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세실리아는 깜짝 놀랐다. 누군가가 자신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고 있다. 인간이다. 충분히 경고를 받은 인간. 도망을 갈까 생각을 했는데, 그만 보고 말았다. 그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호기심이 들었다.
‘죽은 것일까?’
가끔 그녀는 발견한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을. 로렐라이 언덕에서 자신의 운명을 물속에 맡기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말이다. 그녀는 다가갔다. 그리고 또 보고야 말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여인이 남자를 볼 때 느끼는 그 감정 중에 가장 설레는 느낌. 이것을 첫 눈에 반한다고 해야 할까?
마안(魔顔)이다. 그를 보는 모든 사람을 현혹시키는 외모. 여성스럽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남자로서 아름답다. 그것을 말로 형용할 수는 없다. 그냥 한 번 보면 느낀다. 왜 그에게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지.
‘이렇게 아름다운 남자가 왜?’
그녀는 생각한다. 아니 생각 이전에 벌써 그를 붙잡아 가는 손. 본능이다. 이미 매혹되어 자신도 주체 못할 본능. 머릿속에는 그를 살려야만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숨이 붙어 있을 때 해야 했다. 인어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 바로 호흡이다.
자신을 만지는 손. 그는 눈을 뜨고 말았다. 그리고 보았다. 아름다운 인어를.
‘죽은 것인가?’
그는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너무 찰나의 시간이다. 물속에 잠겨서 의식이라도 잃었어야 했는데, 아까부터 지금까지 의식은 계속 살아있다. 그리고 고통도 느껴진다. 숨을 참을 수밖에 없는 고통. 아무리 죽음을 택했어도 물을 들이마시는 것을 하기 힘들었다. 본능적인 거부권. 그의 입과 코는 절대 이를 허락하지 않으리라.
인어의 얼굴. 백색의 피부. 그리고 아름다운 목선. 물결에 휘날리는 금발 머리. 그는 그 찰나의 시간에도 눈을 밑으로 향한다. 작지 않은 가슴. 풍만하다. 숨이 막힐 듯한 조화. 비대하지도 않지만 충분히 큰 그녀의 가슴은 죽음을 앞둔 그 순간에도 그에게 흥분감을 주는가? 그는 갑작스럽게 심호흡을 들이킨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인데. 그래서는 물이 들어와 버린다. 그의 코와 입으로. 그리고 폐에 물이 차면 그는 호흡이 끊기고 삶을 마감하는 것이다. 어차피 죽음을 원했는데, 막상 이렇게 인어를 보니 당연히 죽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이렇게 아름다운 인어라니?
그렇게 하다가 허우적거리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붙잡았다. 하필 잡은 곳은 그녀의 가슴. 푹신한 그 느낌. 탄력까지 느껴지는 이기적임이여. 어떻게 그 두 가지가 공존한단 말인가?
그녀는 그가 자신의 가슴을 잡자 약간 놀랐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를 살리고 싶었다. 그의 입으로 자신의 입술을 가까이 하는 이유. 바로 그 때문이다. 인어만이 가지고 있는 호흡을 나누어주고 싶었다. 인어만이 가지고 있는 치유능력을 발휘하고 싶었다.
그렇게 자신의 입을 덮은 그녀의 입술. 너무나 부드러웠다. 죽음과 직면해서 마지막 선물을 받은 것인가? 처음 보는 인어의 달콤한 키스.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가만, 발끝이라고?’
그가 발끝의 감각을 느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느껴진다. 물속에서 발끝의 감각을. 이상한 일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더구나 그녀가 입술을 뗐을 때 그는 자기가 죽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물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와도 답답하지 않았다. 그대로 다시 내뱉으면 되기에. 물속에 있는 산소를 분해하여 자신의 안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라도 생긴 것일까?
그렇다. 그는 물속에서 호흡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신기한 일이다. 더군다나 발의 감각까지 느껴지니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닐쏘냐? 이제는 살고 싶었다. 아까는 죽고 싶었는데…
‘살려줘…’
물속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들릴 리가 없다. 진공상태에서는 음성을 전달할 수가 없으니. 그러나 그가 모르는 게 있다. 음파는 전달이 된다. 인어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나 보다. 그러나 그 의미를 알 리가 없다. 다만 그녀 역시 그에게 음파를 전달했다.
‘꼭 살아 줘…’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그를 밀었다. 수면 위까지 그녀의 힘이 전달 될 수 있을까? 그것을 모르겠지만 그의 절박한 움직임이 그를 떠오르게 하고 있다. 그에 반해 그녀는 가라앉고 있다. 어쩔 수 없다. 자신의 힘을 나누어 주었기에 당분간 요양을 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몇 년이 될지도. 심하면 몇 십 년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잘 못하면 거품이 되어 죽음을 맞이할 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녀의 로드는 이것을 듣고 화를 낼지도 모른다. 인어의 여왕. 그녀는 절대로 인간에게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 자칫하다가는 실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인어들에게 인간은 두려운 존재다. 신비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인간에게 대항할 힘은 없기에. 고작 물속에서 근근이 종족의 명맥만 유지시킬 수밖에 없다.
팔과 다리. 팔은 모르지만 분명히 자신의 뜻을 따르고 있는 이 다리는 신기하다. 어찌 이렇게 잘도 움직이는 것인지? 그리고 그렇지 않더라도 죽지 않을 것 같았다. 물에서 숨을 쉴 수 있다는 것. 이제야 느꼈다. 자신은 물속에서 호흡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인어는 보이지 않았다. 살아 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다. 그래서 고맙다고 하고 싶다. 또 있다. 미안하다는 말도 하고 싶었다. 뜻하지 않게 그녀의 가슴을 만지지 않았는가? 느낌은 좋았지만 그는 아직 순진했다. 한국나이로 이제 열아홉. 아직 스물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미안한 것이다. 함부로 다른 여자의 가슴을 만졌으니.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위를 보니 발이 보였다. 구두를 신고 있는 남자의 발. 그리고 그 구두는 매우 익숙하다. 자신의 아버지의 것. 아마도 자신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근방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리라.
문제는 그것을 보아도 수영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당연한 일이다. 배운 적이 없으니. 물속에서 호흡을 할 수 있다고 수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입을 열어 불러 보았다.
‘아버지…’
당연히 들릴 리가 없다. 그는 손을 뻗었다. 거리가 있으니 잡을 수도 없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손을 뻗는 그의 마음. 그는 살짝 웃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은 죽음을 원했는데 이제는 살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에. 웃겼다. 인간이란 존재가. 그러나 원래 이게 인간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는 변덕이 죽 끓듯. 인간이란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해서 창피해 할 필요는 없다.
다리를 저었다. 어차피 이제 물에 대한 공포는 거의 없었다. 숨을 쉴 수 있는데 뭐가 겁이 나는가? 그렇게 한참을 저었다. 그래도 마구잡이이기 때문에 좀처럼 올라가지 못한다. 서서히 그렇게 올라가서 드디어 아버지를 지나쳐 수면위에 얼굴을 내밀었다.
“푸하…”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다고 해서 바깥 공기를 호흡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그는 이물질이 없는 산소가 코를 통해 들어오자 그렇게 숨을 쉬었다.
“우… 우혁아…”
덕분에 이 상황에서 놀란 것은 그의 아버지다. 유람선은 멈추어져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휠체어를 타고 다녔던 우혁을 본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마성의 외모. 한 번 보면 빨려 들어갈 듯한 그의 얼굴. 그래서 혀를 찼었다. 아깝다고. 저렇게 매력적인 청년이 하반신 마비인 게 왠지 안타까웠다는 그 얼굴.
“어… 어떻게 된 거냐?”
그의 아버지의 물음. 아마도 배 위의 어머니의 마음이 비슷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호기심도 같았을 것이다. 그들은 우혁의 입을 바라본다.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지. 물론 들릴 리가 없다. 유람선 위와 저 강위의 거리 덕분에.
“모르겠어요.”
============================ 작품 후기 ============================
우리나라에서 수영하는 것. 수영선수를 한다는 것. 댓글을 보니 참 힘든 일이네요. 갑자기 선수들이 존경스럽네요. 얼마전 빅토르 안 이야기도 있고, 그래서 빙상연맹 쪽의 일처리가 맘에 들지 않았는데, 수영 연맹도 마찬가지군요. 나중에 글에 그런 내용 좀 넣어야 겠습니다.
모르는 게 너무 많네요. 이 글도 많이 배우면서 쓰게 될 것 같습니다. 다소 억지스럽거나 사실이 아닌 내용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야 발전을 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순정이다, 하렘이다에 대한 노선. 음.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줄기를 뻗어 가면 갈 수록 분명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분명해질 때 갑자기 하렘으로, 또는 순정으로 급변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어쨌든 1편 만으로 선작을 눌러주셨던 독자님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저는 자러 가겠습니다. 전작보다 쓰기가 좀 힘드네요. 너무 어려운 소재를 골랐나? 잠시 후회 중입니다. 하하. 그래도 노력하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