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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100화 외출

감정의 확인. 그 날은 그 의미가 있었던 날이다. 서로의 마음이 교류하여 드디어 사랑을 확인했으니 이들의 앞에 순풍 돋는 일이 펼쳐져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어림없다. 넘어야 할 산들이 적지 않으니 말이다.

다음날 일찍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우혁은 그녀를 동반에서 밖으로 나간다. 아침 운동을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세실리아와 같이 나온 것은 이제 세상을 보여줄 준비를 마음속으로 마쳤다는 것이다. 천천히 알아가게 하는 것. 그게 그의 목표였다.

“어때? 세실리아?”

“응?”

“덥지 않아?”

“더워.”

덥다는 말. 아마 그녀가 많이 했던 말 중에 하나였던 것 같았다. 옷을 걸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초반에는 영 입으려고 들지 않았었다. 그것은 그녀가 평소에도 아무 것도 입지 않았던 알몸이었기에 입으면 더위를 느껴버렸기 때문이다.

“들어갈까?”

“아니…”

그래서 우혁은 그녀에게 집에 들어갈 것을 제안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은 너무 답답했다. 옷을 걸치고 있는 것은 몸이 불편한 것이지만 자유가 구속된다는 것은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남과 여의 모습. 눈길을 주지 않는 사람이 없다. 대체적으로 아주머니와 아저씨들, 또는 나이 드신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그렇게 그들을 빤히 쳐다본다.

“사람들이 쳐다보니까 불편하지 않아?”

“괜찮아.”

괜찮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의식이 안 될 수가 없다. 인간들이 자신을 본다. 인어로서 그동안 숨기고 살았던 삶이었다.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도 이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우혁의 곁에 있으려면 그녀 자신도 인간처럼 되어야 한다. 이 안에 섞여야 하는 것은 그녀만의 노력이 필요하다.

“어느 나라 사람이야?”

오지랖 넓은 것은 우리나라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특징. 나쁜 것은 아니다. 서로에 대한 관심이니. 하지만 예전에 우혁은 불편하다고 생각을 했다. 이런 모든 관심이. 지금은 아니다. 생각을 바꿔 먹었다. 좋은 관심은 좋게 받아들이는 게 낫다. 그래야 자신의 편이 생긴다. 넓게 보면 세실리아의 편이다.

“독일이에요.”

“아이고, 이뻐라.”

벤치에 앉아 지팡이를 잡고 있는 할머니가 그에게 말을 했다. 오랜 세월을 겪은 경험과 지혜가 그녀의 눈 안에 담겨 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이렇게 해야 해.”

“감사합니다. 할머니.”

할머니는 웃는다. 한국말을 배우는 듯한 그 모습이 더 예뻐 보였나 보다. 갑자기 주섬주섬 옷에서 무엇을 꺼낸다. 사탕이다. 그녀에게 내밀고 있다. 세실리아는 우혁을 쳐다본다. 받아도 될지에 대해서 허락을 구하는 것이다.

“받아, ‘고맙습니다.’ 말하고…”

“고맙습니다.”

“홀홀홀, 외국 아가씨가 한국말도 잘하고 젊은이는 좋겠어.”

첫 발걸음. 좋은 인상. 사람에 대한 이런 부분이 모여서 그녀가 이 세상에 자립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데리고 나온 것인데 자신의 이 행동을 잘했다고 평가하고 있는 우혁이다.

“어디 나갔다 왔어?”

“네, 잠시 산책 갔다가 왔어요. 오늘은 오후 훈련이거든요.”

“그래? 밥 차려 놓았으니 밥 먹어. 그런데 세실리아는 너무 안 먹는다. 몸매 관리도 좋지만 좀 많이 좀 먹어. 맨날 채소만 먹으면 어떡혀? 소가 친구하자고 하겄네. 호호호.”

“소가 친구?”

“아녀, 아녀. 에고 외국인이랑 대화하니까 말이여, 내가 요즘 선생이 된 것 같아. 우리 말 많이 가르쳐 놓았어.”

그녀는 둘을 보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그의 주변 사람. 그래도 그가 예전에는 너무나 날카로웠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좋은 사람들만 남았다. 성격 좋은 사람들이 아니면 다 떨어져 나갔으니 말이다. 이게 세실리아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아무래도 잘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야 그녀가 잘 적응할 테니 말이다.

오후에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우혁. 그녀는 여전히 집에서 TV를 보고 있다. 가엾은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는 고민했다. 집 밖으로 나가서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던 그녀의 답답함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

“세실리아, 나갈까?”

“정말?”

“그럼, 나가자. 잠시만…”

그는 순빈이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은 맘먹고 나가고 싶었다. 사람들과 기자들의 시선. 오늘 하루만큼은 잊고 싶었다. 아니 당당하고 싶었다. 그래서 방금 출발했을 것 같은 자신의 매니저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형, 다시 와 줄 수 있어?”

- 응? 그래.

이유도 묻지 않고 돌아오는 순빈. 그의 주변에 또 한 명 있는 좋은 사람이다. 그가 도착했을 때 나갈 준비를 이미 다 마친 우혁과 세실리아.

“옷 좀 사야겠어.”

“뭐야? 나가려고?”

“응. 세실리아랑 이렇게 나갈 때 입을 옷이 없어. 너무 대충 옷을 샀었나봐. 쇼핑을 제대로 해야겠어. 그래서 그녀에게 맞는 옷을 사주고 싶어.”

“우혁아… 좀 참지. 오늘 나가면 사람들이 다 너만 볼 거야. 어제 양세희가 인터뷰에서 네 발언을 하는 바람에 너 검색어 순위 또 올랐어. 그 상황에서 세실리아 데리고 나가면 어떻게 되겠어?”

그건 그랬다. 양세희의 이상형 발언. 그로 인해 그의 주가가 또 한 번 올랐다. 어떤 기사는 많은 여배우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타이틀로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뜨겁게 하기도 했다. 아침에 한산한 산책로를 가는 것과 사람들이 붐비는 곳을 같이 다니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그럼 난 차에서 기다릴게. 세실리아 데리고 옷 좀 형이 골라줘. 그럼 안 될까?”

“그건 상관없지. 알았어. 하여간 세실리아가 대단하네. 네가 내 말을 듣고 있다니…”

순빈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고집 센 우혁이 세실리아를 언급하면 가끔 이렇게 말을 잘 듣는다. 사람이 변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역린이 있는 것인가? 그가 가지고 있는 역린은 아마도 이 인어 아가씨인 것 같았다.

그렇게 나선 이들. 그리고 방문한 곳은 가장 가까운 L백화점. 이곳이 술렁이고 있다. 어디서 왔는지 여신 급 미모의 한 여자가 매니저인 듯한 사람과 동반을 한 것이다. 모두들 가지고 있는 개인 휴대 장치는 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 보고 핸드폰… 저거 뭐 하는 거예요?”

“찍는다는 거예요.”

“찍어? 그게 뭐예요?”

“사진을 찍는 거예요. 이것 봐요.”

찰칵. 순빈이가 그녀가 질문한 것에 대답할 가장 확실한 방법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핸드폰으로 그녀를 찍었고 그것을 보여주니 그녀가 놀라고 있다. 대충 인간 세계에 살아서 문명의 이기를 빠르게 습득하고 있다. 그래서 핸드폰이 사람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도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장면을 찍어서 담아내는 장치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그런데 왜 날 찍어요?”

“예뻐서 그렇겠죠. 어쨌든 너무 관심 끄는 것은 불편하니까 빨리 옷을 사러 갑시다.”

그는 이 관심이 좀 불편했다. 우혁에게 듣기로 그 역시 예전에 인천공항에 처음 발을 디딘 날에 사람들이 너무 큰 관심을 보여서 대인 공포증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혹시나 세실리아가 그럴까봐 그는 우려스러웠던 것이다.

옷 가게에 온 세실리아. 인어가 옷을 입는다는 것은 불편했지만 일단 한 번 입기 시작하니 그녀도 여자인지라 예쁜 것을 찾게 된다. 물론 미의 기준은 다르다. 그녀가 좋아하는 종류와 현대 인간들이 좋아하는 것은 취향이 같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순빈은 점원에게 물어보았다.

“어떤 게 어울릴까요?”

“글쎄요…”

여직원이 상당히 곤란해 한다. 보아하니 어디서 나타난 외국 배우인 것 같았다. 아니면 모델이거나. 이런 여자에게 대충 골라줄 수 없어 진땀을 흘리는 것이다. 정작 순빈과 세실리아는 그녀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

“이… 이것 입어보시겠어요?”

“이거요? 헉? 가격이? 오백만원이 넘잖아요.”

순빈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직원은 일단 최고급 옷을 그녀에게 추천을 했다. 보라색 원피스였다. 옷은 아름답다. 그것을 입는 여자를 충분히 고급스럽게 만들어줄 수 있을 정도로. 일단 그는 세실리아에게 입어보라고 했다. 옷을 갈아입는 곳과 방법을 충분히 설명하면서.

“하… 한국말을 잘 알아들으시나 봐요.”

“아, 네. 좀 오래 한국에 있었어요.”

“그럼 제가 안내할게요. 그 옷은 막 입으면 안 되는 거라서 제가 입는 것 도와드릴게요. 따라 오세요.”

역시 비싼 옷은 제 값을 한다. 물론 이보다 더 비싼 옷은 수도 없이 많은데 순빈의 생각은 일단 이렇다. 여직원의 친절함이 이를 증명한다고. 당연히 그렇지 않다. 여배우에게 옷을 파는 매장이 되면 더 인기가 있는 곳으로 유명세를 탄다. 그래서 친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처음 보는 세실리아의 얼굴이지만 그녀의 얼굴에서 분명히 느껴지는 품위와 아름다움은 그녀를 그렇게 착각하게 만들었다.

“허억.”

순빈은 또 한 번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항상 세실리아를 보면 놀라기만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다. 이미 매장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녀가 보라색 원피스를 입자 여기저기서 찰칵 소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여직원은 매장 주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금 자리를 비웠지만 나중에 오면 엄청 만족해 할 것이다. 만약 이 옷을 세실리아가 사간다면 말이다. 그녀는 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사장님, 여기 엄청 유명한 여배우가 오셨는데요…”

엄청 유명한지는 모르지만 세실리아가 아름다운 것은 맞으니 그렇게 둘러대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나보다. 그녀는 드디어 허락을 받아 내었다. 매장 주인이 멀리 있어서 이곳에 도착하게 되면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그럼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될 수 있다. 경쟁 매장에게 이기려면 빨리 행동하는 게 나을 수가 있다.

“저기… 잠시만.”

“네?”

순빈을 이끌고 구석으로 간다. 그는 이 여직원이 왜 자신을 끌고 가는지 의아한 눈빛이다. 혹시 자신에게 반한 것인가? 그럴 리가 없다. 그는 결코 잘생긴 얼굴이 아니다. 그가 세실리아를 보고 가면 그의 여자 친구가 오징어로 보이는 것처럼 그의 여자 친구도 우혁을 보는 날이면 그가 못생겨 보이는 평범 이하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가격을 깎아 드릴게요.”

“네?”

“저희 매장에서 옷을 사세요. 가격을 깎아 드릴 테니.”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옷을 골라도 될까요?”

“그… 그러세요.”

이래 뵈도 매니저다. 눈치가 삼천리인 것이다. 비록 방금 전에는 여직원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착각을 했지만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 세실리아의 미모가 이 매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아마도 유명 여배우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어차피 사기 치는 것은 아니다. 이쪽에서 잘못 알고 있는 것을 활용할 뿐이니. 그래서 골랐다. 천만 원이 넘는 옷을.

“우혁아, 옷 사왔다.”

세실리아를 데리고 나온 순빈.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우혁에게 잠시 영수증을 가지고 있으라고 말을 했다. 자연스럽게 가격으로 눈이 간 그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다. 무슨 옷이 천만 원이 넘는단 말인가?

“혀… 형. 이건 너무 하잖아. 나 돈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아니라고…”

“킥킥킥.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걱정 마라. 그거 이백 만원에 샀다.”

“응?”

순빈은 상황을 설명했다. 그녀가 매장에 사진을 남기는 조건으로 그 옷을 싸게 해주었다고 한다. 우혁은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다니는 운전면허 학원이 생각이 났다. 여러모로 잘생기고 예쁘면 살아가는데 좋은 세상이기는 하다. 물론 좋다는 말이 편하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다. 아니 상당히 불편해질 수 있다. 그 날 검색어 상위를 ‘L백화점 여신 등장’으로 도배했다는 말을 나중에 듣게 되었다.

- 오늘 백화점 한 번 출두했는데, 역시 세실리아의 미모가 올 킬했어. 네가 검색어 상위에 오른 것도 그녀에게 밀렸는데?

“정말?”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보았더니 정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이 여기저기 블로그에 올라가고 있다. 제목은 ‘여신’이라는 말로.

“어, 우혁. 내 사진 보네.”

“응, 아까 사람들이 너 많이 찍은 것 올렸나봐. 인터넷에.”

이해는 하는 걸까? 그녀는 그의 말을 듣고 눈만 깜박이고 있다. 일단 그녀는 오늘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는 날로 기념하는 게 아니라 우혁에게 예쁘게 보일 옷을 샀다는 것 하나만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 옷, 항상 입어?”

“아냐, 나중에 나랑 나가서 데이트 할 때 입자.”

“데이트?”

“응. 남자와 여자가 나가서 재미있게 노는 것을 데이트라고 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대충 그가 말한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얼굴에는 활짝 꽃이 피었다. 기쁜 나머지 웃음을 감출수가 없는 것이다. 빨리 그와 데이트를 하고 싶다. 이 옷을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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