그런데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어제보다 훨씬 나아졌다는 느낌. 이대로라면 진짜 내일 경기에도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충동적인 그의 성격이 또 나오는가?
“엉뚱한 생각 하지 마.”
어느새 다가온 순빈이. 그를 태우고 가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옆에서 그의 눈빛을 보니 뭔가 일을 벌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미리 경고를 하는 것이다. 엉뚱한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말이다.
결국 그에게 붙들려 왔다. 집으로 귀가하는 내내 자신의 하반신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는 우혁. 점점 회복된 것만 같았다. 내일 경기를 간절하게 하고 싶었다. 그동안 연습했던 시간과 노력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형, 아무리 생각해도…”
“그만 이야기 하자.”
“그게 아니라 이제 진짜로 괜찮은 것 같아.”
“안 되는 거 알지?”
“그게 아닌데…”
이제 순빈이는 친형과 같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진심으로 그를 걱정해준다. 그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오랜만에 집에 온 것 같았다. 단 하루였는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일까? 아마도 그 하루 동안 크고 작은 일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여전히 아주머니가 차려 놓은 밥상은 맛있게 보였다. 더구나 맛없는 병원 식까지 먹고 와서 더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형, 같이 먹자, 밥.”
요즘 들어서 혼자 밥 먹는 게 점점 익숙지 않다. 예전에는 누구랑 같이 먹는 게 익숙하지 않았는데. 순빈이는 흔쾌히 승낙했다.
“미래는 괜찮을까?”
“그러게, 열녀가 났더라. 그 힘든 촬영 스케줄에 네 병간호까지. 아침에 깜짝 놀랐다. 밤새 널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까지 자세히 이야기 안 해도 나 알고 있거든? 죄책감 생기게…”
미래는 아침에 갔다. 병원 잠자리가 불편했을 것이다. 거기다 갑작스럽게 와서 아마도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하고 갔을 텐데. 그래서 걱정이 된다. 그런데 그것을 날카롭게 찌르고 있으니 잠시 순빈이 얄밉다.
“가라, 형. 밥 다 먹었으면…”
“짜식이, 쪼잔하긴. 같이 먹자고 해서 먹어줬더니 금방 변덕 나서 쫓아내네.”
그와 미래의 사이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부모님, 그리고 빛나. 마지막으로 이 둘의 매니저들. 심지어 소속사들도 모른다.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나중에 자연스럽게 알 때까지 남겨두려고 한다.
순빈을 보내면서 그는 밖으로 나왔다. 가벼운 조깅을 하려고 말이다. 몸 컨디션도 체크를 하려고 했다. 소화를 시킨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매니저를 안심시켰다. 어제부터 약간 소화가 안 된다고 말하니 거기까지는 말리지 못하나 보다.
가볍게 뛰는 게 어느덧 전속력으로 뛰게 되었다. 수영 선수는 하체가 튼튼하고, 그 튼실한 하반신으로 뛰면 육상 선수 못지않다. 산책로를 뛰고 들어오는 그의 얼굴이 매우 밝아졌다. 고통은 없었다. 의사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약간 근육에 무리가 왔는데 그것을 신경 쓰다 보니 아프다고 생각을 했나 보다. 지금은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증명하지?”
갑자기 양치기 소년이 생각이 났다. 진짜 안 아프다고 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계획을 세웠다. 내일의 계획.
1. 일단 아프지 않다고 주장을 하면 믿어주지도 않을뿐더러 경계도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그럼 경기에 참여하지 못한다.
2. 그러니 차라리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다가 경기에 기습으로 참가한다.
어차피 레인 배정이 다 되어 있다. D조 8레인. 세계 랭킹에 거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는 그의 이름. 그래서 결국 배정을 그렇게 받았다. 아직까지 넘기 힘든 벽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넘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초청대회라는 것. 공식 기록이 별로 인정되지 않은 어쩌면 중요도 면에서 떨어지는 것인데 그가 그렇게 참여하고 싶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또 있다. 처음으로 돈을 내고 들어온 유료 관중들. 그들에게 돈이 아깝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오늘도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었다. 다만 눈앞에서 장치앙린의 우승을 속절없이 봐야 했을 때 자신의 마음도 그렇지만 관중석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안 좋을까?
마지막으로 장치앙린. 그에게 한 종목만이라도 우승을 빼앗아 오고 싶었다. 아까 열이 좀 받아서일까? 직접 보니 좀 열 받는 스타일이기는 하다.
그의 계획.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예선을 통과하면 모두들 그가 괜찮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되지 않는가? 보여주면 된다. 그의 무사함을. 날이 밝으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의 고집을 누가 말리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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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렇죠? 주인공의 성격이... 조금만 더 그렇게 가겠습니다. 그래야 되거든요. 그럼 좋은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