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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61화 소속팀과 소속사

음성 이전에 자신의 얼굴을 감싼 손. 부드러운 그 느낌. 여자의 손이다. 그리고 그는 그 손의 주인공을 알고 있다. 요즘 이 산책로에서 자주 만난다. 아니 우연을 가장한 만남이다. 그녀 입장에서.

“내 첫 친구.”

“틀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앞으로의 네 연인.”

참 설레게 하는 단어다. 어떤 남자가 뒤에서 다가와 눈을 가리며 이처럼 사랑의 고백을 하는데 가슴이 안 흔들리겠는가? 물론 우혁도 그렇다. 하지만 그는 정신적으로 이와 같은 것에 쉽게 틈을 내주지 않는 남자다. 아니 그런 척 잘하기로 유명할 것이다. 최소한 밀폐된 공간이 아니라면 충분히 딴 청 내지 침묵으로 가볍게 무시할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도 그렇다. 일단 손을 잡고 풀었다. 남자의 힘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무리 그녀가 과거에 운동을 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다. 그녀는 바로 미래였다. 그녀 역시 후드로 감싸고 있다. 공인이라 함은 이렇게 드러내놓지 못하는 데 있어서 항상 자유를 구속당한다. 마스크까지 썼다. 요즘은 그녀도 그 못지않게 유명하다.

“핏, 그렇게 하는 게 어디 있냐?”

“나 눈 가리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난 눈 가리는 거 좋아하는데. 호호.”

뭐가 그렇게 좋은지 그녀는 깔깔거린다. 하긴 좋을 수밖에 없다. 요즘 인기가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 가고 있다. 그리고 종종 아침에 보는 그는 더욱 더 그녀의 하루를 상쾌하게 만들고 있다.

“우혁아, 오늘 종방연 있어.”

“그게 뭐야?”

“드라마 끝나면 하는 회식. 올 수 있지?”

“응? 내가 왜 가? 내가 무슨 상관이라고?”

“왜 상관없어? 엄연히 너도 출연자였는데?”

“겨우 까메오 출연이라고. 그 정도로 출연자라고 할 수 있겠어? 어쨌든 난 그런 자리, 끼고 싶지 않아. 알잖아. 사람들 많이 모이는 곳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그는 사회성이 좋아졌다. 그것도 몰라보게. 그렇다고 원래 성격이 변한 것은 아니다. 고칠 수 없는 부분은 남아 있다. 그 중 하나가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수영을 하다보면 관중도 많고 그를 주시하는 사람들은 더욱 더 많다. 그런데 그것과 이것은 다르다. 전자가 고독한 승부를 위해 매진하는 과정이라면, 후자는 친밀도와 유대감을 높이기 위한 자리다.

일단 그런 자리에 나가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은 둘째 치고 질문을 받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공포다. 둘만 만나도 그가 질문하기 힘든 것들이 너무 많다. 누구나 질문하는 범위 안에는 항상 과거라는 것이 들어가 있으니 말이다. 그는 꺼내고 싶지 않은 과거가 아주 많이 있다. 과거가 부끄럽다기보다는 그 이야기를 하면 부연설명을 할 게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알지, 알아. 그래도 나를 위해서 와주지 않겠어?”

“나를 위해서 부르지 말지 그래?”

“사실 내가 부른 게 아니야. 자꾸 사람들이 너 꼭 데리고 오라고 해서. 알잖아. 나 완전히 막내 서열이라는 거. 감독님, 작가 선생님, 그리고 선배님들이 너 안 데리고 오면 나 완전히 갈 때까지 마시게 하겠데.”

“뭐어?”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상한 걸 가지고 협박을 한다. 도대체 자기가 그런 자리에 참석을 하지 않는 것과 미래에게 술을 먹이는 것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 대답을 미래가 풀어서 설명을 해준다.

“짧지만 강렬한 존재감. 그래서 사람들이 다시 보고 싶어 하는 거야. 그 때 촬영장에 잠시 오고 난 이후로 너 소개시켜달라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어쨌든 이번 작품 나에게 첫 작품이고 나름 의미가 있으니 내 부탁 좀 들어주면 안 돼?”

“끙. 알았어.”

“정말? 와, 정말이지? 신난다. 정말 신난다. 호호호.”

우혁은 그녀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가 신이 난단 말인가? 이제 그는 그 사람 많은 곳에서 잔뜩 경계하며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대인 기피증. 아직까지 고치기 힘든 정신 장애이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사람을 대하는 데 능숙하지 못한 성격적 결함이 있다. 그런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끊임없이 긴장해야 했다. 그런 게 싫어서 처음에 거절을 한 것인데…

“자, 우혁군. 이제 다시 뜁시다. 나 살이 자꾸 붙어서 걱정이야. 자, 뜁시다.”

“무슨 살이 붙었다고 그래? 지난 번 보다 더 마른 것 같은데…”

“어쭈? 너 어디 보는 거야? 내 몸 걱정하는 척 하면서 이상한 곳에 눈을 고정시킨다.”

“…….”

할 말을 잃었다. 아주 제 멋대로 해석해서 붙인다. 그녀가 걱정이 되어서 한 말인데 그를 변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장난이다. 그것도 야한 장난. 그리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하긴 맨 살도 봤는데, 뭘.”

“자… 자꾸 그런 소리 하기 없다고 했는데…”

“하지만 나만 불공평하잖아. 그 때 보여준 것은 나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 또한 나라서 상당히 손해 본 느낌이란 말이야.”

이럴 때는 대응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그래서 그는 뛰기 시작했다. 쏜살같이. 그의 뒤에 그를 잡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 반칙이다. 너 반칙이야. 먼저 뛰는 게 어디 있어? 기다려! 기다리란 말이야!”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아 다행이다. 그것도 그녀를 알아볼 수 없는 나이 지긋한 연배의 할아버지들. 그저 이들이 연인인 줄 알고 지켜만 보고 있다. 지난날 그들의 청춘 시절을 회상하는 것이 분명한 눈빛으로.

10월 말이다. 이제 추위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 이 때. 가을은 겨울로 넘어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 낙엽만 봐도 알 수 있다. 점점 색이 누렇게, 그리고 뻘겋게 변하고 있으니. 그들의 마음은 어떨까? 봄에 처음 서로가 만나 미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우혁. 이제 가을을 맞이해 그 역시 불을 지피고 있다.

그 날 오후 그는 S 생명의 관계자를 만나러 갔다. 계약은 이미 끝나 있는 시점에서 몇 가지 세부 조율을 위한 만남이다. AK 스포츠의 승헌도 동석했다. 벌써 그는 광고를 10개나 찍었다. 수입도 많았지만 소속사에 가져다주는 것도 적지 않았다.

“오랜만이야, 우혁군.”

“네, 안녕하세요.”

“계약이 얼마 안 남았어. 이제 연장 논의 좀 해야지.”

“조금만 더 있다가요.”

일단 소속사 측에서 더 몸이 달았다. 계약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제 절반쯤 지났는데 벌써 이런다. 승헌은 알고 있다. 대회를 거듭할수록 그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더구나 그 상품성 역시 커지고 있다.

S 생명의 천대선 실장도 바로 그의 이런 면 때문에 실업팀을 추진한 것이다. 지난 9월에 대대적으로 발표한 수영 실업팀 창단. 그 안에 우혁을 포함해 스타 선수들을 거의 다 데리고 왔다. 사람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았다. 축구단도 아니도 야구단도 아닌 수영에 돈을 쓰는 곳이라니.

적극적으로 이들의 호기심을 이용했다. 수영장도 짓고 있다고 발표했다. 매출은 껑충 뛰었다. 이제 업계 1위다. 그것도 압도적인 차이로. 그 과정에서 우혁이 까메오 출현을 한 드라마가 화제가 되었고, 그가 전국을 돌며 아마추어 수영대회를 참가해 국민들의 수영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내년에 완공되고 개관할 수영장. 유료 수입을 잔뜩 기대하고 있다. 은퇴한 선수들도 불러 수영 교실을 프리미엄 급으로 만들 예정이다. 초기에는 적자를 예상했다. 하지만 아시안 게임과 국내에서 개최될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수영에 대한 관심을 더 크게 일으키면 알 수 없다. 흑자로 전환이 될지. 우리나라에서 거의 불가능하고 여겨지는 일을 미리 투자하는 셈이다.

“자, 그럼 이제 우혁군의 소속팀은 S 생명이 되는 겁니다. 에이전시는 저희 AK 스포츠이니 항상 저희를 통해서 계약 기간과 조건을 합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계약 기간이 너무 짧네.”

“저희도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좀처럼 우혁군이 그것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아서요.”

그렇다. 계약 기간. 1년 단위로 계약을 하겠다는 의지를 그는 표명하고 있다. 이유는 자신의 몸에 대한 불확신이다. 그는 먹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까 소속사나 소속팀에서는 그가 몸값을 높이려는 것인 줄 알고 더 액수를 높이며 장기 계약을 제시했었다.

“서로 긴장하자는 뜻이래요. 그러니까 오해하지 마시고… 다만 내년에 돈 다발을 가득 가지고 오셔야 합니다. 하하하.”

“야, 너 순빈이, 우혁이 옆에 있더니 돈 너무 밝힌다.”

“형님께 배웠는걸요, 뭐.”

이제 순빈은 AK 스포츠가 아닌 완전히 우혁의 개인 매니저가 되었다. 소속사에서 급료를 받는 게 아니라 일정 금액을 그에게 보장을 받는다는 뜻이다. 대우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도 본인을 믿어주니 그는 선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나중에 에이전트 회사를 차릴 꿈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이런 단기 계약을 계속 하는 게 자신에게나 선수에게나 유리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 역시 우혁이 단기 계약을 하는 원래 뜻은 잘 모른다.

“알았다, 알았어. 천실장님, 우리 완전히 호구 되겠는데요?”

“뭐, 어떤가? 우혁군이 계속 남아주겠다면 상관이 없네. 하하하.”

대선은 회사 매출이 뛰고 윗분들에게 많은 칭찬과 격려를 받았다. 더구나 덩달아 그룹의 이미지가 좋아졌다고 한다. S 생명뿐만 아니라 전자, 건설 등 많은 곳에서 그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려고 준비 중이다. 그룹의 경제 연구소는 그가 S 생명을 달고 수영 대회에 참가하는 데 대한 부대 효과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승헌도 그렇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우혁을 붙들고 있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

계약을 마치고 드디어 저녁에 종방연을 향하는 우혁. 차라리 대회에 참가하는 게 낫지 이런 자리는 계속 신경이 쓰인다. 마음속으로 정리하고 있다. 사람들이 물어 볼 말. 뻔하다. 그의 과거를 물을 것이다. 그래서 준비하고 있다. 거짓말은 잘 못하는 성격이니 어떻게 피해갈지 고민 중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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