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91화 인어생활탐구
“뭐라고? 널 좋아하냐고?”
“응. 날 좋아해?”
이것은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그녀가 물어보는 좋아하냐는 표현.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그녀는 그 표현을 그렇게 알고 있으니. 언젠가 그녀가 그에게 물어 본 적이 있었다. 남자와 여자의 애정에 대한 이야기를. 그 때 그는 말해주었다. 좋아한다는 말이 남녀 사이에 애정을 표현할 때 하는 말이라고. 왠지 사랑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좀 간지러웠다.
그래서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좋아하다’와 ‘사랑하다’의 차이점이 거의 없으면서도 같은 말이라고 하기에는 또 뭔가 한 쪽이 부족했기에. 그리고 그가 좋아한다고 말을 하면 그녀는 사랑한다는 대답으로 들어버린다. 이건 가볍게 다룰 문제가 아니었다.
“널? 너를? 너를? 음.”
그녀는 그가 이렇게 망설이자 실망의 눈빛이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사랑을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 좋았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자신을 멀리하지 않는 것만으로 크게 불만을 나타내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면 더욱 좋다. 그리고 그것을 원한다. 당연하다. 인어의 여성체. 인간으로 치면 여자이고, 여자는 감정의 동물이다. 그가 좋아한다고 확실히 말을 해 주었으면 그녀는 오늘 그에게 자신을 주려고 했다. 감정에 이끌려 하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결심한 바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와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그녀가 결심한 것이다.
그녀는 그의 몸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침대 위로 올라섰다. 실망은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그녀. 인간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니 남자와 여자에 대한 말을 많이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그는 여자를 경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세실리아, 너는 나에게 가족 같은 사람이야.”
“가족?”
“응. 가족. 말해줬잖아. 가족이 무슨 뜻인지? 잊어버렸어?”
“가족. 알아. 무슨 뜻인지 알아.”
“알지? 그래. 넌 나에게 가족 같은 사람. 그러니까 소중한 사람이지. 이게 대답이야.”
그게 대답이다. 만족할만한가? 고개를 갸우뚱 할 정도로만. 그녀는 확실한 대답은 들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그래도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그의 말에 기분이 다시 좋아지고 있다.
그렇다. 기다리면 된다. 그가 자신을 좋아할 까지. 인간사의 도덕과 관습은 그녀가 잘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그녀가 이렇게 애정을 계속 베풀면 그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 희망을 가지면서.
“내 말 이해하니?”
끄덕끄덕. 우혁의 말에 고개를 아래위로.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알아들었다는 것을 표시한다. 귀엽다. 아름다우면서도 귀엽기까지 하다. 과연 이런 외모가 세상에 또 존재할까? 물론 존재할 수도 있다. 인어들은 그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지난번에 확인했으니.
다만 지난번에 만난 인어는 왠지 모르게 무서웠다. 누구였을까? 그녀는. 그러고 보니 항상 인간 세상에 초점을 맞춘 대화만 했다. 인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분명히 가지고 있을 텐데, 왜 그는 물어보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녀가 슬퍼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나보다. 또한 그에게는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 몸이 마비되어 강제로 당했던 기억. 그 일만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진다. 어쨌든 강제로 당했지만 자신은 그 때 쾌락을 느끼고 있었다.
“무슨 생각?”
“응? 아… 아냐. 아무 생각도 안 해.”
그의 얼굴이 빨개지니 그녀가 이상히 여긴다. 그래서 질문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 대답을 할 수는 없다. 다만 이제 좀 그녀의 신상에 대해서 알고 싶어 그 역시 호기심을 표현한다.
“음, 지느러미와 다리는 자유롭게 바뀌는 거야?”
“응. 내가 원할 때마다.”
“그렇구나. 그럼 물이 없이도 살 수 있어?”
“응. 물 없어도 살 수 있어.”
인어에 대한 호기심. 인간이라면, 그리고 인어를 만난다면 당연히 생기지 않을까? 그동안 오히려 잘 참았다. 아니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고 그녀가 인간 세상에 적응하는 게 먼저라서 질문보다는 주입식으로 교육을 시켰던 것 같았다.
“그 때 그 분은 엄마야?”
“아냐, 엄마. ꠕⰩ야.”
가끔 그녀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인어의 말이다. 그것을 우혁은 흉내도 내기 힘들었다. 지금도 그랬다. 그녀가 하는 말. 일단 그녀의 어머니라는 것을 부정했지만 그 다음의 어떤 존재라고 말을 하는 것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음. 혹시 높은 사람? 그러니까… 왕? 여왕?”
“왕. 맞아.”
그녀는 그냥 그녀의 로드를 왕이라고 말했다. 사실 왕이라는 말이 적절했다. 인어의 왕. 그 말을 듣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거야? 그러니까… 음. 아니다. 생각해보니 무슨 잘못을 하긴 했구나.”
당시의 상황. 만약 레지나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는 세실리아와 사고를 쳤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부둥켜안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가 인정을 한 것이다. 명백한 잘못이라고. 그녀의 어머니는 아니지만 왕이라면 그 세계의 풍기문란을 단속했나 보다.
그런데 그 때 분명히 자신이 덮친 게 아니었다. 자신 위에 올라탄 것은 세실리아, 바로 그녀였다. 아까처럼 그녀가 자신의 위에 올라탔다. 그러니 오해를 해도 분명히 그녀를 오해해야 하는데, 그 때 당시에는 그 로드는 자신을 오해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벌을 준 것인가? 벌 치고는 야릇한 벌이었지만. 인어 세계의 도덕적 관념과 벌을 모르니 알 수가 없다.
“혹시 그런 행위로 나를 말려 죽이려고 했던 건가?”
“응?”
“아… 아냐. 헛말이야. 헛소리.”
“헛소리?”
“그래. 헛소리. 잘 못 말한 거라고.”
그 일을 설명하기 싫은 그는 다시 다른 화제를 생각했다. 이제야 인어생활탐구가 시작된 것이다. 그의 봇물 터지듯 나오는 질문을 세실리아는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준다. 그래서 알게 된 몇 가지 사실.
일단 세실리아의 나이는? 모른다. 그녀도 모른다. 인간과 달리 24시간, 365일 그리고 12개월을 단위로 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태어난 지 몇 년이 되었냐고 하는 물음.
“바다의 신만이 알아.”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 자신보다 많으면 누나라고 불러야 하지 않은가? 그냥 모르는 채로 여동생쯤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속이 편하다.
“그럼 인어는 총 몇 마리… 앗, 미안. 몇 분… 이게 맞는 건가? 아, 미치겠네. 어쨌든 몇 명이나 있어?”
“……?”
숫자에 대한 개념은 없는 것인가? 아까도 시간과 햇수의 개념을 모르더니 지금도 잘 모르나 보다. 그러나 요즘 그녀는 그의 말을 듣고 한 참 있다가 되짚어서 결국 대답을 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그랬다. 드디어 그의 질문을 알아챘다.
“이만큼 있어.”
그녀는 이불을 잡던 손을 들어서 열 손가락을 다 뻗었다. 그리고 발가락까지 사용했다. 그런데 자유자재로 구부러지는 발가락. 두 개가 접혔다. 손가락 열개에, 발가락 여덟 개. 열여덟. 인어의 개체수다.
“그… 그렇구나.”
그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또 보고야 말았다. 그녀의 가슴과 그리고 발가락까지 보느라 두 발 사이에 은밀한 계곡을 말이다. 종종 보기는 하지만 볼 때마다 익숙하지 않다. 사실 피가 마른다. 그리고 신체 부위에 어떤 한 곳은 피가 몰리기도 하고.
“더 많아야 해. 너무 적어.”
“그래. 너무 적네. 왜 그렇게 적어?”
그의 질문에 또 대답이 없다. 한참 생각을 하는 것인가? 하늘을 보던 그의 눈이 다시 그녀의 얼굴로 가있다. 정확히는 그녀의 은색 눈빛이다. 그 곳에서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후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
“인간 때문에. 인간이 우리를 다 죽였어.”
============================ 작품 후기 ============================
답답하시죠들~ 저도 답답한데 읽는 분들은 오죽하시겠어요. 에구 제가 능력이 부족한가 봅니다. 항상 그렇지만 글을 쓰면서 배우게 됩니다. 아직까지 더 배워야 할 것 같네요. ㅠㅠ 일단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겠죠. 아니 최선을 다하고는 있습니다. 고쳐갈 점은 고쳐가야죠. 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