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41화 현지 적응 훈련
대회는 선수들이 도착한지 일주일 후에 시작이 된다. 시작되기 전 일주일 동안은 현지 적응 기간이다. 훈련을 할 수 있는 수영장은 주최 측에서 내주었다. 일본에는 잘 갖춘 수영장이 많다. 선수들 입장에서 보자면 참 부러울 지경이다. 투자 대비 성적이다. 당연히 좋은 선수들이 끊임없이 배출되는 것이다.
“일본 물 좋네. 그죠, 형?”
“몰라. 내가 보기에는 똑같구만.”
“맛을 보면 알지 않아요? 전 수영장 물 약간씩 맛을 보는 게 버릇이에요. 물론 먹는다는 말은 아니에요.”
일수의 말을 듣고 그는 약간 움찔했다. 사실 그는 먹는다. 정확히 말하면 호흡을 하는 것이지만. 어쨌든 그가 그렇게 표현하니 도둑이 제 발 절인다고 찔리는 점이 없지 않았다. 요즘 들어 그의 영법은 매우 독특해 졌다. 마치 물고기를 닮아간다고들 한다. 물에서 호흡할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리려고 독특해지는 것인데, 아무도 따라 할 수 없으니 매우 신기해 할 수밖에 없다.
오전 연습이 끝나고 점심시간이다. 현지에 왔다고 해서 현지 음식을 먹지는 않는다. 국가대표는 음식에 특별 관리를 한다. 물론 요리는 현지의 요리사가 담당을 하지만 한국 요리사도 끼어 있고 한식 요리 위주로 식단이 편성되어 있다.
“이 불고기는 한국 돼지일까요? 아니면 일본 돼지일까요?”
“너 참 분석을 좋아하는 구나?”
“그러게요. 형이랑 있으면 워낙 심심해서요. 헤헤헤.”
일수는 그와 단짝이 되었다. 언제나 붙어 다녔다. 물론 또 하나 있다. 빛나다. 일본에 와서 특히 그의 옆에 찰싹 붙어 앉아 있다. 이런 국제 대회에 출전을 하면 조심해야 할 게 있다. 바로 외국인 남자 및 여자 선수들. 가끔 눈이 맞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항상 경계하고 있는 그녀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한국에 있는 미래는 그녀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알아서 지켜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틀에 한 번씩 대회가 열릴 수영장을 30분씩 개방한다. 그것은 홈팀에 대한 특혜 시비를 없애기 위해서이다. 물론 그런다고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없어지지는 않지만.
어떤 스포츠이든 멘탈은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익숙하고 그렇지 않고에 따라서 기록이 달라지니 당연히 30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대회장을 방문하는 첫 날. 점심을 먹고 이동을 하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그들. 외국에 나오면 선수단은 하나가 된다. 특유의 국민성이다. 특히나 일본을 대상으로는 더욱 심하다. 그동안 반목했던 사람들도 잠시 휴전을 할 정도다. 김훈과 찬규도 그랬다. 적은 일본이나 중국이지 국내 선수가 아니다.
특히 우혁이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공항에서 우승에 도전을 한다는 말을 했을 때에는 나름 대견했다. 자신들은 언감생심 그런 말을 하기 힘들다. 소심해서 그런지 우승이라는 말을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 어쩌면 박태원의 그늘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가 보다. 그들에게 우승이란 넘보지 못할 산과 같았나 보다. 당연히 준우승이 그들의 자리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들뿐만 아니다. 요즘 우혁과 일수의 일취월장하는 실력 때문에 다른 선수들 역시 상대적으로 우승에 멀어지고 말았다. 지난 국가 대표 선발대회에서도 사이좋게 그들이 3관왕을 했다. 일수는 50미터, 100미터, 200미터를. 그리고 우혁이 400미터, 800미터, 1500미터를.
도저히 그들의 틈에 끼어들기가 이제는 힘이 든다. 그래서 차라리 그들을 응원하고 있다. 일본이나 중국을 이겨달라고. 이번 대회가 절실한 것이 처음으로 박태원이 참가하지 않은 대회다. 물론 부상을 당했을 때 간간히 그가 불참한 국제 대회가 있었지만, 은퇴 후 이렇게 처음으로 치르는 국제 경쟁.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못하면 역시 한국이 누군가의 원맨팀이었다는 조롱을 면치 못한다.
“와아, 대단하네. 뭔가 달라.”
“그러게 관중석도 이렇게 많네. 규모 자체가 틀린 걸?”
한 마디씩 하는 선수들. 경기장에 들어가서 보니 확실히 달랐다. 새로 지은 경기장이라서 국제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도 처음 방문을 하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휘황찬란한 경기장의 규모에 다들 놀라고 있다.
“어? 근데 아직 연습중인가?”
김훈이 누군가 수영을 하는 모습을 본다. 여자 선수다. 영법이 하늘을 바라보는 자세다. 즉, 배영이다. 그녀는 이들이 왔다는 것을 인식했을 텐데도 여전히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폼을 보니 배영 선수인가 보다.
“어떻게 해요?”
이번에는 찬규다. 영욱을 보고 묻는 것이다. 이곳을 진두지휘하는 코칭스태프 중에 그가 책임을 지고 있다. 감독은 연맹 임원들과 할 일이 있다고 빠졌다. 그래서 그가 실질적인 감독이나 마찬가지다.
“일부러 쫓아낼 수는 없다. 그냥 신경 쓰지 말고 하자.”
“그래도 우리의 전략이 노출 되지 않을까요?”
“무슨… 그럴 리가 없다. 더구나 배영 선수다. 우리나라 선수를 라이벌로 생각이나 하겠는가?”
30분의 개방은 매우 짧은 시간이다. 그 동안 적응 훈련을 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전략 노출을 할 리가 없다. 또한 배영은 24위 안에 든 선수들 자체가 없다. 각 국가에 부여 받은 두 개의 추천권만 사용하여 유망주라고 둘을 데리고 왔다. 그러니 누군지도 모를 것이다.
선수들은 각자 물에 들어갔다. 짧은 시간 동안 이 물을 몸이 익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혁은 깊숙이 잠수를 한다. 언제나 그렇다. 그는 대회장에서 잠시 몸을 풀 때도 잠수를 하며 물을 들이 마신다. 호흡을 하는 것이다. 선수들은 그런 그를 처음에는 관심 있게 지켜보았었다. 도대체 그가 왜 그러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아주 오랫동안 잠수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그가 익사한 줄 알고 몇 명이 들어갔다가 나오는 촌극도 있었다.
유카리 미호. 배영 수영 선수의 정체다. 왜 그녀가 여기에 남아 있었을까? 다른 일본 선수들은 이미 자리를 다 비켜 주었는데…
“와, 정말 오래도 잠수를 하네.”
가장 자리에 앉아서 구경을 한다. 한국 선수들이 수영을 하는 모습을. 그러다가 보게 된다. 우혁의 모습을. 잘 알고 있다. 그에 대한 기사를 읽어 보았으니. 물론 기사보다는 사진을 더 유심히 보았지만 말이다.
그녀의 예쁜 얼굴. 일본에서도 인기가 많다. 하지만 일본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것은 재일교포 3세라는 것. 아닌 듯하면서 차별이 심한 나라다. 물론 스포츠에서는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을 하여 귀화를 시키고는 하지만.
“어?”
그녀의 눈이 빛났다. 우혁이 수면 위로 올라 와서 가쁜 호흡을 내쉴 줄 알았는데, 전혀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신기하다. 오랫동안 잠수를 하고 숨을 참았다면 산소를 필요로 하는 게 당연한 이치.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풍덩. 배영 선수가 자유형을 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배영에 특화되어 있으니 뒤집어서 가는 것이지 자유형으로 가면 남 못지않게 빠르다. 그녀는 우혁의 근처에 팔을 휘저어 다가갔다.
“이 봐요?”
가까이 다가가서 우혁을 부르는 그녀. 그것을 보고 빛나의 눈썹이 올라간다. 그녀는 유카리를 알고 있다. 잘 알지 못하지만 국제 대회에서 안면을 익혔다. 18세의 나이. 숙녀에 가까운 소녀의 나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이 지켜야 할 대상에 다가가니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혁은 그녀의 말을 신경 쓰지 않는다. 원래 그렇다. 평소에도 그에게 말을 걸다가 무안해서 그냥 가는 소녀 선수들도 많았다. 그는 더 이상 여자관계를 복잡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난봉꾼처럼 문란한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주변에서 맴도는 빛나와 미래 같은 여인들을 또 만들 생각은 절대 없다.
“내 말 안 들려요? 이봐요?”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자 우혁이 속력을 냈다. 그가 속력을 내면 여자의 몸으로 따라가기가 힘들다. 그래도 그녀는 끝까지 쫓아가려고 애를 쓴다. 모두들 그런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특히나 여자 선수들은 고까운 눈이다. 안 그래도 매번 빛나가 그를 지키고 있는데, 예쁘장한 일본 여자 선수까지 그에게 관심을 보이니 이래 저래 자신들에게 기회가 오겠는가?
“당신, 혹시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는 거야?”
그녀의 큰 소리. 물론 다른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일본어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인사야 할 수 있지만 일어에 능통한 사람은 현재 이곳에 없다. 우혁 빼고. 그는 깜짝 놀랐다. 설마 자신이 물속에서 숨을 쉬는 것을 봤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지레 짐작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신경이 쓰인다.
“무슨 소리지?”
그가 빨리 다가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까지 반응을 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는 그만 넘어가고 말았다. 물론 그는 지레짐작이 아니라 호기심에서 하는 말이다. 설마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그런 불가능한 일을 상상해 본적도 없는 그녀.
“그렇게 오랫동안 숨을 참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서요.”
“그럼 지금 봤네. 그것을 말하려고 나를 부른 거야?”
“내 말 다 듣고 있었네… 그런데 왜 못 들은 척 했어요?”
“귀찮으니까.”
그의 말투는 매우 정나미가 떨어진다. 일본어를 잘 모르는 이들조차도 그의 그 표정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눈치 챌 정도다.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귀찮게 해서 죄송해요.”
“…….”
신기한 성격을 가진 여자애다. 당돌하다 싶더니 지금은 머리를 숙인다. 그러느라 얼굴을 물에 몇 번 박아 넣었지만.
“그럼 계속 하세요. 방해 안 할 테니. 그냥 보고만 있을게요. 헤에.”
그녀는 그렇게 웃으며 그를 보았다. 해맑은 웃음이다. 하지만 그는 이상한 여자를 다 보겠다는 눈빛으로 다시 진행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래도 뜨끔했다. 들켰는지 알았기에.
‘조심해야겠어. 다음부터는 잠수는 생략해야겠다.’
이제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그는 팔을 휘젓는다. 그 모습을 가장자리에 앉아서 무릎을 모으고 보는 유카리. 그리고 불길한 예감으로 그녀와 우혁을 보는 빛나. 사람은 항상 뜻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는 게 아니다. 복잡한 듯 보이지만 다 정해진 길이 있다. 그게 바로 다 신이 점지해 준 인연 때문이 아닐까?
============================ 작품 후기 ============================
운전대는 제가 모르는 일이었군요. 지금 검색해 보니 맞는 말씀이십니다. 수정해 놓겠습니다. 다른 오타들 또는 오류들도 지적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음. 일본 이야기는 대회 기간이 일본에서 벌어질 것이고, 또 한일 양국 관계사가 있기 때문에 이 글의 전체적인 방향은 아니지만 좀 삽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좀 보기 꺼려지신다면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럼 좋은 아침 되세요^^