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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142화 그의 옛 여자 친구

150미터 턴. 승부의 분수령이 될 곳. 안타깝지만 이번에는 1위를 빼앗지 못했다. 우혁의 힘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세계 랭킹 1위는 결코 제비뽑기로 얻은 것이 아니다. 그는 그것을 증명해 내고 있다. 사람들의 아쉬워하는 탄성. 경기장을 가득 메운다. 그 염원을 받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무리인가 보다. 결국 그렇게 경기가 끝난다.

“2위도 잘 한거야. 다른 종목도 있으니 낙담하지 마.”

고개를 끄덕이는 우혁. 성격이 달라진 건가? 꼭 그렇지는 않다. 그의 승부욕은 패배감과 마주치며 분노를 일으키고 있으니. 다만 그것을 가라앉게 하는 방법도 배워가고 있다. 심호흡. 그리고 자신을 지켜봐주는 사람. 그것을 알기에 경거망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세실리아다. 그런데 그녀는 오늘 경기장에 나오지 않았다. 광주라는 거리상의 문제도 있고, 그녀의 스케줄 문제도 발생을 했지만 결정적으로 오늘 미래를 집으로 초대한 것이다.

둘은 친구가 되었다. 물론 미래 입장에서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자신의 남자가 다른 여자의 남자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을 계속 지켜보기는 힘들었다. 곳곳에 그와 그녀의 흔적이 있을 것 아닌가?

“우혁이가 졌네.”

둘은 지금 TV를 지켜보고 있다. 미래는 이곳에 오기 위해서 대폭적인 스케줄 조절을 했다. 요즘 가장 바쁜 몸이다. 그런데 그녀의 초대를 받아들인 것은 마음이 가는대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 그를 사랑했던 사람으로 표현하기는 싫다. 그녀는 그의 집에 오고 싶었다. 이제 질투라는 감정은 어느새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그를 직접 보고 그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다. 그래서 TV에서 그가 나오자 그렇게 부르고 있다.

“예전에는 저렇게 지면 정말 화를 냈는데…”

“그래?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철이 들었나 보네. 아니면…”

‘여자를 잘 만나서 그렇던지.’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 말까지는 입에서 나올 수 없었다. 그런 말까지 하면 그와 더 거리감이 느껴진다. 굳이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는 세실리아의 남자가 아니던가?

“아직 그는 우리 둘이 친구라는 것 모르지?”

“응. 그런데 곧 말할 거야.”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텐데…”

“미래가 이야기 했잖아. 친구로라도 그의 곁에 있고 싶다고. 나 그거 들어주고 싶어.”

순수하다. 그 순수한 영혼. 미래는 마냥 속으로 박수만을 쳐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가 왜 자신에게 친구로라도 지내기 힘들다고 말을 한 것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남녀사이. 그것도 서로 사랑했던 과거가 있는 남녀 사이. 매우 쿨해서 감정의 찌꺼기가 남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녀는 연예계에 있으면서 수없이 사귀고 헤어지는 커플을 많이 보아왔다. 그들은 친구로 남는다고 대중들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실질적으로 친구조차 서로에게 될 수 없었다. 미련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기 때문에 그들은 그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을 하나하나 보다보니 우혁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을 배려한 것이다. 그는 괜찮지만 어쩌면 그녀가 더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던 사람이다, 바로 그가.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그 냉정함이 싫었지만, 나중에 지나고 보면 그것이 현명했음을 깨닫고 그에게 고마워했다. 그러나 그는 잊고 싶다고 잊어지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의 몸과 마음에 그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그건 불가능해.”

“왜?”

“그는 고집이 쎄거든.”

미래의 말. 사실이었다. 세실리아도 잘 알고 있다. 그는 한 번 마음먹은 것은 놀라울 만큼 집요하게 성공시킨다. 수영도 그렇고 다른 것도 그렇다. 같이 생활을 하는데 왜 모르겠는가? 결국 그것을 고집으로 보자면 원하지 않는 것은 죽어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얼마 전까지 같이 있었던 은환과 지연. 그 둘에게 결혼을 한다고 선언한 우혁. 아직까지 이르다고 말을 하는 그의 부모에게 그는 끝까지 주장하여 결국 관철을 시켰다. 다만 올림픽 이후로 절충을 했다. 그것만 보더라도 그의 고집을 엿볼 수 있다.

그의 부모님은 이번에는 말레이시아로 떠났다. 외교관이 역할을 또 다시 수행하러 가는 것이다. 공항에서 그녀에게 하는 말. 그녀가 싫어서 결혼을 반대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그의 어머니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던 세실리아다. 그도 자신의 남자친구의 고집을 알고 그들의 마음을 알기에 다 이해한다는 눈빛이었다.

“둘은 결혼 안 해?”

“응?”

“우혁이는 빨리 결혼하고 싶어 했거든. 너랑 만나면 당장이라도 할 것처럼 이야기 했었는데. 물론 친구였을 때 했던 이야기야. 그와 사귀었을 때는…”

그는 갑자기 말문을 멈춘다. 둘 사이의 금기는 따로 없다. 어떤 것을 이야기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 정한 것은 아니다. 거기다가 둘 사이를 이어주었던 매개체는 우혁이다. 어쩔 수 없이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미래는 매우 조심을 했다. 세실리아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웬만해서는 그와 예전에 연인관계였던 상황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괜찮아, 이야기 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세실리아가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을 하는 순간, 그녀는 결국 꺼내어 놓곤 한다. 그것이 반복되니 자신도 모르게 지금처럼 또 스스럼없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랑 결혼하고 싶다고 하긴 했지만, 그 때에는 빨리 하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

“왜?”

“내가 연예인이었잖아. 나는 상관없었지만 나를 배려해준 것 같아. 항상 냉정하고 까칠해 보여도 자기 여자 친구는 잘 챙기는 거지, 뭐.”

세실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사람들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 상당히 까칠하고 겉모습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요즘 들어서 더 그렇게 보인다. 예전에는 흥분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분노를 자제할 줄 아니 냉철함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를 잘 아네, 미래.”

“응?”

“잘 알고 있다고, 우혁을.”

“아, 미안.”

“아니야, 왜 미안해. 당연한 거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더 미안해.”

“아냐, 내가 내 주제를 알았어야 하는데. 예전 남자친구의 현재 여자 친구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네. 헤헤.”

“그러지마. 그러면 내가 미안해져. 난 항상 네게 미안해.”

“세실리아가 왜? 너야 말로 그러지마. 사실 처음에는 네가 미웠어. 그렇지만 지금은 정말 괜찮아. 이렇게 마음을 열어주니 너무 좋아.”

그녀가 좋은 이유. 아직까지 그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실리아는 그녀의 마음을 잘 안다. 그녀가 한국말이 서툴러서 가끔 백치미가 엿보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똑똑하고 영리하다. 남의 마음을 잘 눈치 챌 정도로.

그녀와 친구가 되자던 이유. 그녀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세실리아에게 질투심이란? 당연히 그녀도 인간 세상에 오랫동안 머무르니 그런 감정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요즘 미래를 보면 질투보다는 다른 감정이 앞선다. 죄책감. 그래서 가끔 우혁을 빌려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우혁은 미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몇 차례 그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던져 보았지만 요지부동이다. 하고 싶지 않단다.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실리아. 왜 그가 자신의 옛 여자 친구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사실 지금이야 그런 맘이 드는 것이다. 다른 여자들은 남자의 과거를 그리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것을 듣고 좋은 마음이 생기기야 하겠는가? 물론 가끔 첫 사랑을 회상하기도 하고 가끔 분위기 좋을 때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것을 즐기는 여자는 없다. 그것은 남자도 마찬가지니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생각을 해서 세실리아를 배려하는 우혁인데 오히려 그녀가 그의 마음을 모르는 꼴이다.

“엇, 저 계집애가 꼬리 치네.”

“응? 유가희? 나도 쟤 싫어. 얼마 전에 집에 놀러 왔는데 자꾸 우혁에게 웃고 곁에 붙어 있으려고 하고 그래.”

“그지? 저게 사차원인 척 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을 하는 거야. 조심해, 세실리아. 남자 마음은 한 순간에 가버리는 수가 있어. 잘 지켜야 해. 호호호.”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자조적인 웃음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이 잘 지키지 못해서 세실리아에게 빼앗겼던 것이 아닌가? 물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자신이 바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녀에게 갈 운명이었다.

여자들의 수다. 또 다른 여자를 보며 나누는 이야기. 이럴 때면 한 마음이 된다. 가희가 우혁에게 수건을 건네주는 장면을 보고 합심이 된 이 마음. 그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둘이 친해졌다는 것을. 나중에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어떤 말을 할지도…

============================ 작품 후기 ============================

그렇죠. 프로화 되기는 약간 억지스럽긴 하네요^^ 쓰면서 저도 공감하지 못할 것 같다고 우려가 좀 있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네요. 4월 1일 만우절입니다. 무슨 거짓말을 해야 할까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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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ash! - Splash-1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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