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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화 사람을 알아가다

대회가 3일째를 맞이했다. 국가 대표 선발을 위한 선수들의 투혼이 느껴진다. 이미 여성부 자유형에서는 빛나가 압도적이다. 당분간 그녀의 독주가 예상되는 가운데 그녀를 뒤쫓는 라이벌들의 힘찬 손짓이 얼마나 그녀를 위협할지가 관건이다.

남성부는 사실 춘추전국 시대다. 100미터와 200미터는 일수가 2관왕으로 거두었다. 100미터에서 준우승에 머물렀던 우혁은 200미터에서는 다시 간발의 차로 일수에게 우승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에게 남은 경기는 400미터와 800미터, 그리고 마지막으로 1500미터이다.

그가 이번 대회에서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프리 스타일 이외의 종목. 그리고 기록이 없는 50미터다. 또 하나 있다. 바로 계영. 아무리 국가 대표 상비군이라지만 각자 소속팀이 있다. 일수는 성문고에 소속되어 있으며, 빛나는 서울시청이다. 다들 소속팀의 선수들이 구성이 되어 있어 계영 및 혼계영에 참여하고 있다.

팀워크가 중요한 단체 경기. 이들은 가끔 소속팀에 가서 연습을 하고 왔었다. 그것을 보는 우혁의 눈. 이제 그도 동료의 소중함을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다. 아직 겉으로는 표현하지는 않지만 같이 구슬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몰랐단 말인가?

“쟤 이름은 뭐야?”

“너 정말 대단하다. 4개월을 같이 수영했는데… 공호성이잖아. 고등학교 1학년. 배영 기대주.”

“그래?”

이제야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변 사람의 이름도 몰랐다. 그가 아는 사람은 일수, 그리고 빛나. 그리고 나름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김훈과 찬규 정도. 적 아니면 친구의 관계 정립을 하는 게 그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이었다. 그 이외의 사람들에게 주는 것은 무관심.

“그럼 쟤는?”

“걔는 이설영. 나 다음으로 기록이 좋은 애야. 고등학교 3학년.”

“아아, 그렇군.”

여자들에 대해서 물을 때에는 약간 경계심을 갖고 대답하는 빛나.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이것이 단순한 호기심이라는 것을. 하지만 늘 그의 주변에는 자신만이 존재하고 싶다. 그의 변화. 주변인에 대한 인식.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남성에게만 시선을 돌리기를 바랐다. 자신도 미래도 거의 금족령에 가까운 선언을 들었다. 이 상황에서 그에게 들러붙는 여자들은 절대 없어야 했다. 혹시 아는가? 그의 눈을 확 돌게 만드는 이상형이라도 나타날지…

“알았다. 가끔 물어볼게.”

“뭐야? 이게 다야?”

“하루에 두 명도 벅차. 방금 이야기 들었지만 과연 끝까지 기억이 날까? 그리고 버스에 타야지…”

버스에 타는 게 무슨 큰일인가? 그렇다. 소녀 팬들 덕분이다. 대회 3일째는 토요일. 학교에 가지 않으니 모든 학생들에게 얼마나 신나는 날인가? 그리고 자신들이 사랑하는 대상의 경기가 있다면 더욱더 신나는 날이다. 그들이 지금 훈련장에 운집했다. 약 천 명 이상으로 보인다. 그들을 뚫고 나가려면 단단히 각오를 해야 했다.

“오빠다!”

“우혁 오빠! 저예요, 미선이!”

“오빠아아아아!”

드디어 출발을 했다. 매니저의 호위를 받으며 가는 그의 귀에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대는 소녀들. 그들을 뚫고 가는 데 매니저뿐만 아니라 다른 코칭스태프도 동원이 되었다. 가끔 있는 일이다. 이 귀찮은 진풍경이.

“박빛나 꺼져라!”

“오빠에게서 떨어져!”

가끔 이런 소리도 나온다. 그녀는 그와 가까운 유일한 여자 선수. 그들의 눈에 둘의 거리가 붙으면 바로 경계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빛나는 도도한 표정으로 그 모든 소리를 무시해 준다. 겨우 올라탄 그녀. 그 뒤에 우혁이는 버스 앞에서 손을 한 번 흔들어 주었다.

“캬아아아악!”

매니저가 시킨 일이다. 이미지 관리. 그래야 나중에 좋은 일이 생긴다고 충고를 했다. 그 좋은 일이란 무엇일까? 현재 AK 스포츠는 S 생명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1인 팀이 아닌 정식으로 다른 선수들을 받아들여달라고. 우혁이 부탁한 것이다. 자신에 대한 후원금. 그것을 차라리 팀을 만드는 데 투자를 해달라고. 이제야 그는 깨달았다. 사회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버스에 올라탄 우혁. 자신을 째려보는 김훈과 찬규의 눈빛을 뒤로하고 일수의 옆에 앉았다. 요즘 둘은 부쩍 친해졌다. 선의의 경쟁. 그 참맛을 느끼고 있다. 둘에게 플러스가 되는 일이다.

“오늘 400미터도 제가 가져갑니다.”

“그러든지.”

“어? 반응이 왜 이렇죠?”

“가져갈 수 있다면 가져가보라는 뜻인데…”

“크으…”

버스는 호텔을 떠나 대회장으로 출발을 했다. 이번에 광주에서 열리는 국가대표 선발전. 그래도 상비군이라 대우가 나쁘지는 않았다. 호텔에서 숙박을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물론 그로서는 김훈과 찬규, 그들 둘과 같은 방을 썼다. 그거 하나 빼고는 나쁘지 않았다.

광주는 세계 선수권 대회를 이미 유치했다. 2년 후에 이곳에서 세계의 난다 긴다 하는 많은 수영의 강자들이 실력을 겨룰 것이다. 국내에서 유치한 대회에서 한국 수영 선수가 무관으로 남는다면 참 창피한 일이다. 그래서 연맹은 박태원에게 부탁을 했었다. 2년만 더 뛰어달라고.

아름답게 퇴장하고자 하는 그에게 필요할 때는 머리를 숙였던 그들. 그러나 이것도 벌써 몇 번째다. 그가 출전한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이 몇 개이던가? 상대적으로 국민 관심이 적은 세계 선수권 대회가 국내에서 유치된다는 것만으로 은퇴를 늦출 생각은 없었다.

지금 연맹은 당장 내년에 열릴 아시안 게임과 그 이후의 국내에서 개최한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입상할 선수들의 부재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이번 동아시아 오픈 챔피언쉽부터 문제다. 한국 선수들 중에 유망주들은 있지만 단지 그 뿐이다. 대회 우승을 확신시킬만한 인재는 단연코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국가 대표 선발전에 거는 기대가 크다. 아니 커지고 있다. 일수와 우혁의 경쟁. 기록은 나아지고 있다. 빛나의 분전. 어쩌면 남자 수영계에서 몰고 올 바람을 그녀가 바통 터치 받아서 무언가를 해줄지도 몰랐다. 대회장에 도착한 버스 앞에서 연맹 임원들이 모여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나마 주차장이 통제되어 우혁의 소녀 팬들은 차단이 되었다. 원래 이런 경우는 없었지만 특별히 이번 대회부터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다행히 그들도 바뀌려는가? 그럴 수밖에 없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대충 인사를 하고 가는 우혁. 역시 그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빛은 약간의 불쾌감이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참 싸가지가 없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는가? 좋아지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인사도 잘하지 않았다. 버릇이 없다기보다는 자신 이외의 것에 무감각했으니…

“우혁아, 다시 말하지만 네가 상비군에 낄 수 없었을 때 허락을 해주신 분들이야. 최대한 예의를 갖춰.”

그들을 다 지나치자 영욱이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우혁. 그도 잘 알고 있다. 물론 그가 원해서 상비군에 들어 온 것은 아니다. 미래에 의해 엉겁결에 끌려 왔고, 그녀는 이미 나갔다. 그래도 지금은 자신에게 목표가 생기게 해준 소중한 곳이다. 그러니 코치의 말이 그를 가끔 일깨워주고 있다.

영욱이 그에게 말한 이유는 다름 아닌 그를 위해서다. 연맹과 척을 져서는 안 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 결국 아쉬울 때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 날을 위해서 어느 정도 저들이 내민 손을 잡아 주어야만 한다. 하지만 사회성이 부족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잘 형성하지 못하는 우혁에게 이런 식으로나마 가끔 깨우치게 하는 노력. 역시 그는 좋은 코치를 만났다. 인생에서 왜 좋은 멘토가 있어야 하는지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드디어 3일째 대회가 시작이 되었다. 400미터. 기록에 의해 다시 예선이 열리고 이제는 가볍게 통과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항상 그렇지만 결선에서는 강자들이 포진되어 있다. 일반부에서야 하향세인 선수들과의 경쟁으로 지난번 대회에서 쉽게 우승을 걸머쥐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직 우승 타이틀을 하나도 가져 오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살인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불과 4개월의 연습만으로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수영선수들을 뛰어 넘어 준우승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을 모자라다고 생각하다니. 무엇이 그를 이토록 승부욕에 불타도록 만들었을까?

‘지난 20년. 아무것도 해보지 못했다…’

스타트대에 선 그의 머릿속에 든 상념. 바로 이것이다. 지금까지 두 발로 자신의 힘으로 해 본 것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새롭게 주어진 생명과도 같은 회복. 그래서 해보고 싶다. 이루고 싶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만약 신이 이것을 주셨다면 고맙게 쓰기 위해서라도 주어진 일이 최선을 다하리라.

지금 그에게 주어진 일은 400미터 결승. 그리고 그날 그는 우승을 맛본다. 3분 43초 02. 그가 세운 기록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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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ash! - Splash-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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