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43화 유카리 미호
하루 종일 훈련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루 종일 훈련을 할 기세로 물에 몸을 담그는 인간이 있다. 우혁이다. 덕분에 일수도 쉬지 못한다. 그는 다짐했다. 라이벌이 쉬지 않으면 한 시도 쉬지 않을 거라고.
“이제 그만 나와!”
그런데 그들을 방해하는 사람. 빛나다. 그녀는 무조건 많은 훈련이 약이 아닌 독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미 몇 번 당해 봤다. 경기를 앞두고 시합을 하다가 무리한 운동량에 찾아온 부상. 그래서 걱정이 된 것이다.
“이번만, 딱 한 번만.”
“안 돼. 부상에 대해서 내가 이야기 했잖아.”
“난 그런 거 안 당해. 걱정하지 마.”
“그게 무슨 예고를 하고 찾아오는 줄 알아? 빨리 나와. 안 그러면 평생 후회할 거야. 여기 까지 와서 부상으로 경기 못 뛰고 싶어?”
어쩔 수 없다. 그녀의 재촉이 아니더라도 사실 약간 어깨가 뭉치고 있다. 너무 심한 운동의 부작용이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맞다. 여기 까지 와서 부상으로 못 뛴다고 생각을 해보라. 거기다가 우승에 도전을 한다고 했다. 뛰지도 못하고 돌아가면 비웃음거리가 될 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는 아쉬운 얼굴이다. 비록 동아시아권이지만 세계적으로도 강자들이 적지 않은 지역이다. 그들을 이기거나 최소한 비등한 실력을 보여주려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적지 않다.
그들이 수영장에서 나올 무렵 들어오는 사람 하나가 있다. 유카리다. 그녀는 흰색 수영복을 입었다. 몸매에 자신이 있으니 그렇겠지만 보는 사람으로서는 입장에 따라서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른다. 특히 일수는 얼굴을 붉힌다. 그와 동갑내기다. 같은 나이인데 그녀가 그렇게 도발적이니 그가 참 어려 보인다.
“오늘은 왜 안 오나 했네.”
빛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린다. 그렇다. 유카리는 삼일 전 이후 매일 찾아오고 있다. 그녀의 방문.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연맹에서 허락을 했단다. 이상한 일이다. 역시 윗사람들의 생각은 확실히 다르다. 어찌 그렇게 선수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오니짱.”
일본어로 오빠라고 부르는 말이다. 당연히 대상은 우혁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는 무감정한 얼굴이다. 뭐 이래서 빛나가 안심을 하고 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표정. 그녀도 예전에 당해봐서 안다. 이럴 때 그는 정말 접근 불가능이다.
그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적과 아군이 뚜렷하다. 자신에게 친한 사람에게는 정을 나누어 주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철저한 무관심이다. 즉, 지금의 표정은 친하지 않는 대상을 보는 얼굴이다.
“나 왔어요오…”
이번에는 한국어다. 정답게 이야기 하는 음성.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 같다. 일본 여인. 목소리에 애교가 잔뜩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태어날 때부터 자랄 때까지 그렇게 교육을 받는 것일까? 그것은 모르지만 확실히 일본 여성의 목소리는 뭔가 정의할 수 없는 유혹이 과하게 있다. 그래서 가끔 한국 남자들은 그들을 성적 대상으로 살피기도 하지만.
우혁은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는 오히려 경계를 잔뜩 하고 있다. 이제 연습도 끝나고 샤워를 하러 가야 한다. 그가 걱정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 올까봐. 어제도 한참을 실랑이 하다가 결국 그냥 호텔 룸으로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말았다. 그 때까지 몸 대충 닦고 얼마나 찝찝했던가?
“훈련 끝났어요? 내가 너무 늦게 왔네.”
“보면 몰라요? 그리고 훈련 안 해요?”
“나 하고 왔어요. 그리고 이 정도면 충분해요.”
그녀의 말. 은근히 무시하는 것이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다. 물론 그녀가 이번 대회 최고는 아니다. 결선에 올라갈 정도? 그래도 점점 일취월장하는 실력에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더군다나 예쁘기까지 하니 그녀 역시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럼 내가 스트레칭 도와줄까요? 몸 확실히 풀릴 텐데…”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빛나는 당황한다. 그리고 머릿속에 예전에 장면이 떠올랐다. 대회 전 그의 어깨 근육이 뭉쳐서 자신이 그의 몸을 풀어 주었던 장면. 그것을 지금 앞에 있는 유카리가 한다고 하니 상상하기도 싫었다.
“저기 매트에 누워요. 제가 손이 시원하기로 유명해요.”
그러나 그녀는 빛나를 완전히 무시하기로 작정했나 보다. 문제는 우혁 역시도 그녀를 무시한다는 점. 수건을 들고 몸을 닦기 시작했다. 오늘도 그냥 호텔로 가서 샤워를 할 생각이다. 귀찮은 상황이지만 어쩌겠는가? 말도 안통하고, 말을 듣는 것도 아니니.
“이봐요. 자존심도 없어요? 싫다는데 왜 자꾸 쫓아다니는 거예요?”
“그러는 그쪽은? 둘이 사귀는 거 아니라면서요? 인터넷으로 검색 다 해봤어요. 아직 여자 친구 없다던데. 그럼 똑같이 기회가 있는 거 아닌가?”
“아니, 넌 없어.”
이제야 한 마디 한다. 필요할 때 결정적으로 자신을 도와주는 것에 반색하는 빛나. 그녀의 눈에 다시 하트가 쏟아져 나왔다.
“드디어 나에게 말을 했어… 고마워요. 말 해줘서.”
별 거에 다 감동을 한다. 자신을 무시하는 말투인데도.
“와, 대단하네. 절대 떨어져 나가지 않겠다. 난 샤워하러 갈게요. 하하.”
일수는 혀를 내두른다. 그녀의 얼굴에 몇 겹으로 철판이 둘러싸인 것 같아서다. 사실 약간 부럽다. 우혁의 매력적인 외모. 한국이 아닌 일본에도 통하니 이제는 글로벌로 놀 것 같았다. 국제 대회는 또한 국내 대회와 달라서 얼마나 관심들이 쏟아지겠는가? 그래도 자신과 관련이 없다고 애 저녁에 생각하고 포기하는 게 나으니 그냥 샤워를 하러 간단다. 성격 좋은 사람이다.
“또 내가 오니짱에 대해서 뭘 알고 있을까요?”
이제는 일본어다. 자꾸 태클을 거는 빛나가 귀찮을 것이다. 그나마 가끔 한국어로 하는 이유는 반응 없는 그와 반응 잘하는 빛나가 재미있어서이다.
“알든 모르든 상관이 없어. 난 너에 대해서 알지 못하니까.”
“어? 알려드릴까요?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는 한국 분이세요. 물론 저희 부모님도요.”
사실 모른다고 했지만 그녀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그의 주변에서 그녀에 대한 말이 많다. 당연한 일이다. 그로 인해 발생한 일이니.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하곤 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막무가내식 도발에 황당해 했지만 예쁜 여자 싫어하는 남자 없다. 그러니 관심이 가고, 그녀를 화제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들리니 대충 그녀에 대한 신상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싶어 하세요. 죽은 후에는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고. 그러면서 저에게 같이 한국으로 가자고 말씀하시네요. 저는 거절을 했죠. 하지만 요즘 불쌍해 보이셔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를 정말 예뻐해 주시거든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 빛나는 당연히 알 수가 없다. 일본어를 반드시 배우겠다고 다짐이라도 하는 얼굴이다. 그렇다고 이 말을 못 듣게 우혁을 끌고 갈 수도 없다. 샤워를 하러 간 일수가 빨리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아니 왜 이렇게 안 나오나 했더니 여기서 이야기 중이네.”
수영장에 들어온 사람. 순빈이다. 바늘 가는데 실이 없어질 수가 없다. 그는 뒤늦게 일본에 도착했다. S 생명과 팀 구성 문제로 할 일이 있어서 좀 더 한국에 있어야 했다. 어제 도착한 그는 드디어 자신의 역할에 충실 했다.
원래 그는 운동선수였다. 수영은 아니라 축구다. 하지만 부상 때문에 운동을 접고 그렇게 뛰어난 선수도 아닌 탓에 매니저의 길을 가게 되었다. 물론 연예 기획사다. 그러다가 AK 스포츠에서 사업 확장을 하며 그와 컨택을 했다. 스포츠 선수 출신 매니저는 회사에 딱 맞다. 더군다나 일본어도 좀 할 줄 안다. 학원에 다니며 공부한 그는 나름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갈 줄 아는 젊은이다.
“어? 유카리짱 왔네.”
“순빈 오빠, 뭐예요?”
그가 유카리에게 아는 척을 하자 빛나가 불쾌한 빛을 보낸다. 왜 그렇게 반갑게 인사를 하냐는 말투다.
“아… 그냥 인사 한 건데. 하도 나에게 반갑게 잘 인사해줘서…”
어제 처음 만나 유카리는 그의 주변 인물을 공략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순빈. 전략은 주효했다. 벌써 빛나의 심기를 건드릴 정도로 자신에게 반가운 인사를 하고 있지 않은가?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한국어로 공손히 순빈에게 인사를 한다. 이러니 넘어갈 수밖에 없다. 매니저라는 위치. 어떻게 보면 자주 무시당하기 일쑤다. 그런데 이렇게 대우를 해주니 그녀가 예뻐 보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혁이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을 그냥 무심하게 바라만 보고 있다가 일수가 나오자 마자. 말을 했다.
“가요, 형.”
“어? 벌써요? 잠시 만요, 잠시만… 내 이야기 안 끝났어요. 다음 말이 정말 중요한데…”
그를 붙잡는 유카리의 말. 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돌아보는 사람은 일수와 순빈 밖에 없다. 불쌍한 여인. 혼자 수영장에서 외롭게 훈련하게 생겼다.
============================ 작품 후기 ============================
모든 캐릭터가 같은 성격을 가질 수는 없죠^^ 누군가에게 때로는 호감으로, 때로는 비호감 캐릭터가 있을 겁니다^^
오늘 4연참입니다.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