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72화 돈암동 국제 수영장 개관
인천공항의 취재열기가 달아올랐다. 초청대회. 세계 각국의 수영 강자들을 S 생명이 초청하였다. 다만 대회가 비공인으로 남게 된다는 점에서 랭킹의 꼭짓점들은 불참을 선언했다. 그래도 세계랭킹 30위권 내의 다수가 참석하니 기자들이 몰려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송을 보고 있는 우혁. 그의 귀에 영욱과 순빈의 이야기가 들렸다. 누가 몇 분 몇 초로 몇 미터 기록을 세웠는지? 세계 랭킹 몇 위에 국적과 이름이 무엇인지? 그도 잘 알고 있다. 비록 집에 컴퓨터는 없지만 스마트폰이라는 훌륭한 문명의 이기가 있다.
“안타깝게도 1500미터 세계 랭킹 1, 2위가 불참을 했다. 3위는 너도 알다시피 중국의 장치앙린이다.”
지금 입국장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선수 중에 하나가 바로 그다. 1500미터 및 장거리의 강자. 중국의 별. 장치앙린. 190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팔 다리가 길다. 훌륭한 체격과 노력은 그를 아시아에서 1인자로 만들었다.
지금도 인터뷰하는 내용을 보니 라이벌로 세계 랭킹 4위인 자국 선수와, 5위인 이탈리아 선수만을 의식하고 있다. 사실 우혁은 30위 이내에 들지 못했다. 작년에 동아시아 오픈 챔피언쉽에서 한 번 우승한 걸로는 큰 점수를 얻지 못했다.
“그래도 아시아에서 우승했는데,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네요.”
“저게 의식한다는 거예요. 일부러 저러는 겁니다. 원래 저 선수 성향이 저렇습니다.”
순빈의 말에 대답은 영욱이 했다. 오후 훈련이 끝나고 오늘은 우혁의 집에서 이들 셋이 모였다. 수영장에서 하는 훈련만이 다가 아니다. 정보 취합, 그리고 이미지 트레이닝. 그래서 가끔 이렇게 셋이 한 집에 모이기도 한다.
“최우혁 선수는요? 한국의 최우혁 선수는 신경이 안 쓰이시나요?”
한 기자가 장치앙린에게 묻자 그는 약간 건방진 웃음을 지었다. 스물여섯의 나이. 우혁과는 제법 나이차가 난다. 물론 실력차도 엄연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자존심이 상했나보다. 그에게 질문한 그 기자가 말이다. 남의 나라에 입국해서 그 나라의 대표선수를 언급도 하지 않으니.
“박태원이 은퇴하고 난 후 한국에서 저의 적수는 아직 없습니다. 그리고 최우혁 선수의 경기 장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말을 못 하겠네요.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받겠습니다. 그럼.”
전 국민이 아마 이 방송을 보았다면 분노에 치를 떨 것이다. 자존심. 그는 한국 수영 선수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고 있다. 우혁도 눈에 힘을 주고 있다. 다소 충동적인 그는 더욱 감정 통제가 힘들다.
“너무 말리지 마라. 원래 좀 저렇다. 태원이를 많이도 자극했지만 결국 통하지 않았었지. 물론 최근에는 항상 저 놈이 이겼지만. 세월에는 장사가 없으니 말이야…”
우혁에게 충고를 하기는 하지만 그 역시도 화가 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박태원이 진 것까지 언급을 했다.
“정말 이기고 싶네요. 정말…”
“이런 말 너에게 미안하지만, 지금은 무리야. 현실적으로 세계 랭커들이 많이 왔으니 예선 통과를 목표로 하자. 9월에 아시안 게임이 있으니 그 때 이기자.”
“그 때까지 못 참을 것 같아요. 약간 화가 나요.”
“참으라니까. 너 벌써 말리고 있는 거야. 그러다가 무리하게 훈련하고, 네 페이스를 잃게 되면 저 놈이 원하는 대로 될 거야, 아마.”
영욱은 자신의 제자를 어떻게 하면 마인드 컨트롤 시킬지 곰곰이 생각했다. 본인의 몫이기는 하지만 옆에 있는 스승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기는 한다.
“우혁아, 수영장 가자.”
“수영장이요?”
“완공은 다 되었다니, 가서 구경이나 하고 오자. 어때?”
S 생명에서 지은 수영장. 앞으로 유료 관람을 목표로 지었다고 한다. 관중 친화적이며 동시에 선수 친화적이라고도 한다. 아마 아시아에서 가장 멋진 수영장이라고 하는데 완공이 되었다면 우혁도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을 것이다. 그래서 영욱은 화제를 돌렸다.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제자.
잠시 후 이들은 돈암동에 있는 새로 지은 수영장에 도착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실내에 들어가 보니 공간 활용을 잘했는지 결코 작지 않았다. 관중석은 3,700명이 들어올 수 있다고 한다. 유료화를 한다고 하니 관람 요금이 얼마일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이번 대회는 흥행할 것 같았다. 장치앙린이 불을 질러놨으니 아마도 국민들의 관심이 작지는 않을 것이다.
“이야, 휘황찬란하네요.”
순빈은 수영장의 불을 키자 그 규모에 놀란다. 관리를 하고 있는 직원은 그 말을 듣고 만족한다는 웃음을 지었다.
“돈 많이 투자했을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민간에서 만든 전용수영장이 생길 줄은 정말 몰랐네요. 어쨌든 오늘 떼놈 인터뷰 봤습니다. 이번에 그 놈 코를 납작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을 하고 돌아섰다. 맘대로 구경하고 다니라는 것이다. 자신이 없어야 될 것 같아서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런데 그가 남긴 말은 상당히 부담이 가는 말이다.
“감독님…”
“됐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다. 하지만 아까도 이야기 했잖아. 네 페이스를 찾으라고.”
연습을 하고 싶다는 말일 것이다. 영욱에 의해 끊긴 그의 말은. 확실히 불안할 때에는 물속에 들어가 몇 바퀴 돌면 안정이 된다. 그러나 하루에 정해진 훈련량만 하라는 감독의 말. 자신의 말을 따라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가 S 생명 실업팀 감독을 맡는 조건으로.
“알겠습니다.”
“개관은 다음 주 월요일이지만 내일부터 이곳이 개방이 된다. 알다시피 국제 경기를 치르기 위해서는 훈련장을 제공해야 한다. 한국에 변변한 곳이 별로 없으니 아마 정해진 시간에 선수들이 최대한 이곳을 활용하려 할 것이다.”
물론 여기 말고 수영 연맹 측에 협조를 부탁해 수영장 몇 곳을 연습할 수 있는 장소로 섭외해 놓았다. 그러나 일본에서 했던 대회처럼 가끔 개방을 해야 하는 시간이 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민간에서 초청한 대회이니 우리는 이곳에서 훈련을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다. 그 점이 유리하다. 최대한 활용을 하자.”
우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마따나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목표다. 초청대회까지는 일주일. 소기의 성과는 예선 통과. 물론 그것은 감독의 생각이다. 그는 다른 목표를 잡고 있었다. 일단 장치앙린을 이기는 것. 그것 말고는 지금 아무것도 떠오른 게 없었다.
맹훈련. 다음날이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은 나왔다. 이번 대회는 초청이기 때문에 한국 선수들의 인원수 제한은 S 생명측이 가지고 있다. 올바른 경쟁을 위해서 많은 한국 선수들을 참가시키고 싶다고 연맹에 이미 서한을 전달했다.
그래도 국제망신은 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알아서 선별해서 선수들을 추려서 참가시키기로 했다. 총상금은 100만 달라. 경영만 개최했다. 아직 다이빙이나 기타 종목은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들 선수들도 많이 아쉬워했지만 기본적으로 비인기종목의 설움은 동병상련이어서 경영이라도 좋은 성과를 부탁한다고 태릉선수촌에 있는 참가 선수들에게 당부를 했다.
수영장 개방을 할 때 장치앙린은 가볍게 몸을 풀고 갔다. 매우 유연해 보였다. S 생명 선수들은 따로 훈련장이 이 건물 안에 있다. 따라서 가끔 해외 선수들이 와서 훈련을 하고 갈 때 구경을 가기도 한다.
“역시 여자 선수들 연습하러 올 때가 가장 볼만해. 킥킥.”
“그러게, 거기다가 그 백마들. 그 흰 피부. 하룻밤만 같이 지내봤으면…”
“야, 쉬이.”
찬규와 김훈은 누구나 갖고 있을 남자들의 꿈 이야기를 하며 그렇게 키득대고 있다. 그러다가 빛나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거의 성희롱에 가까운 말이었다. 들었을 것 같았다. 자신들을 노려보는 것을 보니. 그들은 딴청을 핀다.
“오라버니들. 그럼 안 돼. 그럼 못 써요.”
빛나 뒤를 지나치는 가희는 그들에게 손가락을 들고 좌우로 저으며 말했다. 마치 터미네이터가 한 제스처를 따라하듯. 그들의 얼굴이 빨개진다. 늘 그렇지만 이 4차원 소녀는 할 말 못 할 말 다 하고 있다.
수영장 이름은 인터내셔널 풀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국제 수영장이라는 명칭이다. 외국인들이 여기서 수영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국제적으로 유명해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시대가 달라지고 있다. 다행인 것은 좋은 방향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새로운 수영장. 그것도 아시아 최대 규모. 당장은 투자비도 회수하지 못하겠지만, 앞일은 모른다. 이 수영장에 대한 투자가 S 그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말이다. 그리고 우혁의 미래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