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82화 재회
단조로운 생활. 순빈이 느끼기에는 그랬다. 확실히 심심하다. 한국의 문화가 재미있다는 것을 해외에 나가면 느낀다더니 정말 그렇다. 그러나 우혁은 아닌가 보다. 원래 이곳에 살았었기 때문에 그런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한국에서도 그는 그렇게 지냈다. 단조롭게. 재미없게 말이다. 그래서 오히려 그에게는 독일 생활이 맞을 수도 있다.
“오늘도 가는 거냐?”
“네.”
그는 늘 로렐라이 언덕에 가곤 했다. 벌써 독일에 온지도 한 달이 넘었다. 그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그 언덕에 가고 있다. 운전은 순빈이의 담당. 요즘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서 우혁은 공부를 시작하고 있다. 일단 필기시험부터 붙어야 한다. 슬슬 공부하고 있다. 안 되면 한국으로 돌아가서 보면 되니까.
이제 제법 봄기운이 느껴진다. 한국처럼 4계절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강가는 늘 춥다. 순빈이는 추위를 느낀 나머지 늘 그와 같이 있지는 않았다. 여기 오면 그가 하는 일은 차 안에서 여자 친구와 전화 하는 일. 오랫동안 보지 못하기에 이렇게라도 유지를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혹시 아는가? 바람이라도 날지.
“난 차 안에 들어가 있을 게.”
“네, 한 바퀴 돌아보고 올게요.”
그렇게 말하고 그는 천천히 걸어갔다. 아직까지 다리의 햄스트링은 그에게 고통을 준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 특히 오늘은 예감이 괜찮다. 꼭 누군가를 만날 것 같은 느낌. 물론 콕 집어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물어본다면 대답하기는 힘들다.
“그래도 오늘은 꼭 만날 것 같단 말이지.”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그는 이곳에 올 때 항상 밤을 선택했다. 아무래도 날이 밝을 때에는 그녀가 절대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밤에 나타나는 것도 아니지만.
물은 차갑다. 그래서 들어가지는 못했다. 멀리서 유람선이 보인다. 바로 저런 유람선에서 뛰어들었을 때 그녀가 나타났는데. 그런데 그는 왜 이렇게 그녀에게 집착하는 것일까?
당연히 만나고 싶어서이다. 어쨌든 생명의 은인이다. 그녀를 만나서 자신의 목숨을 살려 주었으니 그만큼 뭔가 보답을 해주고 싶었다. 그게 도리 아닌가? 생명의 은인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
다만 지금은 그냥 그 정도다. 예전에는 애틋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그녀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주로 애정에 관련된 질문. 분명 그가 느꼈던 것은 뭔가 야릇한 눈빛이었기에.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그에게는 미래가 있다. 한국에 두고 온 여자 친구. 자주 통화는 할 수 없다. 그녀는 더더욱 바빠졌다. 잦은 통화는 아니더라도 한 번 통화할 때마다 통화시간이 짧다.
그러나 불만은 없었다. 그녀에게도 그녀의 삶이 있는 것이다. 그는 절대로 그녀를 구속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 입장에서 자신을 구속해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언제 언론에 터트릴까 호시탐탐 기회를 보고 있다. 그럴 때면 그는 웃었다. 뭔가 인상적인 일, 즉 아시안 게임 금메달 정도 따고 세상에 알리자는 말을 하곤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의 대부분은 그렇게 미래에 관련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어를 만나도 자신이 있었다.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자신. 그냥 궁금증만 풀고 싶은 게 다다. 그리고 자신을 구해준 은혜에 대한 보답.
“헉.”
놀랄 때 내 뱉는 소리. 그 감탄사. 이유가 있다. 자신만의 생각에 몰입해서 그냥 걷느라 그는 자신의 곁에 누가 와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정면에서 그의 눈에 비친 얼굴. 그 때 본 그녀였다. 인어, 세실리아. 언제부터였을까? 그녀가 거기 있었던 것은?
“너… 너는? 아니 당신은? 비에 하이트 두?”
처음에는 한국말로 하다가 독일어로 상대의 신분을 물어본다. 우리말을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녀가 인간의 언어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어떤 언어로 말을 한다고 해도 그녀가 알 리가 없다.
“⳩Ⱙꠕꡭ.”
그녀 역시 뭐라고 말을 하고 있다. 당연히 알 수가 없다. 문제는 그의 눈에 비친 그녀의 알몸이다. 화끈 거리는 얼굴. 그는 시선을 다른 데다 두려고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그녀와 눈은 마주쳐야 한다는 생각. 왜냐하면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최소한 눈으로 대화를 해야 하기에.
“음.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군. 도무지 어느 나라 말인지.”
그는 웬만한 나라를 다 다녀 보았다. 그렇지 않더라도 듣고 어느 나라 언어인지는 대충 알 수 있는 언어적 감각은 지니고 있다. 아무래도 외교관의 아들인데 그런 감각은 타고나지 않았을까?
“뭐라고 말을 한 거야? 혹시 나 기억해?”
“⳩Ⱙꠕꡭ.”
그녀는 다시 아까와 똑같은 말을 한다. 그를 바라보는 표정은 밝다. 뭔가 위험을 경고한다거나 아니면 그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답답했다. 무슨 말인지 알면 좋을 텐데.
“음, 이게 문제군. 그 동안 만나면 다 해결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네.”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녀와 의사소통할 방법을.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세실리아는 조용히 그를 바라본다. 그런데 놀라운 게 있다. 그녀의 다리. 지느러미가 아니다. 육지에 올라오면 인간의 다리 형태가 되는 것. 모든 인어의 특징이다. 그래서 이렇게 가끔 돌아다닌다. 인간인 척 하고. 혹시나 발견될 까봐.
물론 발견 되도 문제긴 하다. 옷을 벗고 있으니 말이다. 그럴 때면 물에 바로 뛰어들면 된다. 어쨌든 발견 된 적은 없다. 나름 조심하고 있으니. 그런데 얼마 전부터 보았다. 우혁의 모습을. 꿈에도 못 잊은 사람. 비록 종족이 다르지만 언제나 그리워했던 이다.
이제 몸은 완전히 회복했다. 그에게 주었던 호흡. 로드의 도움으로 기력을 회복했다. 그녀는 건강을 찾자마자 이렇게 가끔 강 주변을 돌아다녔다. 인간들의 눈에 뜨일지도 모른다고 매번 혼나면서도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 때문에 올라오곤 했는데 드디어 발견했고 고민 끝에 그의 앞에 섰다.
“몸은 괜찮아?”
그녀의 입장에서 자신의 언어를 그가 알아들을 수 없을 텐데 이렇게 물어보는 것. 그의 몸 상태가 궁금해서다. 다리를 절고 있다. 완전히 치유 되지 않았나 보다. 이상하다. 원래 자신의 치유능력은 문제가 없을 텐데.
어쨌든 그가 뭐라고 말을 하는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다. 당연하다. 인간의 말을 연구하지 않았다. 가끔 종족 번식을 위해서 데리고 오는 인간들. 그들과는 전혀 관계를 맺지 않았다. 그런 행위는 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우혁이야. 너는?”
“…….”
“나는 우혁이라고, 최우혁. 너는?”
“우… 혁?”
“그래 맞아. 그게 내 이름이야.”
우혁은 자신을 가리키며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그리고 그녀를 가리켰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가슴 쪽에 손가락을 그리고 그녀를 가리킬 때에는 그녀의 가슴을 향해 손가락을 향해야 했다. 눈은 계속 떠야 했다. 서로 이름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다만 얼굴은 계속 붉힐 수밖에 없다. 당연하다. 그녀의 은밀한 상반신이 눈에 확 들어오니 말이다.
“아, 그것부터 가리면 안 될까? 음.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이거야 원.”
그는 겉옷을 일단 벗었다. 그리고 그녀를 가린다. 아직 봄이라 다행이다. 그가 겉옷을 입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를 그 모습 그대로 계속 지켜봐야 했을 수도 있다.
“아까부터 해주고 싶었다고. 오해는 하지 마.”
긴 옷이다. 상체와 하체의 둔부까지 가릴 정도로. 그래서 한 번 그렇게 둘러주는데 그의 행동을 오해했나 보다. 갑자기 그녀가 그를 껴안았다.
“윽. 이거…”
그는 다시 얼굴이 붉어진다. 호흡도 가빠진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상황이다. 그녀에게서 나는 향내. 묘하게 기분이 좋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압박하는 그 무언가는 그가 상상하고 있는 것이 맞다.
“⁅⁍⁁᭩”
뭐라고 또 말을 하고 있다. 자신의 귀에다 대고. 무슨 소리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느낄 수는 있다. 매우 달콤한 느낌이다. 마치 사랑을 고백하는 것처럼. 어쩌면 보고 싶었다고 말을 하는 것일지도.
그렇게 한 남자와 한 인어가 있다. 다시 만나기까지 약 1년이 걸렸다.
============================ 작품 후기 ============================
크흑. 그렇군요. 이 작품의 주인공이 미움의 대상이군요^^ 그래도 이제 좀 정상으로 천천히 만들어 볼 테니 조금씩 바뀔 때마다 애증 정도로는 해주시기를... 미움을 너무 받으면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지 않습니까? 적당하게 애정도 베풀어주십시오~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