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21화 유망주들
박태원 선수의 은퇴가 미친 여파. 일단 대중들의 무관심이 더욱 커져간다는 게 문제였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다음 해에 열릴 아시안 게임에서 메달권에 근접한 남자 선수는 없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따라서 수영 경기를 보지 않겠다는 대답을 한 사람들도 많았다. 도대체 이런 조사를 왜 해서 기존 선수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지 모르겠다.
가끔 여론 조사 기관의 쓸 데 없는 조사는 영욱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론은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키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 그리고 그의 눈에 지금 열심히 물살을 가르는 우혁이 눈에 들어 왔다.
정말 대단한 유망주다. 특히 장거리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역시 그의 호흡이 길고, 끈기가 있다는 게 기록을 단축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제 김훈과 찬규는 그와 연습 경기조차 하려고 들지 않았다. 애송이와 하기 싫다는 핑계지만 주변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이겨도 체면치레이고 지면 개망신이다. 당연히 그들 입장에서는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일수야…”
“네?”
“연습 경기 한 번 가능하냐?”
“누구요? 저 형 하고요?”
영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일수. 사실 제 2의 박태원이라는 수식어가 먼저 붙은 유망주다. 현재 고등학교 2학년. 오전 수업만 마치고 훈련장으로 오기 때문에 지금 복장을 착용하고 연습을 하려고 한다. 그는 단거리에 특화 되어 있다.
“전 장거리는 힘들어요. 하하.”
“400미터 해보라는 거야.”
“400미터를요? 아직은 무리일 텐데…”
영욱의 구상은 중단거리는 일수가, 그리고 중장거리는 우혁이 결국 해 내야 수영에 대한 관심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는 결론을 지었다. 당장 지원이 줄지도 모른다는 감독의 말을 들었다. 박태원의 은퇴 후 이렇게 즉각적으로 표시를 내다니 정부가 원망스러웠다. 오히려 더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야 새로운 유망주 발굴과 과학적인 훈련으로 기존 선수들의 실력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 외국인 코치의 연봉조차도 간신히 맞출 수 있을 것 같다는 감독의 한숨과 같은 한탄. 그래서 그의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니까 네가 한 수 가르쳐 주란 말이다. 쟤는 약간 자극만 해 주면 알아서 그 목표까지 기관차처럼 달리는 놈인 것 같아…”
“기관차처럼… 그런데 그 이전에 연료가 바닥나면 어쩌시려고…”
“그건 네가 걱정하는 게 아니야. 어이, 서코치.”
그는 코치를 불러 모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을 모이게 했다. 연습경기를 한다는 명분이다. 주로 평소에 연습경기는 둘이 짝을 지어서 한다. 그러다가 대회가 임박하면 여러 명씩 실제처럼 모의 훈련을 한다.
“저는 찬규랑 하겠습니다.”
김훈은 미리 선수 친다. 당연히 찬규도 고개를 끄덕인다. 혹시나 영욱이 그들로 하여금 우혁과 경쟁을 시키려는 것을 미리 차단한 처사다. 하지만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 항상 그렇게 기피만 하고 있으니 그들이 얄미워서 그 계획은 아예 배제를 했다.
“제가 400미터를요?”
“그래, 여기 일수랑 한 번 해 봐라. 수영 선수는 한 가지만 잘해서는 절대 대표로 뽑힐 수 없다. 주 종목이 있겠지만 선수 선발이 제한이 되어 있어서 총 15명 선에서 결정이 된다. 그러니 너도 점차 영역을 넓혀가야지.”
우혁은 눈빛을 빛냈다. 장거리 1500미터. 지난번 대회에서 일반부 3위도 했고, 이제는 김훈이나 찬규를 상대로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슬슬 피하고 있다. 연습을 같이 하기는 하지만 거의 서로 대화를 하지도 않는다. 자신을 시기와 질투의 눈빛으로 쳐다보고만 있다. 별로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신을 싫어하면 그도 그들을 싫어해 주면 되는 것이니까.
코치가 말한 400미터. 원래 800미터로 영역을 넓히는 게 순서일 것이다. 하지만 일수는 800미터를 하지 않았다. 못 하는 게 아니라 단거리를 더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범위가 400미터다.
물론 선수가 재능이 있으면 50미터부터 1500미터까지, 그리고 자유형부터 평형까지 다 참가할 수 있다. 그게 개인 스포츠의 묘미이다. 그래서 아시안 게임, 그리고 올림픽에서 다관왕이 나올 수 있는 게 바로 수영 및 육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 천재에게 해당하는 사항이다. 박태원 같은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나 해당하는 사항이고 그도 전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낸 게 아닌, 선택과 집중을 했었다.
우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목표를 세운 것 그는 욕심을 크게 가지기로 했다. 요즘에 배우는 수영. 너무 재미있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재미있어서 수영하는 그를 오히려 말리고 나서는 것은 코치들이다. 너무 무리하면 부상의 위험이 있기에 훈련 시간 이외에 개인 훈련은 일주일에 3회로 제한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주말은 절대 휴식이다.
잠시 후 스타트대에 선 두 선수. 실제 경기장처럼 구비된 훈련장에는 부저가 내는 소리도 같다. 삐익하는 효과음이 나고 드디어 둘이 돌고래처럼 튀어 나갔다. 둘 다 깔끔한 스타트. 나무랄 데가 없다.
빛나는 요즘 그에게 홀딱 빠져 있다. 지금도 그렇다. 그를 바라보는 게 가슴이 떨린다. 대 놓고 응원하지는 않았다. 온통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 덕분에 그녀가 그렇게 하면 이제 그에게 불이익이 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간절하게 그를 응원하고 있다. 400미터에서도 재능을 선보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50미터 턴하는 지점까지…
사람들의 얼굴이 변했다. 오히려 우혁이 앞서갔기 때문이다. 정말 괴물 같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장거리가 아닌 단거리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일까?
물론 그것은 아니다. 400미터는 일수에게 매우 먼 거리다. 7번 턴을 해야 하고 8번째 터치에서 마무리를 해야 하는 경기. 그래서 속도조절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혁은 그게 아니다. 요즘 속도가 붙고 있으니 당연히 처음부터 전 속력이다. 그래서 체력 배분을 하는 상대에 비해 빨라 보이는 것이다.
영욱은 잘 알고 있다. 조금 있다가 가속력을 내기 시작하는 일수가 결국은 이길 것이라는 걸. 그래도 놀라운 일이다. 벌써 저렇게 속도를 내기 시작하다니. 수영을 배운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된다. 장거리뿐만 아니라 단거리도, 어쩌면 지금 배우고 있는 자유형이 아니라 배영과 접영, 그리고 평영도 못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피식 웃었다.
“설마… 하하.”
그는 자신이 너무 과대망상을 꿈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제 2의 박태원 정도가 아니라 세계 수영사에 획을 긋는 전설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자신을 주문할 무렵 경기의 양상은 재미있어졌다.
드디어 100미터 턴을 할 무렵 우혁이 역전을 당했다. 결국 일수가 제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쭉 쭉 뻗어나가는 그의 팔과 다리. 190센티의 큰 키는 오히려 국내 수영 선수 중 가장 적합한 신체일 것이다. 그가 왜 유망주이며 그나마 아시안 게임의 메달후보인지를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렇게 격차를 벌리며 앞서 나간 일수. 조금 여유를 가질 만도 한데 오히려 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영욱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너무 격차가 벌어지면 우혁이 과연 자극이 될지가 걱정이다. 자극도 따라 잡을 수 있을 때 받는 것이기에.
‘이럴 줄 알았으면 일수에게 이야기 해두는 건데…’
그는 약간 후회를 하고 있었다. 자극을 받을 정도의 격차를 두라는 말을 해야 했다. 혹시나 봐준다는 인상을 주면 안 되기에 그냥 내보냈는데, 저 정도라면 우혁이 받을 것은 자극이 아니라 무감각이다. 어차피 자신의 종목이 1500미터이니 나머지는 대충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우혁은 오기가 생겼다. 자신보다 일수가 어리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이 곳 훈련장에서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는 선수는 빛나가 거의 유일했다. 다른 남자 선수들은 늘 자신을 경계했고, 그나마 어린 여자 선수들이 호의적이긴 했지만 차가운 그의 모습에 접근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연습 경기를 항상 꿈꾸어 왔다. 말이 아닌 실력으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수단이기에.
그런데 자신이 속된 말로 매번 ‘발린다.’면? 시기와 질투를 넘어서 조롱의 눈초리가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물론 그는 국가 대표고 자신은 수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편견을 깨는 게 그의 목표다. 그걸 위해서 연습에 매진을 하고 있다.
그동안 과학적 훈련 방법과 외국인 코치의 지도를 받아 일취월장한 실력. 그것을 믿고 초반부터 앞으로 치고 나갔지만 상대는 여유 있게 자신을 역전했다. 그 때부터 벌어지기 시작한 거리는 200미터 지점에서는 무려 한 턴 가까이 벌어지고 있다.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이다.
호흡. 수영을 배울 때 처음 시작하는 ‘음’, ‘하’ 호흡법. 사실 그는 잘하지 않는다. 그것을 흉내 낼지언정, 진짜로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장거리로 갈수록 그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 더구나 강한 의지. 그 정신력은 그의 팔과 다리가 더 빨리 움직이도록 힘을 보내주고 있다.
이때부터 격차가 좁혀졌다. 사람들의 ‘역시 그러면 그렇지…’라는 눈빛이 이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300미터를 넘는 지점부터 거리가 좁혀지더니 350미터 턴을 할 때에는 반 턴으로 좁힌 우혁이다. 이제 현저하게 일수의 속도가 느려졌다. 아니 사실 그의 속도는 정상이다. 우혁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것이다.
턱. 턱.
마지막 터치가 이루어지고…
일수가 먼저 벽을 찍었지만 단지 한 끝 차이다. 아마 1초의 차이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기대 이상이다. 사람들의 눈에 담겨 있는 경악과 영욱의 눈에 담겨 있는 놀람. 마지막으로 빛나의 눈에 담겨 있는 기쁨. 이 모든 것이 우혁의 얼굴에 꽂혔다.
“기… 기록은?”
“죄… 죄송합니다. 미처 누르지 못했습니다.”
“뭐?”
영욱은 분통이 터졌다. 원래 이런 연습 경기에서 항상 스톱와치를 누르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그것을 깜빡하고 누르지 못했다는 서코치. 그 역시 놀라서 그런 것이지만 탓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걸 안 누르면 어떻게 해? 이 인간아! 아유…”
그의 생각에는 어쩌면 일수도 자신의 기록을 경신한 것 같았다. 그도 수영 선수였고, 많은 선수들을 키워 보았다. 감이라는 게 있다. 굳이 스톱워치를 사용하지 않아도 기록이라는 것을 느끼는 감각. 하지만 증거가 없다. 그래서 아쉬운 것이다.
“헉, 헉…”
숨을 몰아쉬는 일수는 옆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우혁을 보며 충격을 받는다. 자신처럼 숨을 몰아쉬고 있지 않다. 힘들지 않은 것인가? 아무리 그의 주 종목이 1500미터라고 하지만 믿을 수가 없다. 그는 느꼈다. 어쩌면 자신의 인생에서 최대의 맞수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게 모두의 뇌리에 충격을 준 연습경기가 끝났다. 비록 본인은 이 게임이 진 것에 속으로 분통을 터트리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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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 글에 나오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