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132화 마스터즈 수영대회 전날
다음 날이 대회 시작이다. 우혁은 아주 가볍게 몸을 풀고 오늘은 간단히 훈련을 끝냈다. 대회를 앞두고 무리한 운동을 하지 않는 것. 당연한 일이지만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었다. 그 때에는 왜 그렇게 훈련을 하고 싶었을까? 아마 무언가를 빨리 보여주고 싶다는 조급함 때문일 것이다.
“오라버니, 훈련 끝났어?”
“응? 응.”
“그럼 나 좀 태워줘.”
“빛나 있잖아.”
가희는 입술을 삐죽였다. 그의 차를 타고자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언제라도 세실리아에게서 그의 옆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기 위해서다. 이제 그녀도 성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혀 틈을 내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심통이 나는 그녀.
그는 드디어 운전면허를 땄다. 그의 매니저였던 순빈이는 세실리아의 매니저를 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녀의 신분을 잘 아는 사람이 그녀를 보살펴야 할 것 같다는 생각. 그도, 그리고 순빈이도 마찬가지의 생각이다.
더구나 오늘은 지연이 출국을 한다. 이번에 은환이 일본에서 외교관 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그 이전에 그녀 역시 가서 마무리를 도와야 했다. 외부에서 하는 일은 남편의 차지이지만, 그동안 그녀가 없었던 집안일은 그녀가 마무리를 해야 했다. 집도 차도 그녀가 팔아야 했기에.
그래서 순빈과 세실리아는 그녀를 공항까지 마중하러 갔다. 우혁은 훈련 때문에 따라나서지 못했다. 어차피 한 달 후에 귀국을 한다니 그 때 보면 된다고 지연은 그를 나오지 말도록 했다. 다음 날이 대회라서 특히나 그의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이번에 일본에 가면서 아들에게 세실리아와 각방을 계속 유지하라고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말린다고 들을 리가 없다. 이제 성인 아닌가? 그리고 아마도 둘의 결혼은 거의 기정사실일 듯싶다. 벌써부터 우혁은 졸라대고 있다. 결혼하고 싶다고.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남자의 욕망. 왜 모르겠는가?
그래도 너무 일찍 결정을 하는 것 같아서 좀 뒤로 미루자는 말을 했다. 세실리아를 생각해보라는 말이 아니다. 그녀를 더 가르치고 싶었다. 진짜 자신의 딸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혁의 안사람으로서 그를 잘 내조했으면 하는 마음에 시간을 가지자고 한 것이다.
지금 일본으로 가는 것. 그와 그녀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다. 자신이 없는 동안 마음대로 한 번 살아보라고. 그래야 결혼을 좀 더 뒤로 미룰 수 있기에. 일단 그녀의 생각은 바로 이렇다. 그 마음을 눈치 채든지 못하든지 그것은 아들의 몫이다.
“그럼 들어가세요, 어머니.”
“다녀오세요.”
공항에서 마중하는 순빈과 세실리아. 지연은 그들의 손을 꼭 잡는다. 아들의 형제와도 같은 사람에게 하는 말.
“우리 우혁이랑 세실리아 잘 부탁하네. 이제 순빈이 남 같지가 않아.”
“걱정마세요.”
“세실리아도, 그 녀석 성질이 좀 그렇지만 우리 세실리아를 끔찍이 사랑한다는 것 알지?”
“네, 엄마.”
이 셋은 서로 피가 섞이지 않았다. 공통점이라면 우혁을 잘 안다는 것. 하지만 그가 없어도 이렇게 서로 가족과 같이 지낼 것 같았다. 인사를 하고 아쉬움에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것은 그런 가족애가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어쨌든 지연을 보내고 집으로 오는 차 안. 순빈은 요즘 신이 났다. 세실리아의 광고 모델료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영상물 광고는 아예 하지도 않고 있다. 인쇄물 광고만 하고 있는데 들어오는 것들은 셀 수도 없다. 그것을 분류하고 선택하는 것은 그의 몫이다. 그녀에게 물어봐도 그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기에.
원래 알아서 하라는 말이 더 무섭다. 책임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제 가족 같은 우혁이의 여자 친구이다. 그리고 자신도 그녀가 여동생으로 느껴진다. 한 가지 단점은 그녀와 함께 다니다 보니 너무 눈이 높아졌다는 점. 그래서 여자 친구가 없기는 하지만.
“이번 주부터 다음 주까지는 스케줄 안 잡았어. 우혁이 경기 보러 가야지.”
“네. 고마워요.”
“에이, 고맙긴. 난 세실리아 덕분에 요즘 살 맛 나. 일할 맛이 난다고.”
그는 우혁의 뒤를 보지 않고 세실리아를 돌보기 시작했을 때 살짝 그가 걱정이 되었다. 자신이 없이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감. 언제나 그가 뒤치다꺼리를 해주었기 때문에 드는 당연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잘 해주고 있었다. 세실리아의 광고는 소속사가 30프로의 비율을 가져간다. 그리고 그가 10프로다. 자신은 거절했지만 우혁과 지연이 강하게 주장을 했다. 지금 그 수입이 막대하다.
12월 한 달.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특수를 감안한다 해도 세실리아가 거둔 수입이 1억이 넘는다. 그 중 10프로이니 그와 같은 사람은 사실 적은 돈이 아닌 것이다. 요즘은 그녀를 전단 광고 하겠다는 광고주가 넘쳐나서 그가 배짱을 튕기고 있다. 가격이 높고 이미지가 있는 것만 취사선택하고 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다 도착한 아파트. 주차장은 보안이 잘 되어 있다. 그래서 안심하고 그녀를 내려주며 작별 인사를 한다.
“자, 들어가.”
“순빈은 안 올라가요?”
“응. 좋은 시간 보내.”
그는 아파트 앞에서 그녀를 내려주며 야릇한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이 뜻하는 것. 세실리아는 잘 모르고 있다.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진짜로 짐작을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순빈은 잘 알고 있다. 오늘부터 지연이 없는 동안 그들이 얼마나 좋은 시간을 보낼지에 대해서.
세실리아는 묘한 웃음을 짓는 그를 보내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그제야 알아챘다. 그가 웃는 이유를. 갑자기 가슴이 뛴다. 오늘 정말 그와 단 둘이서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의 옆에 누울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왔어?”
“일찍 왔네.”
이미 아파트에는 우혁이 와 있었다. 그는 세실리아를 맞이하며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저녁을 요리했다고 말을 한다. 오늘 아주머니를 오지 말라고 했다면서. 아예 외부와의 차단을 시도하는 것 같았다. 그의 계획. 그녀는 무엇을 원하는지 강하게 느끼고 있다.
“맛있다.”
“정말? 신기하네.”
“뭐가?”
스파게티를 했다. 쉬운 요리는 아니다. 하지만 왠지 오늘하고 어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보고 재료를 주문해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걸 맛있다고 해서 신기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원래 세실리아가 먹던 음식이 아닌데, 인간의 음식에 너무 잘 적응하고 있어.”
그의 말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자신도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음식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태초에 신이 인간과 인어를 만들 때 비슷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그 중에 욕망이 강한 자가 남았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도태된 것일 수도.
둘만 앉아서 먹는 식사. 밖에서 가끔 데이트도 하지만 이렇게 집에서 둘이 마주 앉아 식사를 하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요즘은 순빈도 가족 같아서 항상 같이 밥을 먹곤 했다. 그래서 지연도 그도 없는 이 둘만의 시간이 정말 꽤 오랜만인 것이다.
대화는 좋은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호기심. 세실리아는 인간 세상을 겪으면서 많은 호기심을 해결한다고 할지라도, 그는 아니다. 아직까지 인어 세상에 대해서는 많이 모른다. 그래서 묻기 시작한 것이다.
“세실리아의 종족들은 잘 있을까?”
“잘 있겠지. 잘 있기를 바라고 있어.”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했다. 예전에는 이런 말을 물으면 얼굴이 어두워졌는데, 요즘은 가끔 그녀 입에서 밝게 자신의 종족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래서 그도 스스럼 없이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왜 세실리아처럼 세상에 나오려고 하지 않는 걸까?”
“인간을 두려워하니까.”
“그렇군.”
“나도 그래. 그런데 우혁 때문에 많이 나아졌어.”
사실 그들이 나와도 문제다. 세실리아는 종족에 죄를 짓고 떠난 것 아닌가? 그들이 가만 둘 리가 없다. 이렇게 미안함을 안고 살기는 하지만 속은 편할 수 있다. 쫓길 것 같은 두려움은 없으니 말이다.
“앞으로 나 때문에 좋은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
“응, 그럴 거야.”
“자, 오늘은 내가 풀 서비스를 할게. 밥 다 먹었으니 설거지도 내가.”
“아냐, 우혁. 내갈 할게. 내일 경기가 있잖아. 힘을 아끼라고.”
“무슨 소리야. 난 힘을 적당하게 써 줘야 잘한다고. 그러니 이따가도 기대해.”
세실리아는 그 말뜻을 잘 알고 있다. 그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점점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겨우 이런 말에 얼굴이 붉어지는 그녀가 아니었는데. 에덴동산에서 사과를 먹고 창피함과 부끄러움을 알아버린 이브처럼 그녀 역시 인간 세상에 나와 옷을 걸치는 이유를 이제 절감하고 있다. 원초적 부끄러움.
하지만 막상 또 둘이 한 몸이 되는 시간이 되면 그녀는 적극적이다. 설거지를 빨리 끝내기 기대하는 이유다.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뭔가 단단히 예고하고 있다. 그래서 그 다음을 기대하라는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오늘 그녀는 오히려 그에게 서비스 받을 생각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그 이상의 것을 줄 것이다. 이렇게 오랜만에 둘의 설레는 밤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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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는 야한 부분이 있습니다. 거부감이 있으신 분은 보지 않으시는 게...
손목터널증후군. 음. 그렇군요. 조심해야 겠네요^^ 쿠폰 너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