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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화 내 앞에 나타나 줘

다시 찾은 로렐라이 언덕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다. 그 때와 다르다면 이제 건강한 두 발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때에는 두 손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충분히 두 발로 뛰어들 수 있다.

- 풍덩.

“사람이 빠졌다. 사람이 빠졌어요!”

“아악!”

우혁이 물속에 몸을 던지고 나서 여자들은 소리를 질렀고, 남자들은 이렇게 외쳐 댔다. 본질적으로 아무도 물속으로 뛰어들지 않았다. 수영을 못해서가 아니다. 그가 자살을 결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3미터의 깊이. 수압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 어디서 이런 용기가 생겼을까? 역시 수영을 배운 것은 잘 한 것 같다. 그렇다 할지라도 너무 무모하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답을 찾는답시고 여기까지 오다니?

옛 라인강의 물은 매우 오염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물은 아니다. 그래도 그는 들이켰다. 아니 호흡했다는 말이 더 정확한 말이다. 수영을 굳이 할 필요는 없었다. 나중에 다시 올라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가라앉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니기에.

그의 손에 들려 있는 황금색 메달 셋. 이번에 국가 대표 선발전에서 받은 것들이다. 그녀를 만나면 걸어주기 위해 가지고 왔다. 상당히 감정적이다. 매우 충동적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어디에 있니? 어디에 있어?’

물속에서 음파를 내보내는 방법을 알면 좋을 텐데, 그는 그럴 수 없다. 그나마 물 안에서 호흡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세상 사람들이 알면 기절초풍할 일이다. 눈으로 보는 것만 믿는 현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절대 밝히지 않을 작정이다. 그는 잘 알고 있다. 이런 것이 알려지면 그는 실험대상이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녀도…’

그가 지칭한 그녀. 자신을 살려준 그 인어를 의미한다. 그녀를 찾기 위해 왔다. 독일에 체류할 때 다리가 완치되고 그는 자주 이곳에 왔었다. 그러나 그녀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생각해보니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물속에서 사는데, 당연히 뭍에서 찾으려고만 하지 않았던가? 이제 적극적으로 찾으려고 왔다. 매우 충동적인 결정으로 비행기까지 타고 왔건만.

‘너무 넓다…’

그렇다. 너무 넓다. 바다가 아닌 강이라서 우습게 본 것인가? 땅 위에서 본 물과 물속에 들어가서 본 수중세계. 정말 달랐다. 가끔 언제 침몰했는지 모를 배도 있었다. 대단히 큰 배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역사들이 숨 쉬고 있는 것들이다. 만약 그 안에서 유물이라도 발견한다면 그는 사학계의 큰 획을 거둘 수 있는 발견을 한 것이리라.

하지만 관심이 없다. 그가 유일하게 눈을 빛내며 찾고 있는 것은 바로 인어다. 그런데 그가 생각지 못한 것이 있다. 그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시야다. 인간의 시야. 땅 위에서는 모르겠지만 물속에서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 찾기가 더욱 힘들다. 아마 한 달, 아니 일 년 내내 돌아다녀도 수중 세계를 다 파악하지 못하리라.

한참을 헤맸다. 어쩌면 밤이 되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밤이 끝나고 아침이 왔는지도 모른다. 알 수가 없다. 배가 고팠을 때가 훨씬 지났다. 이제 허기도 면역이 되었는지 더 이상 신호가 오지도 않았다. 하긴 물을 계속해서 먹은 기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암담하고 막막하다. 더 이상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했다. 아쉬웠지만 이게 다다. 인간의 몸으로 인어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한들 만나지는 게 아니다. 실제로 여기서 산다고 장담도 할 수 없다. 바다에서 왔을지 어떻게 아는가?

그는 다시 기약할 수 없는 먼 미래를 본다.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지만 지금은 아닌가 보다. 인연. 그녀에게 강한 인연을 느꼈었다.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지만 가슴 속에 담고 있었다. 자신에게 새 생명을 준 그녀를 반드시 만나고 싶다고.

그리고 만나서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왜 자신을 살렸는지. 왜 자신에게 키스를 했는지. 혹시 인간과 사랑을 할 수 있는지. 그렇다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토록 알게 모르게 그는 인어에 대한 환상을 품고 살았나 보다.

메달을 놓았다. 어차피 그녀에게 줄 메달이었다. 먼 곳을 바라본다. 그의 시선의 끝.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곳을 그는 바라보고 있다. 만약 그녀가 있다면 알아주기를 바랐다. 자신이 그녀를 잊지 않고 찾아왔다는 것을.

그렇게 올라간다. 진한 여운을 남기고. 얼마의 시간동안 여기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다시 올라가고 싶어졌다. 사람은 참 간사한 동물이다. 사실 지친것보다는 두려웠다. 물속에서 얻은 생명, 그 누군가가 거두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것 때문에 올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른다. 그를 지켜보고 있는 두 쌍의 눈이 있다는 것을.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그의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세실리아와 그녀의 로드, 레지나가. 그녀들의 아름다움. 인간 세상에서 절대 볼 수 없는 그것이다.

“보아라. 하루도 못 참고 너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저게 인간이다. 그러니 잊어라. 어찌하여 인간을 사랑하게 되었느냐?”

레지나의 충고. 그녀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정의. 알게 뭔가? 그녀의 슬픈 눈은 그저 방금 전까지 있었던 우혁만 계속 그리고 있다. 그녀가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 몇 년이 더 걸릴지 몰랐다. 아니 더 길어질지 아니면 더 빨라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를 위해 내준 호흡. 인어에게만 있는 특별한 능력. 그것을 주고 나서 이렇게 되어 버렸다.

그가 평범한 성인 남성이었다면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힘을 쓸 수 없었다는 게 그녀에게는 불행이었다. 너무나 많은 그녀의 에너지를 흡수해 가버렸다. 이것을 채우기 위해서는 특별한 치료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시간의 소요도 꽤 길 것이다.

그래도 가끔씩 이곳에 온다. 특별히 로드에게 부탁해서. 세상에 남아있는 인어는 그녀를 포함해서 열일곱. 종족 번식은 자살을 시도한 인간과의 결합으로 새 생명을 잉태한다. 그리고 잔인하게 그를 죽인다. 인간이 이 사실을 알면 안 되기에.

얼마 남지 않으니 로드는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녀는 세실리아를 이해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 인어라면 누구나 있을 수 있다. 인간보다 순수하고 인간보다 감수성이 풍부하다. 거기다 얼핏 봤지만 누가 봐도 마력을 지닌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아까 그 인간은.

“그는 다시 올까요?”

“절대로…”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잖아요.”

만약 그가 누군가에게 말을 했다면 대대적인 수색이 있었을 것이다. 인어가 살고 있다. 얼마나 가슴을 떨리게 하는 소식인가? 한 때 그래서 수많은 인간들의 노리개가 된 적이 있었다. 수 천 년도 더 지난 옛날이었지만. 선조의 선조가 전해준 그 교훈.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에게는 반드시 모습을 감추는 일. 이들의 생존을 위해 절대적인 것이다.

“인간을 믿지 마라.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버려라. 그렇지 않으면 이제 몇 없는 우리 종족은 결국 다 거품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녀의 말을 새겨들었을까? 아니다. 새겨들었다면 그가 놓고 간 메달로 가서 그것을 집어 들었을 리가 없다. 소중히 간직하기라도 할 것처럼 그 풍만한 가슴에 꼭 안았다. 언젠가 다시 온다면 그를 만나리라. 이 메달이 자신을 향한 선물인지 물어보리라.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레지나는 한숨을 쉬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또 그녀를 설득해야 할까? 인간과 맺어져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데.

‘괜히 찾아와서 이 아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구나. 어리석은 인간이여…’

그녀는 애꿎은 우혁만 원망을 한다. 이미 수면 위에 올라가 헤엄을 치고 있는 그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다. 물론 그럴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세실리아의 생명이 위태롭다. 인어는 사랑하는 대상이 죽음을 맞이하면 같이 죽는다. 신기한 일이지만 원래 그렇다. 인어만이 이해할 수 있는 원칙이다.

그것도 모르고 우혁은 뭍으로 올라왔다. 로렐라이 언덕을 바라보고 다시 강을 바라보며 그는 씁쓸하게 웃는다.

“이게 답인가? 기다리지 말라는…”

그는 답을 얻으려 왔다. 아니 뭔가 계시를 보려 왔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인어를 다시 보게 되면 머릿속이 맑아질 것 같았다. 결론은…

아무것도 얻은 게 없었다. 다시 한국으로 가서 복잡하게 얽힌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방황하게 되리라.

“그래도 좋았다. 만나고 온 것 같아서…”

그랬다. 흔들리는 마음을 잡은 것 같았다. 언젠가 다시 보고 싶을 때 또 올 것이다. 그리고 또 찾아 헤맬 것이다. 물론 실패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답을 얻지는 못해도 흔들리는 마음을 잡을 수는 있으리라. 어쩌면 이게 사랑이고 운명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생명을 준 그 존재를 말이다.

“다시 오겠다. 진짜 금메달을 가지고… 그 때에는 제발 내 앞에 나타나 줘…”

============================ 작품 후기 ============================

오랜만에 4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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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ash! - Splash-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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