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57화 촬영장을 아우르는 외모
순빈은 우혁에게 미래의 매니저에게 전화가 왔다고 전달을 했다. 왠지 모르게 축 늘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서 좀 신선한 일을 알려주면 그의 쳐진 어깨가 좀 힘을 받을까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말 자체를 모르는 것 같았다.
“까메오?”
“응. 무슨 말인지 모르는 눈치네. 가끔 드라마에 보면 단역으로 출연하는 인기인을 말해. 우정으로 출현을 한다는 말이야.”
“아, 그래? 근데, 나 연기 같은 것 안 되는 놈이잖아.”
“뭐, 그렇게 큰 상관은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NG만 내면 폐를 끼칠 것 같아서.”
내용인즉슨, 수영장 신이 있는데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죽은 물귀신으로 분해달라는 것이다. 물론 미래의 우정출현으로. 그녀가 수영선수 출신이니 우혁을 언급했다가 이렇게 되었다고 곤란해 했다. 연출자와 작가가 필히 요구를 하고 있다고.
“일단 신중하게 생각해보자, 형. 이게 도움이 되는 일이야?”
“당연하지. 지금 그 드라마의 시청률이 20프로야. 너도 잠깐 까메오로 출현을 하면 서로 윈윈할 거야. 다시 한 번 네 존재를 입증할 수 있어. 너의 상품성. 그럼 S 생명이 수영에 투자하는 것을 절대 망설이지 않을 거야.”
“그래? 마음이 약해지네. 일단 연출자랑 작가랑 만나고 나서 결정을 하면 안 돼?”
“알았어. 그렇게 약속 잡아 볼게.”
그는 다시 전화를 했다. 우혁은 그가 전화를 하는 동안 식탁에 앉았다. 이미 집은 말끔하게 청소가 된 상태다. 순빈이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았다.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식탁에 놓인 반찬들을 보았다. 여전히 맛깔스러운 빛을 내는 음식을 해주고 들어간 아주머니. 그녀에게도 마찬가지의 감정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보게 되었다. 그녀가 가져다준 김치를. 이것을 가져다주던 날 그녀와의 일이 있었다. 그 일이 천추의 한이 된다. 빛나에게 기울어져간 마음. 이제 외로움을 더 이상 느끼지 않도록 여자 친구를 만들려고 했는데 말이다. 그는 함부로 마음을 주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아마도 쉽게 또 다른 여인을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 같았다.
물론 변수는 있다. 박미래. 애초에 그의 첫 친구가 바로 그녀였다. 그리고 그에게 헌신적이기도 했고. 빛나보다 더 적극적이니 원래는 그녀가 그의 여자 친구가 될 수 있을 가능성이 더 컸는데, 이제는 쉽지 않다. 그녀가 너무 바빠졌기 때문이다.
“따로 시간을 내기는 어렵고 내일 촬영장으로 오래.”
“아, 그래? 몇 시에?”
“저녁에 오라던데. 잘 되었지 뭐야. 훈련이 끝나고 갈 수 있으니 말이야.”
“알았어, 형. 고마워.”
그날은 잠이 안 왔다. 이런 저런 생각 때문이다. 특히 빛나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친구로 남자는 말에 동의는 했지만 그는 마음이 표정에 드러나는 사람이다. 내일 어떻게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볼지 걱정이 되었다.
그런 걱정을 그에게 안겨주지 않으려 했던 것일까? 몸이 아프다고 그 날은 빛나가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 또 걱정이 되었다. 어디가 아픈 걸까?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관심을 더 가지기도 힘들었다. 신경이 점점 쓰인다. 그녀에게 마음이 자꾸 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우정이라니? 지속될 수 있을까?
오후가 되자 유카리가 학교에서 훈련장으로 왔다. 일수와 같이. 둘이 같은 학교가 되다 보니 이제 자주 다니게 될 것 같다. 그녀는 오자마자 우혁의 곁으로 다가와서 같이 훈련을 했다. 당분간 이럴 수밖에 없다. 그녀를 가르칠 트레이너 선임이 늦어지고 있고, 코치는 해외에서 구하는 중이란다. 그러니 자유롭게 훈련을 할 수밖에.
그래도 우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복잡한 관계는 만들고 싶지 않은 게 그의 마음이다. 그것도 모르고 그녀는 계속 그의 옆을 다니고 있다. 이것저것 조잘거리면서. 상당히 방해가 된다.
드디어 훈련이 끝났다. 그는 정해진 스케줄대로 순빈과 함께 촬영장으로 갔다. 프리머스 호텔 수영장. 이미 촬영은 진행이 되고 있었다. 많은 스태프와 주, 조연 배우들. 그리고 단역들이 있었다. 아무리 단역이라도 연예인들이다. 예쁘고 잘생긴 남녀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가 도착하자 단연 돋보였다. 왜 그에게 여자들이 홀딱 빠져드는지 알 것 같았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색깔. 가장 잘생겼다고 말은 하기 힘들어도 마성의 매력을 물씬 풍겼다. 연출자가 그를 보면서 이렇게 말할 정도로.
“최우혁 선수, 혹시 나중에 수영 은퇴하고 작품 할 계획 없어요? 있으면 저랑 꼭 같이 해요.”
“없습니다.”
“그래요? 아쉽네. 너무 대답이 칼 같아서 진짜 생각이 없나 본데요? 하하하.”
웃는 것은 순빈이가 같이 미소를 지어 주었지만 우혁이 여전히 굳은 표정이 되자 머쓱해진 연출자. 곧 이어 작가와 미래, 그리고 그녀의 매니저까지 왔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이 일을 하는 곳에 나타나자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공공연한 곳에서 너무 드러내면 안 된다. 작가는 벌써 그녀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어머, 어머. 둘이 예전에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에요? 최우혁 선수가 오니까 미래씨 너무 좋아한다. 호호호.”
“아… 아니에요. 친한 친구였어요.”
“에이, 남자 여자가 친한 친구가 어디 있어? 처음에는 친구로 결국은 연인으로 되는 게 남녀 케미 아니겠어?”
모두 밝은 표정이다. 하긴 드라마가 잘되고 있다. 미래는 주연은 아니지만 점점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그녀의 예쁜 얼굴과 특히 아름다운 몸매 때문에 남성팬들이 꾸준히 증가해 오고 있다. 원래 시청률은 여성을 공략해야 한단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 둘 다 많이 보는 드라마는 국민 드라마가 된다. 그러니 요즘 시청률 고공 행진의 설명이 납득이 되는 것이다.
“자, 자. 간단히 설명을 할 게요. 우혁씨는 대사는 없어요. 그냥 분장을 하고 물속에 있기만 하면 되요.”
“잠수한 상태로요?”
“맞아요. 숨 쉬는 것은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촬영하니까요.”
우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까메오 출연이라고는 하지만 대사가 없으니 이 정도라면 할 만하다. 더구나 그냥 물속에 잠수만하고 있으라고 했다. 그건 더 자신이 있었다. 오래 있어도 상관없는데 배려까지 해준단다.
“괜찮겠어?”
“응. 나야 상관없는데, 네가 출현하는 드라마에 폐가 될까봐 두렵네.”
“걱정 마. 감독님이 내가 너 알고 있다니까 얼마나 부탁을 하던지…”
“맞아요, 맞아. 하하. 내가 미래씨를 시도 때도 없이 볶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만나게 될 수 있었네요. 참, 표정은 지금 그 표정으로 임해 주세요. 웃거나 그러면 절대 안 됩니다.”
“네.”
그의 단답형 대답. 원래 이러려니 생각을 하는 감독과 작가. 잠시 후 촬영을 하기 전에 그에게 분장사가 찾아왔다. 그를 향해 다시 감독이 주문을 했다.
“너무 진하게 하지 말도록. 우혁씨 외모를 최대한 시청자들이 알아봐야 하니까.”
“알았어요, 감독님. 호호호.”
분장사가 우혁의 곁에 왔다. 그리고 그의 외모를 보고 역시 감탄을 하며 분장을 하기 시작했다.
“물에 쓸려 나가지 않는 파우더에요. 좀 가려울지도 몰라요.”
우혁은 고개만 끄덕였다. 역시나 시크한 모습. 그런데 분장사는 그에게 계속 말을 시킨다.
“그런데 너무 잘생기셨어요. 배우 하실 생각 없으세요? 크게 되실 것 같은데… 제가 이 생활 10년에 가장 매력적인 분을 만난 것 같아요. 조안성도, 원분도 그리고 김수형도 다 울고 갈 외모인데요?”
“없습니다.”
그의 짧은 대답이 또 나왔다. 그녀는 그가 꽤 과묵하다는 것을 느끼고 더 말을 걸지 않았다. 그렇게 분장을 하고 있는 동안 다른 여배우들도 그를 힐끗 한 번 보고 있다. 안보는 척 하지만 다들 그의 매력에 눈길을 한 번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미래야, 저 사람 정말 잘 생겼다.”
“아, 네.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진짜야. 정말정말 잘 생겼어.”
이 드라마의 주연급 배우 하나가 와서 그녀에게 친한 척 한다. 원래 이렇게 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에게 온다는 의미는 그를 탐내고 있다는 뜻일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녀의 이름은 한수연. 연하 킬러라고 소문이 난 연예계의 대표적인 바람둥이다.
“언제 한 번 같이 식사할 수 있을까? 저 사람과 동반해서…”
“아, 훈련에 바쁘다고 해서 저도 잘 못 만나요.”
“그래? 흠. 그럼 내가 직접 컨택 해야겠네. 알았어, 미래씨. 생각보다 친하지는 않나봐.”
올 때만큼 빠르게 그녀는 분장을 하는 곳으로 다가갔다. 미래의 시선이 그곳에 고정이 되고 있다. 불안하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마냥. 이것을 생각하지 못했던가? 이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던 게다. 특히나 수연의 저 행동. 너무 적극적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