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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131화 저무는 시대, 그리고 뜨는 시대

세실리아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싶지만 그게 말로 표현이 되지 않으니 답답하다. 분명 머릿속에 있는 것은 한 가득인데 실제로 입에서 맴돌 뿐, 설득력이 없는 말이 되고 있다. 그러니 어린애가 떼를 쓰는 모양새다.

“우혁아, 내가 오실장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모델 일만 시킨단다. 그것도 TV가 아니라 포토 쪽만 하겠다고, 물론 나중에 세실리아가 한국에 더 적응을 하면 그 때 돼서야 다른 길로 빠질 수 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한단다.”

옆에서 참고 있던 지연이 드디어 세실리아를 거들고 나섰다. 항상 안쓰러워 보였다. 요즘이야 공개연애를 해서 우혁이 그녀를 자주 데리고 나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간관계가 협소한 것은 자신의 아들이나 그녀나 같다. 그녀 또래의 친구들을 사귀고 그랬으면 하는데, 실제로 위험 부담 때문에 그게 불가능해 보였다.

“쟤가 너 없는 동안 나랑 뭘 하겠니? 얼마나 심심하겠어? 매일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니 가끔 바람도 쏘일 겸 그렇게 오실장이 매니저도 붙여준다니 이번에는 네가 양보해라.”

우혁은 말이 없다. 그녀의 의지가 강하다면 막을 수 없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적지 않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승낙은 하지만 승헌에게 당부를 한다.

“잘 부탁 드려요. 아직 한국을 잘 모르니…”

“아, 드디어 우혁이 허락이 떨어진 거야? 와아, 정말 세실리아의 보호자를 설득하기가 힘들었다. 하하하. 알았어, 내가 매니저랑 코디 붙여가면서 잘 살필게. 아까도 말했지만 사진 촬영 위주의 광고만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승헌은 잘 알고 있다. 그녀의 상품성을. 아마 그 정도만 해도 꽤 몸값이 나갈 것이다. 상업성은 그의 소속사가 추구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하려고 우혁과 그녀를 도와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 아까웠다. 이렇게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그녀가.

우혁은 승헌을 보내고 세실리아와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 생각해보니 그가 잘 못한 것 같아서 그녀에게 사과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자신에게 화가 나 있는지 그녀는 말이 없다.

“나 생각해 보니 이 방에 잘 안 온 것 같아. 숙녀의 방이라서 남자가 잘 못 온 거지. 그럼. 흠. 흠.”

말도 안 되는 말. 무슨 말로 사과를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던진 말이다.

“숙녀?”

“아, 여자를 말하는 거야.”

“우혁은 나한테 너무 거짓말 많이 해.”

“내가? 언제?”

“옛날에 같이 자면 안 된다고 하고 그랬는데 다 거짓말이었어.”

“아, 그때는 어쩔 수…”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사과를 하려고 온 것이지 변명을 하려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세실리아에게 참 약한 우혁. 어쩔 줄을 모른다.

“알았어. 미안해.”

“괜찮아.”

세실리아는 그가 사과하자 바로 미소를 짓는다.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 그의 시야에 들어오니 아까 그녀에게 막 대한 것이 후회가 된다. 사실 그녀는 자신의 장난감이 아니다. 자신을 위해서 희생을 하고 온 그녀. 더 잘해줘야 하는데 너무 감싸는데 초점을 맞추느라 그녀의 뜻을 가끔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앞으로 잘할게.”

“나도.”

화해의 마지막 단계는 키스로 마무리 한다. 이럴 때면 둘의 몸을 불같이 달아오른다. 만약 그의 어머니가 없었다면 마지막 단계가 키스가 아닐 텐데.

“휴우, 엄마는 언제 일본으로 가시나?”

그녀의 방을 나오면서 한숨을 쉬는 우혁. 점점 참기가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호텔을 찾기도 힘들다. 그와 그녀가 너무 알려져 있기에.

다음날 다시 장치앙린이 도전해 왔다. 이번에는 심기일전을 한 것 같았다. 눈빛이 매섭다. 독기를 품고 이렇게 계속 도전을 하는 것을 받아준다. 우혁의 실력도 향상이 되고 있으니 오히려 득이 되는 상황이다.

“오늘 지면 돌아간다.”

그의 말에 결의가 보인다. 반드시 이기겠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이기면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인가? 그렇지는 않다. 아마 이겨도 돌아갈 것이다. 아니 이기면 아마 은퇴를 선언하지 않을까?

“더 이용하기는 힘들겠네, 후우.”

옆에서 보고 있던 영욱은 한숨을 쉰다. 장치앙린과 같은 스파링 파트너를 또 어디서 구하겠는가? 아마 자존심이 강해서 돈을 준다고 해도 남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이 그의 마지막이 맞다.

마지막 승부. 오늘 그가 돌아간다고 해도 그 동정심에 우혁은 져 줄 생각은 전혀 없다. 최선을 다해주는 게 그를 위한 일일 것이다. 스타트대에 선 그의 눈빛도 그래서 장치앙린과 같은 색이다. 승리를 위한, 승리를 갈망하는 그 눈동자. 앞을 향해 날아가는 두 마리의 돌고래처럼 그렇게 둘은 출발을 했다.

긴 잠영. 우혁의 장끼다. 얼굴을 내밀었을 때 장치앙린은 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정말 마지막 경기라고 생각을 했는가? 그래서 오늘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고 하는 것일까? 경기 극 초반부터 스퍼트를 냈다. 50미터, 100미터 경기 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이른 승부에 온 힘을 다 쏟는 것 같았다.

우혁은 그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았다. 제 속도로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경기 중반 쯤 한 바퀴나 차이가 난다. 그가 무엇을 노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쯤에서 그는 현격하게 체력이 떨어졌다.

1000미터 부근에서 거의 바짝 뒤를 쫓더니 드디어 1200미터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미 이 때 경기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싱거웠다. 마지막치고는. 그의 오버 페이스로 이 대결이 그리 좋은 추억으로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난 네가 나에게 몇 번 져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존심이 상했다. 몇 번 대결을 하고 나서 널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

경기가 끝나고 그에게 손을 내밀면서 장치앙린은 말했다. 지쳐있지만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은 표정으로. 그 손을 잡은 우혁. 이제 라이벌이 더 이상 될 수 없는 존재를 떠나보내는 심정은 참으로 복잡하고 미묘한 심정이다.

“결국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하려고 마지막으로 대결하자고 한 거다. 세계 대회에 나가라. 나가서 우승해라. 날 이긴 사람이 다른 놈들에게 뒤지는 것 보고 싶지 않다. 그 또한 내가 진 것만큼 자존심이 상하니까 말이다. 행운을 빈다. 이건 진심이다.”

마지막 그의 말. 그것을 남기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이제 진짜 옛 사람이 가고 새사람의 시대가 왔다. 지난 아시안 게임에서 그의 시대가 온 것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장치앙린을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시간들. 이제는 다르다.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압도하며 자신의 시대를 열어간다.

앞으로 남은 것은 세계무대. 그리고 그 이전에 그는 국내와 아시아에서 정상의 자리에서 수많은 도전자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들을 물리치고 신화를 세우는 모습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영욱. 스승의 마음은 늘 그렇다. 그리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 다시 훈련의 매진하는 우혁. 그렇게 아시안 게임이 열렸던 해의 마지막은 굵은 땀방울로 장식이 되었고 새해가 밝아 왔다.

새해 첫 대회. 바뀐 방식으로 마스터즈 수영대회가 열리기 하루 전. 1월이 가고 2월도 중순 쯤 되는 그 때 그는 드디어 강력한 도전을 맞이하게 된다. 17세의 소년 지미 오에 의해서.

============================ 작품 후기 ============================

음. 뭐랄까? 오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사실일 수도 있겠네요. 세실리아의 연예인화. 일단 독자님들이 지적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데 의도는 그녀가 앞으로 연예인 생활을 어떻게 하고 그래서 어떻게 진행이 될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담고자 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약간의 스포를 어쩔 수 없이 노출하자면 그녀와 미래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때 등장인물들의 행동 반경을 미리 예상을 해놓고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캐릭터가 가끔 나오기도 하고 주인공의 돌출 행동이 그려지기도 하나 봅니다. 이건 고쳐야 할 점이겠죠.

어쨌든 제가 그린 그림에서 미래는 다시 우혁에게 자의적으로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세실리아와 둘이 만날 수 있는 어떤 접점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진행시킨 것입니다. 일종의 변명입니다.

현대판타지에 히로인이 연예인이 된다는 것. 잘 몰랐습니다. 제가 읽은 유일한 현대 판타지는 사실 더스크 워치라고 윤현승 작가님 작품입니다. 그 이외에 제목은 기억이 안나는데 건드리고고님의 현대고수백서인가? 어쨌든 그거는 읽다가 중도 포기했구요. 현대 판타지는 저랑 잘 안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을 보니 희안하기는 희안하네요.

댓글들을 보면 참 제가 시대에 뒤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다가 작가로는 초보 작가이니 좀 엉성할 수밖에요. 저는 김용의 소설을 읽으면서 자랐고 그 이후 야설록님이나 좌백님, 그리고 사마달님, 금강님의 무협소설을 중고등학교 때 많이 읽었습니다. 많이 구세대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작가로서는 초보이지만 따라잡으려고 애를 쓰는 중입니다^^ 더 많이 읽고 글을 써야 하는데 우연한 기회에 작가로 입문해서 이렇게 쓰고 있네요. 읽을 시간은 없고 쓰는 것은 즐거우니 이렇게 될 수밖에요. 이번 작품 끝나면 좀 읽긴 해야겠습니다. 그래야 욕도 좀 덜 먹고... 하긴 읽는다고 꼭 달라지지는 않겠죠. 생각해보니 좀 그런 것 같네요.

어쨌든 로맨스는 마지막 임팩트 하나가 좀 있어야 하기에 두 히로인의 동선을 맞춰놓는 작업을 하는 중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혁의 새로운 라이벌도 등장시켜야 하고 세계 선수권 대회와 올림픽까지 노력해서 잘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다음에 작품을 시작할 때에는 한 50회 정도 쓰고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중간 중간에 뭔가 가끔 틀어질 계기가 생겨서요. 어쨌든 지적은 너무 감사드리고 많이 알려주십시오. 다만 비판의 수위를 좀 낮추어서요^^ 더 발전하는 작가가 되고 싶으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안녕히 주무세요.

PS. 이게 글을 쓰다가 생긴 증상인지 모르겠지만 가운데 손가락이 좀 저리네요. 같은 경험 가지고 계신 분. 한 이틀 저리니까 약간 겁이 나서요. 왜 그런지 알려주실 분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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