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22화 계약
AK 스포츠 본사는 논현동에 위치해 있다. 전날 아버지는 우혁에게 말했다. 계약 조건이 나쁘지 않지만, 너무 장기 계약을 하지는 말라고. 계약 기간에 묶여서 나중에 힘이 들 수도 있으니 차라리 비율을 더 낮추더라도 단기 계약을 하라고 조언을 했다. 그래서 찾아왔다. 빛나와 함께.
우리나라에 난다 긴다 하는 스포츠 슈퍼스타들이 큰 브로마이드로 복도에 잔뜩 붙여 있었다. 그 중에는 그가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계약을 위해서 실장의 개인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만난 사람은 확실히 아는 사람이다.
“어? 오빠!”
박태원이다. 은퇴를 발표하고 나서 벌써 한 달이 다 돼가는 시점이다. 아직도 그의 주가는 높았다. TV에 여러 예능에도 출현을 했고, 광고나 일일강사 등으로 수입도 많을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 내 놓은 자서전은 날개가 달린 듯 잘 팔렸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그는 반가운 웃음을 지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우혁. 그 역시 최근에 자신의 2세라고 불리는 신인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너로구나, 최우혁.”
“안녕하세요.”
무뚝뚝한 인사. 어색한 만남. 원래 우혁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반면 태원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유, 얘가 좀 무뚝뚝해요. 이해하세요, 오빠. 킥킥. 그나저나 웬 일이에요?”
“나야 여기 자주 와. 특히 은퇴하고 나서는 매일 들르는 편이야. 소속사에 출근하는 게 내 일이지 뭐.”
“그래요? TV에도 매일 출근하시는 것 같던데. 이제 연예인 되시는 거예요?”
“무슨… 조금 운동 쉬면서 소일거리로 하는 거지… 나중에 후배 좀 길러 봐야지. 영욱이 형이 이번에 괴물 신인 하나 키웠던데, 나도 나중에 키우는 맛을 느껴야 하지 않겠니?”
“어! 그럼 우혁이도 좀 지도해 주세요. 얘가 실력이 장난 아니에요. 며칠 전에는 일수랑 400미터 시합을 했는데…”
“빛나야, 그만 해.”
그녀의 말을 가로막은 우혁. 쑥스러워서라기보다는 진 게 창피해서였다. 대단한 승부욕이다. 상대가 누구든 절대 지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얘가 이래요. 꼭 오빠 젊었을 때처럼 승부욕이 그냥…”
“젊었을 때라니? 나 지금도 젊어. 와 그 말 들으니까 섭섭한데…”
“에이, 이제 한 물 갔잖아요. 솔직히 우혁이랑 수영 한 번 하시면 바로 느끼실 텐데.”
“뭐? 빛나, 너 아주 그냥. 하하.”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렇게 웃었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우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역시 승부의 세계에서 정상을 달렸던 남자다. 승부욕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새까만 후배 녀석이 자신에게 승부욕을 느끼는지 눈싸움을 걸고 있다. 순간적으로 진짜 한 번 수영 시합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시간도 없거니와 괜히 쓸 데 없는 화제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계약 때문인 것 같은데 자리 피해줄 게요.”
결국 일어나는 태원. 그가 잘 지나갈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는 우혁. 그러고 보니 키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 약 2에서 3센티미터 정도? 그가 크다는 게 아니라 둘 다 수영 선수치고 작다는 게 핵심이다. 공통점이 발견이 되었다. 아마 연습벌레라는 부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서 오세요. 아버님과는 아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곧 해외로 발령이 나신다고 들었습니다.”
승헌의 말을 듣고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하는 말이다. 빛나는 그의 아버지가 외교관이라는 것을 전에 들었다. 사실 좀 놀랐다. 대체적으로 그런 집안의 아들이 운동보다는 공부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어쨌든 그의 아버지는 일본으로 다음 달에 발령을 간단다. 그래서 또 떨어지게 생겼다. 부모님은 그의 의향을 물어 보았다. 같이 갈 것인지, 아니면 남을 것인지. 그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이번에 실버타운으로 들어가서 결국은 어쩔 수 없이 독립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
그는 당연히 수영을 선택했다. 오히려 여러 간섭을 벗어나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로서는 항상 부모님의 품 안에서 성장해 왔으니, 이런 자유가 나쁘지 않은 것이다. 아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그들로서는 당연히 이 결정을 받아들인 상태다.
“계약 기간만 조절하고 싶습니다.”
“계약 기간이요? 어떻게요?”
“1년으로 하고 싶습니다.”
“1년? 너무 짧은데요?”
“대신 비율을 더 높여도 됩니다. 기간이 긴 것은 좀 부담이 되어서요.”
“보통 군대 기간을 계약 기간에 집어넣습니다. 통상적으로. 그런데 이렇게 단기간에 하면 갑작스런 군 입대 시 수입이 없어집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상관없습니다.”
군대. 그는 장애 등급이 있다. 거기다가 정규 교육과정도 받지 못했다. 군대에 대해서는 생각이 있었다. 언젠가 가보고 싶었다. 부모님과 이 문제에 대해서도 상의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어머니는 말렸다. 당연한 일이다. 이미 면제 판정을 받은 자식이 군대에 가고 싶다는데, 말리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남들이 들으면 웃기는 짓이다. 굳이 가서 고생을 할 필요가 없을 텐데…
“좋습니다.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1년에 한 번씩 재계약을 할 수 있다는 조항 하나는 삽입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계약서는 곧 다시 작성을 했다. 계약 연수만 조정을 하면 된다. 비율은 이전과 동일하게 하기로 합의를 했다. 사실 이들도 고객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1년에 한번 재계약. 회사 측이 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원래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이는 그만큼 그의 상품성이 높다는 증거일 것이다.
“참, 김미래씨 말이야.”
서명을 다 하고 계약이 완료된 시점에서 승헌이 빛나를 보며 말한다. 미래의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나왔기에 그녀는 물론 우혁도 그를 주목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
“지난번에 빛나씨가 미래씨 이야기를 해서 연락했는데, 이미 소속사를 구했다는 거야.”
“그래요?”
사실 미래가 훈련장을 나갈 때 빛나는 그녀를 위해서 자신의 소속사에 부탁을 했었다. 물론 그 때 승헌은 난색을 표했다. 그녀가 상품성에서 우혁에 비해 턱 없이 모자랐고, 실력은 더욱 그렇다. 업계에서는 이제 지는 해로 평가를 하고 있다. 물론 제대로 떠 본적도 거의 없긴 하지만.
그러다가 다른 쪽의 상품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요즘 은퇴한 스포츠 스타들을 예능에 출현 시킬 정도로 AK 스포츠는 연예인 매니지먼트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물론 기존의 대형 기획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스포츠 스타는 나름의 상품성을 갖는다. 그 기준으로 선발할 때 미래는 충분히 먹힐 수도 있다는 내부 결론이 났다. 특히 그녀의 글래머러스한 몸매는 섹스어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제야 연락을 한 것인데, 이미 소속사를 구했다는 답변을 듣고 빛나에게 전달을 한 것이다.
“이쪽 업계 중에 여기가 가장 큰 곳이죠?”
“그렇습니다.”
빛나와는 달리 우혁이에게 쉽게 말을 놓지 못하는 승헌. 좀 까칠한 성격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좀 더 가까워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럼 비슷한 규모의 소속사가 있나요?”
“아뇨. 거의 한 두 명이 운영하는 마이너 에이전시가 있습니다. 그들은 선수 한 명 키워서 대박을 노리곤 하죠. 그러다가 실패하면 바로 문을 닫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니 미래가 더 걱정이 되었다. 최근에 연락을 주고받고는 있지만 이런 이야기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녀가 가진 자존심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소속사를 구했네. 다행이다.”
빛나는 오히려 걱정보다는 다행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사실 비인기 종목의 경우 소속사 구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태원의 경우, 초기에는 올림픽 은메달을 땄다고 지원팀이 해체되는 경우까지 있었다.
선수가 자비를 들여서 훈련하고 자신의 돈을 들여 코치와 트레이너를 고용하는 상황. 무엇을 해도 돈이 들어갈 텐데, 대학생인 미래가 어디서 그런 돈이 나오겠는가? 학교에서 나오는 장학금이야 등록금 정도만 커버가 될 것이니 그녀를 지원해주는 곳이 생기면 크든 작든 나쁘지 안하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AK스포츠를 나오면서 우혁은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골몰했다. 빛나는 다행이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 그는 걱정스러운 것일까? 그녀가 어련히 잘 선택을 했겠지만 왠지 불안했다.
“미래 생각해?”
“응? 응. 걱정이 돼.”
차를 타고 훈련장으로 갈 때까지 아무 말이 없는 그가 그녀의 생각을 한다는 것을 눈치 챈 빛나. 그래서 물어보니 역시나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약간 서운했다. 그를 Ak 스포츠에 소개하고, 거기다가 이렇게 까지 데려다 주고 데리고 왔는데.
“이제 내 생각 좀 해줘.”
“…….”
그의 눈이 커졌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아무리 그가 감정에 대해 둔치라지만 지금 그녀의 그 말에 그녀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지 않는 그녀. 당연하다. 운전을 할 때에는 전방 주시가 중요하니. 그래도 그는 알 수 있다. 그녀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야 눈치 챘다. 그녀가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하나? 이들이 가는 사랑의 행로가 좀 복잡해지고 있는 것 같다. 남자 하나. 그리고 여자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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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계약 관계는 저도 사실 잘 모릅니다. 일단 그냥 상식 선에서 넣어 본 것입니다. 그럼 점심 식사 맛있게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