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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114화 선물을 정하다

감동은 길다. 하지만 당장은 내일 있을 400미터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인터뷰를 짧게 가져갔다. 원래도 짧지만 기자들의 질문 내용이 사생활에 집중되기 시작하자 우혁은 거기서 끊은 것이다. 어차피 추측성 보도는 알아서들 하고 있다. 그의 한 마디로 일파만파 고생할 세실리아를 생각하면 말을 더 아껴야 한다.

요즘 세실리아는 한글 공부를 한다고 들었다. 그의 어머니가 가르치고 있다. 이제 말하는 게 많이 늘었으니 글도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고. 지연은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다. 가르치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인어가 인간 세상에 적응하려고 하니 별 것도 다 해본다.

“오늘은 뭐했어?”

- 아까 우혁 금메달 딴 거 보고 한글 공부 했어.

“그래? 잘 했어?”

- 자음이랑 모음 다 외웠어.

“대단한걸. 똑똑하네. 하하하.”

옆에서 듣고 있는 일수. 간지럽다 못해서 소름이 돋는다. 어떻게 저렇게 사람이 변할 수 있을까? 다른 여자한테 하는 것을 보면 얼음이 따로 없던데. 오늘만 해도 그렇다. 그가 금메달을 땄을 때 타국의 여자 선수들이 축하를 해주러 왔지만 묵묵부답. 그는 말도 없이 이렇게 숙소로 와서 바로 전화를 했다. 이럴려고 인터뷰도 짧게 끝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형, 여자 친구 어디서 만났어요?”

“물에서.”

“헉, 정말 여자 친구였어…”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유도 심문을 해 본 것인데 드디어 걸려 버렸다. 세실리아와의 통화를 끝내자마자 공격한 게 주효했다. 우혁도 찔끔했다. 처음으로 가족과 순빈이 아닌 사람에게 여자 친구의 존재를 드러내 버렸으니. 한 명 더 있기는 하다. 미래다. 어쩔 수 없는 이별 때문에 말을 해야 했다.

“그 여자 맞죠? 인터넷에 그 때 떴던 여자.”

이제 다시 침묵 모드다. 최대한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게 그의 목표. 잘 못 하다가는 일이 복잡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다시 딴 청을 부린다. 일수는 몇 번 물어보다가 결국 체념을 했는지 이렇게 말했다.

“형,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그래요.”

“그래? 누군데?”

“궁금하시죠?”

“아니, 예의상 물어본 거야.”

방법을 바꾼 것인가? 교환 법칙으로.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말려들지 않는 우혁. 결국 일수는 포기하고 털어 놓는다. 그는 죽었다 깨어나도 가질 수 없는 저 시크함. 없는 자는 이렇게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애는 아니고요, 사실 북한 애에요.”

“응? 정말?”

“네, 신수경이라고 자유형 선수. 저보다 한 살 어려요.”

남남북녀라고 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번 북한의 얼짱이 하나 등장했는데, 그게 바로 신수경이라는 자유형 선수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수영이 강하지는 않다. 폐쇄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자들의 수영복 입은 것을 좋아하는 문화가 아닐 것 같은지 수영 선수 자체가 거의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신수경은 재능을 발휘하여 국제 대회에 몇 번 참가했다. 일수는 그녀에게 첫 눈에 반했다고 한다.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그녀는 더 성장을 했는데, 혼자 가슴 떨리는 짝사랑을 경험하고 있다.

“어렵군.”

“그죠? 안 되겠죠? 휴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있는 일수. 그를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정작 어려운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은 그일지도 모른다. 세실리아와 우혁은 국적의 문제가 아닌 종족의 문제가 걸려 있지 않은가?

“왜 그렇게 어려운 사람을 좋아해?”

“사람 맘이 맘대로 되나요?”

“애 늙은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근처에서 찾아. 가희 같은 애 어때?”

“그런 4차원은 트럭으로 가져다 준다고 해도 싫어요.”

“그건 그렇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여자 수영 선수 중에 가장 인기가 많은 게 그녀이기 때문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얼굴과 몸매는 남자들의 이상형에 가깝다. 우혁에게 천대받아서 그렇지 어디에 내 놓아도 수준급인 것이다.

“나가자. 틀어 박혀 있으니까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는 거야. 베트남 시내도 구경하고 어때?”

“그래요.”

이들과 함께 다른 수영 선수들도 붙었다. 김훈과 찬규는 물론이고, 병묵과 종수 등도 함께 했다. 우혁은 사실 쇼핑을 하고 싶었다. 세실리아에게 줄 선물이 뭐가 좋을까 고민을 하던 차에 일단 마지막날 혼자 와서 구입하기로 하고 오늘은 예행연습을 하기로 했다.

김훈이나 찬규는 다들 여자 친구가 있다. 그래서 그들이 사는 물건을 유심히 보았다가 나중에 참고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가 언제 여자 친구에게 선물을 사 본적이 있었겠는가? 경험이 없으니 배워야 한다. 그래서 어쩐 일로 자신들도 데리고 다니나 생각했던 이들은 어쨌든 같이 쇼핑에 따라 나섰다.

“야, 이거 커피다. 베트남 커피가 그렇게 유명하잖아. 이거 사다 줘야겠다.”

“그래? 나도, 나도.”

그런데 크게 도움은 못 되는 것 같았다. 베트남이 세계 2위의 커피 수출국인 것과 그의 선물을 고르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는 세실리아에게 아무거나 먹이고 싶지 않았다. 인간과 다른 종족인 그녀가 어쩌면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음식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어, 짝퉁의 천국이라고 하더니 이것은 고찌? 루비뚱도 있다.”

“값도 엄청 싸네. 여자 친구한테 사다 주고 진짜라고 우길까봐.”

이것도 별로다. 사주려면 진짜를 사주고 싶다. 굳이 가짜를 사주어서 세실리아의 아름다움을 평가 절하 시키고 싶지 않다. 그는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광고만 계속 찍어도 될 것 같다. 거기다가 앞으로 성적 여하에 따라 연금도 확보가 되고 실업팀 연봉도 낮지 않다.

길거리에 널브러진 이런 짝퉁들. 진짜와 비슷하게 생겨서 눈이 돌아갈 수 있지만 그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 인형이다. 베트남 전통 의상을 입고는 있지만 인어다. 그게 끌린다.

‘어쩌면 세실리아가 좋아할 것 같은데…’

그는 마음속으로 드디어 점찍은 것을 골랐다. 인어 모양의 베트남 전통 의상을 입은 인형을 그녀에게 사다줄 것이라고 잠정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이제 그의 쇼핑은 끝났다. 하지만 막상 끌고 나왔으니 끝까지 같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동료들과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되었다.

“야, 미래다.”

“그러게.”

그들이 보고 있는 광고. 미래가 나와서 맥주 선전을 하고 있다. 섹시하게 춤을 추며 맥주를 먹는 그녀의 모습. 남자 배우와 함께 얼굴에는 예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완전히 떴어, 완전히.”

“난 쟤가 저렇게 될 줄 몰랐지.”

“근데 쟤 우혁이 좋아하지 않았냐?”

“쉿.”

김훈의 이야기를 찬규가 막았다. 요즘 이들은 그의 기분을 많이 건드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약간 친해졌는지 아니면 친구나 동료로 취급하려고 하는지 그의 프라이버시를 건드리는 일이라 생각하며 입에 검지를 세웠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다.

“이제 들어가자. 내일 경기도 있고…”

“그… 그래.”

“그러자.”

우혁은 베트남 중심부에 있는 큰 건물 LED 화면에서 미래가 나오는 광고를 보고 잠시 생각에 젖다가 그들에게 말을 했다. 모처럼 나온 외유. 짧은 시간이지만 내일을 위해서 그의 말에 따르기로 한 일행이다.

숙소에 들어가자 순빈이가 와 있었다. 방송사와 무슨 이야기를 한다고 나갔었는데 자세한 것을 우혁이는 모른다. 그의 얼굴은 밝았다. 뭔가 좋은 일을 가지고 온 것처럼.

“SBC 방송국에서 이번에 힐링캠핑이라는 곳에서 너를 섭외하겠다고 전달해 왔어.”

“저는…”

“알아, 인마. 그런 거 싫어하는 거. 나가서 할 말 없어서 그런 거 아냐. 그럴 줄 알고 다른 선수들도 함께 출현할 수 있냐고 했더니 그 쪽에서 OK했어. 아시안 게임 특집이니만큼 이런 것 이미지 관리 잘 해야 해. 그래야 광고도 많이 들어오고 그러지…”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저번에 크루즈 여행을 어쩔 수 없이 하면서 느꼈다. 세상은 돈이 있으면 참 편할 것 같다고. 그러면 국적이나 종족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아, 그리고 P&A측에서 한 번 보자고 하는데…”

“그 쪽에서요? 왜요?”

“너 S 생명하고 계약이 끝나가잖아. 그러니까 그렇겠지.”

“지금까지 잘 해줬는데 그냥 붙어 있을래요.”

단기 계약. 그가 좋아하는 1년 계약이 끝나 간다. S 생명은 그를 통해서 이미지 개선을 많이 했다. S 생명 뿐 아니라 S 그룹의 매출 자체가 우혁 때문에 많이 올랐다. 요즘 특히 아시안 게임 특수를 맞아서 그에 관련된 광고가 많이 나가고 있으니 혜택을 많이 본 것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우혁에게 많은 투자를 했다. 팀도 만들어 주었고 수영장도 건립해 주었다. 아무리 그가 주가가 상승했다고 하지만 배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누가 떠나자니? 그냥 이야기라도 한 번 들어보자는 이야기야. 원래 이게 매니저의 일 아니겠어? 조건 들어보고 나중에 S 생명에게 튕겨 봐야지. 이쪽에서는 이렇게 제시하니까 이것 좀 더 생각해 봐 달라…”

“그건 형이 하는 게 아니잖아요.”

“응? 그건 그렇지만, 승헌이형에게 이야기 해본다 이거지.”

우혁의 말. 소속사인 에이전트가 소속팀과 연봉 협상을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개인 매니저인 순빈은 그의 프라이버시만 관리해주면 된다는 의미. 그러나 그의 꿈은 나중에 소속사를 차리는 것이다. 그 역시 왜 욕심이 없겠는가? 지금은 그 예행연습이라고 볼 수 있다.

“알았어요. 나중에 시간 잡아 주세요.”

“그래.”

순빈의 부탁. 가족과 같은 사람인지라 그는 두 가지를 다 승낙하고 말았다. 힐링캠핑, P&A와 만나는 일. 여러 가지 해프닝이 발생할 이 두 개의 만남. 아시안 게임과 더불어 같이 진행될 이야기이다.

============================ 작품 후기 ============================

질문이 또 하나 있습니다. 음, 출판에 대해서입니다. 사실 이 작품을 쓰면서도 몇 개가 쪽지로 왔습니다. 출판 제의. 전 아직 그 정도 레벨은 아니라서 답장을 해주지 않고 있는데 딱 하나 원하는 게 있습니다. 작가 옆에 그 마크 보면 검은색 펜. 그게 왜 이렇게 멋있게 보이는지. ㅎㅎ

어쨌든 출판을 하게 되면 수입은 별로라고 들었습니다. 딱히 제가 전업으로 가려고 하는 것도 아니라서, 다만 검은색 펜의 장점이 아니더라도, 즉 지금 마크인 연두색이더라도 독자들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보는 편일까요? 질문이 좀 불명확한 것 같네요. 꼭 대답을 안 해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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