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50화 기자 회견
기자들. 인천공항에 내리니 인산인해다. 그뿐인가? 오빠부대는 이제 얼마 안 남은 방학에 마지막 우혁의 얼굴을 보려고 많이도 나왔다. 거의 연예인 톱스타급이 되어 버렸다. 자신을 향해 찰칵거리는 소리에도 이제는 짜증내지 않았다. 순빈은 그에게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이미지 관리. 그것이 되어야 그가 계획한 일이 성공할 거라고.
“우승 소감에 대해서 한 말씀 듣겠습니다.”
“장치앙린이 이번에 불참했습니다. 그래서 운이 좋았습니다.”
겸손함도 대중이 좋아하는 성격이다. 그는 물론 겸손하지 않다. 하지만 미리 순빈이 이야기 한 것. 그 주문이 먹히고 있다. 다만 표정은 아니다. 여전히 굳은 표정. 그래서 기자들이 그에게 이런 식으로 요청을 하고 있다.
“최우혁 선수, 좀 웃어 주실 수 없나요? 하하하. 너무 표정이 경직 되어 있어요.”
“아, 네.”
하지만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아직까지 이런 것에 능숙하지 못한 대처인가? 그의 얼굴은 오히려 안 웃느니만 못한 이상한 미소를 생산해 내 버렸다. 아마도 지금 사진은 기사와 함께 나가는 타이틀로 사용하지 못할 것 같았다.
“자, 자. 기자 회견장을 예약했습니다. 거기로 갑시다. 허허허.”
연맹 부회장 박상민. 그는 이런 관심이 즐겁기만 하다. 다음 달 연맹 회장으로 내정되어 있는 그는 큰 난관에 봉착해 있다. 바로 수영에 대한 정부의 예산 삭감. 당장 올해는 상관없지만 내년에는 많은 예산이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바람을 일으키면 좀 나아질까 생각이 되어 기자회견까지 생각을 했다.
“우혁이는 매니저랑 같이 와. 아무래도 그게 나을 것 같아.”
영욱은 버스에 몰려 있는 아찔한 소녀 팬들을 보고 그에게 말했다.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차라리 순빈의 차를 타고 가는 게 나을 것이라 판단을 했다. 세계 대회를 우승한 것도 아닌데 국민적 관심이 들끓고 있다. 특히 여성 중심으로. 다 잘생긴 탓인가 보다.
“우혁아, 너 참 웃는 거 진짜 못한다.”
“그… 그래요? 안 되는 걸 어떡해요?”
“그러니까 평소에 좀 웃어, 짜샤. 하하.”
“평소에 잘 웃는데…”
물론 그의 기준이다. 하루에 한 번 웃을까 말까한 얼굴. 그나마 많이 나아지기는 했다. 작년까지 그의 인생에서 진짜 호쾌하게 웃어본 적이 없었다. 장애를 치유한 후 그는 약간 밝아진 것이다.
기자회견장에 도착한 이후 그는 표정관리에 애를 썼다. 아무리 그래도 더 어색할 뿐이다. 그래서 순빈이 옆에서 그에게 속삭였다.
“그냥 시크함으로 가자. 차라리 그게 더 나을 것 같아. 괜히 억지웃음을 짓다가는 네 잘생긴 얼굴 망가질 듯.”
그의 적절한 조언. 호텔 기자회견장으로 가는 그의 얼굴에는 예의 그 표정이 다시 살아났다. 이게 그에게는 더 어울리는 게 맞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항상 평소에 짓던 표정을 지어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가 웃음이 많아지고 표정이 더 밝아지면 그 때부터 그 살아있는 얼굴을 보여주면 된다.
기자들을 마주하는 형태로 배치된 자리. 중앙에는 연맹 회장이, 그리고 양 옆에는 부회장과 감독이 있었다. 선수는 역시 우혁과 빛나. 남자와 여자의 대표로 나란히 앉았다.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전에 기자 한 명이 여담으로 한 마디 외친다.
“오오, 둘이 잘 어울려요. 하하하.”
“하하하.”
그의 말에 좌중은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빛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이런 것에 익숙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와 잘 어울린다는 소리에 그만 가슴이 두근거린 것이다.
“어? 얼굴이 빨개지셨네? 혹시 최우혁씨 좋아하는 것 아닌가요?”
“둘이 사귀는 거면 핵폭탄급 기산데…”
“응? 둘이 사귀어? 언제부터? 비밀 연애였어?”
갑작스럽게 이상한 분위기가 되었다. 곤혹스러운 이 상황. 우혁도 난감해진 것은 당연하다. 순빈은 그에게 말했다. 여자는 당분간 사귀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대중은 쏠로를 좋아하지만 기자는 스캔들을 좋아하니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 벌써부터 이렇게 찔러보는 기자들. 그리고 순식간에 퍼진다.
“자, 자. 조용히들 해주십시오. 저희는 선수들 간에 연애를 내부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아직 순진한 선수들을 그렇게 몰아가시니 당연히 얼굴도 붉히고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수영에 관련된 본격적인 질문만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드디어 형광이 나섰다. 국가대표 감독. 훈련에는 별로 관여를 하지 않더니 이런 일은 그래도 잘 수습을 한다. 인생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문제가 터지면 가장 먼저 그에게 기자들이 붙기 때문에 이런 일에는 전문가이다.
질문이 시작되었다. 우혁은 최대한 조리 있게 말하려고 했다. 그리고 나름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운동선수의 말솜씨. 항상 공부는 뒷전이었기 때문에 그리 좋지 못하다. 언어 사용도 그렇고. 그러나 그는 언어에 재능이 없지 않았다.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세계 여러 나라를 경험한 어린 시절 때문이다.
“우승에 도전한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습니다. 우승을 예감했습니까?”
“아니요. 하지만 일본에 가서 위축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한국을 무시하는 듯한 질문을 한 일본 기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이건 진심이었다. 꾸며낸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말로 인해서 그는 남성 팬들까지 포용하게 되리라. 대일 감정은 국민 정서를 자극하는 말이다. 잘 말하면 애국자요, 잘못 말하면 한순간에 훅 간다. 그래서 이렇게 진심을 말한 것에 기사들은 과대 포장하여 내보낼 것이다. 어쩌면 내일 이런 타이틀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해준 한국의 수영 스타』
언론은 새로운 스타를 원한다. 이번 수영으로 한 순간에 전국구 스타가 될 수는 없었다. 그가 제 2의 박태원, 그리고 제 2의 김영아가 되기 위해서는 성적이 필요했다. 다만 그 이전에 다른 화제 거리가 있다면 충분히 예열은 할 수가 있다. 그게 바로 이런 애국적인 발언이다.
“지난번 찍은 음료수 CF로 해당 음료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답니다. 잘생긴 외모 덕분인 것 같은데 혹시 나중에 방송 진출을 하고 싶지는 않으신지 궁금합니다.”
“아까 저 웃는 표정 보셨죠? 그게 답입니다. 하하.”
찰칵. 찰칵. 찰칵. 이번에는 엄청나게 카메라 버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 그의 미소가 찍힌 것이다. 자연스러운 그 미소. 마력을 지니고 있다. 찍으면서도 여기자들은 홀랑 그에게 넘어가 버렸다. 아마도 내일 타이틀을 위한 사진에 이 장면을 쓸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발언도 충분히 위트 있다. 표정을 자신이 없으니 방송 출연은 자제하겠다는 뜻이다. 기자들이 바보가 아니니 잘 알아들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집요하다. 항상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니 다른 민감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 매력적인 외모로 여성들에게 꽤 인기가 많으신데, 여자 친구는 정말 없으신가요?”
“네. 없습니다.”
만약 그가 진짜 미래나 빛나 둘 중 하나와 사귀었다면 거짓말을 잘 못하는 그의 성격으로 보아 티가 났을 지도 모른다. 다행히 아직은 아니다. 물론 좀 진한 스킨쉽과 키스. 이런 것이 있지만 정식으로 누군가와 사귄다는 말을 할 정도가 아니다.
“일본에서 누가 그렇게 쫓아다녔다는 말이 있던데요?”
“아, 그 말은 제가 하겠습니다.”
갑자기 감독이 나섰다. 우혁과 빛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기자들은 유카리 미호의 일을 두고 질문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감독이 그 사실을 알고 나선 것일까? 그들 역시 궁금한 표정이다.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약간의 오해로 빚어진 일입니다.”
“본인에게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아….”
“더 이상의 질문을 받지 않겠습니다. 다만 며칠 내로 여러분들을 깜짝 놀랄만한 소식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그러니 수영계를 주목해 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더 자세히…”
우혁이 말을 머뭇거리자 그가 자르고 나섰다. 그는 이제 이 싸가지 없는 선수를 잘 파악했다. 그의 입이 열리면 골탕 먹는 것은 연맹이다. 그러니 지금은 이렇게 차단하는 게 좋겠다. 그리고 밑밥 하나를 던지면 저렇게 아우성 대는 기자들이 있지 않은가? 고단수다.
“그건 지켜봐 달라는 말씀만 드릴 수 있겠네요. 다만 기사들 좀 잘 써주셔서 정부에서 많은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전 국민의 관심이 있어야 가능하니까요.”
여론 조성에 힘써 달라는 부탁. 이 부분도 노련하다. 연맹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이처럼 가끔 좋은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자신의 이익과 관계 되는 것이라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지만.
이렇게 기자 회견이 끝났다. 피곤한 일정, 그리고 여정이었다. 푹 쉬는 일만 남았다. 돌아가는 길은 그래서 기분이 좋다.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드디어 편한 잠을 자고 싶은 마음뿐이다. 사실 이미 차에서부터 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순빈은 평화롭게 자고 있는 그를 깨우기 힘들어 아파트 앞에서 차를 멈추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서 담배를 무는 우혁의 매니저. 앞으로 상당히 바빠질 것 같았다. 이런 담배 한 가치의 여유. 그래서 중요하다.
============================ 작품 후기 ============================
그런 기사가 떴군요. 못 봤네요. 참 안타깝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앞으로 우리 수영 키즈들이 잘 자라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더 간절해집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