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34화 100미터에서 못 이룬 꿈
국가대표 선발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록이 좋은 선수를 뽑는 것이다. 동아시아 오픈 챔피언쉽.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이 참가한다. 북한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불참이다. 이번만은 아니다. 사실 자주 불참한다.
아주 큰 대회는 아니다. 아시아의 모든 나라들이 참가하는 것이 아니니. 하지만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한중일 세 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수영 강국이다. 하지만 한국은 박태원을 제외하면 끝이다. 그 누구도 중국 및 일본 선수와 겨루어 이긴다는 장담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출전권만 보면 알 수 있다. 각 종목에서 크고 작은 인원수 변동은 있겠지만, 기록이 좋은 1위부터 24위까지의 출전이 이번 대회 참가 조건이다. 그 중에 각 나라에서 두 명씩 선발을 임의로 출전권을 보장해주고 있다. 즉, 24위 안에 들어가지 못해도 2명씩은 더 넣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얼마 전에 우혁과 일수에게 제안했던 것. 참으로 덜떨어진 계획이다. 유망주들 둘을 포함시키는 게 낫지, 기록으로 보면 그들은 상급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자칫 그들을 포함시켰다가 24위 안에 몇 이나 들어갈지 알 수가 없다.
또한 국가대표 선발전의 특징은 전 연령이 함께 경쟁한다는 것이다. 기존 대회에서는 초등, 중등 그리고 대학과 일반부로 경쟁했는데, 당해 연도 기록이 좋은 순서대로 32명을 뽑고 예선을 치른 뒤에 8명이 결선을 한다. 지난 KBC배 기록을 보았을 때 상당수가 고등부와 대학부에서 강자가 있었다. 일반부는 한 명. 바로 우혁이다. 그 이외에는 그렇게 까지 비중이 없다. 이제 지는 해라고도 표현을 한다. 가장 전성기가 고등학교와 대학교이니 당연한 결과다.
사실 우혁이도 나이만 보면 그 나이 대이다. 정규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니 실업팀에 속한 것이고, 그의 실업팀은 현재 S 생명이다. S 그룹에서 그의 후원금을 지급하며 자회사가 그를 지원한다. 다른 선수는 없고 달랑 그 혼자다. 우리나라 수영의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얼마 전까지는 박태원이 이곳에 소속되었는데, 이제는 바통 체인지다. 1인 팀. 그래서 안타까운 사실.
삐익-
귀를 울리는 소리. 완벽한 폼으로 뛰어드는 우혁. 그는 이번에 50미터를 참가하지 못한다.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100미터 경기. 그의 공식 기록 순위는 49초 43으로 8위. 그나마 지난 KBC배 기록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앞 선 조에서는 이미 일수가 또 자신의 자체 기록을 단축시키며 49초 01까지 올려놓았다. 그 이외에도 우혁의 이전 기록보다 훨씬 더 앞선 선수들이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국가대표 상비군에서 같이 훈련을 하는 이들. 다 구슬 땀방울을 흘렸기에 후회하지 않을 레이스를 펼쳤을 것이다.
우혁도 마찬가지다. 강한 승부욕이 그를 지배하니 그 누구에게도 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예선 탈락은 더욱더 원하지 않을 터이니 지금 돌아가는 그의 팔 회전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 마지막 턴을 찍는 순간 기록을 돌아본다. 49초 10. 자신의 최고 기록을 현저하게 앞당겼다. 그의 앞에 있는 선수들이 일수를 제외하고 단 한 명이다.
그는 다시 손을 들었다. 요즘 그는 일부러라도 이렇게 한다. 시크한 모습이 아닌 나름 팬 서비스 차원인가? 그럴 수도 있다. 인기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나을 테니. 그렇다고 해도 이런 변화는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 대한 보답이다. 매니저가 시킨 일이기도 하다. 다 계획이 있다고 하면서…
“오빠가… 오빠가 손을 흔들었어. 어머, 어머. 왜 이렇게 멋지니?”
“아, 나 오늘 밤 잠 못 잘 것 같아.”
소녀 팬들.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를 쫓아다니는 구름 관중의 대부분은 바로 그들이다. 수영 연맹은 현재 관람료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관람 수입을 올리면 수영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수고했다.”
“네, 코치님도요.”
이제는 영욱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었나 보다. 자신에게 말을 거는 그에게 이렇게 답변을 한다. 벌써 4개월. 그와 함께 훈련을 한 시간이다. 앞으로도 그와 계속 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우혁. 자신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는 그의 지시에 따르면 기록이 좋아진다는 것을 느낀다.
“몇 위 안에 들어야 하죠?”
“몇 위가 중요한 게 아니야. 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기록을 단축시키는 게 중요해. 한국은 우물 안이다. 동아시아에서는 강자들이 많으니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상위 24위 안에 들어야 해.”
중국의 수영인구 50만 명. 그리고 일본의 수영인구 15만 명. 대한민국은 고작 4천명이다. 이것만 놓고 보면 그래도 한국이 대단한 나라이기는 하다. 항상 적은 인구에서도 여러 운동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니 말이다. 인구대비 상위권으로 보면 1위를 차지할지도…
“그럼 몇 초 안에 들어야 해요?”
“그건 네 숙제다. 내가 충고 하나 하마. 이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연습을 해라. 올림픽 금메달? 너무 멀다. 지금 네가 당장 극복해야 할 것은 동아시아에서 24위 안에 드는 것이다. 알겠니?”
그는 영욱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코치란 존재는 바로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단지 훈련을 하고 기록을 단축시키기 위해서 격려나 질책만 하는 게 아니라 크고 작은 목표를 세워주는 임무. 그리고 적절하게 설득을 하는 역할. 그게 바로 지금 그의 옆에서 그를 보고 있는 사람의 할 일이다. 그리고 성공했다. 우혁은 머릿속에 확실한 목표를 세워 놓고 있으니.
“여기 있어. 기록…”
이 때 옆에서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매니저, 권순빈. 그는 웃으며 선수대기실까지 그를 따라오고 있다. 그리고 눈치 빠르게 영욱이 이야기 한 것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보여준다. 46초 90. 아시아의 물개라는 장치안링. 그가 최근에 세운 것이다. 그 다음으로 촘촘한 기록. 놀랍게도 아직 박태원의 기록이 남아 있다. 47초 93. 아시아 7위의 기록. 그런데…
“한국 선수가 24위 안에 드는 사람이 없네요.”
“그래서 숙제라고 한 것이다. 솔직히 창피하기도 했고.”
그랬다. 24위가 일본의 니시키도 료. 그의 기록도 48초 99였다. 오늘 많이 근접한 기록을 세운 일수도 그에게 뒤쳐진다. 결선이 남았다 한들,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안 하겠는가?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기록들. 어느 정도 안정권이 되려면 48초 이내가 되어야 할 듯.
우혁의 눈빛에 불꽃이 새겨졌다. 다시 승부욕이 동하는가? 갑작스럽게 드는 한국인이라는 소속감. 아직 국제 대회에 참가하지도 않았는데 열망이 생긴다. 국위선양. 수많은 국가대표의 머리에 있는 것이다. 누구라도 태극기를 달면 벅차오르는 가슴을 진정할 수 없다. 특히 해외에 나가면 더욱 그렇다고 한다.
“더구나 100미터는 우리나라의 불모지다. 난 솔직히 네가 중장거리로 세계를 정복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태원이도 오르지 못한 100미터 시상식. 네가 이루어 주었으면 좋겠다. 이게 욕심일까?”
“아뇨? 욕심 부려 주세요. 그리고 계속 부담을 주세요. 제가 100미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를 때까지.”
물론 박태원이 100미터 우승을 곧 잘 했다. 아시아에서는 다수의 금메달도 챙겼고, 세계 대회에서도 가끔 단거리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우승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최고의 강자가 모였을 때 우승한 적은 없었다. 그도 이 부분을 아쉬워했다.
누구나 이루지 못한 것에 한을 품게 되면 자신의 후계자가 그것을 이루기를 바란다. 영욱의 꿈은 태원이가 이루었고, 다시 태원이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한국인 수영 선수가 나오기를 바라는 염원. 그것은 모든 수영인의 꿈일 수도 있다.
오후에 벌어진 100미터 결승. 그 꿈의 시작에서 우혁이 섰다. 기록에 따라 3레인. 옆에는 일수가 있다. 4레인과 5레인이 기록의 1, 2위자이니 그가 이 대회에서 세 번째의 기록을 세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시 몸을 구부린다. 크라우칭 스타트. 미래에게 배울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개월이 흘렀다.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강자가 되었다. 한국 내에서는.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는 싫다. 이제는 더욱 구체적으로 목표가 서버리고 말았다. 영욱에 의해서… 태원에 의해서…
힘차게 입수하는 그의 손. 출발이 좋다. 옆에서 일수와 나란히 한다. 거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저 너머는 모르겠다. 관중석에서야 잘 보인다. 3레인과 4레인의 각축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50미터의 턴을 찍고 올 때까지 누가 1위인지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예선 기록보다 상향 조정이 될 것이라는 것. 연습과 실전은 다르다. 집중력. 승부욕. 이것이 실전에 더 발휘되는 사람이 있는가 보다. 아니, 그런 사람이 우승하는 것이다. 일수와 우혁. 이 둘이 그런 유형이다.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결국 마지막을 찍었을 때 0.01초의 차이.
… 우승자는 일수다.
“형, 미안해.”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 별로 듣고 싶은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혁은 미소를 지었다.
“축하한다, 일수야.”
인간의 성숙. 계기라는 것이 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우혁에게 계기는 바로 이 순간이 아닐까? 최선을 다한 승부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 그에게 국가대표 선발전은 이런 의미로 남았다.
그 날 일수는 자신의 최고 기록을 또 한 번 경신했다. 100미터 48초 53. 국내에서 박태원 이후 최고 좋은 기록이다. 물론 또 한 명도 그에 못지않은 기록을 세웠다.
4개월. 그가 수영을 배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온 개월 수다. 그의 이름은…
최우혁이다.
============================ 작품 후기 ============================
인간다움이라는 것. 그리고 사회화. 저 앞에서 우혁의 성격이 이상하며 정신 병원까지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하지만 그의 과거를 놓고 보았을 때 제대로 거친 사회화가 아니라고 생각을 해보시면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 과정이 사람과 부대끼며서 제대로 사회화 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도 그리고 싶었습니다. 주인공이 변해 가는 과정. 그러나 한꺼번에 일시에 그게 가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천천히 변하는 과정으로 봐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