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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138화 우연한 만남

일수의 100미터 우승으로 전관왕이라는 목표는 깨졌다. 그렇다고 이왕 깨진 김에 나머지 종목들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당연히 안 될 말이다. 특히나 조금 후에 펼쳐질 400미터 계영. 아까 부담을 덜어주는 말을 하긴 했지만 욕심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는 모든 종목에서 우승을 하고 싶은 욕망이 살아 숨 쉬는 인간이다. 예전보다 그것을 표출하는데 좀 더 이성적으로 조절을 잘하는 것일 뿐.

“우혁, 졌어요.”

“그러게, 전관왕을 하고 싶어 했는데. 그런데 예전보다 실력들이 모두 상승해서 이제는 누가 독주하기가 힘들어.”

“독주?”

“아, 혼자 제일 잘한다는 말이야. 다른 사람들은 감히 덤비지 못하고.”

가끔 세실리아에게 이렇게 모르는 단어가 나온다. 그럴 때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 순빈. 그 때 또 그녀의 표정이 전광판에 잡혔다. 아마도 우혁이 우승을 빼앗겼을 때 그녀의 얼굴을 일부러 비춰주기 위해서 카메라가 움직였을 것이다.

그녀는 아직 카메라에 익숙하지 못하다. 우혁의 얼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자신의 얼굴이 나오는 전광판에는 눈도 주지 않고 있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 표정은 그녀의 사랑하는 이의 것과도 같았다. 일수를 축하해주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기 때문이다. 멀리서도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있으니 그녀의 마음에 다시 행복이 가득 찼다. 그의 기쁨은 그녀의 기쁨이기에.

거기다가 팔을 흔드는 그의 손짓에 그녀 역시 팔을 흔든다. 우아한 여신의 자태. 사람들은 전광판과 그녀를 번갈아 보며 입을 벌린다. 개중에 여자 친구와 같이 온 남자는 그의 여자 친구에게 단단히 핀잔을 듣기도 한다.

“뭐야? 단단히 빠졌어, 빠졌네.”

“아니, 그게 아니라… 전광판에 자주 나오잖아.”

“웃기지마, 전광판도 보고 아까부터 힐끗 보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이거 왜이래? 너도 최우혁이 나오면 똑같잖아. 왜 나한테만 이래?”

“됐어!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뭐야?”

드디어 연인간의 갈등까지 제공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사정은 전혀 알 수 없는 세실리아다. 갑자기 순빈의 전화기가 울린다. 승헌이다. 새로운 광고에 관련된 내용으로 그에게 전화를 했다.

“세실리아, 잠시만. 나 나가서 전화 받고 올게.”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세실리아. 순빈이 일어나서 그녀의 옆자리가 비었지만 아무도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여신은 여신으로서 그냥 동경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옆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훼손할까봐 사실 그녀의 왼쪽 말고 오른쪽도 아까부터 비어 있었다.

“세실리아, 안타깝지만 가봐야 할 것 같아.”

“어디를요?”

“광고주에게 전화 왔는데 좀 큰 건이야.”

승헌에게 전화를 받고 온 순빈이가 그녀에게 말을 했다. 조금 있다가 펼쳐질 우혁의 계주. 그것을 포기할 만큼 큰 계약인가 보다. 그녀는 아쉬웠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경우가 드물기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기는 내일도 있다. 끝까지 남아서 그를 응원해주고 싶지만 오늘 일을 하지 않으면 내일 빠져야 할지도 모른다. 대회 마지막 날은 그에게 끝까지 응원을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일어나는 그녀.

“야, 네 여자 친구 나간다.”

“응?”

한편, 찬규는 우혁에게 세실리아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켰다. 카메라는 그녀의 뒤를 쫓고 있었다. 당연히 실시간으로 그녀의 행적을 다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이다.

“무슨 바쁜 일 있나보지 뭐.”

대수롭지 않게 받는 우혁. 그녀의 스케줄이 잡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광고모델로서 그녀는 매우 잘나가는 편이다. 영상물이 아니더라도 수입도 나쁘지 않다. 그는 어쩌면 나중에 그가 그녀에게 신세를 질 것 같은 예측도 했다. 돈 벌어오는 아내를 둔 남편. 거기까지 생각하자 그는 피식 웃었다.

“뭐야? 뭔 생각을 하기에 웃어?”

옆에서 그의 웃음을 보고 궁금해 하는 찬규. 그런 그의 질문에 대답은 없었다. 이제 오늘의 마무리만을 위해서 전의를 다질 뿐.

곧 이어 400미터 계주가 시작되자 그래서 더욱 말이 없어진 우혁이다. 부담을 갖지 말라고 말은 다 해놓고 저렇게 있으니 사실 팀원으로서는 부담이 약간 되는지 그의 눈치들을 보고 있다.

“걱정 마. 최선을 다하면 되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

“야, 그 말이 더 무섭다니까. 어쨌든 일수야. 될 수 있으면 차이 좀 벌려 놓아줘. 그래야 좀 내가 수월해지니.”

2번 주자인 김훈이 일수에게 부탁조로 말을 한다. 아무래도 부담이 안 갈 수가 없다. 3번 주자인 찬규도 마찬가지다. 부담감이 더한다.

출발신호. 용수철처럼 튀어나가는 선수들. 저마다 목표한 바는 다르다. 두 팀만 빼고. 바로 S 생명과 P&A 액티브 팀. 우승이라는 공통된 목적이 그들의 뇌리를 지배하고 있다. 아울러 일수는 차이를 벌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물살을 가르고 있다. 따라서 이 두 팀이 선두권을 형성했다.

오늘 일수의 컨디션은 좋다. 특히나 100미터 우승으로 사기도 올라와 있다. 그의 현재 100미터 경쟁력은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하는 선수가 비슷한 컨디션이 아니라면 맞서기 힘들다. 아무리 지미가 요즘 떠오르는 신예라지만 그의 기세를 꺾기는 힘이 들었다. 격차를 벌리고 다음 주자에게 차례를 넘겼고, 승부는 두 번째 주자에게로 넘어갔다.

김훈과 찬규를 거쳐서 다시 우혁으로 오는 스토리. 아까와 비슷했다. 다만 200미터와 100미터의 차이는 극복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400미터 계주를 내주는 S 생명 팀. 모두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흘렀다.

“표정들이 왜 이래? 옛날 내 표정들이네. 모두들 잘 했어. 웃어.”

오히려 우혁이 그들을 격려하고 있다. 어찌 보면 거꾸로 된 것 같았다. 예전에 이런 상황이 되면 그가 씩씩 거렸었는데.

“미안하다, 나 때문에 졌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단거리와 장거리는 엄연히 달라. 너희가 단거리 계영을 많이 연습하지 못했는데 어쩔 수 없잖아. 어때? 이번 기회에 나와 함께 전관왕을 위한 연습을 하는 게. 하하하.”

웃음. 때로는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것. 그가 웃으니 비록 우승을 놓쳤더라도 동료들은 마음이 가볍게 된다. 웃는다는 것은 이렇게 사람에게 접근하기 쉽도록 만들어주는데 그는 그동안 왜 그것을 잊고 살았던가?

그 웃음을 자연스럽게 짓는 사람은 그만큼 많은 이들을 편하게 해줄 수 있다. 우혁이 아닌 세실리아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녀가 짓는 웃음은 가볍지는 않다. 아무나 함부로 그녀에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종류가 아니기에.

여자를 밝히는 사람이라면 그게 자신에게 틈을 주는 것은 아닌지 고민을 할 수도 있다. 지금 앞에 앉아 있는 종섭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오늘 두 미녀를 만난다. 광고 때문이다. 그래서 설레었는데, 드디어 첫 번째 여자가 나왔고 그녀는 여신과 같은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더군다나 자신을 향해서 웃음까지 날리고 있다.

“요즘은 매체에 따라서 충분히 영상 자료를 찍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뵙자고 한 겁니다.”

“그러시군요.”

단 하나의 불만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중간에 훼방을 놓는 순빈이 때문에 좀 불쾌했다. 그녀에게 물어본 말을 다 가로채고 있다.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보니까 그녀가 자신의 매니저에게 전적으로 일을 맡긴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포털 광고를 나갈 예정인데 그 모델로 적합하다고 판단이 되었습니다.”

“또 한 명이 있다고 하는데…”

“맞습니다. 조금 있으면…”

그가 말을 꺼내 놓으려는 찰나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는 한국의 소프트웨어 대표그룹의 상무다. 아직 30대로 보이는 젊은 나이에 이룬 것이니 틀림없이 그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리라. 어쨌든 그의 개인 사무실을 노크하는 사람. 잠시 후 한 여자가 매니저를 대동하고 들어왔다.

순빈과 그녀의 매니저는 서로 놀랐다. 서로를 알아본 것이다. 당연히 미래도 놀랐다. 그리고 세실리아 역시.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다. 깜짝 놀라서 인사까지 잊은 이 두 여자. 인연은 이렇게 서로를 만나게도 한다.

============================ 작품 후기 ============================

아, 연중이나 그런 계획은 없습니다. 아마 하루에 2-3연참을 하는 것. 그 정도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작품은 1일 1회 정도. 이렇게 하면 좀 손의 피로가 줄어들 것 같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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