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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화 AK 스포츠

놀이동산을 갔다 온 다음날. 이번에는 미래가 한 발 늦었다. 빛나가 우혁의 집에 찾아와 버린 것이다. 라이벌의 선공에 대한 역습. 빠져 나갈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가능한 그 일인데, 결국 그녀는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동반해 온 사람 하나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어머니이임.”

끝을 길게 늘이며 최대한 애교 있고 붙임성 있는 말투로 우혁의 어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뒤를 보니 그의 조부모가 있다. 이번에는 공손해졌다. 평소의 그녀와는 전혀 다른 모습. 우혁도 깜빡 속아 넘어간다. 오히려 빛나에게 이런 면이 있다는 게 새롭기까지 하다.

“어… 어쩐 일이야?”

“전화로 이야기하기 좀 그래서 일단 여기 인사해.”

“안녕하세요, 최우혁씨. AK 스포츠의 오승헌 실장입니다.”

그는 명함을 꺼냈다. 황금색 테두리를 가지고 있는 아주 고급스러운 명함. 거기에는 그가 말한 인적 사항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전혀 영문을 몰랐다. 명함을 보고 그의 얼굴을 보는 우혁.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왜 이 사람이 자신을 찾아 왔고, 명함을 주는지 말이다.

“손님 세워 놓고 뭐 하는 거냐? 들어오셔서 차 한 찬 내어 드려야지…”

우혁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이유를 알 수 없으니 우물쭈물하던 그녀에게 시어머니가 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멀뚱히 현관 앞에 빛나와 승헌을 세워두고 있었던 것이다.

“아, 내 정신 좀 봐. 들어오세요. 커피 드릴까요? 아니면 다른 거라도… 그리고 여기 아가씨는?”

“아, 저는 빛나라고 합니다. 박빛나. 우혁이랑 같이 수영하는 친구에요.”

“그래?”

들어오면서 이야기하는 빛나에게 우혁의 어머니는 반색을 한다. 그에게 생기는 친구가 반갑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얼굴이 낯익다.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이다.

“혹시, 이번 동아 수영 대회 4관왕? 한국의 인어?”

“아유, 쑥스럽네요. 특히 한국의 인어라는 말, 듣기 민망하네요. 어쨌든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고 차를 내오는 그의 어머니. 할아버지는 관심이 없는 듯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신다. 원래 무뚝뚝한 분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고 다른 가족들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AK 스포츠라고 하셨나요?”

“그렇습니다. 스포츠 에이전시 회사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려서 선수들에게 돈 걱정 하지 않고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곳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의 어머니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하는 승헌. 대충 비슷한 개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선수들에게 소속사를 찾아주고, 광고를 연결시켜 주며 그 수수료를 수입으로 사는 회사. 비록 한국에서는 이런 에이전시 회사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AK 스포츠라면 이 분야에서는 신뢰할 만한 곳이다.

“저희는 국내의 유명한 스포츠 스타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유명 프로 축구 및 야구 선수들이 다수지만, 개인 스포츠 선수들도 다수 있습니다. 수영의 박태원 선수와 피겨 스케이팅의 김영아 선수도 저희 소속입니다. 은퇴 후에도 저희는 계속 그들을 지원합니다.”

“그럼 저희 우혁이를…”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생각해 보시고 결정하십시오. 사실 국내 수영 선수들이 맘 놓고 운동하기가 쉬운 게 아닙니다. 당장 박태원 선수도 올림픽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실업팀이 해체되고 지원도 끊겼던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대그룹의 투자 지원 및 꾸준한 광고가 그들을 안심하고 운동하도록 만들죠. 그런 안전장치가 없는 한 생업으로 수영선수를 하기는 어려운 환경입니다.”

맞는 이야기다. 그리고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이고. 그녀는 항상 아들의 미래에 대해서 걱정을 해 왔다. 아팠을 때는 사실 아프지 않는 게 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회복한 자식이 이 냉혹한 세상에 온전히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 이후에도 걱정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모든 부모는 자식들에 대해 크고 작은 고민들로 살아간다. 그것이 부모다.

“계약서는 여기 가지고 왔습니다. 통상 신인에 대한 커미션은 1년 동안 3:7로 설정을 합니다. 그러나 최우혁 선수의 가능성을 보고 저희는 2:8로 작성한 계약서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8이 선수 측입니다.”

“절대 나쁜 조건이 아니에요. 저 역시 AK 스포츠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말씀드리기 창피하지만 저보다 더 조건이 좋아요. 우혁이가 좋은 조건에서 운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실장님을 모시고 온 거예요.”

빛나가 부연설명을 한다. 그녀가 말하니 더 신뢰가 갔다. 아들에게 다가온 이 좋은 행운. 당장이라도 계약을 하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선택은 아들의 몫이다. 미성년자가 아닌 우혁. 요즘 그와 남편은 자주 이야기 한다. 그동안 자신들의 그늘 아래서 자라왔던 아들을 이제 서서히 독립시켜야 한다는 대화. 당장은 아니지만 사회화 과정이 전혀 없었기에 서서히 그런 방식을 알려주면서 후일을 위해서 중요한 선택을 그에게 맡기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을 하곤 했다.

“그런 좋은 조건을 왜 저한테 제시하시나요?”

그는 의문스러웠다. 세상에 나가는 첫 번째 걸음이 수영이었다. 그리고 만난 많은 사람들은 경계의 대상일 뿐이다. 자신을 이용하고 사기 치려는 사람들을 아직까지 만난 일은 없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의 호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일종의 자기 방어다.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게 없으니 더더욱 조심해야겠다는.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우혁 군의 상품성 때문입니다.”

“상품성?”

“그렇습니다. 요 며칠 기사나 검색어 순위를 보시면 잘 알 것입니다. 사실 수영이 아니라도 당장 연예계 및 모델계로 진출해도 손색이 없는 매력적인 외모. 그것만으로도 광고가 줄을 이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에이전시를 통하지 않더라도 제가 직접 광고주와 계약을 해도 되겠네요.”

“그래도 상관은 없습니다. 하지만 운동에 전념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희가 하는 역할은 간단합니다. 선수들이 하지 못하는 협상. 그것으로 상대가 지불하는 돈을 조금 더 크게 만드는 것이죠. 그러라고 커미션을 받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선수들이 직접 하기에는 솔직히 계약서를 꼼꼼히 살필 시간도 없고, 전문적인 용어 해석력도… 아, 죄송합니다. 이 이야기를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괜찮아요. 계속 하세요.”

“네, 그러시다면… 솔직히 선수들이 정규 교육을 받았다고는 하더라도 지식을 습득할 만큼 많은 양을 공부한 운동선수들은 별로 없습니다. 당연히 숫자에 약하고 이는 잘못된 계약을 하는 것이죠.”

그는 스스로 이런 말을 하면서 상대의 기분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우혁은 그의 말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가 공부를 게을리 했다는 것은 오산이다. 그의 부모님은 그를 위해 홈스쿨링을 하기도 했으며 부모 자체가 고학력이라서 직접 많은 지도를 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다른 아이들과 견주어 결코 지적인 수준이 낮은 편이 아니다.

“말씀 잘 알겠습니다. 그럼 그 부분은 저희 아버지와 나중에 이야기 하시죠. 말씀하신 대로 저는 아직 세상을 짧게 살아서 그런지 잘 못 계약하면 후회를 할 것 같네요.”

“그랴. 우리 우혁이가 말 잘하는구만. 이런 일은 아범이 나서야 혀. 우혁이 아범이 똑 부러지게 처리할 거구만.”

그의 말이 끝나자 할머니도 드디어 한 마디 하고 나선다. 자기 자식, 그리고 자기 손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다. 손자의 회복으로 요즘은 특히나 더 손자 자랑을 하고 다닌다. 동네 할머니들한테.

“알겠습니다. 명함을 드렸으니 그럼 꼭 전화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일어나 보겠습니다.”

승헌은 먼저 일어섰다. 밖을 배웅하는 사람 중에는 빛나도 있었다. 같이 왔지만 같이 가지는 않았다. 남은 이유는 우혁 때문이었고. 그는 오늘 갑작스럽게 잡은 약속 때문에 미래와의 약속을 깰 수밖에 없었다. 아쉬워하는 그녀. 영화도 보고 식사도 같이 하면서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었지만 본격적인 라이벌의 경쟁이 시작되었고, 이제는 치명적인 무기를 들어야 그를 쟁취할 수 있었다.

“네 방 좀 구경 시켜 주라.”

그 말을 들은 우혁. 잠시 고민을 한다. 숨길 것이 있는가? 예전에 미래가 왔을 때에도 자신의 방은 내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먹었다. 빛나든 미래든 언젠가는 알려야 할 것 같았다. 그들은 그의 유이한 친구들이기에.

“그래. 따라 와.”

드디어 그녀는 우혁의 방을 들어간 첫 번째 이성 친구가 되었다. 깔끔하다. 그가 잘 정리해서라기보다는 그의 어머니 손길이 느껴진다. 그런데 여기 저기 걸려 있는 사진 중에 그가 휠체어를 탄 사진들이 많이 보였다.

“이건…”

“나 하반신 마비였어.”

“뭐라고?”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제야 미래가 전에 말했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걷지도 못했던 그가 이렇게 스포츠를 할 수 있는 선수로 활동하는 것. 이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물론 어느 정도 심각했고, 어떻게 회복되었으며, 얼마나 건강한지는 알 수 없지만.

“너, 정말… 대단하구나.”

“뭐가?”

“나도 한 차례 부상을 당했었어. 재활만 1년이 걸렸지. 다시 운동을 시작했을 때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런데 지금 이 사진들. 어렸을 때부터 휠체어를 타고 다녔고, 최근의 모습까지도 담겨 있어. 지금 너의 건강한 모습이 믿겨지지가 않아. 더군다나 대회에서 3위까지 입상을 했어. 이건 인간 승리야…”

“됐어. 그렇게 까지는 아니야. 그냥 난 지금이 만족스러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우혁. 그래서 더 대단해 보인다. 그녀는 알면 알수록 그의 매력에 더 빠져들고 있다. 어쩌면 그의 늪에서 심하게 허우적거릴지도 몰랐다. 그래서 더욱 결심하게 된다. 미래와의 경쟁. 반드시 승리하고 싶다고. 물론 이 둘의 마음을 그는 알지 못하지만.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김칫국 먼저 마신다는 말.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데…

============================ 작품 후기 ============================

이 글에 나오는 스포츠 에이전시, 그리고 수영 연맹, 훈련장 등 모든 수영에 관련된 단체나 조직들은 실제와 다릅니다. 이럴 것이다, 또는 이러면 어떨까 라는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 인터넷을 뒤져보기는 했습니다. 따라서 현실과 달라도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스포츠 에이전시 부분은 예전에 개고생님이 아이디어를 주셨고, 접목을 해서 탄생을 시킨 결과물입니다. 매우 감사드립니다. 다른 분들의 아이디어도 필요합니다. 의외로 수영에 관련된 것만 쓰자니 참 힘들군요. 그렇다고 인터넷에서 기술적인 것만을 베껴서 글을 늘리는 것은 말도 안 되잖아요. 로맨스 부분을 첨가는 하고 있지만 여러 소재를 생각해 내는 게 참 쉽지는 않네요^^

어쨌든 그래도 열심히 열심히 노력하면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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