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4화 바다 멀리, 강 깊숙이
서울로 가는 길. 빛나가 운전을 하고 옆 좌석에는 미래가 타고 있다. 당연히 뒤에는 우혁이 있다. 창밖을 보는 시크한 모습에 둘은 차 안의 거울로 흘끔 그를 자꾸 쳐다본다. 아무리 봐도 매력적인 외모다.
조각미남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흔한 미남은 TV를 틀면 어디서나 본다. 그러나 그는 단지 그런 말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외모다. 타고난 차가움. 접근할 수 없는 불같은 눈빛. 냉온탕을 함께 가지고 있다. 마력적이라고 해야 하나?
“어디 사세요?”
“자양동.”
빛나는 그의 말을 듣고 미래를 본다. 그녀 역시 자신을 보고 있다. 서울에 산다고 모든 곳을 알 수는 없다. 특히 그들이 살고 있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더욱 생소하다.
“목동하고는 많이 떨어져 있어요?”
“모르겠어.”
그의 짧은 말. 약간 불쾌하다. 특히 빛나의 경우,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얼짱이라며 높이 받들었었다. 당연히 그의 말투가 점점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이렇게 태워주는데 고맙다는 말도 없다.
“몇 살 이세요?”
“스물.”
“어? 그럼 우리랑 동갑이네. 나도 말 놓을게. 호호.”
미래는 빛나의 표정을 살피고 자신이 대신 나이를 물어 보았다. 오랫동안 그녀와 친구로 지냈기에 표정만 봐도 그녀의 기분 상태를 알 수 있다. 그래서 가끔 그녀가 대신해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그가 자신들과 마찬가지의 나이라고 한다. 갑자기 친근감이 들었다. 물론 외모는 접근하기 힘든 신비함을 가졌지만 어쨌든 동질감 하나를 발견했고, 붙임성이 좋은 미래가 드디어 말을 트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에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가 한국을 떠났을 때 그는 걷지 못했다. 하지만 돌아왔을 때는 다르다. 당당하게 자신의 두 발로 걷고 있었다. 한국을 떠날 때 사람들의 눈빛은 동정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돌아왔을 때는 달랐다. 그를 보고 엄청나게 관심을 가졌다. 동정이 아닌 관심의 눈빛으로.
그는 갑자기 그게 싫어졌다. 간사한 인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모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인간 세상에 환멸을 느낀다. 아팠을 때 많이 삐뚤어진 자아. 그게 지금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자, 이것 봐봐…”
갑자기 미래가 스마트폰을 꺼내서 화면을 우혁에게 들이댄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그가 자신의 눈앞에 무언가가 다가오니 당연히 시선을 둘 수밖에 없다. 자세히 보니 자신의 얼굴이다. 여러 개의 사진.
“이게 뭐지?”
“너 검색어 순위가 1위야. 태원오빠 은퇴가 2위. 대단해. 갑작스럽게 올라와서 1위를 점령했어.”
박태원 선수의 은퇴.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대중들의 관심이 검색어 순위를 올려놓았다. 그러나 1위의 검색어는 ‘인천공항 얼짱남’이었다.
그는 다시 창밖을 내다본다. 별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얼짱이라고 하든, 자신의 외모를 보며 그 어떤 관심을 내보이든지 간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관심 없어?”
“응.”
“그래?”
미래는 그가 반응이 없자 약간 힘이 빠진 표정이다. 밝은 그녀의 얼굴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그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야? 나는 김미래.”
그는 잠시 망설였다. 굳이 이름을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 다시 보지 않을 사이 같은데.
“최우혁.”
하지만 그렇기에 가르쳐 주었다. 어차피 자신을 태워주었으니 그 정도 적선은 괜찮다고 생각을 했는지는 모른다.
“스무 살 우혁이. 오늘 만난 연예인 급 외모.”
그녀는 가지고 있는 핸드폰에 무언가를 적었다. 적으면서 말을 하는 것은 그녀의 습관이다. 우혁은 잠시 호기심이 생겼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것. 그런 것이야 신경을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자신의 퉁명스러움에도 그녀는 여전히 밝았다. 신기했다. 보통 이러면 떨어져 나가는데… 아니면 화를 내거나.
그가 휠체어를 타고 다녔을 때 간병인들도 그랬다.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그의 곁에서 얼마 못 버티다가 결국은 떨어져 나갔다. 그래서 그는 항상 사람들을 만날 때 이 사람이 얼마나 오래 버텨 있을까 실험을 하곤 했다. 물론 지금은 필요가 없다. 그녀들은 곧 헤어질 사람들이니 말이다.
“자, 전화 번호 적어 봐.”
그런데 그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그녀가 이제 자신의 전화번호를 요구하는 것이다. 티 없이 맑은 모습으로. 그 얼굴에 대고 냉정하게 말을 할 수 있을까?
“싫은데. 내가 왜 그래야 하지?”
할 수 있다. 그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는. 그래서 미래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급하게 어렸다. 그것은 빛나도 마찬가지다. 은근히 그의 전화번호를 따는 친구의 시도에 속으로 기뻐했는데…
“나중에 네가 유명해지면 자랑하려고 했지. 내가 전화번호 알고 있다고… 그냥 그것 때문이야. 불쾌했다면 미안해…”
“넌 무슨 사과까지 하고 그러니? 우리가 태워줬으니까 그 정도야 할 수 있는 거잖아.”
미래가 약간 의기소침해 하자 오히려 빛나가 그녀를 나무라는 말투를 보였다. 그녀에게 하고 있는 말이지만 우혁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내용. 요컨대 얻어 타는 주제에 콧대가 높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혁이 유명해지다니? 미래는 그가 나중에 얼굴로 먹고 사는 유명인이 될 것만 같았나 보다. 이런 사람은 기획사 같은 데서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어느 기획사가 비밀리에 키우고 있는 가수나 연기자일 수도 있다.
“그럼 주소나 불러줘. 집에 가려면 네비게이션 찍어야 하잖아.”
이건 무슨 수작인가? 집 주소를 따려는 수작이다. 의기소침해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인가 보다. 물론 우혁이는 그녀의 이 얕은 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냥 서울 아무 데나 내려줘. 지하철 타고 가면 되니까…”
거의 접근 금지명령을 내리는 것 같았다. 나에게 관심을 갖지 말라고. 온 몸에 가시를 두른 모양이다. 누가 오면 찌르겠다는 표현법.
잠시 이들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우혁은 다시 창밖을 바라본다. 다리를 달리고 있는 차. 바다가 보인다. 그는 문득 자신을 살려준 인어가 생각이 났다. 보고 싶었다. 그녀야 말로 진정한 은인 아닌가?
“수영을 배우면 바다를 가로지를 수 있나?”
갑자기 그가 질문을 했다. 창밖을 보면서. 물론 스스로 하는 혼잣말이다. 그러나 빛나와 미래는 수영선수다. 공교롭게도 그가 내뱉은 말이 그들에게는 질문이 될 수 있었다.
“음, 어느 정도까지는 할 수 있겠지. 왜? 수영 가르쳐 줄까?”
미래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여전사인가? 들이대는 게 심상치 않다. 오늘 처음 보는 사이인데 반해 버린 것 같은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고 빛나가 눈살을 찌푸린다. 자존심을 팽개친 친구의 모습에 약간 화가 나는 것이다.
“난 수영을 못해. 지금 배우면 언젠가는 바다를 가로지를 수 있을까?”
“그… 그럼. 당연하지.”
갑자기 대단히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 시작하는 미래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고 강렬한 눈빛을 보이는 우혁. 배우고 싶어졌다. 수영이.
“그럼 깊은 곳까지도 수영할 수 있을까?”
“잠수 말이야?”
“응. 잠수.”
“물론이지. 그런데 얼마나 깊이?”
“몰라. 아주 깊이…”
“잠수복 입고는 가능할 거야. 산소 호흡기도 붙이면 되니… 수압 때문에 많이는 못 들어가도 어쨌든 수영을 배우면 가능한 일이야. 관심 있어? 내가 알려 줄까?”
“우리 훈련도 바빠. 그만 해, 미래야.”
드디어 빛나가 나섰다. 그녀는 미래가 자꾸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게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황당한 질문한 하는 우혁이 이제는 좀 이상해 보였다.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느니 깊은 곳까지 수영을 하고 싶다느니, 이런 질문들을 도대체 왜 하는 것일까?
혹시 자신과 미래가 수영선수인줄 알고 유혹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저런 마력의 얼굴을 가진 사내. 수영도 못한다는 것. 좀 냄새가 났다. 얼굴로 유혹하고 얻을 것을 다 얻은 뒤에 차버릴 수도 있다. 그럼 얼마나 불쌍해지는가? 자신의 친구가…
“잠시 휴식 기간 있잖아. 그 때 좀 알려주지 뭐. 호호.”
맑게 웃는 미래. 그리고 그녀를 보는 우혁. 이들 둘의 관계를 우려하는 빛나. 전설이 될 이야기. 여기서 시작이 된다.
============================ 작품 후기 ============================
모든 격려의 댓글 고맙습니다. 전작이 뜻밖의 인기를 얻어 이렇게 몇 회 연재도 안 했는데 벌써 많은 선작과 댓글, 그리고 조회가 있었군요. 기쁘면서도 부담감이 팍팍 오네요. 만족을 시켜드려야 하는데 말입니다.
댓글 중에서 특히 개고생님의 에이전시 이야기는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뭔가 빛을 본 느낌입니다. 이 후기를 빌어 님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떨어질지도 모르는 소재의 한계성에서 하나를 제시를 해주시니 머릿속이 더 밝아 졌습니다.
이따가 또 연참하겠습니다. 즐거운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