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17화 자고나니 유명 인사
다음 날 아침 스포츠 신문에 실린 우혁. 1면에 프로야구 소식이 있는데, 그 옆에 비중 있는 사진과 함께 기사가 실렸다.
『한국 수영 샛별 최우혁, 첫 출전에 물살을 가르다.
남자 일반부 1500미터 3위
어제 열린 동아수영대회 시상식에서 포즈를 취한 최우혁(오른쪽 첫 번째). 대한민국수영연맹 제공
한국의 수영 유망주 최우혁(상일실업. 20)이 새 희망을 가르고 있다. … (중략) … 최우혁은 불과 수영을 시작한지 한 달밖에 안 된 수영 천재로, 곧 은퇴할 박태원 선수의 뒤를 이을 기대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첫 출전에서 3위를 기록한 그의 기록은 15분 59초 62. 비록 한국 신기록에 한참 못 미치는 기록이지만 앞으로의 장래성을 보았을 때 … (중략) …
최우혁을 지도하는 이우혁 코치는 “힘과 유연성을 모두 갖춘 선수가 많지 않은데, 최우혁은 이를 모두 겸비한 유망주”라며 “훈련을 좀 더 성실히 하고, 179cm인 키가 180cm 이상만 된다면 국가대표 선수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 아들이… 우리 아들이…”
우혁의 아버지는 감격스러워 말을 잇지 못했다. 항상 그와 아내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아들이다. 그런데 이 기사를 보라. 이제 그는 자신과 아내의 자랑이 될 것 같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무슨 가장이 이렇게 감격을 잘한단 말인가? 그래도 상관없다.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내와 부둥켜 울고 싶었다.
“저 나가요!”
“잠깐만, 우혁아.”
“왜요? 여기 좀 와 봐라. 네 기사가 나왔다.”
“제 기사요?”
그는 호기심에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 부모의 곁으로 갔다. 웬일인지 눈시울을 잔뜩 붉힌 자신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역시 자신을 자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사진을 그렇게 찍어대더니 남의 허락도 받지 않고 기사를 냈잖아!”
“…….”
“…….”
그는 황당하다는 듯 신문의 사진을 보았다. 기사 내용은 상관없었다. 자신의 얼굴이 저렇게 직접적으로 나오면 정말 귀찮다. 이미 공항에서 경험을 해보지 않았던가? 그는 주섬주섬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역시나.
검색어 순위 1위 최우혁. 2위 괴물신인. 3위 박태원의 후계자. 4위 공항 얼짱. 장난이 아니었다. 심지어 자신의 사진도 잔뜩 이미지로 올라왔다. 예전에 공항에서 찍었던 사진들과 어제 시상식에서 찍은 사진이 적절하게 혼합이 되었다. 클릭해보면 개인 블로그와 여러 카페들로 이어지고 벌써 자신의 신상이 털리고 있다.
“와아, 진짜 짜증나네. 이거 어떻게 하지?”
당장 훈련장으로 가는 게 문제였다. 거기서 버스를 타고 단체 이동을 한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는 동안 분명히 사람들이 알아보게 될 것 같았다. 그러면 저번처럼 무지하게 귀찮은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모자, 모자를 써야겠어.”
그를 보는 황당한 두 쌍의 눈. 만약 할머니 할아버지가 잠시 아침 산책을 나가지 않았다면 네 쌍의 눈이 어이없어 했을 것이다. 그 때 울리는 벨소리. 빛나였다.
“여보세요?”
- 우혁아, 너 장난 아니던데?
“아, 나 미치겠어. 왜 이런… 귀찮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어떻게 하지?”
- 그럴 줄 알고 내가 앞에 나와 있지롱. 내려와. 태워다 줄게.
“엇, 고마워. 정말 고마워.”
그는 재빠르게 다시 문 밖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벌써 같이 탄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있다. 이들은 오며 가며 자주 만나는 사이이다. 원래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아주머니들. 그래서 그를 보며 키득키득 거린다. 하루아침에 유명 인사가 되어버린 게 실감이 나고 있다.
“나 이제 어떻게 살아가지?”
“에이, 다시 잠잠해 질 거야.”
“정말 그럴까?”
“그럼. 나도 그렇고 미래도 그렇고 얼짱 미녀 수영 선수라고 기사가 나간 적이 있는데, 사람들의 관심은 딱 일주일 가더라. 우리나라에서 수영선수로 살려면 태원 오빠 정도는 돼야 해.”
운전을 하면서 그녀는 차분하게 말을 잇고 있다. 사실 그녀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4관왕이다. 그런데 신문 기사에는 대서특필 된 우혁에 대한 이야기에 곁들여서 살짝 첨가된 정도이다.
“결국 스포츠 신문 같은 것은 믿을 게 못 돼. 판매 부수나 아니면 광고 수주 때문에 자극적인 기사로 사람들을 현혹 시키는 거지.”
“자극성 기사라니?”
“못 봤어? 자세히 안 봤구나? 네 타이틀 기사 가관이 아니던데… 몇 몇 정상적인 제목이야 수영에 관한 것이지만, 대부분 외모를 타이틀로 해서 쏟아내고 있어. 인터넷 신문들이 더 한데, 예를 들면 ‘탄탄한 복근을 가진 그는…?’, ‘스테미너 짱, 그는 누구인가?’ 이런 기사들이 갖가지 확인 되지 않은 사실들로 너를 기사화 시키고 있단 말이야.”
“허…”
황당했다. 그래서 다시 스마트폰을 검색해 본 결과 역시 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나마 그녀가 한 이야기는 양호한 측에 속한다. 더 자극적인 타이틀도 있었다. ‘정력 좋은 수영선수가 즐겨 찾는…’, ‘그의 하반신을 만져보니…’와 같은 기사 제목. 도대체 이런 제목은 누가 지어내고, 어떤 편집장이 통과시켜주는 것인지?
“그래도 부럽다. 난 처음으로 4관왕이거든. 그런데 살짝 네 기사에 덧붙여서 나올 뿐이야.”
“참, 사람들은 이상하네. 수영선수를 수영으로만 평가해야지…”
외모에 대한 것. 그는 자신이 잘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은 적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오히려 귀찮은 점으로 작용한다고 여겼다. 사실 너무 많은 관심이 부담스럽다. 이왕 수영을 선택한 것, 정점에 서서 그 때 관심을 받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스무 살 이후에도 키가 클 수 있나?”
“무슨 소리야?”
“여기 코치님이 내 키가 179인데 180 이상이 되면 국가대표를 기대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을 하셨다는데…”
“흠. 기자들이야 워낙 여기 저기 짜깁기해서 말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니, 진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는 알 수 없어. 그리고 남자는 스물다섯까지 크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뭘.”
둘은 많이 가까워졌다. 이제 대화가 매우 자연스럽다.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차 안에서 있는 두 남녀. 사실 우혁이는 모르고 있지만 빛나는 오늘 화장을 하고 왔다. 그에게 잘 보이려고 말이다. 그런데 자신의 얼굴을 봐주지 않는다. 약간 서운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화장을 했다고 말을 할 수도 없다.
이제 그녀의 대회는 끝이 났다. 자유형 이외의 것을 참가하지 않으니 말이다. 재능이 있다면 다른 종목들도 참가하는 게 맞지만 그녀는 자유형만 집중을 하고 있다. 그녀가 화장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훈련장에 도착한 두 남녀. 이미 와 있는 미래는 그 둘이 같이 오자 눈빛을 빛낸다. 물론 놀람을 가득 담아서 말이다. 우혁이를 부르려다가 부르지 않았던 이유다. 오히려 그에게 말을 건 사람들은 김훈과 찬규다. 그것도 거의 윽박지르다 시피…
“좀 빨리 빨리 다닐 수 없냐? 기다렸잖아.”
약간 늦기는 했다. 교통상황이 좋지 않아서 말이다. 하지만 버스 출발 시간에 늦은 것은 아니다. 모이는 시간에 늦었을 뿐. 그런데도 이렇게 성질을 내는 것은 당연히 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제 우승과 준우승을 했다. 그런데 스포트라이트는 다 우혁에게 갔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그래도 우혁은 가볍게 무시해준다. 그리고 올라탄 버스. 그는 원래 앉던 자리에 앉았다. 미래의 옆자리에 말이다. 이번에는 빛나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것은 바로 질투의 시선. 그리고 서운함. 온갖 미묘한 감정이 뒤섞였다. 자신이 태워다 줬는데 다른 여자 옆에 앉는다면 당연히 그녀의 입장에서 드는 감정은 배신감일 수 있다.
“잘 쉬었어?”
“응. 그런데 아침에 귀찮을 뻔했는데, 다행히 빛나가 와서 태워다 줬어.”
“그랬구나…”
이제 미래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빛나가 우혁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고개를 돌려 빛나가 앉아 있는 자리를 보았다. 그녀 역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여자의 눈빛이 마주친다. 가장 친했던 사이가 점점 균열이 생기고 있다. 남자 하나 때문에 말이다.
대회 4일째에는 어제 보다 더 많은 기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수 없이 많은 플래시를 터트리며 우혁을 찍었다. 미래와 빛나는 그의 주변에 가지를 못했다. 만약 그와 가까이 있다면 내일 기사의 제목은 대충 예상할 수 있다. 분명 남녀의 관계에 대한 추측성 기사가 나올 지도 몰랐다.
우혁은 불편했다. 이렇게 자신에게 보여주는 관심들이. 한 번도 웃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상관이 없었다. 매력적인 외모는 카메라 프레임에 딱 어울린다. 웬만한 연예인도 그에게 한 수 접어줄 정도다.
그것은 오늘 일정을 마치고 버스를 타러 나갈 때 더욱 느낄 수 있었다. 소녀 떼들. 장난이 아니다. 버스를 둘러싸고 있다. 어마어마한 인원들.
“우혁 오빠!”
“오빠가 나를 봤어, 오빠가 나를 봤다구. 미치겠어!”
그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잔뜩 인상을 쓰고 버스에 올라타는 그의 모습에도 소녀들은 더 멋있다며 모두들 자지러지고 있다. 버스가 출발하는 게 힘에 버거울 정도로 모여 있는 수 백 명의 인파. 오빠부대는 연예인들만 있는 줄 알았더니 수영계에도 탄생을 했다. 덕분에 김훈과 찬규는 더욱 투덜대고 있었지만.
미래와 빛나는 잔뜩 긴장을 하고 있다. 이제 자신들의 생각보다 더 빠르게 커버리고 있다. 이러다가는 어디로 날아갈 것 같아서 불안하다. 그 불안감의 크기는 그를 좋아하면 할수록 커져만 갔다. 물론 그 주인공은 그녀들의 이런 마음을 알지도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대회가 끝이 나고 있다. 대한민국의 수영샛별을 탄생시키며. 갑작스런 인기가 그에게 독이 될지, 아니면 약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 작품 후기 ============================
댓글들 감사합니다. 적절한 수위 조절 중입니다. 너무 평탄하지도 않으렵니다. 가끔 진한 장면도 넣어야 하니까요^^ 어쨌든 초점은 로맨스와 스포츠. 그 두 개가 적절하게 조화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