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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40화 일본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

도쿄 하네다 공항. 취재진들이 가득하다. 한국의 수영선수들에게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사실 수영에 대한 관심이 높은 나라다. 각 현의 정책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일본은 학교 수업에 수영이 있을 정도다. 선수 등록만 15만 명. 중국의 50만 명보다는 낮지만 인구대비를 생각해 보라. 얼마나 열정적으로 수영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수치이다.

찰칵. 찰칵.

플래쉬가 터지고 있다. 거의 우혁에게 집중적으로. 매력적인 그의 외모는 글로벌로 특화되어 있다. 당연히 관심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최우혁 선수에게 질문이 있습니다. 주 종목이 1500미터이신데 이번 대회 몇 위를 예상하시고 계시죠?”

기자들의 질문 세례. 감독과 코치에 이어 한국의 대표 선수들에게 직접 질문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래서 통역이 그에게 말을 한다. 하지만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 그는 일본어를 어느 정도까지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통역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이야기를 했다.

“우승에 도전하겠습니다.”

“우승이라고요? 박태원 선수가 없는 한국인데 그게 가능할까요?”

기분 나쁘고 무시하는 듯한 질문이 갑자기 쏟아졌다. 방금 말한 안경 쓴 기자뿐만 아니라 다른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우혁의 1500미터 기록은 물론 10위권 이내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예선 통과도 장담하기 어렵다. 그런데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그의 말이 우습게 들렸나 보다. 원래 이런 말들은 기자들의 좋은 먹잇감이다.

“수영장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수영장에서요? 혹시 수영장에서 잘생긴 외모를 자랑하고 싶으신 건가요?”

“하하하하하하…”

좌중이 떠나갈 듯한 웃음이 터졌다. 그 안경 쓴 기자가 말 한 것. 농담이지만 조롱이 가득 섞였다. 수영보다 외모가 더 통할 것이라는. 불쾌했다. 그래서 인상을 굳혔다. 하지만 기자들이란 사람은 전혀 그런 표정이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찍어대고 있다. 아마도 내일 기사로 그의 굳은 얼굴이 전면에 나갈 지도 모른다.

“연예계에 진출한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여자 친구가 많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해명 좀 부탁드립니다.”

갑작스러운 질문 세례. 수영에 관련된 것보다 그의 사생활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갖가지 억측들이 퍼진 것일까? 그는 화가 났다. 다 뒤집어엎고 싶을 정도로. 그래서 말을 하려는 찰나에 영욱이 그를 막았다. 고개를 젓고 나서 그는 큰 소리로 기자들에게 외쳤다.

“자, 이제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치겠습니다. 선수들이 피곤해 해서요. 설마 손님 대우를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겠죠?”

그의 말은 통역을 거쳐서 일본 기자들에게 전달이 되었다. 그리고 코칭스태프를 따라서 선수들이 퇴장을 하고 있다. 모두들 굳은 얼굴이다. 이번 기자들의 질문으로 더욱 깨닫게 되었다. 일본은 자신들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저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쪽발이 새끼들.”

“그러게, 살인 욕구를 느낀다.”

김훈과 찬규. 이들의 입에서도 한 마디씩 나왔다. 원래 국제 대회를 치르면 선수들끼리 단합이 잘된다고 한다. 애국심도 그렇지만 상대국이 이렇게 무시를 할 때 뭔가 보여주자는 분위기가 형성이 되고 그러다 보면 서로 불편했던 사이들도 개선이 된다. 특히 일본과는 역사적으로 얽힌 게 적지 않았기에 그 어떤 경우라도 한일전은 실력보다 그 이외의 것에 영향을 받게 된다.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팀워크. 영욱은 버스 맨 앞에 앉아서 미소를 지었다.

선수들을 태우고 가는 버스. 처음 국가 대표에 선발된 이들은 매우 신기해한다. 운전대가 오른 쪽에 달린 것이다. 어색하다. 그리고 때로는 맞은편에서 오는 차 때문에 겁이 난다. 운전대가 달린 방향에서 느끼는 위화감이다. 물론 우혁은 익숙하다. 여러 나라를 가 보았기 때문에 이런 방향으로 달린 차를 많이 타 봤다.

“형, 근데 일본어도 할 줄 알아요?”

“아버님이 외교관이시잖아. 어렸을 때 배웠겠지.”

빛나가 끼어들었다. 원래 그녀는 선수들 앞에서 말을 잘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일수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 우혁을 보고 대신 말을 했다. 지금 그는 분노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외모에 관련된 질문. 그리고 확인되지 않는 루머들. 짜증이 났다. 그래서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의 질문에 신경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님이라니? 그녀의 호칭. 거의 시아버지를 지칭하는 느낌이다. 물론 이것도 우혁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잔뜩 수영으로 상대를 꺾을 생각밖에 없었다. 아까 자신에게 말을 한 안경 쓴 기자를 나중에 우승하고 나서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하고 싶었다. 자기가 한 말을 지켰다고.

사실 그는 우승한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승에 도전한다는 말이지. 그가 지는 것을 싫어하지만 현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아직까지 국제 대회에서 그는 최고를 향해 걸음마를 하는 단계이다.

“아, 맞다. 우혁이 형네 집안이 고급 두뇌지?”

“그렇지. 아마 다른 언어도 가능할 걸?”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우혁을 본다. 좀 화가 나 있는 표정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지만 주변의 시선도 그렇고, 아직 그와의 어색함이 남아 있기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어색함은 물론 자신 때문이다. 그녀가 그에 대해서 생각하는 마음. 하지만 우정을 지속하려는 우혁의 뜻. 그것을 사랑으로 발전시키려 하기 때문에 요즘 그들은 매우 어색하다. 훈련할 때야 큰 상관은 없지만 그 이후에는 매니저의 차를 타고 가버리니 둘만 있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호텔에 가니 반가운 사람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다. 아들을 마중하러 공항으로 가려고 했다가 역시나 호텔이 나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정신이 없는 것보다 차라리 이게 대화도 나눌 수 있고 시간도 더 같이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갔다 와. 오늘은 원래 자유시간이야.”

영욱은 그의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우혁에게 말을 했다. 그는 내보내달라고 말도 한 적이 없는데.

“코치님, 혹시 빛나도 제가 데리고 갈 수 있을까요? 뭐 좀 먹이고 올게요.”

“아, 네. 괜찮습니다.”

“엄마는, 참. 귀찮게…”

우혁이가 싫은 내색을 보였다. 사실 그의 머릿속에는 지금 오로지 연습밖에 없다. 일본인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 그래서 이런 시간도 아까웠다. 역시 자식 키워봐야 다 소용 없다.

반면 빛나의 입장에서는 만면에 희색이 가득하다. 단 둘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그녀에게 좋은 시나리오다. 첫째는 그와 어색함을 줄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최소한 다시 올 때에는 단 둘이 올 수 있기에. 둘째는 그의 어머니에게 눈도장을 다시 찍을 수 있는 기회다. 사랑하는 사람을 공략함에 있어서 그의 주변 인물들에게 잘 보이는 게 또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는가?

일식. 사실 한국인에게는 맛이 밋밋하다. 특히 짜고 매운 맛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물론 이들은 아니다. 주로 건강식으로 먹었던 사람들이기에 우혁의 어머니가 사주는 데리야끼가 입맛에 아주 잘 맞았다.

“이 무심한 녀석아. 일주일 한 번이라도 연락하라고 했잖니?”

“바빴어요.”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자식이라고는 너 하나뿐인데…”

그녀는 눈물이 글썽한 표정으로 그에게 아쉬움을 담아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옆에서 빛나가 나섰다.

“어머니, 우혁이랑 연락하고 싶을 때에는 저에게 전화를 하세요. 특히 점심시간에는 같이 식사를 하니까 그 시간에 연락 주시면 바로 통화 가능할 거예요.”

“그래? 그래주면 고맙지. 역시 우리 빛나가 있어서 다행이구나.”

그녀는 전화번호를 입력한다. 그런 빛나를 보는 우혁. 그녀가 하는 대로 놔두고 있다. 굳이 말리고 싶지 않았다. 약간 귀찮아질 것 같은 예감이지만. 그는 묵묵히 식사를 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빨리 먹고 가서 연습을 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여기서 체류하는 동안 훈련 하지 않는 시간하고 여유 시간을 알려 드릴 게요. 그 시간에 가끔 와서 이렇게 보시면 얼마나 좋아요?”

이때에는 우혁이의 표정이 달라졌다. 곤란한 얼굴. 완전 어머니의 감시자로 나선 그녀다.

“야, 나도 쉴 시간이 필요하단 말이야.”

“무슨 소리. 부모님과 떨어져 있으면서 보고 싶지도 않았냐?”

“네가 몰라서 그렇지, 난 부모님하고 거의 20년을 같이 있었어.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그게 얼마나 지…”

‘겨운 일인데.’라는 말을 하려다가 어머니의 눈치를 보는 우혁. 역시 말을 여기서 끊는 게 나았다. 아무리 철없는 그였지만 상처를 드릴 수는 없기에. 하지만 그 둘을 보는 그의 어머니는 미소를 짓고 있다.

“둘이 많이 친해졌구나.”

그녀는 반갑다. 이렇게 아들이 사람답게 살고 있다는 게. 그리고 점점 바라는 게 많아지는 자신을 보며 놀라곤 한다. 예전에는 걸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많이 했다. 천주교 신자인 그녀. 하느님이 그녀의 기도를 들어 주었다고 생각을 했다. 요즘은 다른 게 없다. 그가 시작한 수영. 이왕이면 건강하게 잘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를 한다.

거기다가 좋은 사람을 많이 사귀게 해달라고 추가를 했다. 한도 끝도 없는 어머니의 욕심인가? 모든 어머니들이 다 그렇다. 자식이 잘되는 게 그네들의 소망이다.

사실 그녀의 꿈이 황당한 것도 아니다. 다른 스무 살 청년들 마냥 그에게 여자 친구도 있고, 그냥 친구들도 많기를 바라는 것. 헛된 꿈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지금 앞에 보이는 빛나나 아니면 여기 없는 미래는 나무랄 데 없는 아이들이다.

“미래는 잘 지내지?”

“걔, 연예인 됐어요.”

“그래? 역시 예쁘더니만 그 쪽 길로 빠졌네. 나중에 만나면 싸인 하나 받아 놔.”

“에이, 제가 더 유명해요.”

이런 말도 할 줄 안다. 확실히 아들은 변했다. 더 긍정적으로. 사회의 일원이 되어 가는 모습을 보고 뿌듯해 한다. 이렇게 가끔 농담인 듯 진담으로 말하는 모습은 천성 그의 아버지를 닮았다. 아마도 그가 정상적으로 컸다면 성격 좋은 아버지처럼 자랐을 터인데. 늘 그게 아쉽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그의 어머니. 그렇게 훈훈한 장면을 보는 빛나. 이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언젠가는…

============================ 작품 후기 ============================

일본에서 열리는 한, 중, 일 대회입니다. 단계적으로 성장을 하고 있는 주인공입니다. 아직 치러야 할 대회가 많아서... 중간 단계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안녕히들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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