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101화 세실리아의 첫 요리
그 주 주말에는 광고를 찍는 것에 여념이 없다. 일단 돈도 벌어야 하니 우혁은 여러 개의 광고를 계약 했다. 소속사에서는 그의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을 하고 있다. 시크한 이미지. 이미 검색어 상위에 오른 이번 주의 상황. 그의 상품성은 천정부지로 뛰어 오르고 있었다.
아침에는 이제 항상 세실리아와 동반해서 산책을 하고 있다. 이제 주변 사람들도 아는 눈치다. 우혁이야 많이 알려졌지만 그녀도 며칠 전에 검색어 상위를 랭크 했으니 금세 사람들의 머릿속을 차지하게 되었다. 다행인 점은 아침에 나오는 나이 드신 분들의 스마트폰 활용도가 떨어져서 오프라인 쪽으로만 이들을 반기고 있다는 점.
“둘이 사귀는 거여?”
“네. 하지만 소문내지는 말아주세요.”
“비밀 연애구만, 비밀 연애. 그런데 수영은 계속 하는 거지?”
“그럼요.”
“꼭 금메달 따. 지난번에 그 짱께인가 뭔가 하는 놈의 코를 납작하게 해줘.”
“네, 알겠습니다.
그는 웃으며 대답을 한다. 사람들을 대하는데 불편하기만 했다고 생각을 해왔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다. 동네 주민들은 오히려 친절하다. 그를 자신의 아들이나 손자뻘로 대해주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 역시 점점 정이 간다. 그와 세실리아에게 잘해주니 말이다.
다음날 훈련을 갔을 때 그는 반가운 얼굴들을 보게 되었다. 일수와 김훈, 그리고 찬규. 물론 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둘은 결코 친하다고 할 수 없는 이들이다. 그래도 이들마저 반가운 것은 웬일 일까?
“너도 중요하지만 얘네들 기록 단축도 중요한 것 같아서 데리고 왔다. 무엇보다도 본인들 뜻이 강하다. 자신들 기록 향상을 위해서 경쟁자가 필요하나고 하니…”
그렇다. 선의의 경쟁. 특히 일수는 국내에 이제 그와 비슷한 수영 실력을 가진 선수가 없다. 단거리에서는 우혁이외에 적수가 없으니 연습할 때 위기의식을 느꼈다. 그래서 매일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같이 훈련을 하고 싶다고. 태릉으로 불러달라고.
태릉선수촌은 선수들의 자유에 따라 합숙과 개인훈련을 병행할 수 있다. 하지만 훈련비가 나오는 쪽을 선택하는 게 대부분의 선수들이 하는 결정이다. 개인 훈련은 돈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실업팀에 소속된 선수들도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합숙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오랜 만에 한 판?”
“좋지. 하하.”
“어? 보자마자 웃네. 표정 많이 좋아졌어.”
김훈과 찬규는 그를 반가워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파링 파트너로서는 우혁이 딱 적당하다. 국가 대표로 실력자가 하나 있다면 그를 따라가려는 노력으로 인해 실력이 충분히 상승할 수 있다. 그들은 이제 우혁의 아래단계에 있는 선수들이다. 자존심 때문에 그동안 그와 연습시합을 회피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무엇보다 창피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더구나 그들에게도 짜증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우혁과 1500미터 한 번 돌고 와서 좀 쉬는 동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는 그들.
“짜식들이 너무 으스대잖아.”
“그러게, 우리 수영도 요즘 대세인데 말이야…”
그들이 지칭하는 이들. 축구와 야구선수들이다. 모두 인기 종목들. 그래서 그런지 요즘 갑작스럽게 부상하고 있는 수영선수들과 자주 부딪힌다고 말을 한다.
“난 네가 싫지만 가끔 이렇게 무시당할 때 필요하다고 생각해. 축구랑 야구 하는 놈들은 사실 태릉에 합숙을 하지도 않아. 가끔 와서 사진 찍고 자신들이 열심히 훈련한다고 자랑하고 가는 거지. 파주에 트레이닝 센터가 있는데 그래도 나중에 금메달 따면 보여주려고 하나봐.”
김훈의 이야기. 축구 선수들은 사실 파주의 트레이닝 센터가 있어서 굳이 태릉에 합숙을 하지 않는데, 가끔 인터뷰나 나중에 금메달을 따면 다큐멘터리로 방송될 ‘인간의 극장’같은 프로그램에서 사용하기 위해 들른다고 한다. 그럴 때면 수영선수들을 무시하고 간단다.
“그럴 때 네가 있으면 그 까칠함으로 걔네들을 뭉갤 텐데…”
이번에는 찬규가 그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말을 한다. 자기네들이 대적하기에는 너무 강력한 적수들인가 보다. 하긴 무명의 선수들이다. 수영계에서나 약간 이름이 알려져 있지 메이저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이 이들을 알기나 하겠는가?
“그런데 걔네들이 왜 수영장에 오는데?”
“빛나랑 가희 보러 오는 거지, 뭐.”
“뭐?”
“핑계는 몸을 풀러 온다고 하는데… 잔부상에 시달리면 수영으로 치료하기 딱이거든. 그렇다고 아무 수영 센터에는 가지 못하니 태릉선수촌을 이용하는 건데, 우리 애들 중에 빛나랑 가희가 예쁘장하니까 구경하러 오는 거야.”
그의 말이 맞다. 상대적으로 유명한 선수들의 유럽 시즌도 끝나고 아시안 게임에 참여하는 선수들은 일단 금메달을 목표로 하는 이들. 금메달을 따면 군면제도 되기에 많이들 모여들었다. 23세 이하의 축구 대표 팀. 이들 중 유명한 선수들은 일단 올해 열리는 월드컵으로 가 있다. 일주일 후면 월드컵 개막인데 여기에 속하지 못한 선수들이 약간 자격지심이 있나 보다. 그 분풀이를 다른 선수들에게 하기도 하고, 여자들 보는 재미도 있어서 수영장에 자주 온단다.
“지들이 부상으로 월드컵에 못 간 한을 우리가 왜 받아줘야 하는지 모르겠어. 언제 한 번 태릉으로 와서 걔네들 코를 납작하게 해주라. 그럼 널 싫어하는 마음이 좀 바뀔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쓴 웃음을 지었다. 어느새 우혁은 까칠함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런 용도로 필요로 할 줄은 몰랐다. 사실 그는 이 말을 듣고도 화는 나지 않는다. 축구선수들을 이해한다는 게 아니라 거기에 끼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약간 유치해 보인다고 할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자신이 그랬던 것 같았다. 지난 대회에서 햄스트링이 고장 난 이유도 장치앙린에게 자극을 받아서 무리하게 훈련과 시합을 하다 보니 걸려들은 것이 아닌가? 물론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언젠가 복수하고 싶다. 그래서 이번 아시안 게임을 벼르고 있고. 하지만 또 그를 만나게 된다면 마인드 컨트로를 잘할 자신이 있었다. 이제 혼자만의 몸이 아니다. 그에게는 세실리아가 있다. 지켜줄 사람은 지키는 사람이 강해져야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훈련을 마치고 귀가를 하니 세실리아가 아주머니와 함께 요리를 하고 있었다. 전혀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뭐 하는 거야?”
“응. 아줌마가 요리 알려 주고 있어.”
“응? 그래 봤자 네가 먹을 수 없잖아.”
“아니, 나 먹어 보려고.”
그녀는 이제 불로 가열한 음식을 먹기로 결심했다는 뜻을 굳혔다. 어차피 자신이 살 세상이다. 그와 함께 그가 겪는 생활 방식을 따라야 한다. 그와 함께 살려면 말이다. 그래서 조른 것이다. 아주머니에게 요리를 알려달라고.
“자, 이거 세실리아가 만든 불고기.”
“아, 그래요?”
“한번 먹어봐.”
아주머니가 한 접시 담아 주었다. 누가 봐도 이건 세실리아의 솜씨가 아니다. 아마도 그녀는 거의 다 양념이 된 것을 불에 볶기만 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상관없었다.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노력을 하는 그녀가 대견했다.
“맛있어?”
“응.”
그가 먹는 장면을 살펴본 세실리아. 그런데 정작 그녀는 아직까지 이 고기라는 것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대신 다른 음식을 선택했다. 그게 바로 김치다. 이 김치라는 것도 인어가 먹기에는 매우 자극적이다. 매울 수 있다는 말. 그래서 아주머니가 특별히 물김치를 담았단다. 아직 익지는 않았지만 그와 같이 식사할 때 한 입씩 떠먹고 있는 그녀가 너무 예뻐 보였다.
“진짜 괜찮겠어? 너무 노력하지 않아도 돼.”
“아냐. 나 우혁이랑 같이 먹고, 같이 놀고, 같이 자고… 싶어.”
마지막 말을 할 때 그녀는 부끄러워했다. 그녀도 이제는 알고 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사귀고 마음을 교류하며 스킨쉽이 있는 과정을. TV 드라마를 많이 보니 이제는 금세 사람들의 사랑하는 과정을 익혀버린 것이다.
그녀가 알고 있는 성행위. 종족 번식을 위한 것을 제외하고 사랑의 확인 과정을 이제 더 잘 알게 되었으니 언젠가는 그와 한 몸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 언젠가가 오는 것은 물론 우혁에게 달려 있지만.
우혁 역시 그 말을 듣고 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당연하다. 건장한 성인 남성이다. 언제까지 참고 있을 수는 없다. 계기만 있다면 동침을 벌써 해도 했는데, 요즘 세실리아는 예전처럼 그에게 졸라대지 않는다. 같이 자자고. 오히려 요즘은 그가 원한다. 그렇다고 자신이 말한 설정을 깨기도 그렇다. 남자와 여자가 같이 자는 것도 아니다, 기타 등등, 남자와 여자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너무나 많이 나열해 놓아서 수습하기가 힘들다.
언제쯤 이들은 마지막 과정을 밟을 수 있을까? 이미 동거는 꽤 오랫동안 해왔는데 말이다. 그래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녀와 한 몸이 되는 그것은 마지막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의 시작이라는 것을. 그 날이 오면 그녀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다. 그런데 이 생각을 하니 왜 침이 고이는 걸까? 세실리아는 어김없이 그에게 한 마디 한다.
“어? 우혁 침 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