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20회 떠나는 날
수영 선수가 된다는 것. 마음껏 운동을 할 수 있는 상태란? 돈과 직결되어 있다. 물론 우혁은 운이 좋은 경우다. 각 실업팀이나 또는 관청에서 지원하는 수영선수들도 있지만, 이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비인기 종목은 언제 해체 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일단 수영연맹에서 지원을 결정했다.
사실 수영선수가 기록을 세우려면 과학적 훈련방법이 필요하고 국가 대표 선수들이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렇게 모여 훈련을 할 수밖에 없다. 기록 경쟁은 필수이기 때문에 연맹에서는 국가 대표들과 잠재력이 유망한 선수들에게 투자를 한다. 따라서 그 안에 들었다는 것은 일단 실력 및 잠재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대회에 입상하지 못하면 이들 역시 불안에 떨어야 한다. 언제 연맹에서 자신을 버릴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기존의 소속팀으로 돌아가게 된다. 결국 국가 대표들을 훈련시키는 훈련장과는 시설과 경쟁자들이 다르기 때문에 좀처럼 향상되지 않는 자신의 기록과 외로운 싸움을 하게 된다. 한 번 밀려나면 끝이다. 그 자리는 새로운 누군가가 채우기 때문에.
미래는 눈에 눈물이 가득 차 있다. 방금 결정된 사항. 소속팀으로 돌아가라는 감독의 지시. 이번 성적 한 번만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연맹의 처사에 배신감마저 느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이도 많고 이제 잠재력에 한계가 보인다는 그의 말은 냉정하지만 맞을 수도 있는 말이었다.
“어? 너 왜 울어?”
그렇게 눈물을 닦고 오는 그녀를 향해 우혁이 말을 붙였다.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차마 말을 할 수가 없다. 여기서 밀려난다는 말은 국가대표에서 밀려난다는 말과 같고, 다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야 재입성할 수 있다. 그게 요원한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와 같은 장소에서 훈련을 하지 못한다. 그녀는 못내 그것이 아쉽다.
“무슨 일 있어? 혼난 거야?”
그답지 않게 그녀에게 물어보는 것을 보면 이제 좀 사회성이 좋아진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물어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것인가? 지난 휴식기간 동안 둘은 많이 만났다. 영화도 같이 보고, 여기 저기 놀러 다닐 곳은 아주 많았다. 그가 아팠을 때 직접 자신의 발로 다닌 곳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늘 신기해했다. 부모님과 같이 온 곳이라도 늘 새로웠다. 그래서 더 밀접해진 사이다. 물론 그녀의 입장에서는 애정을 품었고, 그의 입장에서는 우정일 수도 있지만.
“아니, 안 혼났어.”
“그런데 왜 울어? 무슨 일 있어? 지금도 봐봐. 눈물을 흘리고 있잖아…”
그녀는 그가 그렇게 물어보자 더 폭포수 같은 눈물을 쏟아 내린다. 멀리서 이 모습을 보는 빛나. 아무리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연적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절친이다. 그녀는 예감했다.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친구가 이제 떠나게 될 것 같다는.
“미래야, 혹시 떠나는 거니? 그런 거야?”
“떠나? 미래가? 왜?”
미래를 보며 우혁이 또한 큰 소리를 낸다. 그런데 빛나는 그녀의 눈빛을 보고 조금 움찔한다. 아쉬운 마음에 물어본 것인데 미래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가 보다. 자신이 떠나고 난 이 자리. 그 자리를 차지할 사람에 대해서 적의의 눈빛을 가지고 있다.
사실 그의 옆자리를 빛나가 차지할 것 같은 불안감은 같은 훈련장에 있어도 가득했다. 자신이 보기에 그녀는 예뻤고, 그리고 머리도 더 잘 쓰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수영을 잘했으니 그가 조언을 더 얻을 수 있는 사람도 다름 아닌 그녀였다.
그렇기에 눈물이 가득 담긴 그 눈이 빛나를 날카롭게 바라보고 있다. 그것을 그녀가 왜 못 느끼겠는가? 그녀 도한 서운하고 섭섭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녀가 나가는 것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를 차지할 기회라고 여긴 것은 아닌데 말이다.
“응. 하지만 나 다시 돌아올 거야. 반드시.”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네가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
빛나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진심을 전했다. 이제 알아주든 말든 어쩔 수 없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진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절친으로서 지금까지 사귀었던 그들의 우정은 확실히 금이 간 상태이다.
“가다니? 지난번 대회에서 입상을 못해서 그런 거야? 정말 그런 거야?”
우혁의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그녀의 고갯짓에 매우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어쨌든 그의 인생에서 첫 번째 친구이다. 신기하게도 동성 친구는 단 한 명도 없다. 빛나와 미래는 한 남자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라서 이제 친구라는 그 단어에 균열이 가고 있지만, 그는 아예 처음부터 균열이 간 인간관계를 남자들과 맺고 있다. 하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여자들과 코칭스태프와 심지어 언론 및 대중의 관심까지 끌고 있다. 당연히 질투와 시기의 대상일 수밖에.
“나도 나갈래. 나가야겠어.”
“무슨 소리야?”
그의 돌발 발언. 그래서 빛나는 깜짝 놀란다. 미래 역시 마찬가지다. 흐르던 눈물이 멈출 만큼. 자신이 나간다고 같이 나가겠다는 그의 말. 매우 감정적이다. 원래 그런 성격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자신을 위해서 그런 말을 해줄 줄 몰랐다.
“그러지 마. 넌 여기서 반드시 성공해야 해. 그래서 내 눈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줘.”
“아니, 굳이 여기서 증명할 필요는 없잖아. 나가서 같이 훈련하자. 난 이곳 밖에서 훈련해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고.”
사실 그럴 수도 있다. 지난번에 입상한 것. 거의 순수하게 그의 노력 덕분이다. 대표 선수들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 및 스케줄. 그는 그것에 제외되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 때에는 그에게 투자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 트레이너들이 각 선수들에게 붙었고, 각종 과학 장비들이 그들을 위해 동원된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니었다. 유소년들과 같이 훈련을 했던 게 전부였고, 그나마 그것도 영욱이 부탁을 해서였다.
“그래, 넌 밖에서 훈련해도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여기서 훈련하는 게 더 나을 거야. 원래도 잘할 것 같지만 우리나라에서 최고가 되는 게 꿈이 아니잖아. 난 네가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어. 세계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말. 올림픽 금메달을 따겠다며…”
“그… 그건…”
그는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 그런 말을 했다. 이번 휴가 기간에. 자신의 목표를 묻는 그녀에게 말이다. 늦게 배워서 최고가 되어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겠다는 것. 그리고 금메달을 따려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로렐라이 언덕에 가서 강물에 던지려고 했다. 자신을 걷게 해주고 특별한 능력을 부여해준 인어에게 선물을 주려는 마음에서 나온 결심이다.
“그러려면 여기서 해야 해. 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기가 바로 그 최적의 장소야. 나 때문에 나와서 그것을 이루지 못한다면 난 아마 죄책감을 갖게 될 거야. 네가 달리는 길을 가로 막고 싶지는 않아. 그런 민폐장이가 되려고 널 이곳에 끌고 온 게 아니니까…”
이제 눈물을 멈추고 하는 그녀의 말. 충분히 설득적이다. 그리고 그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히 감동적이다. 그녀가 그의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는 계기.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아직 그는 감정을 전달하고 받아들이는 데 서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누군가가 자신을 위한다는 마음이 이 정도라면 눈치 채고도 남는다.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도 고맙다.
“여기 훈련장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고 나를 잊을 건 아니지? 오늘 훈련이 끝나는 저녁에도, 내일 끝나고도, 그리고 주말에도 우리 볼 수 있는 거 아냐? 그러니까 넌 그 자리에 있어. 이제는 내가 여기에 들어오기 위해서 물에 빠질 테니… 무슨 소리인지 알지?”
우혁은 특히 그녀가 마지막에 무슨 말을 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여기 들어오기 위해서 영욱 앞에서 한 행동. 물속에 빠져서 호흡을 참았던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일종의 비유법이다. 필사적으로 다시 들어온다는.
“그래. 알았어. 믿을게. 하지만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
“당연하지. 절대 그러지 않아야지. 네 첫 친구잖아. 내가…”
이제는 웃는다. 그녀가 말이다. 물론 눈물을 눈에 가득 채우고. 그 때문에 마음이 찌르르 했다. 빛나도 마찬가지다. 절친한 친구 한명이 나간다고 하니 그녀 역시 침울해졌다. 그를 두고 경쟁하는 것. 지금 이 순간은 전혀 그런 맘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떠났다. 그리고 또 하나.
그날 저녁 시대가 낳은 대한민국의 슈퍼스타가 드디어 은퇴를 선언했다. 모두가 예상은 했지만 사람들은 드디어 세계 수영을 호령할 선수 하나가 없음을 이제야 인식했다. 기자회견을 하는 그의 눈시울이 젖을 때마다 사람들의 마음 또한 울적해졌다. 스포츠 스타는 시대의 영웅. 사람들은 떠나보내는 영웅 앞에서 늘 이렇게 이별을 아쉬워한다.
그 뿐이 아니다. 과연 이제 시상대에서 울려 퍼지는 애국가를 수영 경기장에서 들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아마도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다. 아무리 제 2의 박태원이라는 말을 여기 저기 유망주들에게 붙여 놓아도 그들은 안다. 태극기가 올라가는 장면을 보기는 어려울 거라고.
그래서 더 슬픈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은퇴를 더 늦춘 것이다. 하지만 아름답게 퇴장을 하게 해 줘야 한다. 그 누가 떠나는 모습이 아름답기 바라지 않겠는가? 그나마 조금 늦은 감이 있다. 그의 나이 30세. 수영 선수로서는 황혼기이다.
한국을 짊어졌기에 이렇게 늦어졌다. 그의 은퇴가. 그 누군가가 그의 자리를 속 시원하게 메워줄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더욱 좋았을 것을…
암담한 대한민국의 수영계. 누군가 희망이 될 사람이 나와 주어야 한다. 국민들의 염원. 박태원의 염원. 아마도 그런 날이 온다면 그는 자신의 뒤를 이어줄 그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을 할 것이다.
- 고맙다, 후배여…
김미래가 훈련장을 떠난 날. 그리고 박태원이 수영선수라는 직업에서 떠난 날. 그 날은 그렇게 기억이 될 것이다.
============================ 작품 후기 ============================
마지막 부분을 쓰는 데 왜 이렇게 감정이 올라오는지.
글을 쓰기 위해 그 누군가의 기록을 참 많이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기사도. 그의 이야기도.
문제는 여기 있는 독자님의 댓글에도 보듯이 그의 후계자가 없는 현실. 향후 누군가가 언제 그의 자리를 대체하게 될까요?
그래서 마지막은 제 심정을 써 보았습니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