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53화 초보자들의 한계
빛나는 애초부터 몰입을 하지 않았다. 미래가 나오는 드라마. 그냥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고 있었다. 그녀의 유일한 관심은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남자였다. 그녀는 미래와 다르다. 아마도 그녀였다면 옆에 있는 우혁이를 덮쳤을 지도 모른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히 표현을 했으리라.
덮칠 정도의 과감성이라면 유카리를 빼 놓을 수는 없다.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의 나이지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은 성격을 그녀가 모를 리가 없다. 미성년자라고 모르는 것이 많고 알 것은 가리는 그런 시대는 지났다.
어쨌든 다른 그녀들과는 달리 빛나는 그럴 정도의 적극성은 없다. 다만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다가오게 할지 고민은 한다. 그렇다고 처녀 입장에 옷을 약간 풀거나 그를 노골적으로 유혹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은 두렵기도 하다. 그녀는 그와 했던 지난날의 키스 정도만 원할 뿐이다.
아직 남자를 모른다. 남자는 손을 만지면 입을 맞추고 싶고, 입을 맞추면 그 이상을 원하는 본능적인 동물이다. 아무리 우혁이 여자 경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짐승과 같은 야수성마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 당해보고 울어봤자 돌이킬 수는 없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가 드라마에 몰입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보고 말았다. 그 역시 자신을 힐끗 보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딱 걸렸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자신의 입술이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다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같은 것을 생각하니 통했다고 여긴다. 입술을 살짝 벌리는 것은 이 때문인가?
“우혁…흡.”
우혁은 결국 본능과의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이 키스가 그와 그녀에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그는 생각해보고 생각해봐야 하는데 그럴 겨를이 없다. 그녀가 입을 벌리는 순간 입을 맞추고 싶은 자신의 욕망 앞에서 이길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달콤했다. 그녀와의 키스가 말이다. 지난번 도쿄에서 했던 것과는 또 다른 맛이다. 밀폐된 공간. 그가 가지고 있던 욕망. 이런 것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곳이 아닌가? 그의 혀가 그녀의 입 안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키스를 하면 그 케미컬 작용으로 인해 침샘이 활성화된다. 성욕과 식욕은 한 끝 차이다. 그래서 나오게 되는 타액. 평소에는 내가 아닌 타인의 침이 더럽다고 여기지만 이때는 아니다. 오히려 맛있다는 느낌. 그래서 이 둘은 입을 떼지 못한다.
우혁의 입장에서 키스는 처음이 아니다. 미래와도 했고, 지금 입을 맞추고 있는 빛나와도 했다. 그런데 지금 하는 것은 왜 다른 느낌일까? 혹시 매번 할 때마다 다른 느낌을 가질까? 그것은 전문가가 아니니 절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는 키스 이외의 것을 욕심내는 자신의 손 때문에 미치려고 한다. 부풀어 오르는 자신의 중심 부위는 어떤가? 뭘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보고 싶다. 그리고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하고 싶다. 외로움이 던져다 준 그의 욕망. 그는 못 참고 손을 가지고 그녀의 가슴 어귀로 접근해 갔다.
그러다가 막혔다. 그녀의 저항. 그의 손목을 쥔 것이다. 뿌리치기에는 그녀의 힘이 강했다기보다는 그녀의 눈빛이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은 눈을 뜬 그녀. 그 눈동자를 보고 그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 안에 들어 있는 의미를 그는 읽고야 말았다. 그래서 입을 떼었다. 이제 그는 강한 죄책감이 일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다는.
“미안…”
사과를 하려던 그의 입이 멈추었다. 그녀가 그의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가 버린 것이다. 그의 눈이 커졌다. 그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냥 갖다 대는 수준의 손이다. 하지만 물컹한 느낌을 느끼지 못할까?
“그 말 하지 마… 그리고 만지고 싶으면 만져. 나 네 거가 되고 싶어…”
그녀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다. 갈망. 아까 보았던 두려움은 착각이었던가? 아니다. 분명히 두려움에 젖은 눈이었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게 해주는 게 그녀의 소망. 그것으로 인한 갈망의 눈빛이다.
이제 망설이는 것은 그였다. 솟구쳐 오는 욕망으로 치러야 할 값어치가 무엇인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것을 치를 준비가 되었는가? 모른다. 아니 알 수 없다. 나중에 이 충동에 대한 대가를 계산할 만큼 그는 이성적이지 못하다. 자신의 손에 맞닿은 그녀의 가슴. 그 뭉클한 기분이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다시 키스를 한다. 천천히 그리고 사탕을 빨 듯 그렇게 맛있게. 그녀 역시 잘 받아준다. 자신의 입술을 내주는 것이 기쁨이다. 자신의 가슴을 내주는 것은 이제 행복이다. 그를 갖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어줄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이다.
그의 힘이 더 쎄다. 그녀가 무너질 정도로. 소파에 그대로 무너지는 그녀. 그 위를 그가 점령한다. 그녀의 입술을 탐하는 행위. 이제는 야릇한 그 기분을 이대로 중단하기는 너무 늦어 버렸다.
문제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어떤 순서로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분명한 것은 그녀의 옷을 벗겨야 한다는 것인데, 과연 그녀가 순순히 받아들일까? 시도도 해보지 않고 미리 겁을 먹는 것은 원래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다리가 완치된 후 그는 한 번도 자신의 행동을 망설인 적이 없었다. 아니 있었다. 바로 이런 행위와 관련된 경우에는. 빛나하고도 그리고 미래하고도 그랬었다.
“나… 정말 이래도 돼?”
그는 물어볼 필요가 없는 것까지 승낙을 받으려 한다. 그리고 빛나는 대답할 필요도 없는 것까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둘의 서투른 시작. 그녀가 입은 트레이닝복을 그가 벗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가슴을 감싸고 있는 하얀 브래지어. 수영복이 아닌 그녀의 속옷을 보기는 처음이다. 그녀는 다 보여준 것도 아닌데 두 손을 팔짱을 끼는 것처럼 해서 자신의 가슴을 가렸다. 처녀로서 당연히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가 이렇게 빤히 보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저… 저것 좀 꺼도 돼?”
“응? 뭐를…”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흥분이 사라졌다는 말이 아니다. 그녀를 두고 드라마가 계속 된다는 것. 현재 나오는 사람은 미래라는 것. 그것은 예의가 아닐 것 같았다. 리모컨을 찾았다. 하필이면 이런 물건은 잘 찾아지지 않는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내… 내 등에 있는 것 같아…”
그녀가 부끄러운 듯 다시 말을 하고 있다. 그의 힘에 의해 소파로 넘어졌을 때 깔고 누운 것 같았다. 매우 불편하지 않았을까? 등을 찌르고 있는 그 물건이. 만약 경험 많은 남자라면 그런 것도 배려할 텐데.
“아… 그… 그래? 그… 그럼…”
초보자들의 한계다. 분위기를 다 깬 상태. 그녀의 위에 올라탄 그는 어쩔 수 없이 일어섰고, 그녀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검은색 리모컨. 그것을 발견한 우혁이 빨리 집어 들고 TV를 끄려고 했다. 잘 못 눌렀다. 볼륨만 계속 올라가고 있다.
“아, 이게 왜 이러지?”
“킥킥.”
초보들의 촌극은 계속 된다. 이래가지고 제대로 거사를 치르겠는가? 그렇다고 옆에서 코치를 해 줄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경우 깊은 연구가 필요할 텐데. 야동이나, 야설 등 그런 것이 때로는 좋은 코치가 된다.
다시 소파에 앉은 두 남녀. 어색한 시간이 흐른다.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어색해졌다. 더구나 빛나는 브래지어만 남기고 있는 상태가 돼 버렸다. 그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모양새. 그래서 그녀는 트레이닝복 상의를 집어들며 말했다.
“나 다시 입어도 돼?”
“응?”
당연히 입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지금 그에게 들끓고 있는 욕망이 부르짖는 소리.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안 되나보다. 끝까지 신사이고 싶은가? 아니다. 순간 대처에 미흡했다. 많은 여자를 사귀어 보지 못한 미숙함이다. 빛나가 듣고 싶은 대답도 그게 아닐 텐데, 그는 그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 그래. 미안하다.”
그 순간 빛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무엇이 미안하다는 것일까? 지난번에도 그랬다. 키스를 하고 나서 하는 말. 사과를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인데.
“뭐… 뭐가 미안한건데?”
“응?”
그녀가 이렇게 물어볼 줄은 몰랐다는 듯이 그는 고개를 숙인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을 때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 미안하다는 말 듣고 싶지 않아. 왜 미안한 거야? 미안하지 않았으면 더 좋겠어. 아니면 진짜 미안한 짓을 하든지. 알아? 그 말이 더 상처가 되는 거야.”
“그게 아니라, 정말… 미안해서 그렇지…”
“알았어. 그 사과 받아들일게. 나 먼저 갈게. 나중에 보자.”
“아니… 비… 빛나야?”
쏟아져 나오는 눈물. 그렇게 얼굴을 감싸 쥐고 그녀는 문을 나섰다. 쫓아가지 못했다. 이것 또한 미숙한 대처였다. 그녀는 잡아주기를 원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그녀를 보내다니. 어릴 때부터 인간관계가 거의 없었던 그로서는 이런 게 벅찼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상황 대처 능력. 감정의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도 그렇다. 어쩌면 그는 모든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에 서투른 나머지 그것을 두고 미안하다고 말을 한 것인데, 그녀는 오해를 해 버렸다. 모두 그의 잘못인가? 그렇지 않다. 이는 초보들의 한계이다. 처음이 가장 힘든 것을 지나고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밤이 깊어만 간다…
============================ 작품 후기 ============================
답답하시군요. ㅠㅠ 독자님들께 미안한 마음만 드네요. 그런데 빛나는 중요하지 않은 여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여성 캐릭터들의 비중이 매우 높아야 합니다. 하렘이면 하렘, 순애면 순애. 꼭 정해야 하는 건가요? 가다가 흐름에 맡기면 안 될까요?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