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2화 마법
부모님이 귀국하신다. 그래서 그 날은 연습을 하러 가지 못했다. 이제 불과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대회라서 마음이 조급하건만 공항으로 나와 식사를 같이 하고 집으로 들어가자는 부모님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우혁은 인천공항으로 나섰다.
“나 진짜 가도 될까?”
“어차피 몸도 좋지 않다며? 친구랑 같이 가면 무지 좋아하실 거야.”
“정말?”
“그렇다니까.”
미래를 동반하고 간다. 전날 몸이 좋지 않다고 했는데,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란다. 그런데 그가 공항으로 간다고 하니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목소리에서 느꼈다. 그래서 그냥 던진 말인데 따라나서겠단다. 그러더니 이렇게 만나서 공항버스 리무진을 타자 의구심을 갖는다.
“근데 외교관이면 부자 아니야? 왜 넌 차가 없어?”
“부자 아니야. 그리고 면허증도 없어.”
“정말? 남자는 필수잖아. 왜 안 땄어?”
“그냥.”
가끔 우혁과 이야기 하면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할 때가 많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는 이 정도면 많이 이야기 해 준 것이다. 얼마 전까지 하반신 마비였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아니 알아도 상관은 없지만 그 이후에 많은 일에 대해서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한다. 귀찮기 짝이 없고, 그는 귀찮은 것을 정말 싫어한다.
“저기 보이신다.”
그는 손을 흔들었다. 조금의 웃음기도 없이. 원래 이렇다. 오히려 그의 부모님이 밝은 모습이다. 그들은 더욱 건강해진 아들을 보며 한달음에 달려 왔다. 어머니는 그를 보자마자 안기까지 한다.
“아이, 엄마. 뭐 하는 거야?”
“우리 아들 안는다. 왜?”
“이제 난 어린애가 아니잖아. 그만 해. 사람들이 보잖아. 에이.”
어린애가 아니라고 하지만 말투는 어린애의 그것과 닮아 있다. 사실 너무 많은 시간을 그들의 품속에서 자랐다. 사회성을 기르지 못했고 사람들 사이에 섞이지 못했다. 이제야 좀 머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당연히 그들에게는 어린 아들의 모습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누구? 설마 여자 친구?”
“응. 친구야. 친구.”
어머니의 말과 그의 말. 동의어지만 뜻이 다르다. 그 말을 풀이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아니 단 한 명만 빼고. 바로 우혁이다. 순수한 친구라고 말을 한 것인데 부모님과 미래가 오해를 한다. 특히 발갛게 상기된 그녀. 허리를 굽히며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오, 그래. 우리 우혁이가 사귄 첫 친구인가 보네.”
설마 진짜 그 말 그대로 자신이 첫 친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오히려 첫 여자 친구 쪽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가슴이 뛴다. 마구 설렌다. 그의 첫 여자 친구라니? 첫 여자라는 쪽이 왜 이렇게 마음에 드는 말일까?
“공항에서 간단히 밥 먹으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우혁이 친구도 왔는데, 이 아빠가 맛난 거 쏘마. 하하하.”
이렇게 해서 그들은 일단 서울로 향한다. 갈비집. 한국에 오면 이런 것을 먹고 싶어 했기에 온 곳. 고기를 굽고 그 냄새에 식욕이 동한다. 드디어 부모님은 그들에게 먹기를 권한다.
“많이들 먹어.”
“이거 많이 먹어도 되는 건가?”
“응, 그럼.”
“대회를 앞두고 너무 무리는 하지 않는 게…”
“에이, 괜찮아. 이 정도는…”
약간 우려 섞인 우혁이 말에 그녀가 괜찮다고 한다. 부모님의 눈치를 보고 있다. 여기 까지 와서 음식을 가리는 게 보기 좋지 않을 지도 모르니 말이다.
“대회? 무슨 대회?”
그런데 모르는 눈치다. 그의 부모는 눈에 호기심을 잔뜩 담고 물어 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아들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원래 이런 성격이다. 그나마 회복이 되고 나서 말수가 많아진 편이다. 독일에서 전화를 해도 대충 받고 깊숙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우혁이 소식을 묻는 편이지만 그들도 뭐 하고 다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는 말만 했다.
“아, 모르셨구나. 우혁이 수영 시작했어요?”
“뭐? 수영?”
“수영이라고? 우리 아들이?”
그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어본다. 미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도대체 부모 자식 간에 대화가 별로 없는 집인가 생각될 정도로 우혁이는 자신의 일을 통 이야기 하고 다니지 않나 보다. 하긴 그의 아버지가 외교관이라는 사실도 오늘 알았다. 이것으로 그의 성격을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대회까지 출전하는데… 이야기를 잘 안하나 봐요.”
“대회? 설마 선수를 뽑는 그런 대회 말이니?”
“맞아요. 잠재력이 무궁무진해요. 그래서 제가 추천했어요. 수영한지 한 3주 되었어요. 그런데 정말 대단해요. 아마 보시면…”
‘놀랄 거예요.’라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녀는 그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게 된다. 무슨 일일까? 왜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당연히 모를 것이다. 일 년 전 휠체어를 타고 다니던 아들이 수영이라는 운동을 시작했고, 선수를 선발하는 대회까지 나간다는 게 그녀에게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에이, 엄마는. 내가 이럴까봐 이야기 안 했어.”
“에고, 미안하구나. 미안해. 엄마는 너무 감격스러워서…”
“됐어. 그만 울어. 에이…”
약간 철없어 보이는 말투. 하지만 그녀는 안다. 자신과 남편을 아들이 정말 사랑한다는 것을. 그래서 알리지 않았을 것이다. 헛된 기대를 품게 하고 싶지 않게 하기 위해서. 늘 그랬다. 자신이 휠체어를 탈 때 매번 몸이 회복될 거라는 헛된 희망을 품지 않도록 기대를 낮추는 작업을 아들은 하곤 했다. 이번에도 아마 모든 게 확정되고 나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미래가 말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가 대회에 나가서 입상을 할 때까지 전혀 모르는 일이었을 터였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그의 집까지 따라간 미래. 짐을 드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말에 부모님은 흐뭇해했다.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고와 보이니 어떤 부모가 좋아하지 않겠는가? 특히나 그들은 아들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주고 싶어 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던가?
“전 이제 가볼게요.”
“같이 가. 바래다 줄게.”
“에이, 아냐. 혼자 갈 수 있어. 오랜만에 부모님 뵈었을 텐데, 말 상대도 하면서 효도 좀 해. 호호.”
“말 상대는 정말 싫어. 19년 동안 그것만 했는걸 뭐. 난 집안에만 있는 게 제일 답답해. 나 나갔다 와도 되지?”
그는 부모에게 그렇게 선언하듯 말한다. 당연히 그의 부모는 그 말에 동의한다. 그들은 잘 알고 있다. 그가 답답하다는 그 말뜻을.
“당연하지. 역시 우리 아들, 에티켓이 좋네. 밤길이 험하니 꼭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와야지. 우리 아들이 드디어 기사 노릇까지 할 줄이야. 난 정말 네가 대견하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머니는 다시 눈물을 글썽인다. 그는 그것을 보기 싫어서 빨리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탄 그들. 그의 집과 거의 극과 극이라서 한참을 가야하는 2호선이다.
“너희 부모님이 너를 끔찍이 여기는 것 같아.”
“응. 그런데 난 싫어.”
“왜? 뭐가? 난 오히려 부럽던데?”
“너무 나에게만 매달리시잖아. 이제 두 분도 두 분의 삶을 살아야 할 텐데…”
듣고 보니 좀 그랬다. 유난히 그의 부모님은 우혁에게 관심을 가졌다. 스무 살. 적은 나이가 아니다. 성인이 된 그 나이는 부모님에게서 독립을 할 수 있는 나이고, 부모 또한 그 나이의 자식에게 서서히 관심을 줄인다. 그게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런데 그의 부모님은 마치 어린 아이를 보는 것처럼 그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무 애정이 충만한 것인가? 아니면 그녀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는가?
“그런데 아까 네가 말한 친구…”
“응?”
“그거 그냥 해본 말이지?”
“아니, 진짜인데. 너 내 첫 번째 친구야.”
그녀가 묻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눈빛에 약간의 실망이 이는 것도 당연히 포착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
“그런데 그 날이 뭐야? 어제 네가 헙…”
그는 그녀의 그 부드러운 손이 그의 입을 황급히 막는 것을 느꼈다. 당연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 비친 그녀는 완전히 홍당무가 되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누가 그의 말을 들으면 안 된다는 시선으로.
“나중에 이야기 하자. 알았지?”
“우…웅.”
입이 막힌 채로 표현을 하는 우혁.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소리를 낸다. 잠시 후 내린 지하철에서 그녀의 집으로 가면서 그녀는 그에게 설명을 해준다.
“에유, 정말 모르는 것 같아서 내가 이야기 할게. 그 날은 여자가 마법에 걸린 날을 의미해.”
“마법? 무슨 마법? 여자들이 마법에 걸려? 누구한테?”
마구 질문을 쏟아내는 우혁. 그는 사실 이런 것을 잘 모른다. 지적인 수준이 낮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의 부모님은 시간이 날 때마다 그를 가르쳤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대신 일부러라도 그에게 가지고 있는 많은 지식을 전수하셨다. 하지만 성적인 교육은 할 수 없었다.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은 그에게 고통이었기에. 이렇게 회복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완전 무지할 수밖에 없다.
“아유, 정말.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와야 하니? 생리 말이야, 생리.”
“생리? 생리 현상?”
아직도 그는 모른다. 당연하다. 알 수가 없다. 배운 적이 없으니. 아니 배운 적은 있다. 하지만 생리라는 단어 대신 월경이라 배웠고 그것도 대충 알려주신 그의 어머니다. 성교육에 대해서는 거의 문을 걸어 잠그고 배운 셈이다.
그가 그것도 알아듣지 못하자 그녀는 정말 답이 없다는 눈빛이 되어 버렸다. 도대체 어디까지 설명을 해야 하는가? 성교육 선생도 아니고 말이다.
“됐어. 더 이상은 설명 못해.”
그는 그녀의 눈에서 뭔가 부끄러운 기운을 읽어 냈다. 알 수는 없지만 더 물어 봐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
“음, 나중에 엄마한테 물어 봐야겠다.”
“뭐? 안 돼! 안 돼!”
“응? 왜?”
“이… 아유, 그냥 모르면 넘어갈 것이지 정말 나한테 이런 말까지 하게 만드네. 생리란 여자가 한 달에 한 번씩 생식기관에서 피를 배출하는 과정이야. 쉽게 설명했으니 이제 알아듣지?”
이번에는 그의 얼굴이 빨개졌다. 드디어 알아들은 것이다. 그는 월경의 의미는 대충 알고 있다. 다만 생리라는 말과 동의어인지 이제야 알아들은 것이다.
“그거… 월경이잖아…”
“그래. 월경. 아유. 정말. 나 들어간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자신의 아파트 단지로 뛰어 들어갔다. 멀리서 그것을 보는 우혁. 머리를 살짝 긁는다.
“처음부터 월경이라고 했으면 알아들었지. 그 날이니, 마법이니, 생리니 하니까 모르는 거지. 내 잘못 아님.”
그의 성격이 다시 나오고 있다. 남의 탓을 하는 성격. 원래 이렇다. 자신이 아닌 남 탓을 하는 게 습관이 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더 일찍 죽음을 택했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하루하루가 다르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면서 성장해 나가는 우혁. 몸도 마음도 점점 남자가 되어가고 있다.
============================ 작품 후기 ============================
매우 쳐서 나오는 연참이네요. ㅋㅋ 헉, 헉. 다시 쓰러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