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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2화 4차원 소녀

가끔 성격이 막무가내인 사람이 있다. 가정교육이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후천성 보다는 선천적인 성격일 가능성도 풍부하다. 한 번 무언가에 꽂히면 죽어도 그것을 해내야 하는 성격. 특히 운동선수에게 많은데 그래서 그런 선수가 목표를 이룰 확률이 더 높다. 매우 끈질기고 집요하기 때문에.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운동 이외에 것에 집착을 하게 되면, 그리고 당하는 대상이 사람이라면 무지 피곤해진다는 것이다. 유카리 미호. 일본 수영계의 샛별이다. 재일 교포 3세이며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녀에게 꽂힌 대상이 바로 우혁이다.

“도쿄관광 시켜줄까요?”

30분의 짧은 훈련이 끝나고 그녀는 그에게 달라붙었다. 호기심이다. 아니 관심이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빛나의 쌍심지가 돋는다. 일본어를 잘 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 언어에 대해서 맹탕이다. 그래서 보고만 있다.

다행히 우혁이는 반응을 하지 않는다. 물 밖으로 나와 마무리 훈련을 지켜보는 그녀. 미소를 잔뜩 머금고 그를 계속 보고 있다. 그의 몸을 샅샅이 훑어보고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그보다는 빛나가 이런 그녀의 시선에 더 기분이 나빴다. 마치 자신의 것을 몰래 훔쳐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마무리 훈련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그녀는 다시 그에게 다가왔다. 생글생글 웃으며. 사실 매우 예쁜 얼굴이다. 베이글 미래. 도도한 빛나. 그의 주변에 있는 그녀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게 도발적인 부분. 성격은 당돌하고 적극적이다. 자기표현이 확실하며 상대방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끝까지 들이 댄다. 얼굴이 못 생겼다면 상관이 없지만 얼굴과 몸매 그 어느 하나 뒤지지 않는 것 같았다.

“호텔로 돌아가면 자유 시간이에요?”

“…….”

“시간 남으면 저랑 이야기 좀 할래요?”

“…….”

“최우혁이죠? 이름이? 기사 봤어요. 역시 잘 생겼네요. 지금 일본 사람들은 난리가 났어요. 한국에서 온 매력적인 수영 선수로 주가를 높이고 있던데…”

여전히 그는 묵묵부답이다. 마치 일본어를 알지 못하는 양. 훈련이 끝나고 남자 라커룸으로 갈 때까지 그녀는 계속 따라왔다. 그리고 그가 들어가자 뭔가 마음을 먹은 듯 그대로 따라 들어갔다.

“뭐… 뭐야?”

“으악! 쟤, 뭐니?”

먼저 들어가 옷을 벗고 있었던 남자 선수들이 재빨리 자신의 중요 부위들을 가린다. 황당한 상황. 이번에는 우혁이도 놀란다. 여기까지 따라 들어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물론 그녀는 다른 남자의 몸에 관심이 없다는 듯 그에게만 시선을 고정 시킨다.

“뭐 하는 거지?”

“당신을 따라 들어 왔죠.”

“나가라.”

“싫은데요.”

도발적인 시선. 당돌한 말투. 고작 18세. 수줍음이라고는 전혀 없다. 한국과 다른 문화라서 그런가? 아니다. 누구나 사람 사는 사회에서는 지켜야 하는 룰이 있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남자들 옷 벗고 있는데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왜요? 제가 보면 안 돼요? 옷 벗는 거? 창피해요? 깔깔.”

아무리 예뻐도 이렇게까지 나오면 비호감이다. 말은 못 알아듣지만 샤워실로 들어가 버린 남자 선수들은 그녀의 이런 목소리와 웃음을 들으며 갑자기 그 예쁜 얼굴에 정나미가 떨어져 버린다.

“이따가 그러니까 잠시 시간 좀 내줘요.”

“야, 쟤가 뭐라고 하는 거야? 너한테 반해서 그런 것 같은데 내보내면 안 돼?”

얼굴만 내밀고 찬규가 말을 했다.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우혁도 샤워도 하고 옷도 갈아입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녀가 시간을 내달라고 하는 말을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난 시간 내줄 수 없다. 가서 연습해야 해.”

“그래요? 그럼 나도 안 나가요.”

“맘대로 해.”

갑자기 오기가 생긴다. 그는 샤워실로 들어갔다. 설마 거기까지 따라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의 예상이 맞았는가? 그녀가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진짜로 따라간다.

“어이, 어이! 뭐 하는 거…”

“저, 저거… 미친 년 아니야?”

그녀를 말리는 소리들. 욕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다. 샤워실은 역시나 매우 넓다. 그런데 그녀가 따라 들어오자 방금 옷을 벗고 있었던 우혁과 샤워를 마치고 몸을 닦고 있는 모든 남자들이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 때로는 너무 황당하면 이렇게 된다.

“나… 나가!”

이번에는 못 참고 우혁이 소리를 질렀다. 아무리 그녀가 막무가내라도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자들의 누드는 좀 그렇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아… 아무것도 안 볼 게요. 샤워 마칠 때까지 기다리겠어요. 어쨌든 꼭 답을 줘야 나갑니다. 나중에 시간을 내 달라는 것에 대한 대답.”

그녀가 눈을 감는다고 해서 안쪽의 상황이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다 아우성이다. 노출증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소녀에게 알몸을 보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혁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야 난감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래도 자신으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를 줬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본인이 불편해서 어쩔 수 없이 외친다.

“아… 알았어. 그러니까 제발 나가 줘!”

“저… 정말요?”

“야! 눈 뜨지 마!”

그녀가 갑자기 반색하며 눈을 떴다. 그리고 다시 본 그의 알몸. 다른 이들은 그새 모두 피해 있었다. 그러니 적나라하게 그녀의 눈에 그의 모든 것이 보이고 말았다. 그래서 우혁이 소리를 지른 것이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다시 눈을 감았다. 막무가내였지만 남자의 모든 것을 보고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을 정도는 아닌가 보다.

“그럼 유카리는 뒤 돌아서 갑니다. 아, 참. 내 이름은 유카리에요. 유카리 미호. 밖에서 기다릴 게요.”

그렇게 난리 법석이 끝나고 그는 황당한 상황에서 얼른 샤워를 마쳤다. 동료들이 그를 보는 시선이 달가울 리가 없다. 언제나 불편 덩어리다. 한국에 있을 때도 방금 전의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가끔 그에게 미친 소녀 팬들 때문에 불편한 일이 생기곤 했다. 몰래 훈련장에 숨어든다든지 해서 깜짝 놀랄 상황을 만드는 팬들. 주변 사람들은 불편하다. 물론 그는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늘 생각하지만.

“뭐 하는 거죠?”

“나요? 나 그 기다려요.”

그녀가 나오자마자 이번에는 빛나가 라커룸 밖에서 그녀를 기다렸다가 이렇게 물었다. 물론 한국어인데 놀랍게도 유카리는 한국어로 받았다. 약간 발음이 어눌하다. 재일 교포 3세. 한국어를 어느 정도까지는 알아듣고 구사한다.

“우혁이 말인가요? 왜죠? 왜 기다리는 건데요?”

“당신 그 애인?”

유카리의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 생겼다. 빛나는 어떻게 말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사실대로 말한다. 그녀의 성격상 거짓말은 못한다.

“아니에요. 하지만…”

“그럼 상관 마요.”

그녀의 눈 끝이 올라간다.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카리의 말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여자 친구가 아니면 상관하지 말라는.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왠지 모르게 억울하기 짝이 없다. 그의 여자 친구가 아닌 게 정말 분통이 터진다. 한참 눈싸움을 하다가 드디어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한다.

“그래도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있어요.”

“그 당신에게 그 자격 줬나요?”

“아뇨.”

“맞아. 내가 줬어.”

그들이 대화를 하는 도중에 나온 우혁. 정말 급히도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어디까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상황을 파악했나 보다. 빛나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의 말. 자격을 줬다는 그 말에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어? 나왔어요? 헤헤.”

다시 일본어로 돌아 왔다. 하긴 그게 편할 것이다. 여기서 태어나서 이곳 말을 하며 살아왔다. 상대방이 일본어를 알아들으니 당연히 자신에게 편한 말을 할 수밖에. 그런데 정말 여우같다고 해야 하나? 방금까지 자신과 눈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표정이 녹아 버렸다. 그를 보자마자 바로 미소 띤 얼굴로 변하는 그녀.

“자, 그럼 갈까요?”

“어딜?”

묘하다. 그녀는 일본어로 그는 한국어로 하고 있다. 한국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데 굳이 일본어로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 그래서 그들의 대화 내용을 이제는 빛나가 대충 알아들을 수 있다.

“시간 내준다고 했잖아요.”

“응. 그런데 장소는 이야기 안했잖아. 그냥 여기서 말해. 그리고 시간은 10초 줄게.”

“그… 그런 게 어디 있어요?”

“2초 지났어.”

“나… 나중에 만나줘요.”

“5초.”

“나 당신에게 반했단 말이에요.”

“8초.”

“아니, 이봐요.”

“끝. 빛나야 가자.”

이번에는 그녀가 완전히 속았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멍하니 서있다. 반면 빛나는 그에게 손에 잡혀 있다. 오랜 만이다. 그와 피부를 맞대는 게.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 유카리에게 받았던 불쾌함이 하늘로 날아간다.

남은 그녀. 그 둘을 노려본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고 해야 하나? 늘씬한 그녀의 몸. 그녀는 팔짱을 낀다. 그렇게 하니 가슴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미래보다는 작지만 나름 글래머다. 그래서 라커룸에서 나오는 남자 선수들이 다 한 번씩 몰래 힐끗거린다. 그래도 신경 쓰지 않고 그는 한 마디를 한다.

“흥. 나를 이렇게 골탕 먹였단 말이지? 좋아. 두고 봐요. 최우혁씨.”

뭔가 벼르고 있는 그녀. 우혁은 약간 뒷골이 서늘해진다. 빛나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손에 잡혀서 잠시 황홀한 기분을 느끼긴 했지만 사실 불안하다. 여우같은 계집애 하나가 붙어 버렸다. 빨리 대회를 끝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곳에 미래가 있지만 왠지 모르게 더 안전할 것 같아서 그렇다. 한 남자. 그리고 또 다른 여자. 이렇게 이야기는 약간 더 복잡해진다.

============================ 작품 후기 ============================

지적 감사합니다. 틀리다와 다르다의 어휘 선택이 참 쉽지가 않았었는데, 명쾌하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점심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주인공은 당분간 일본에 있을 예정입니다.

쓰다보니 미래와 빛나를 가끔 혼용해서 쓰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니 꼭 지적 부탁드립니다. 저도 발견 못한 게 있을 수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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