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7화 편견을 향한 도전장
다음 날도 같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수영장에 갔고, 미래가 나와서 그를 봐주었다. 하지만 오늘은 약간 다른 점이 있었다. 그녀는 절친 빛나와 같이 나왔다. 나름 작전을 짠 것이다. 그녀에게 우혁이의 수영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잘하지 않아?”
“네 말대로 수영을 배운지 일주일밖에 안 됐다면…”
“정말이야. 일주일 동안 그가 느는 모습을 직접 지켜봤어. 우혁이는 천재야.”
빛나는 그녀의 말투에서 그에게 푹 빠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와는 오랜 단짝이다. 어렸을 때부터 수영을 같이 해온 사이라 사실 선수들의 인간관계는 매우 협소하다. 중고등학교 때 주변 아이들이 공부하는 동안 이들은 물속에서 수영을 연습했다. 당연히 또래보다는 같은 선수들끼리 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성인이 되면 봇물 터지듯이 욕망이 올라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동안 못 사귀어 봤던 여자 친구와 남자 친구를 닥치는 대로 사귄다. 물론 그렇게 하다가 훈련을 게을리 해서 뒤처지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너 객관적이기는 한 거야? 물론 네 말대로 일주일 만에 저렇게 습득한 것은 대단한 일이야. 하지만 저게 끝일 수 있어. 너도 봤잖아. 결국 스포츠를 하는 사람은 한계에 자주 부딪히게 되어 있어. 언젠가 한계에 부딪히면 쟤도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그건 그런데…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해. 정식으로 우혁이를 수영선수로 만들고 싶어. 하지만 다음 주부터 우리는 또 훈련 스케줄에 얽매이는 몸이잖아.”
“그래서?”
“그러니까 그 훈련장에서 같이 훈련할 수 있도록 도와줘.”
“뭐? 그게 말이 되니?”
“말이 되게 해주라. 늦게까지 개인훈련 한다고 하면 결국 우리만 수영장에 남게 될 거 아냐. 그 때 들여보내서 훈련을 하게 하는 거야. 그리고 4월에 있는 동아수영대회를 목표로…”
“너 정말 저 남자애에게 푹 빠졌구나! 미쳤어? 4월이면 한 달 앞이야. 우리도 연습을 해야 한단 말이야. 그런데 남 돌볼 틈이 있겠어? 자칫하다가는 몸 망쳐.”
그녀는 어이가 없었다. 수영을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사람을 한 달 안에 큰 규모의 수영 대회에 참가시킨다는 그녀의 발상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도 이제 연습을 해야 한다. 연습 후 휴식은 당연한 것이고. 자칫 개인 훈련으로 휴식을 반납하는 게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절대 아니다. 휴식도 일종의 훈련이다. 재충전을 해야 다음 날 훈련을 달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의 훈련을 반납하고 그를 돕는단다. 빛나의 말대로 그 남자에게 푹 빠지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칫 밀려나기 시작하면 국가대표라는 딱지를 반납해야 한다. 너무 위험한 일이라서 경고를 할 수밖에 없다.
“어? 또 저러네.”
그런데 미래는 그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이다. 갑자기 물속으로 뛰어드는 그녀. 그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또 잠수를 하고 있다. 가끔 물을 호흡하는 게 신기해서 가만히 있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깜짝 놀라서 그녀가 뛰어들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하하하.”
“뭐야?”
“또 속았어? 그러니까 나 좀 놔둬. 그냥 물속에서 얼마나 오래 숨을 참을 수 있는지 보는 거라니까…”
“그러다가 큰 일 나. 다시는 하지 마.”
그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요즘 들어서 부쩍 밝아진 모습이다. 그리고 그의 미소를 보면 미래는 잠시 멍하다. 그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느낀다. 또 한 명 그의 환상적인 미소를 보는 여자가 있다. 방금 도착해서 친구의 황당한 부탁을 받고 있는 여인, 박빛나. 그녀도 처음으로 그의 매력적인 미소에 도취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왜 자신의 친구가 그에게 푹 빠졌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약간 이성이 앞서 있는 여자다.
“큰일이네…”
중얼거리는 그녀. 자신에게 하는 말인가? 아니면 미래가 안타까워서 하는 말인가? 물론 후자다. 남자에게 푹 빠져서 어쩌면 이대로 끝이 날 수도 있다. 국가대표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잠시 후 식사를 하는 이들. 도시락을 싸왔다. 선수들은 아무거나 먹지 못한다. 철저하게 스테미너 위주의 식단을 짜서 그대로 먹곤 한다. 닭 가슴살에 샐러드. 오늘의 식단이다.
“우혁아, 여기 빛나 알지? 저번에 차 운전했던, 서로 인사하고 너희들도 말 터. 호호호.”
뭐가 그리도 즐거운 것일까? 그녀는 혼자 웃는다. 빛나는 쓴 웃음을 짓고 그나마 맞춰주는데 우혁은 그나마 웃지도 않는다. 사회성이 참 별로인 남자.
“수영을 정말 처음 하는 거야?”
“응.”
“일주일에 이 정도면 참 잘 하는 거네.”
그녀는 그래도 친구를 위해서 노력을 한다. 그의 기분을 맞춰 주려고. 하지만 반응이 별로 없다. 이렇게 재미없을 줄이야? 얼굴만 환상적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아파왔다. 마음의 문을 닫은 채로 오랫동안 살았다. 당연히 사람을 잘 모른다. 그나마 요즘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 미래의 노력으로 말이다.
“진심이야?”
“응?”
“진짜 일주일 만에 한 것치고 잘하는 거야?”
예의상 한말이긴 해도 진짜 배운지 일주일이라면 수영에 재능이 있다. 즉, 사실이란 말이다.
“맞아. 재능이 보여. 열심히 하면 수영을 잘 할 수 있을 거야.”
“선수도 될 수 있어?”
“선수? 글쎄… 그것은 나도 잘 모르겠네. 선수는 정말 많은 연습이 필요해. 피지컬도 그렇지만 멘탈도 중요하고…”
“지난번 너희 코치에게 무시당한 것 언젠가는 보여주고 싶어. 아니 반드시 보여줄 거야. 그래서 후회하게 해주고 싶어.”
그녀는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부연설명은 미래의 몫이다.
“내가 어제 우혁이 데리고 가서 코치님께 졸랐거든. 테스트 한 번 해달라고.”
“뭐? 뭐라고? 진짜?”
빛나의 표정이 ‘어이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설마 이 정도까지는 아닐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코치에게 무명의 그것도 수영을 배운지 일주일밖에 안 된 사람을 테스트 해달라고 하다니?
“너도 못 믿네. 솔직히 말해 줘. 내가 테스트를 받을 자격이 없는 거야?”
“그게 아니라…”
그녀의 반응이 그의 마음을 상하게 했나 보다. 갑자기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래서 그녀에게 거의 따지듯이 묻는다. 빛나는 당황한다. 그녀의 생각은 당연히 자격이 없다는 쪽이다. 자신이어도 테스트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걸음마를 뗀 아이에게 달려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넘어질 것이다. 그러면 다시 걸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코치는 현명하게 대응했다. 수영을 즐기라는 뜻으로 테스트를 하지 않은 것이다. 이게 선수라는 타이틀로 가게 되면 부담이 가중되고 재미도 없어진다. 괜히 고생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인데 그는 오기가 생겼나 보다.
“그래, 솔직히 말할게. 전체적으로 신체 조건을 따졌을 때 키가 작아. 그리고 어깨도 덜 벌어졌고. 이미 성장한 20세잖아. 더구나 어렸을 때 배워도 잘하기 힘든 게 수영이야.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말이야. 태원 오빠 하나 빼고 다 별 볼일 없잖아. 당연히 이 힘든 것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정말 강한 멘탈이 필요해. 이 정도에 발끈하고 작은 일에 화를 내는 사람. 아마도 수영 뿐 아니라 스포츠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정신력을 가졌을 것 같아.”
“그만해 빛나야!”
도움을 받으려고 부른 친구다. 하지만 불을 질러 버린다.
“그리고 우리 미래는 지금 국가대표랍니다. 어쩌면 당신을 가르치는 그 시간이 꽤 아까울 수도 있는 사람이죠.”
그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녀가 한 말이 모두 논리적이기에. 마지막 말은 좀 억울한 감이 있다. 자신이 가르쳐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는 아무 부탁도 안했어. 내가 가르쳐 주겠다고 했단 말이야. 너, 도와달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도움이 되었어.”
“…….”
갑자기 표정 없이 말하는 우혁. 그는 빛나를 보고 미래에게 말을 한다. 똑바로 쳐다보는 그의 눈빛이 매우 강렬하여 그 눈빛을 받은 여인은 그만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충분히 도움이 되었어. 수영을 더 하고 싶어졌어. 내 능력을 보여줄 사람이 하나 더 생겼거든. 세상에 할 수 없다는 편견. 내가 다 깰 거야. 스무 살부터 수영을 해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보여줄게. 신체 조건이 좋지 않아도 그 누구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내가 알려 줄게.”
그는 드디어 하고 싶은 일을 확실히 찾았다. 드디어 목표가 생긴 것이다. 그동안 재미있어서 배운 수영. 이제는 목표가 되어 버렸다. 최고가 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될 것이다. 그동안 움직이지 못한 자에게 쏟아진 숱한 세상의 편견들을 향해 맞서 싸우는 그의 의지. 그 강렬함에 두 여자는 왠지 모르게 말려들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제가 직장 성공기를 약 30회쯤 쓰기 시작할 때의 선작이 200이었습니다. 아마 댓글도 몇 개 없었죠. 인생 성공기를 쓸 때에는 더 심했습니다. 완결을 짓고 나니 300 선작이 안 되었고, 댓글 총 수가 20개 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반응은 너무 신이 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글의 주인공 처럼 천천히 가겠습니다. 다만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최선은 다하고 있습니다. 천천히라는 말과 지루함은 동의어가 되면 안 되지 않습니까?
또한 자극적인 것으로 치자면 세 개의 S 중에 스포츠도 만만치 않습니다. 과거 전두환 정부 때에는 이 쓰리에스 정책을 펴서 우민화 시켰을 정도로.
현재 저는 고맙게 여깁니다. 이런 관심들 모두. 열심히 쓰고 보답하는 게 최선일 것 같아요^^ 이따가 또 올리겠습니다. 아마 저녁 쯤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