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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143화 예전의 그의 모습

TV에서 두 여자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모른 채 우혁은 수건을 받아들었다. 가희가 가져다 준 수건. 인터뷰를 하기 전에 좀 닦으라는 것이다. 요즘 기자들은 그에게 시간을 잘 주지 않는다. 바로 이렇게 다가오는 사람들. 그 이유는 그가 많이 친절해졌기 때문이다.

“오늘 2위를 하셨습니다. 소감 한 마디 해주십시오.”

“처음에 쳐져서 나중에 따라잡기 힘들었습니다.”

“조이 로덕션 선수는 어떻던가요? 붙어보니 정말 강한 선수였던가요?”

“네.”

여전히 대답은 필요한 말만 하고 있다. 수영을 잘하고 매력적인 얼굴에 말까지 잘하고 성격이 좋다면 신은 참 불공평했을 것이다. 사실 지금만으로 그 불공평함을 느끼는 남자들이 많다. 그나마 이 정도로 답변을 하는 것은 그가 친절해진 이유인데, 어떤 이는 예전처럼 그가 분노도 참지 못하고 흥분도 가끔 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미 오 선수도 한 마디 하시죠.”

“할 말 없습니다.”

“아…”

바로 지금의 지미처럼 말이다. 그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인터뷰를 거절했다. 8위. 그가 거둔 성적이다. 그래도 결선에 올라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일수도, 병묵도 이 자리에 얼마나 올라오고 싶어 했던가? 그런데 8위라는 성적표는 그가 납득하지 못했던지 그는 매우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선수대기실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혁은 과거를 생각한다. 자신이 바로 저랬던 것이다. 돌이켜 보니 부끄럽기도 하다. 이렇게 자신이 맘 놓고 수영을 하며, 세실리아와 함께 있는 이유가 다 팬들 덕분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인터뷰를 통해 성원해주어서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정도는 해도 되었을 텐데…

다른 연예인들이야 가끔 억지로 신비주이인 척 했다지만 그는 그게 아니었다. 말을 하기 싫고 자주 짜증을 내니 나중에는 순빈이가 아예 인터뷰 자체를 차단했다. 그게 신비주의인 것처럼 보였던 셈이다.

하루를 끝내고 호텔에서 모인 선수단. 감독은 영욱이다. 예전에 국가대표 감독을 하던 태형광은 드디어 연맹 부회장이 되었다.

“자, 자.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회인데, 좀 더 좋은 성과를 내야지. 보니까 자유형은 계영에 승산이 있는 것 같다. 의외로 우리 선수층이 탄탄해져서 말이야.”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우혁 뿐만 아니라 일수와, 병묵, 그리고 요즘은 지미까지 나름 라인업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말에 손을 드는 이가 있었다.

“응, 지미.”

“개인 종목에서 우승을 못한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그게 아니라…”

그는 살짝 당황했다. 어렸을 때 호주에서 컸던 그가 매우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지녔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영욱은 자신이 감독이 되어 처음으로 이끄는 이 수영팀에 경직된 분위기를 선사하고 싶지는 않았다. 소통은 그가 중시하는 것. 그래서 항상 팀 미팅을 할 때 하고 싶은 말은 모두 하도록 선수들에게 주문을 했다.

물론 그런 소통 방법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 소통의 역작용도 일어나기는 하다. 모든 선수들이 지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신경도 안 쓰겠다는 것인지 그는 여전히 도발적인 눈으로 영욱을 바라본다.

“여전히 그 성격 못 고치는구나.”

그런데 뒤에서 나오는 목소리. 모두가 그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태원이다. 그는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이곳 호텔 회의실에 등장을 했다. 전 국가대표로서 조언을 부탁한다고 영욱이 그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상황에서 들은 자신의 제자의 목소리. 충분히 영욱을 당황시키는 말이었다. 그래서 노한 목소리, 그리고 엄한 표정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가 오자 지미는 표정을 굳힌다. 그를 유일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맞다. 개인 종목에서 우승할 수 있는 사람, 여기에 없다. 내 말이 틀렸나?”

지미를 향해 말을 하기는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잘 알고 있다. 태원이 말하는 대상이 비단 이 천둥벌거숭이 소년만이 아니라는 것을.

“자, 자. 내 말은 개인 종목에서 우승을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하다. 계영의 확률이 더 높다는 말이었는데, 어쨌든 그 때문에 그동안 맞추었던 호흡을 흐트러트리지 말고 컨디션이 안 좋으면 미리 이야기해라.”

영욱은 오히려 사과까지 한다. 그런 그가 못마땅하다는 듯 태원은 미팅이 끝나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형, 너무 많이 흐물흐물해 지셨수.”

“넌 우혁이랑 같이 생활 안 해봤지?”

“왜요? 걔랑 생활한 게 어땠는데요?”

“지금 지미가 저러는 것은 상대도 안 됐어. 그나마 네가 지미를 통제할 수 있잖아. 그 때 우혁이는 아무도 통제하지 못했다. 그 놈이 수영을 하지 않으면 얼굴도 잘생겼으니 뭔들 못하겠니? 그래서 연맹에서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긴 했지만…”

“그랬군요. 그렇게 싸가지 없던 놈인데 많이 변했네요, 그럼.”

“윽박질렀다면 오히려 안 바뀌었을 수도 있어. 대화를 많이 시도해봤지. 되더라. 그 놈 사실 어렸을 때 세상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던 놈이야. 그 놈이 원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지미도 마찬가지잖아. 딱 보니까 알겠더라. 지 엄마 이혼하고 어쩔 수 없이 이 나라에 와서 혼혈로서 수영하기가 쉬웠겠냐?”

“그… 그런가요?”

“그래, 임마. 지금이야 네가 올림픽이든 세계 선수권 대회든 찬란한 금자탑을 세워서 그 명예빨로 지미를 다룰 수는 있어도, 나중에 걔가 금메달이라도 따봐라. 당장 너 팽 당한다.”

“서… 설마요.”

“뭐, 거기까지는 오버고, 그 때 돼서 말 잘 안 듣는다는 이야기지. 그런데 우혁이 봐라. 원체 싸가지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은 그 말이 생각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그의 말마따나 우혁은 워낙 예전의 모습이 강렬했기에 동료들마저도 그의 개과천선에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미의 돌출행동들을 눈감아 준다. 어쩌면 나중에 그도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지금도 그렇다. S 생명 선수들끼리 음료수를 마시며 가볍게 대화하는 소재. 바로 그 싸가지 없는 어린 선수다.

“꼭 예전에 누구 보는 것 같지 않아?”

“형, 에이, 우혁이 형이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어? 나 우혁이라고 한 적 없는데, 딱 알아채네. 하하하.”

찬규의 그 말을 듣고서 우혁은 쓴 웃음을 짓는다. 그리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그에게 이제 소중한 동료들이다. 인간관계를 더 넓히지 못한 그로서는 지금의 동료가 최고의 친구들로 남게 되었다.

“오라버니, 우리 이번 대회 끝나고 MT 가요.”

“MT?”

“네. 단합을 위해서 좀 필요하죠. 제가 입학한 대학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가던데요?”

대학생활을 해보지 못한 우혁.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대학생들이다. 물론 적을 두기만 하고 정말 필요한 과목이 아닌 한 교수들이 그들을 호출하지 않기에 점수를 그냥 받는 가짜 대학생들이기는 하지만. 그 중에 가희는 진짜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다. 모두가 그녀를 여왕처럼 떠받드는데 얼마나 좋겠는가?

“이렇게 합숙하는 것 자체가 MT야. 무슨 우리가 MT가 필요하니?”

“오빠한테 이야기한 것 아니니까 빠져줄래?”

“아이고, 무서워라. 아이고.”

그녀의 째려보는 눈을 받고 김훈이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몸을 움츠린다. 그것을 보고 모두들 웃음을 보인다. 빛나도, 일수도, 그리고 우혁도. 대회 둘째 날을 앞둔 선수단. 화기애애하다. 단 한명을 제외하고. 하지만 받아들인다. 예전의 그 한명이었던 사람의 예방주사를 맞았기에.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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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ash! - Splash-1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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