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140화 알고 싶은 것
순빈과 세실리아가 도착하자마자 우혁은 언성을 좀 높인다.
“어디 갔다 왔어? 전화는 왜 안 받아?”
“광고주 만나고 왔어. 아무래도 거기서 전화를 받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서. 그리고 내 전화기가 방전 되었어.”
“그래? 그럼 나중에라도 해야지. 걱정했잖아.”
딱히 대답을 요구하고 채근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세실리아의 표정이 밝지 않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두운 얼굴. 그는 순빈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가 설명을 한다.
“아, 좀 계약 건이 커서 저렇게 부담이 되는 것 같아.”
“응? 얼마인데?”
“오천.”
“오천?”
오천만원. 단순히 영상물이 아닌데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그렇게 어두운 표정을 짓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너무 부담 갖지 마, 세실리아. 잘해낼 거야.”
“응.”
오는 길에 세실리아는 순빈에게 부탁을 했다. 그녀와 미래가 만난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우혁이 당연히 싫어할 것 같아서 말을 꺼낸 것이다.
“그리고 너도 이번 대회 끝나면 광고 건이 있어. 그것 좀 이야기 하자.”
“아, 그래? 그럼 밥 먹으면서 하자. 아주머니 방금 밥 준비 하시고 가셨어.”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실리아와 다르게 우혁은 이제 영상물 광고가 익숙하다. 힘 되는 한 돈을 벌고 싶다. 그래서 나중에 그녀와 함께 크루즈 여행을 제대로 즐기고 싶었다. 한국까지 오면서 보낸 일정. 항상 숨어서 왔기에 다음에는 진짜 여행을 그녀와 함께 하겠다고 속으로 다짐했었던 것이다.
마지막 경기가 있는 날. 우혁은 자신과 인연이 깊은 1500미터를 우승으로 장식하기를 원한다. 대회 유종의 미. 그리고 자신에게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아직 멀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 도전자 중에는 지미가 있었다. 그 역시 1500미터가 주 종목이라고 한다.
신호에 따라서 출발을 한 우혁.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며 쭉쭉 나아가고 있다. 예전이라면 독보적으로 앞섰을 텐데, 요즘은 김훈과 찬규도 많이 늘었다. 훈련환경이 좋아지고 같이 훈련받는 이가 세계 수준에 이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이 가해진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마치 우물을 찾기 위해서 열심히 아무 곳이나 파는 사람과, 물이 있는 곳을 정확히 알고 파는 사람의 차이라고 해야 하나? 그들에게 목표가 주어지고 어떻게 할지를 알게 되니 성장은 부수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물론 선천적으로 그 우물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서 첫 방에 잘 파는 사람들이 있다. 지미가 그렇다. 그가 어떤 체계적인 훈련을 했는지는 몰라도 그 역시 수영에는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중반이 넘어가자 우혁에게 가장 근접한 사람이 바로 그였으니. 심지어 1000미터에서 그는 어깨까지 다가가 있었다. 단지 머리하나의 차이.
우혁은 이 부근에서 속력을 내었다. 그 역시 쫓아온다. 그 차이가 벌어지지도 좁혀지지도 않은 채 200미터를 더 갔다. 놀라운 일이다. 현재 한국에서 그와 별다른 차이 없이 이렇게 따라오는 선수는 김훈과 찬규 이외에 처음이다. 아니 그들도 이 부근에서는 체력적 한계를 맞이한다. 그래서 거리를 내주는 것이다.
남은 거리 100미터. 여전히 격차는 나지 않았다. 우혁은 다시 온 힘을 다한다. 지미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의 주 종목이 왜 1500미터인지 드러나는 순간이다. 결국 결승선에는 그 차이 그대로 끝이 났지만 사람들은 새로운 신예를 더욱 주목하고 있다.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와 별 차이 없는 준우승.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기 때문에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다.
물론 지미의 표정은 매우 좋지 않다. 그의 인생에서 주니어시기에 적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번 대회 그가 들었던 성적표는 나름 참담했나 보다. 계주 400미터 우승. 자신의 힘이 아닌 동료들과 함께 해서 얻은 결과물. 그 이외에는 개인 종목에서 우승을 한 적이 없다. 속이 상할 수도 있다.
대회가 끝났다. 전관왕에는 실패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종목에서 우승을 가져간 우혁. 그의 시대를 쉽게 점치는 뉴스와 강력한 도전자들이 넘쳐난다는 전문가의 평이 이번 대회를 최종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달콤한 밤. 우혁과 세실리아는 그 어느 때보다 서로를 탐하며 그 날을 만끽한다. 아기를 갖기를 원하는 것은 두 남녀가 뜻을 일치시켰다. 벌써 세 차례. 그녀의 몸에 욕망의 증거물을 쏟아 붓고 있다.
누가 그랬던가? 낮에는 요조숙녀, 그리고 밤에는 요녀가 되는 게 최고의 연인 또는 아내라고. 그녀가 그랬다. 가면 갈수록 그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았다. 물론 속궁합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의 정도를 몸으로 표현하니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실리아, 좋았어?”
“응. 우혁은?”
“난 너무 좋았어. 그런데 네가 좋아하는 걸 보니 더 좋아.”
그녀의 큰 가슴. 가슴성형을 하면 바르게 누워도 쳐지지를 않는다. 그래서 풍만함이라는 선물을 이 시대의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어느 한군데 칼을 대지 않은 몸이다. 탄력이 넘치는 그녀의 가슴은 절대 양 옆으로 퍼지지를 않았다. 그 가슴을 우혁이 매만지고 있다.
“우혁, 나 말고 다른 여자하고 이렇게 같이 보냈지?”
“응?”
“이것을 섹스라고 하잖아. 다른 여자랑 섹스를 했지?”
“그… 그건 세실리아도 알잖아. 그 때 그 인어.”
“그것 말고. 다른 여자.”
그는 그녀가 말하는 이가 누구를 지칭하는 지 잘 알고 있다. 미래다. 미래와 사랑을 나누었냐고 직접적으로 말을 하고 있다. 그녀의 가슴을 만지는 기분 좋음이 한순간 살짝 당황함으로 바뀌고 있다. 갑자기 묻는 질문.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격.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말하다가는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 같았다.
“괜찮아, 나 저번에 어머니한테 질투라는 단어를 배웠어. 다른 여자가 우혁 옆에 있으면 화가 나는 감정이 질투래. 하지만 지금은 내가 옆에 있잖아. 그러니 말 해도 돼.”
말할 때마다 그녀의 가슴에서 음성이 진동이 된다. 그의 손에 전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부드럽고 탄력 있는 그 떨림. 그것을 느끼며 그는 대답했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굳이 내 입으로 들어야겠어?”
“그럼 다른 걸 묻고 싶어.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어?”
“휴우, 세실리아. 그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를 모르겠어. 알리고 싶지 않아.”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 자신도 잘 모르는 감정이었다. 그게 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하기는 힘들다. 그는 미래를 사랑했었다. 그게 진실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단지 사랑의 크기가 달랐던 것 같았다.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세실리아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기에, 결국 그는 한 사람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난 알고 싶어. 그녀를 사랑했는지.”
“넌 정말 말이 늘면 늘수록 곤란한 질문만 느는구나. 점점 대답하기 힘든 것만 물어보는 것 같아.”
“그녀를 사랑했어?”
아예 우혁의 말을 새겨듣지 않는 것처럼 그녀는 계속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기에 알면 감정이 상하고, 그러면 서로에게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역시 세실리아가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누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그녀가 계속 묻자 결국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응. 사랑했어.”
“그런데 나 때문에 헤어진 거야?”
“그건 그렇게 단정적으로 대답하기가 힘들어. 사람의 인연은 말이야… 인연 알아?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것. 그 인연이라는 것은 다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 그녀와 나는 헤어질 운명이었고, 너와 나는 만날 운명이었어. 그게 다야. 그렇게 이해했으면 좋겠어.”
갑자기 세실리아가 그의 품 깊숙하게 안겨온다. 그러느라고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그녀는 그 품 안에서 그에게 또 다른 질문을 한다.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자신의 가슴에 입김이 간질이고 있다. 이놈의 물건은 또 다시 힘을 내고 있다. 자극과 반응. 그녀는 자극 덩어리고 자신의 가운데 상징은 반응 덩어리다.
“그녀와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
“그것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야. 아니, 대답하기 싫은 질문이야. 그것보다… 다시 커졌어.”
그가 이렇게 이야기 하자 세실리아의 손이 아래로 뻗쳤다. 육봉을 잡는 그녀의 부드러운 손. 그녀는 그에게 키스를 한다. 그러면서 다시 열락의 밤이 시작이 되고 있다. 도대체 이 커플은 오늘 하루 몇 번을 더 사랑을 나누고 잠에 다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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