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79화 아픔을 참고
3레인. 우혁이 배정받은 레인이다. 4레인은 장치앙린. 5레인은 샤오 헤이씽. 세계 1위와 2위가 빠진 상태라서 중국선수들과 경쟁을 하는 구도가 되었다. 그들 중국 선수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그 모양도 자극적이다. 입 꼬리의 가득 비웃음을 담으며 우혁을 바라보고 하는 이야기. 뻔하다. 자기네들 둘이 1위와 2위를 나누어 가질 것이고 애송이 운운하며 그를 한껏 도마 위에 올려놓는 이야기일 것이다.
‘오늘 이후 중국어를 배운다.’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이번에는 언어 욕심이다. 단지 자신을 향해 뭐라고 말을 하는지가 궁금해서. 그래서 배운단다. 승부욕치고 좀 쪼잔하다. 어쨌든 그만큼 상대를 의식한다. 경기를 앞두고 벌써 마인드 컨트롤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스타트대에 섰다. 관중도 숨을 죽이고 있다. 이번 대회 한국이 우승을 한 횟수는 두 번. 모두 다 가희의 것이다. 그래서 그녀도 스타덤에 올랐다. 아마 대회가 끝나면 엄청 인기가 치솟으리라.
그 뿐만이 아니다. 국민들의 수영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이성팬이 생기고 그들을 응원하러 경기장을 찾는다. 벌써 암표 이야기가 나오니 수영장 개관으로 인해 흥행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빛나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비록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거둔 성적은 우승권에 가깝다. 그리고 예쁜 미모. 약간 도도하기는 하지만 4차원인 가희와 또 다른 매력을 풍기는 여자 수영 선수. 한국의 전성기를 이끌어가는 선수들이 계속 등장하니 P&A 그룹이 팀을 창단한다는 이야기가 루머로 떠돌 정도다.
삐익. 스타트. 단거리에 비해 장거리에서 꽤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지고 싶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벌써부터 이러니 큰일이다. 치고 올라가는 것은 샤오다. 지난번에 초반부터 우혁에게 졌다가 나중에 거의 그를 위협했었다. 결국 우승을 내주기는 했지만 그는 중국에 떠오르는 강자다. 오늘은 초반부터 힘을 낸다. 오버페이스일지 아닐지는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혁은? 장치앙린의 속도에 보조를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아마 후반에 승부가 갈릴 것이다. 이 경기를 보는 그 누구라도 그렇게 예상을 하고 있다.
“제발, 제발…”
빛나가 손을 모으고 기도한다. 기도하는 대상은 모든 신이다. 예수님과 부처님, 그리고 조상신까지. 누구든 상관이 없다. 무사히 경기를 끝마쳐 달라고 손을 모으고 있는 그녀.
“오라버니! 달려! 달려!”
반면 멋도 모르고 4차원 소녀가 외친다. 달리기는 뭘 달리는가? 육상 경기도 아니고. 어쨌든 응원을 하기는 하는 건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100미터 턴을 할 때 그는 3위였다. 깊은 잠수. 그의 특징이다. 거의 15미터를 다 쓴다. 턴 이후 수면 위에 얼굴을 내밀 때에는 결국 2위에 등극했다. 하지만 나머지 35미터에서 다시 장치앙린에게 그 자리를 내 주었다.
1위는 여전히 샤오다. 물결을 헤치며 가는 그의 진보. 자신의 팀 선배인 장치앙린도 잡아먹을 기세다. 차이도 점점 벌어지고 있다. 신흥강자. 신문은 아시아에 세 명의 잠룡 중 하나를 그로 지목했다.
나머지 둘 중 하나는 일본의 사토 료이치. 18세의 어린 나이에 벌써 팀 선배인 쇼타 스카이를 장거리에서 제치고 있다고 한다. 이번 대회는 불참했다. 마지막이 바로 우혁이다. 1500미터의 강자. 장거리에서 더 특출난 실력을 발휘한다고 기사는 분석하고 있다.
이 잠룡들은 기존의 질서를 깨트리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삼국지. 한, 중, 일 삼국은 끊임없는 경쟁을 한다. 경제도 그렇지만 이런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서로를 이기고 발목을 잡기도 하면서. 이들 잠룡의 전 세대에는 박태원, 쇼타 스카이, 장치앙린이었다. 그 중 저변이 가장 없는 한국의 강자가 은퇴하자 수영계를 양분한 중국과 일본의 슈퍼스타. 그 자리를 치고 들어가기 위해서 드디어 우혁이 이번 대회를 끝끝내 마지막 날 참여를 하게 된 것이다.
‘이길 수 있다. 할 수 있어!’
우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까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장치앙린. 일단 중반부에 접어들었는데 조금도 뒤처지지 않았다. 한번 턴을 할 때마다 오히려 그가 조금 더 앞서고 있다. 상대는 나머지 35미터에서 그를 따라잡는 형국이다.
그러면서 800미터 지점까지 경쟁이 지속되었다. 선두는 여전히 샤오 헤이씽이지만 힘이 좀 떨어진 모양새다. 턴을 할수록 격차가 줄어들고 있으니. 확실히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했다. 우혁이 지난번에 했던 상황. 그 때 막판 역전을 당할 뻔했지 않았던가?
1000미터 지점. 드디어 우혁은 선두에 나선다. 그리고 50미터를 더 나아간 뒤 샤오 헤이씽은 3위로 쳐졌다. 어쩌면 더 쳐질 수도 있다. 현저하게 떨어진 속도는 4위권 선수에게도 따라 잡힐 것 같았다.
이제 선두권 두 명의 싸움이다. 우혁과 장치앙린. 관중석의 관중들은 손에 땀이 나고 있다. 아마 이 대회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방학을 맞이해서 많은 청소년들이 관람하게 된 상황. 그리고 시청하게 된 상황. 방송국은 이례적으로 수영방송을 배정하고 있다. 높은 시청률이다. 확실히 수영붐이 일어나기는 하나보다.
그들 모두가 지금 우혁을 응원하고 있다. 물론 그 중에는 의사도 있다. 눈을 비빈다. 자신이 보고 있는 그 사람이 어제 아침까지 병원에 있던 그 선수인지.
“저런 미친…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거야?”
그는 우혁의 승부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경기에 뛰고 싶어 하더니 진짜로 참가할 줄은 몰랐나 보다. 어쩐지 그의 감독이 오늘 전화로 그의 상태를 물어보더라니.
1200미터를 돌 때도 여전히 접전이었다. 턴을 하면 분명히 우혁이 우세하다. 물밑의 강자인가? 가장 저항을 받지 않을 때가 잠영을 할 때인데 무슨 수라도 쓰는지 이상하게 그를 이길 수 없었다. 장치앙린의 입장에서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냐?’
장치앙린은 속으로 생각했다. 자신도 잠영이라면 뒤지지 않는다. 긴 사지를 이용해서 물속에서 뻗어나가면 다른 선수들을 다 제쳤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보다 더 체격조건이 좋지 않은 우혁이 어떻게 자신을 이길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는 노련하다. 비록 이렇게 된 상황이라도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마지막 100미터. 승부의 지점은 그곳으로 보았다. 우혁이 1300미터 지점에서 갑자기 속력을 내기 전까지 그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깜짝 놀랐다.
‘200미터다. 200미터가 남았는데 벌써 막판 스퍼트냐?’
그의 속도를 맞추어야 했다. 조금 있다가 우혁이 지친다는 것에 모든 것을 걸고 싶었지만 모르는 일이다. 지금 같이 경기를 뛰면서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계속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처음에 이 대회에 참여하기 전 1500미터에서 자신의 후배가 졌다며 같이 복수하자고 말을 했었다. 샤오 헤이팅은 중국내에서 자신을 급속도로 따라잡고 있는 라이벌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를 제치고 지난 동아시아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니 호기심이 일었다.
제 2의 박태원. 그동안 한국 수영계에서 이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자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 때마다 그는 무참히 그들을 깨줬다. 오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어제까지 그를 자극하고 경기장 내에 끌어들인 것까지 성공했다. 그에게 줄 패배감. 오늘은 그게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더구나 한국 관중들이 꽉 들어찬 경기장에서.
그런데 지금 놀라운 일이 벌어지려고 한다. 150미터가 남은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추격을 용납하지 않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최선을 다한 속력으로도 그를 따라잡기가 힘들다. 숨은 이미 턱까지 차 오른 지 오래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그를 이기기 힘들다.
“커헉…”
그 순간 우혁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햄스트링 쪽인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리를 냈지만 아무도 들을 수가 없다. 물이 입속으로 들어왔다. 물속호흡이라 걱정은 없지만 문제는 다리 쪽이다. 이제 남은 것은 100미터. 뒤에서는 장치앙린이 추격하고 있다. 그 결정적 순간에 그는 아픔을 참고 힘을 내고 있다.
‘이긴다. 이기고 만다.’
============================ 작품 후기 ============================
믿어주시는 분들께는 감사를, 그리고 가시는 분께는 안타까움이 가득 있네요. 조아라에 있는 좋은 작품 만나서 좋은 시간 즐기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