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121화 지나친 관심
답답하지만 고민만 안고 있을 수는 없다. 일단 가장 시급한 것은 이사를 하는 것이다. 기자들과 팬들이 떼거지로 밖에 모여 있기에 언제든지 세실리아의 신변 노출이 가능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조심하는 가족들.
사생팬이라는 게 있다. 그들은 정말 물불 가리지 않는다. 지연은 밖에 나갈 때 깜짝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지금도 그렇다. 문 밖에 있는 퀭한 눈빛을 지닌 여학생 하나. 밤새 있었나 보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혁 오빠 어머님이시죠? 안녕하세요?”
“아, 네, 네. 안녕하세요?”
“지금 안에 우혁 오빠 있죠?”
“아, 지금 없는데요.”
“거짓말 하지 마세요. 나쁜 짓 안 할 게요. 한 번만 보여주세요. 네? 한 번만.”
“지금 없다니까요.”
그 때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순빈이 내렸다. 그는 이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침에 우혁의 집으로 출근하는 것이 그의 일과다. 어제 귀국했으니 평소와 다름없이 이렇게 오게 된 것인데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엄청난 인파가 아파트 주변에 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빨리 나가 주세요.”
“당신이 우혁 오빠 매니저지? 일을 그 따위로 밖에 못해? 네가 잘 못하니까 우혁오빠에게 항상 곤란한 일이 생기는 거 아냐? 그 년 어디 있어? 그 외국 년? 어디다 숨겨 놨어?”
“이런 미친 것 아니야? 저리 가, 저리 가라고.”
가까스로 그녀를 쫓아 보내고 경찰에 연락을 했다. 우혁의 신변보호를 요청한 것이다. 이래가지고 이사도 제대로 못 갈 것 같았다. 이사를 해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는가? 그의 인기가 높아지니 걱정도 같이 늘어만 간다.
“연예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산담?”
“집에만 박혀 사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래서.”
“저런 불쌍해라.”
“어머니, 지금 그게 남의 일이 아니랍니다. 우혁이가 지금 그 처지가 되었어요.”
“그렇지? 맞아. 아니 뭐 그런 경우도 없는 애가 다 있다니? 집에서 어떻게 단속하는 거야?”
이제야 흥분이 된다. 곁에서 보고 있는 우혁도 심각성을 느끼는지 아무 말 없이 고민에 빠져 있다. 세실리아는 아직까지 일의 심각성을 모른다. 그녀는 지금 온 신경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가있다.
“저게 뭐지?”
갑자기 순빈은 베란다 창밖에서 무언가를 발견한다. 자세히 보니 맞은 편 아파트 복도에서 이곳을 촬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재빨리 커튼을 쳤다. 그의 행동을 보고 가족들도 눈치를 챘다.
“이… 이게…”
“네, 어머니. 정말 문제가 심각해 졌어요. 아마 내일 쯤 우혁이 힐링캠핑 녹화분이 방영이 될 텐데 팬들은 더 몰려들지 않을까 싶어요. 경찰 이야기로는 이런 팬들은 쫓아내고 쫓아내도 다시 온다고 해요.”
“휴우, 걱정이구나. 정말 걱정이야.”
지연의 한숨. 사실 우혁도 같이 한숨을 쉬고 싶었다. 순빈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한 두 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제 매니저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에게 인간적으로 형의 역할 이외에는 제대로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아서 본인에게 화가 났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난 것. 스마트 폰을 열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역시나 아까 촬영한 게 바로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최우혁, 결혼 준비』
『최우혁, 이미 동거 중』
난리가 났다. 큰 문제다. 드디어 아까 촬영이 된 게 인터넷에 퍼진 것이다. 그는 소속사에 전화를 했다.
“전데요, 빨리 기사 좀 막아주세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좀 막아주세요.”
그는 승헌에게 지금의 상황을 간략히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안심이 되지 않았다. 분명 일처리가 빠르지 않을 거라는 예감.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했다. 뭔가 타개책이 필요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일단 우혁을 능가하는 사건이 있어야 이것을 또 묻을 수가 있다. 그런데 요즘 그의 인기는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톱스타들의 기사도 그에게 묻힐 정도다.
당연하다. 그의 매력적인 외모. 그것 만이었다면 모르겠는데, 아시안 게임 수영 5관왕, 그리고 MVP. 도무지 겉으로 봐서 어느 하나 빠질 게 없다. 설문조사 결과가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다. 가장 데이트하고 싶은 남자 1위. 배우자로 삼고 싶은 남자 1위. 심지어 연령대가 높은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최고다. 사위 삼고 싶은 남자 1위에 올라섰으니 말이다.
“힐링캠핑 유PD님이세요? 다름이 아니라 부탁이 있습니다.”
여기 저기 전화를 해본다. 그의 프라이버시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내일 방송 때 자막을 내보내기로 했다. 그의 사생활 침해를 자제해달라고 말이다.
이것으로 무마될 수 있을까? 그건 모르는 일이다. 이제 기자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제발 수영 영웅이 스트레스를 받게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 잘 통할 리는 없지만 마음에 호소를 하고 있다. 몇몇 마음 약한 기자들은 잘 알겠다며 그의 설득에 넘어갔다. 하지만 아까 촬영한 인터넷 신문의 편집장하고는 문제가 있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어쨌든 그럼 기사 내려주시고, 당분간 우혁이 기사는 없는 거죠?”
-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요즘 가장 핫한 것인데 왜 내려?
“네? 아니 지금까지 이야기 했는데 못 알아들으시네. 자꾸 우혁이 기사가 나가기 때문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프라이버시가 없어진다고 말씀드렸잖아요.
- 그래도 지금 이게 가장 뉴스거리가 돼. 요즘 정치권도 경제 인사들도 최우혁 선수 이야기를 하고 있어. 그를 앞세우면 이미지가 좋아지니까. 예전 월드컵 때 히동쿠 감독 열풍이 불었을 때보다 더 많이 인용이 되니, 우리도 일자리 잃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거야.
“이보십시오. 아니 좋은 말로 하니까 정말 사람을 만만하게 보시는 겁니까? 사생활 침해로 고소할 겁니다.”
결국 최후의 방법을 썼다. 당연히 이것은 고소감이다. 그가 그것을 처음부터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원만하게 지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너무 기자를 적으로 몰아붙이면 이제 네거티브 기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악의적으로 우혁의 뒷조사를 하고 그것을 보도하는 것. 그래서 참은 것인데 이렇게 나오면 자신을 물로 보는 것이다.
가족들은 그가 이렇게 전화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숨을 죽이고 있다. 아침부터 커튼을 쳐야만 하는 생활. 이렇게 어둡게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리저리 그가 전화를 돌린 끝에 드디어 대충 수습이 되었다. 물론 그새 기사를 캡쳐한 블로그들의 히스토리에는 남겠지만 아주 많이 퍼지기 전에 다행히 기사는 내려갔다.
“이제 문 밖으로 나서기가 힘들어졌네. 형, 그냥 예전에 최우혁으로 돌아갈까? 요즘 내가 너무 친절해 져서 세상 사람들이 날 만만하게 보나봐.”
“그…럴 리가. 너 그다지 친절해지지 않았다구.”
“그래? 이상하다. 어제 기자들 질문에도 친절하게 대답을 했는데.”
“정작 알고 싶은 것은 대답을 하지 않았잖아. 원래 사람들 심리가 그래. 아마 네가 세실리아랑 사귀는 게 공개되면 얼마 안 있어 이제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갈 거야. 하지만 자꾸 감추려 드니까 그것을 캐내려고 애를 쓰는 것이지.”
그의 말이 맞다. 대중들은 그의 모든 것을 알기를 원한다. 연예인이 아니지만 연예인을 능가하는 파괴력이 그 안에 존재하니 말이다. 그러니 언론은 그를 자꾸 해부하려 들고 사람들은 그의 비밀을 캐내려고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공개하면 사실 신비주의에서 벗어나게 되어 점점 대중들이 익숙해진다. 그럼 캐낼 것이 없으니 관심은 다른 곳으로 서서히 옮겨갈 수도 있다.
문제는 세실리아와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밝힐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몰래 촬영한 것이 보도가 되어도 누가 알겠는가? 세실리아의 현재 상태를. 하지만 그게 몇 차례가 된다면 이제 우혁이 아닌 그녀의 뒤를 캐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현재도 없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워낙 그의 인지도가 높아져 버려서 우선순위에서 살짝 비켜나간 것뿐이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니? 아이고, 답답해 미치겠다.”
“글쎄요, 방법을 생각해 봐야죠.”
일단 답답해하는 지연을 달래가며 순빈은 머리를 쓴다. 이 방법을 타개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할 때이다.
============================ 작품 후기 ============================
불법체류와 무국적자에 대해서는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보고 있습니다^^ 월요일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