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29화 인어 이야기
저녁 식사는 자장면이다. 어디서 들었는지 이사하는 날에는 이게 최고라는 말을 듣고 시켰다. 운동하는 선수의 식단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매일 어떻게 꽉 짜여 있는 대로만 먹겠는가? 가끔 불량 식품도 땡길 수 있고, 사실 자장면은 불량 식품이 아니다. 사람에 따라서 그렇게 볼 수 있기도 하지만.
“후루룩, 야아, 정말 맛있다. 그지?”
“으으응.”
“응. 맛있어…”
여전히 어색한 두 친구들이다. 그래도 그들에게 말을 계속 붙여 본다.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 때문에 어색하게 된 친구들이니.
“자장면 좋아해?”
“으응.”
“응. 좋아해…”
여전히 이렇다. 이런 단답형 대답은 원래 그의 전공이다. 둘이 있을 때 이런 식으로 대답을 한다고 미래 또는 빛나에게 항상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그런데 지금은 입장이 바뀌었다. 그가 물어보면 짧게 대답을 하니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는다. 역지사지의 심정이다. 이제야 대화를 할 때 그녀들의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너희들 상상속의 존재를 믿니?”
“…….”
“상상속의 존재?”
어쩔 수 없이 오늘 그는 말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아예 옛날이야기를 할 참이다. 그것도 동화에서 볼 것 만 같은 그런 환상특급을.
“뭐, 유니콘이나 아니면 인어 같은…”
“난 믿어.”
“난 안 믿어.”
역시 둘의 성격이 극명하다. 좀 더 감성적인 미래는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빛나는 아니다. 그녀는 어릴 때 산타 할아버지가 그녀의 아빠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는 절대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 그럼 그런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힘이나 마법 같은 것도 안 믿겠네.”
“응. 그런 게 어디 있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만들어 낸 거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어디선가 그들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글쓴이가 그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역시 둘의 의견이 첨예해졌다. 약간의 토론 분위기다. 하지만 원하는 대로 되었다. 그녀들의 대화가 물꼬를 트게 되었으니.
“넌 어때?”
빛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우혁의 의중을 물었다. 마치 자신의 편이 되어 달라고 하는 듯.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의 편이 될 수 없었다. 그가 그 이야기를 꺼낸 의도가 무엇이겠는가? 물론 그녀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깔아주려는 것도 있지만 과연 자신이 경험 한 일을 사람들이 믿을까 던져 보는 것이다.
“나도 믿어. 실제로 경험한 사람도 있어…”
“실제로 경험? 진짜 유니콘이나 인어를 봤다는 사람이 있어?”
“응. 유니콘은 모르겠지만 인어를 본 사람은 있어.”
“에이, 설마.”
맨 마지막에 말을 한 사람은 미래다. 아무리 그녀가 상상속의 존재를 믿는다고 말을 해도 진짜 그것을 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환각을 보지 않았을까? 술이나 약을 하고…”
“헉. 그런 말을? 아니야. 그 사람은 맨 정신이었어. 심지어 인어가 나타나서 그에게 키스를 했다는데? 후루룩.”
“뭐?”
“에이, 말도 안 돼.”
자장면을 먹으면서 말을 계속 한다. 물론 다 씹을 때쯤 이어지기 때문에 이번에는 여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 다음 이야기를. 특히 말도 안 된다고 치부한 빛나는 그가 어떻게 반박해 줄지 기대가 된다. 이런 대화는 처음이다. 항상 그와 이야기 하면 그녀가 말을 많이 하고 그는 거의 묵언 수행의 모습이었다.
그녀가 수다스러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빛나 쪽이 더 그렇다. 특히나 남자 앞에서는 더 그랬다. 도도한 모습. 남자들이 그녀에게 작업을 걸려고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봤어도, 그녀가 그렇게 남자 앞에서 말을 시키고 이야기를 해주며 때로는 그가 말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그녀의 인생에서 처음이다.
“진짜인데… 게다가 그 남자는 매우 아팠어. 그런데 그 키스를 받고 그 병이 깨끗이 나았데.”
“와아, 너도 이런 이야기를 지어낼 줄 아네.”
“그러게. 난 우리 아빠만 그렇게 말을 지어낼 줄 알았는데.”
순간 두 여인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그들도 그것을 인식했는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웃음을 터트린다.
“킥킥…”
“호호호.”
그들의 웃는 모습. 보기 좋았다. 그럴 수밖에. 원래 이들은 친구였다. 둘도 없는 친구. 이제야 옛 마음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래서 보는 우혁으로서는 만족스럽다. 이런 것이 사회화 과정이다. 자신의 친한 친구 둘이 서로 싸우면 화해를 시키는 작업. 흔히 초등, 중고등 과정에서 경험 해 보는 일이다. 이제야 그는 이를 체험하고 있다.
사실 그가 말한 것은 거짓이 아니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은근히 자신의 비밀을 노출한 것인데, 그녀들은 영 믿지 않는다. 이게 진실이라고 하면 아마도 자신을 미친 사람 취급할 지도 모른다.
“아니, 왜 사람 말을 안 믿는 거지? 그럼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라고 하면 나를 미친놈 취급하겠네. 하하하.”
“그야 당연하지, 킥킥.”
“뭐야, 너어… 와, 다시 봤어. 이런 농담도 할 줄 알고…”
그녀들도 알고 있다. 왜 그가 이렇게 말이 많은지. 아마도 어색한 자신들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최우혁이라는 인간이 이렇게 나올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노력을 봐서 마음의 화해를 하기로 했다. 일단은…
“근데 미래는 그 존재를 믿는다며?”
“믿기는 하지. 그런데 믿기 힘들잖아.”
“무슨 말이 그래?”
“존재는 믿지만 사람이 볼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 어떻게 우리 앞에 나타나겠어? 당장 나타나면 실험 대상이 될 텐데…”
결국 어딘가에 존재는 하되 나타나면 그들을 노리는 인간들 때문에 위기가 닥칠 테니 절대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 그것을 듣고 우혁의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자신이 만나는 인어도 마찬가지 일 수도 있다. 그래서 다시 로렐라이 언덕에 가도 그녀를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그 때 노력도 하지 못했다. 수영을 배우지 않아 물속에 들어가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자신도 확신이 없었다. 과연 물 안에 들어가면 자신에게 키스를 했던 인어를 다시 볼 수 있을지에 대한. 언젠가는 다시 가서 꼭 만나고 싶다. 그리고 이유를 묻고 싶다. 자신을 치료해 준 까닭을.
그의 상념을 깬 것은 미래다.
“그러고 보니 너 인어에게 되게 집착한다. 몇 번 인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잖아.”
“응. 난 인어를 좋아하거든… 하하.”
“정말?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건가?”
그녀가 말한 스타일은 무엇일까? 보통 인어를 떠올리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사실 존재 유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인어에 대한 이미지는 섹슈얼한 쪽이 아닐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빛나는 잠시 얼굴을 붉힌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너 야한 여자 좋아해?”
“응? 그건 무슨 소리야?”
“인어는 늘 벗고 다니잖아. 호호호.”
미래는 아예 대 놓고 말을 한다. 어쩔 때는 그녀의 그런 적극적인 성격이 부럽다. 빛나는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적극성을 그녀가 가지고 있다고 늘 생각해 왔다. 하지만 상황이 그런 것이다. 그녀라고 적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그녀의 머리에서 둘만 있을 때 그의 어깨를 풀어준다고 등에 올라탄 일이 생각났다. 그 때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자신이 약간 미친 것 같았다.
“에이, 나 그런 남자 아니야.”
“괜찮아. 남자들이 다 그렇지. 그런 남자 해도 돼. 호호.”
이번에는 그의 얼굴이 붉어진다. 아직 이쪽 방면으로는 순진하다. 심지어 그는 야동도 본 적이 없다. 하긴 그럴 틈이 있었겠는가? 성적 호기심이 없으면 거짓말이지만 어렸을 적 사회화 과정에서 남자들이 그런 야한 것을 접하는 일 순위가 동년배 친구들인데, 그는 그런 게 없었다. 그러니 그런 루트도 알 수 없다. 인터넷 검색으로, 또는 P2P를 통해서도 금세 찾을 수 있는데 시도를 하지 않았으니 접할 수 없을 수밖에.
“그런 이야기 했다고 무슨 남자애가 이렇게 얼굴이 빨개지냐? 호호. 너 키스 해본 적은 있냐?”
“키스? 당연히 있지.”
이 말. 두 여자가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 그들의 표정을 보고 아차 싶었다. 괜히 찔리는 우혁. 과거에 누군가와 키스를 한 게 들켜서 그랬다기보다는 인어 이야기를 알아차렸을까봐 살짝 마음을 졸인 것이다.
그런데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녀들의 입장에서 뜻하지 않은 그의 과거에 놀랐을 뿐이다. 작년까지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그럼 제대로 된 여자 친구를 사귈 수도 없었을 텐데…
역시 빛나는 미지의 존재를 떠 올린다. 그녀가 인어라는 것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그녀의 뇌리에 떠오르고 있는 왕가의 여인.
‘독일에도 공주가 있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다. 그가 한국에 오기 전에 체류했다던 독일. 그러나 독일은 연방공화제이다. 당연히 있을 리가 없다. 거기다가 독일이 아닌 나라들도 다녔다. 그 중에는 영국도 있다. 그러니 왕족을 찾으려면 못 찾을 것도 없지만 그녀가 잘못 짚은 것이다. 그와 공주와는 관련이 없다. 아니 인어공주라고 지칭하는 인어를 만났으니 공주와 관련은 있으려나?
아무튼 이 이야기 이후 그들은 다시 조용해 졌다. 미래도 빛나도 잠재적인 연적이 생겼다는 생각에 골몰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은 동시에 집에서 나갔다. 아무래도 그 때에는 서로 동지 의식이 들었나 보다. 한 사람의 눈짓에 다른 한 사람이 동의를 하며 작별인사를 하고 문을 나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혁. 그의 새 아파트로 이사 온 첫 날 밤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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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