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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용서를 구하는 못된 방법

크라우칭 스타트의 장점으로는 빠른 반응속도다. 수영이든 육상이든, 아니면 스케이팅이든 단거리라면 초반 스타트의 중요성을 절대 무시할 수가 없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혁은 제대로 배우고 있는 셈이다. 삼일 내내 스타트만 했는데 전혀 질려하지 않는 표정 때문에 미래는 그를 대견해한다. 자신도 당시에 질렸었던 것 같았다. 빨리 물속에서 손을 젓고 앞으로 나가고 싶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를 몰라서 그렇게 생각을 한 것이다. 그는 질릴 수가 없다. 너무나 재미있기에. 한 가지 동작만 반복한다 할지라도 지금은 이 모든 것이 재미가 있다. 왜냐? 한 번도 이렇게 배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은 그렇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을 또 가르치게 되면 지루하고 쉽게 흥미를 잃는다. 학원에서 한 선행학습으로 학교에서 졸고 자며, 떠드는 학생들이 발생하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학원을 탓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공교육에서 충분히 재미있게 해 줄 수 없기에 그런 현상이 일어난 셈이니.

“재미있니? 정말?”

“응. 재밌어.”

“흠. 신기하네. 학교에서 매일 배웠을 때에 난 질려서 한 동안은 스타트대에 서기도 싫었는데…”

“난 학교를 다닌 적이 없거든.”

그녀는 당황했다.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는 소리. 그를 만나고 처음 듣는 소리다. 정규 과정을 마치지 않았다 치더라도 초등학교든, 중학교든 의무교육이기에 마치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다. 도대체 왜 학교를 다니지 않았을까?

“궁금하지? 하지만 말해 줄 수 없어. 비밀이니까, 하하하.”

“아…”

그녀도 따라서 웃었다. 요즘 항상 이랬다. 그가 웃는 모습을 보고 자꾸 따라서 웃게 된다. 그 마력이 담긴 웃음을 보고 따라 웃지 않을 수 없다고 자신을 합리화했다. 실제로 다른 여자들도 그의 앞에 서있었다면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의 웃음은 매력적이다.

“호호호.”

“하하하.”

뭐가 그렇게 웃긴지 그들은 즐겁게 다시 연습을 했다. 스타트는 이제 거의 완벽하다. 미래로서는 더 이상 가르쳐 줄 게 없을 정도로. 사실 이게 문제다. 스승이 가르치는 능력. 그녀는 그래서 그가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꽃을 피우리라. 그의 잠재력이 폭발하리라.

“뭐가 그렇게 즐거워?”

그들의 표정이 굳어진 것은 그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의 시선도 목소리의 주인공을 따라갔다. 그곳에 있는 사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코치, 영욱이가 서 있다.

“김미래! 너 지금 규칙을 몇 개나 위반했는지 알고 있어?”

걸어오면서 떨어지는 불호령.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도 곧바로 시선을 올려 코치를 바라본다. 사실 들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게 잘못이다. 누구나 불이 켜져 있다면 한 번쯤 들어오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어둠속에서 연습을 할 수도 없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절박한 마음이 만들어 낸 모험이었다. 안 들키면 좋은 거고, 들키면 이렇게 말하려고 했다.

“개인 훈련 하는 겁니다. 이 친구는 저를 돕고 있고요.”

“그것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허락해주시지 않을 거잖아요?”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변하게 하는 것일까? 원래가 상냥하고 고분고분하기로 유명했던 그녀다. 붙임성도 좋아서 선수단에서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2대 얼짱. 그녀와 빛나를 가리키는 말인데, 도도한 빛나에 비해서 매우 친절하니 은근슬쩍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 선수들도 많이 있었다.

“뭐가 그렇게 당당하지? 지금 규칙 위반을 몇 가지 들면 넌 바로 징계야. 그래도 괜찮은 거야?”

물론 아니다. 순간적으로 요즘 이성이 마비되었나 보다. 거기까지도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징계. 무서운 말이다. 선수로서 어쩌면 슬럼프만큼 무서운 단어일 수도 있다. 그녀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미래에게 구경만 시켜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용서해 주세요.”

우혁으로서는 정말 하기 싫은 말까지 했다. 그는 결코 사과를 하지 않는다. 잘못을 해도 버티고 버티는 고집쟁이. 만약 그의 부모가 이 장면을 봤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사회성이다. 그를 이렇게 바꾼 것이. 점점 사회에 동화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친구를 위해서, 때로는 자신을 위한 친구 때문에 그의 변하는 모습이 바람직하다.

“용서? 흥. 맞춰봐라. 내가 용서할 것 같은지. 맞추면 용서하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용서할 거라고 말하면 안 한다고 하고, 반대의 상황으로 대답해도 마찬가지일 텐데, 용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또 어디서 그런 기지가 발휘되었을까? 스타트대 위에 서 있는 그는 이렇게 협박을 했다.

“정 그러시면 사람 하나 죽이시는 겁니다. 여기에 들어가서 용서할 때까지 안 나오겠습니다. 미래 넌 들어오지 마. 절대로.”

그렇게 말하고 힘차게 도약하는 그는 그 누가 봐도 한 폭의 그림처럼 입수를 했다. 물보라가 거의 없을 정도로. 코치도 이 장면에서는 깜짝 놀랐다. 그가 봤던 스타트 중에 몇 안 되는 깨끗한 폼이었다.

“흥.”

그래도 그는 요지부동이다. 진짜로 그가 죽기야 하겠는가? 헛된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미래는 안절부절 못한다. 조금 있으면 호흡이 벅찰 텐데 어쩌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그와 만난 지 벌써 삼주 째다. 대충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고집불통. 이 네 글자로 표현을 해도 과언이 아닌 성격. 진짜 죽을 생각은 아니겠지 하면서도 걱정이 태산이다.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1분을 넘을 때쯤 영욱 역시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 역시 살짝 걱정이 된다. 그가 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호흡곤란을 느껴서 기절이라도 한 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먼저 굽히기는 싫었다. 그 역시 선수 출신. 어떤 승부에서 도박을 하면 결코 지고 싶은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목숨을 베팅했으니 죽는 것은 그의 팔자라고 생각을 하며 버티고 있다.

“우혁아! 제발 나와! 제발!”

그녀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있다.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물속에서는 자신의 음성이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결국 물속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영욱은 그녀가 물 안에 들어가자 안도의 한숨을 쉰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그는 다행이라 여겼다. 그녀가 먼저 들어가지 않았다면 자신이 뛰어들리라.

물속에 들어간 미래. 바닥에 앉아있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손까지 흔드는 모습을. 어이가 없었다. 어찌 된 일인가? 지금 시간이면 호흡 곤란을 일으켜도 한참이 지난 시간일 텐데.

‘가자.’

목소리가 나오지는 않지만 그녀의 입을 보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다 알 수 있다. 하지만 우혁은 고개를 젓는다. 나갈 생각이 없다는 뜻. 그녀는 애가 탔다. 이대로 그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시간을 재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많이 지났을 것이다. 그를 좋아하는 만큼 더욱 애가 닳는 것이니 일초 일초가 숨이 가쁘다.

그에게 다가가 그의 얼굴을 잡았다. 앉아 있기에 어쩔 수 없다. 그 바람에 그녀의 작지 않은 가슴이 그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 물속에서라도 감촉을 느낄 수 있다. 그녀의 안간힘. 그럴수록 더 그녀의 가슴이 주는 촉감. 그는 살짝 얼굴이 붉어진다. 그리고 이 불편한 상황을 처리하기 위해서 그녀를 올려 보내려고 한다.

밀어 올린다. 그러다 만진 게 하필이면 또 그녀의 둔부다. 사실 그 곳이 가장 넓고 올리기 좋은 곳이다. 그래도 의식이 된다. 밀어내는 우혁과, 자신의 민감한 부위가 만져지는 미래나. 그래 봤자 물속에서 큰 물리력이 발휘 되지 않아 여전히 실랑이 중이지만.

한편, 밖에 있는 영욱도 조급하긴 마찬가지다. 방금 들어간 미래야 상관이 없지만 훨씬 전에 들어간 우혁은 무슨 일이 나도 날 시간이다. 시간을 정확히 재지는 못했지만 사람의 감각이라는 있다. 몇 분은 지난 것 같은 시간.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뛰어들었다.

우혁은 보았다. 물속으로 들어오는 인영의 모습을. 그리고 웃었다. 결국 이긴 것이다. 이제는 나갈 시간. 너무 오래 있어서 의심을 샀을 지도 모른다. 그대로 일어나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제 연기가 필요하다. 가쁜 호흡 소리.

“후아, 후아, 후아…”

“푸아…”

같이 따라 올라온 미래는 눈이 완전히 빨개졌다. 울어서 그렇다. 그녀의 망막을 물인지 눈물인지가 뿌옇게 만들고 있다.

“너… 너… 다시는 그러지 마. 흑…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으앙…”

결국은 울어 버렸다. 그리고 나온 영욱. 그 역시 황당해 했다. 분명히 오랜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숨을 몰아쉬기는 하지만 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우혁의 모습. 태어나서 이렇게 호흡이 긴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제가 이겼네요. 그러니까 용서해 주시는 것 맞죠?”

우혁은 그가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을 바라보자 이렇게 말을 건넸다. 용서해줄 때까지 들어오지 말라고 했던 말. 바꿔서 말하면 들어온다는 것은 용서해준다는 말이다. 물론 그가 혼자 약속한 것이다. 영욱은 동의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 황당한 상황은 그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미래야, 됐다. 너 용서해 준데.”

그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 매력적인 웃음을. 그녀는 그것을 보고 화가 났다. 뭐가 그렇게 좋다고 웃는 것인가? 처음에 그렇게 웃어주지 않을 때에는 보고 싶었던 그의 웃음인데, 지금은 저 미소가 얄밉다. 하지만 그녀 또한 울면서 웃는 것은 왜일까?

============================ 작품 후기 ============================

항상 댓글 감사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인터넷을 많이 뒤져보게 됩니다. 가짜로 만들어내는 이야기지만 현실성 없음에 또 약간의 현실을 추가하고 싶은 게 작가 맘인가 봅니다. 검색어로 '가장 오래 숨을 참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검색했더니, 저도 모르는 놀라운 사실이 있었습니다.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것인데 물속에서 22분을 숨 참고 있었다고 합니다.

글을 다 쓴 후에 발견한 거라서 이럴 줄 알았으면 한 10분이라고 묘사할 걸 그랬습니다. 그럼 수영물이 아닌 기네스물이 되려나?

여러 칭찬과 격려를 보니 이전에 두 작품을 막 썼다는 후회가 들고는 합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좀 더 소중이 다루려고 합니다. 제가 쓴 글을 읽어보고 또 반복하고. 그러다보니 지난 작품보다는 좀 덜 연참이 되더군요. 1일 3회. 요 정도가 한계일 것 같습니다. 그날 따라 더 잘 써지면 4회 안 써지면 2회. 요런 속도일 것 같으니 그냥 속도는 눈감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10연참 요런 것은 절대 기대하시지도 마시기를...^^ 그럼 이따가 또 연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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