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90화 크루즈 스위트룸
크루즈 출항 당일. 바다를 통해 4층짜리 크루즈가 출발을 한다. 우혁은 밖에 나와 있다. 시력이 나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심해를 볼 수 있는 눈은 가지고 있지 않다. 저 아래에 분명히 있을 것이다. 세실리아가 말이다.
답답했다. 자신도 밑으로 내려가고 싶었다. 자신 역시 물에서 호흡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위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미리 준비해 온 긴 줄을 바다 밑으로 내려야 했다. 그것도 아무도 안 보는 사이에.
“세실리아! 고생했다.”
올라오자마자 그녀는 자신에게 안긴다. 그 역시 그녀를 안아주었다.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걱정이 되었을까? 혹시 그녀를 좋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혁, 보고 싶었어.”
그녀의 말은 나날이 늘었다. 표현력은 점점 좋아졌으며 어순 배열은 이제 완벽해 졌다. 인어의 말이 한국어와 비슷한 어순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는 우혁이다. 사실 언어는 어순의 배열을 제대로 알고 있으면 배우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어휘다. 한국인이 일본어와 몽골어를 잘 배우는 이유가 바로 그와 같은 이유다. 주어, 목적어, 서술어. 영어처럼 주어와 동사 그리고 목적어의 어순이라면 정말 힘들 텐데.
2인실을 예약했다. 그러느라고 돈이 두 배로 들었다. 그래도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녀와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게 문제일 뿐. 그렇다. 그녀는 이제 시도 때도 없이 자신에게 접근한다. 예전에 첫 날이 생각난다. 그녀에게 남자와 여자가 같이 잘 수 없다고 한 말. 그녀는 그것을 인간의 관습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금 우혁이가 말한 그 가짜 설정이 완전히 탄로나버렸다.
더군다나 그가 빌린 룸은 스위트룸. 신혼부부가 애용한다는 그 곳이다. 침대도 하나이며 그 침대가 아닌 곳에서는 잠을 자기가 쉽지 않다. 공간의 부족. 그래도 쪽잠을 자려고 그는 침대 아래에 구부려서 누웠다.
“우혁, 뭐 해?”
“응? 자려고. 세실리아도 자.”
“잠 안 와.”
그 역시 마찬가지다. 잠자리가 불편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당연히 그녀와 함께 있어서이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다시 우리말 가르치기 수업 모드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어나니 이미 침대 한 끝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가 보였다.
“헉, 너… 너 뭐하는 거야? 옷은 왜 벗었어?”
“원래 잘 때 이렇게.”
“원… 래 잘 때 옷을 벗고 잤단 말이지? 지… 지금은 안 돼.”
“안 돼?”
“응. 안 돼. 남자랑 여자랑 같이 있을 때는 옷을 벗으면 안 돼.”
점점 억지 설정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도저히 남자와 여자는 사랑을 나눌 수 없는 구조다. 서로 옷을 벗으면 안 되고 잠도 같이 자서는 안 된다. 그럴 리가 없다. 그래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세실리아.
“나 우혁 말 잘 들어.”
“그…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착한 세실리아지.”
“응. 나 착해.”
말투는 꼭 어린애 말투다. 하지만 아직 말이 서툴러서 그렇다. 지금의 습득력으로 봐서 얼마 후면 훨씬 표현을 잘 할 것이다.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어렵지 않을 때, 그 때에는 우혁의 말이 먹힐 수 있을까?
그래서 우혁은 아예 이참에 그녀를 세뇌시키고 싶었다. 소재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주제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마도 잘 알아들을 것이다. 그동안 지내왔던 시간. 이제 말귀를 꽤 잘 알아들으니 말이다.
“세실리아. 잘 들어. 이제 인간 세상에서 사는 주의 사항을 알려주려고 하니까 말이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도 옷은 입지 않고 있다. 대신 이불로 몸을 가렸다. 그렇게 하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게 더 야하다. 우혁은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시 심호흡을 하고 그녀에게 남녀 관계에 대해서 유교주의적인 관점으로 설명을 하려고 했다. 알아들었으면 그 다음에 그녀가 알아서 옷을 입고 다닐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 만져서는 안 돼.”
“응? 안 돼? 만지면 안 돼?”
“응. 안 돼. 큰 일 나.”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눈을 하고 있다. 당연하다. 어디서 이런 것을 사기 치는가? 아무리 그래도 그녀를 바보로 알고 있다. 그녀도 알 것은 다 안다. 가끔 자신의 동족들이 인간을 잡아와서 성행위를 하는 것을 타의에 의해 직접 목격했다. 레지나는 그녀도 알 것은 알아야 한다며 그 장면을 눈 뜨고 지켜보게 했었다.
“왜? 왜 안 돼?”
“그게 왜 안 되냐면 큰 일 나니까.”
“큰 일?”
“응. 큰 일. 아, 맞다. 애기가 생겨. 잘 못하면 애기가 생긴단 말이지.”
점점 궁색해진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자꾸 빠져들고 있다. 그런데 세실리아는 그냥 속아주려고 하나 보다.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왜 모르겠는가? 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자신을 속이려고 한다는 것을.
그리고 애기가 생긴다는 것. 그녀의 입장에서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언제나 인어는 종족 개체수의 부족으로 항상 고민을 안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잉태를 한 인어는 종족에서 떠받들어졌다. 그리고 로드는 잉태를 한 인어를 위해 온갖 혜택을 다 주었다. 신의 선택을 받았다며.
“나 애기 갖고 싶어.”
“뭐? 그… 그런 말을.”
우혁은 지금까지 한 노력이 다 허사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애기를 갖고 싶다니? 단지 만지는 것만으로 애기를 가지게 된다는 그의 말을 듣고 바로 그녀가 반응을 했다.
“나 우혁 만질래. 호호호.”
“허억, 허억. 저리 치워. 안 돼. 저리 가.”
그녀가 갑자기 이불을 제치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놀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또 눈은 감지 않는다. 그녀의 온 몸을 훑고 있다. 엉큼하다. 그녀의 아름다우면서도 큰 가슴과 아래의 계곡이 그대로 보인다.
그가 당황하니 더 재미있나 보다. 침대가 있는 스위트룸. 제법 넓게 빠졌다고 해도 어차피 배 안이다. 그렇게까지 넓지 않다. 당연히 그는 침대 아래서 피할 곳이 별로 없다.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피하기도 싫어졌다.
그렇게 되자 바로 그의 위에 올라탄 꼴이 된 세실리아. 그녀가 그의 손을 잡고 위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은색 눈. 아름답고 신비하다. 금발 머리는 섹시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배 위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기운. 이 상황에서 자신의 물건을 제대로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안 돼. 이러면 안 돼.”
그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듯 안 된다는 말만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문은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에게도 하고 있는 것이다. 세실리아와 이런 자세로 있는 것. 대단히 위험하다. 그녀와 사고라도 칠 것 같다.
그러나 그 주문은 절대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입술을 마주쳐 온다. 그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녀가 이미 팔을 놓아주었다는 것도 모른 채 그냥 당하고 있다. 아니 그 다음에는 오히려 그가 그녀를 안고 있다. 깊은 키스. 달콤한 그녀의 타액. 그의 이성이 점점 마비되어 버린다.
그녀의 입술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그녀와 영원히 있고 싶었다. 그 감정을 이제야 확인 했다. 아니 원래부터 이런 감정이 없었을 리가 없다. 다만 그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게는 미래가 있기 때문에. 그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갑자기 그의 머리를 채우는 사람. 그 영상. 바로 그의 여자 친구인 김미래다. 그래서 떼어 놓았다. 세실리아를.
“헉, 헉.”
숨을 몰아쉰다. 정신적인 망설임이 그에게 고통을 주고 이는 호흡곤란까지 오게 하나보다. 그리고 그의 힘에 의해 거리를 갖게 된 아름다운 인어 아가씨.
그녀는 아쉬운 눈빛이다. 늘 그렇다. 자신이 적극적이고 그는 그렇지 못하다. 왜 그럴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의 대답이 궁금했지만 두려웠다. 분명히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지 않은 눈빛인데 왠지 불안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야겠다. 진짜 그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우혁, 나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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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느긋하게 헤엄쳐서 갈 수 있습니다. ㅋㅋ 그런데 상어를 만날 수 있으니 그 방법은 보류하겠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