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127화 못 다한 승부
그의 공개 연애는 뉴스를 타고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많은 여성 팬들이 그날부터 식음을 전폐하는 일이 잦아졌고, 술집에서는 울음바다가 되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가니 또 사람들은 무감각해졌다. 가끔 그에 대한 기사를 터트려도 그러려니 하는 사람들이기에 이제 조회수도 안 오르니 다른 기사들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포털 사이트와 대중들이다.
그 무렵 돈암동 국제 수영장에 불청객이 나타났다. 영욱이 잠시 연맹에서 불러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키가 큰 남자 하나가 등장을 한 것이다. 그는 나타나자마자 우혁을 찾았다. 그가 왜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가 누구인지는 모두 다 알고 있었다.
장치앙린. 선수자격을 영구정지 당한 선수다. 그는 고의적으로 금지 약물 복용을 했다. 우혁에게 질 것 같은 불안감으로 복용한 그 약물로 인해 선수 생명이 끝난 것이다. 무슨 심정으로 찾아왔는지를 몰라서 동료들은 이 사실을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곤란해 했다.
그 때 우혁이 나타났다. 트레이닝 실에서 훈련을 하다가 마지막 오후 훈련을 위해 다시 수영장으로 온 것이다. 장치앙린은 그를 보고 말했다.
“최우혁, 그 때 못 다한 승부를 가리기 위해서 왔다.”
“…….”
우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그 때 중국어를 한 것은 외워서 한 것이다. 실제로 배우지를 못했다. 그래서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때 당시에 자신을 도발했던 그 말을 믿고 장치앙린은 그가 중국어를 알고 있다고 생각을 했나보다.
“누구 중국어 아는 사람 없어?”
“몰라. 아까부터 쟤가 와서 최우혁, 최우혁 하기에 우리도 너를 찾는가보다 생각을 했던 거야.”
“도대체 쟤는 뭘 믿고 온 거야? 통역사 한 명이라도 대동은 하고 왔어야 할 거 아냐?”
“선수 생명 끝났잖아. 그동안 벌어 놓은 돈 아껴야지.”
“아니, 그럼 비행기 값을 아꼈어야지. 여기까지 왜 온 거야?”
불쌍한 장치앙린. 그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이 수많은 선수들 중에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에게 비극이었다.
“나 마무리 훈련 하고 가야 하는데, 얘 어떻게 하지?”
우혁은 오늘 세실리아와 영화를 보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집에 가서 그녀의 한글 공부를 가르쳐 줘야 한다. 요즘 하고 있는 일과다. 데이트 후 한글 공부. 그 공부가 별 거 없다. 동화책 읽기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앞에 서 있는 장치앙린이 뭔가 시비를 걸 것 같았다.
그런데 장치앙린은 그가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나 보다.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슬픔과 분노를 담아서 외치는 소리.
“뭐야?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거냐? 그 때 이긴 것은 나라고. 나란 말이다. 비록 약의 힘에 의존했지만 오늘은 맨 정신에 너를 이기러 왔다. 그리고 증명할 것이다. 내가 더 위라는 것을. 그러니 승부를 겨루자.”
문제는 아무도 그의 이 호소력 짙은 연설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우혁은 이제 그에게 붙들리고 싶지 않아서 마무리 훈련을 위해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수영장을 돈다. 그런데 장치앙린은 이게 드디어 자신과 승부를 겨루기 위한 그의 움직이라고 파악을 했다.
그는 옷을 벗었다. 수영 선수답게 쩍 벌어진 어깨. 그리고 특히 키가 큰 그의 몸. 사실 신체 조건은 압도적이다. 그 몸으로 그 역시 수영장에 들어갔다. 몸을 푸는 것이다. 수영을 하기 전에 이렇게 몸을 푸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그는 우혁도 그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물론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고 김칫국을 마시고 있는 상황이다.
너무 오랫동안 몸을 풀고 있다고 여긴 것인가? 그는 우혁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다시 떠들어 댔다. 원래 중국어는 그냥 말을 해도 그렇게 떠들어 대는 말 같다. 그런데 흥분까지 하니 진짜 시끄러웠다.
“아니, 뭐 하자는 거지? 왜 이렇게 시끄러워?”
장치앙린은 그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아서 결국 제스처를 사용해야 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우혁을 가리키고 그 다음에 자신을 가르쳤다. 그리고 두 팔을 휘저어서 수영을 하는 모양을 취했다.
“아, 시합을 하자는 뜻이구나. 좋아, 못 할 것 없지.”
그제야 이해했던 우혁. 안 그래도 스파링 파트너가 김훈과 찬규인데 부실하다고 여겼던 참이다. 어쨌든 장치앙린은 강자다. 방심하면 언제든지 그에게 자리를 빼앗길 만큼. 안타깝게도 선수 자격이 정지가 되었다는 게 문제지만.
“800미터? 1500미터?”
우혁은 이 두 개는 확실히 중국어로 기억을 한다. 그를 도발할 때 외웠던 단어이기 때문이다. 장치앙린은 1500미터를 원했다. 지난 도핑 테스트가 800미터를 치른 뒤 나왔던 결과여서 1500미터 승부를 가리지 못했던 게 그렇게 안타까웠나 보다.
돈암동 국제 수영장에서 아시아를 대표했던 남자와 그 자리를 빼앗았던 남자의 재대결이 시작된다. 부저를 작동시키는 것은 간단하니 그것은 일수가 했다. 만약 400미터였다면 그도 같이 그 자리에 있고 싶었다. 어쨌든 장치앙린의 중장거리 능력은 세계 수준이었으니까.
- 삐익.
드디어 출발을 했다. 한 남자는 자신의 자리를 마지막 순간까지 지키고 싶어 하기에 이 자리에 온 것이다. 그의 비밀 입국. 언론이 안다면 기삿감이다.
또 다른 남자는 지난 아시안 게임에서 상대가 약물을 했던 그렇지 않던 실제로 이기지 못했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힘찬 스타트를 했다. 오랜만에 샘솟는 승부욕이다. 역시 상대가 강해야 그도 강해지는 것 같았다.
물살을 헤친다. 왼팔과 오른팔을 교차하면서. 앞으로 내지르는 힘찬 그의 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50미터의 턴을 찍는다. 오버페이스는 없었다. 실제 경기는 아니기에. 아니 실제 경기에서도 할 필요는 없다. 이제 경기 운용을 잘하는 편이다.
그러나 상대는 백전의 노장이다. 아직까지 그는 그 자리를 아시아에서 내주고 싶지 않았나 보다. 승부를 초반부터 걸어오는 것을 보니 말이다.
“저거 저거 오늘 혹시 약 먹고 온 거 아냐?”
“에이, 설마.”
“그렇잖아. 도핑 테스트 할 수도 없으니 맘먹고 약 먹고… 안 그래?”
김훈은 애써 자신의 추측을 논리적이라는 것에 맞추려고 한다. 하지만 전혀 그럴듯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혁을 이기는 것보다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몰래 입국한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죽을 각오로 헤엄을 쳤다. 마지막으로 우혁을 이기고 자랑스럽게 자신이 최고라고 말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은퇴하리라. 물론 선수자격 정지로 강제 은퇴에 직면했지만, 라이벌에게 승리하고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은퇴를 하고 싶었다.
그가 걸어온 승부. 결코 우혁은 피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 800미터 지점에서 스퍼트를 슬슬 해야 하는데 600미터 지점으로 앞당겼다. 영욱이 있었다면 찡그릴만한 짓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장치앙린에게 이기고 싶었다. 아시안 게임에서 실제로 그를 이기지 못했기에.
1000미터 지점쯤 가니 이제 막상막하다. 둘의 스피드가 비슷하다. 그리고 누구 하나 지친 기색이 없다. 속도도 장난이 아니다. 그런데 그 때쯤 영욱이 들어왔다. 그는 어디서 많이 본 선수가 우혁과 대결하는 것을 보고 이제야 깨달은 듯 소리를 쳤다.
“뭐야? 저것은?”
“앗, 감독님.”
선수들은 그가 들어온 지도 몰랐나 보다.
“뭐하고 있는 거지? 왜 둘이 경기를 하고 있어?”
“그 때 진 게 분했는지 저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래? 하긴 분할만도 하지.”
의외로 영욱은 침착한 모습이다. 그러다가 김훈에게 말했다.
“그런데 너희들은 뭐 하고 있어?”
“아니 말렸는데 자꾸 저렇게 우혁이를 귀찮게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었어요.”
“그게 아니라 왜 타이머를 안 켜 놓은 거야? 보아하니 속도가 장난이 아닌데.”
“헉, 그러네요.”
이 순간에도 그는 우혁의 기록이 중요했나 보다. 안타까운 표정이 된 영욱. 후반 스퍼트가 그 어느 때보다 빨라 보였다. 둘 다 말이다.
“장치앙린을 스파링 파트너로 고용하고 싶다. 우혁이의 훈련에 정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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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많이 꼈네요. 저희 동네요. 어쨌든 굿 모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